진주성과 남강 유등제
진양(진주)행진곡
이창호
멀리 노을지는 진양성
남강에 아른 아른 촉석루 뜨고
호국사 만종 여운 은은히
님들이 뿌린 선혈 진달래 피네.
건너 지켜보는 망진산
그날에 오른 햇불 누리를 밝혀
세월의 저쪽 사라질 손가
들닐다 바람결에 우람한 함성.
성두 빛나누나 이 맥박
역사의 후예들이 연면(連綿)한 고장
나래를 펼쳐 자랑 일깨
워영원히 이어가리 진양의 영광.
촉석루
촉석루 아래 의암과 사당이 보인다
대나무 숲이 강가로 병풍처럼 펼쳐져 마을을 에워싸고 있었지.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남강 하류의 뚝 길(뒤 벼리)로 읍내가 이어졌다.
상류로 올라가면 촉석루 아래에 논개의 의암이 강물에 솟아 있다. 우리 큰아버지 집은 마을 가운데쯤에 있었다.
대문 안팎으로 커다란 감나무가 많았다. 함안 조씨 집성촌이어서 마을 사람은 전부 친척들이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내 또래 사촌 영자와 나는 매일 참새를 쫓으러 논으로 가야 했다.
수박, 참외밭과 가지 밭 두렁을 지날 때면 으레 어린 생 가지를 따먹고는 입가가 시퍼랬다.
논에서는 여기 저기 허수아비들이 짤랑짤랑 손짓해댔지만 우리는 서로 미루느라 티격태격 하기가 일쑤였다.
동구 밖 과수원길 따라 복숭아밭에 가는 날은 특별한 소풍 길 같았다. 작은아버지 집을 갈 때도 복숭아 나뭇가지들을
헤치며 지나가야 했다. 비라도 내린 다음날 아침이면 일찌감치 떨어진 땡감을 줍기 위해 동네 감나무 밑을 한바퀴 돌곤 했었다.
이 고향 그림은 우리가 어려운 피난살이를 하던 한 여름철 동안 아버지 고향에서 보냈던 때의 정경이다. 동란의 후유증이 회색 빛으로 물들여버린 내 어린 시절 중 유일하게 간직된 밝은 수채화 한 폭이다.
그런데 지금은 진주대교가 세워지고 그 마을,상평동,은 강남의 도시촌이 되었다. 그 수채화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고,
그때의 강물은 흘러 갔고 세월도 흘렀고 사랑도 흘러가고 새로운 강물이 흐른다. 각가지 유등들이 새 소망을 담고
떠 다니는 오늘의 남강이 새 역사를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