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나루의 빈 배는 성인을 기다리고 있다. | |||||
2006-11-01 17:23:00 | |||||
1592년(선조 25) 4월 14일 20여 만 명의 대군으로 부산을 침공 이른바 임진왜란을 일으켜 지금의 경부선을 따라 5월 2일 도성인 한양을 점령하고, 6월18일 평양을 점령 불과 75일 만에 꽃놀이 유람하듯 사실상 조선을 점령한 일본이 끝내 1차 조선침략을 실패한 이유가 후방인 호남을 장악하지 못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1597년(선조 30) 퇴각했던 일본이 14만 대군으로 재침한 정유재란(丁酉再亂)은 안정되어야할 후방이 죽기로 항거하는 호남의 의병들과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지략으로 제해권(制海權)을 빼앗겨 각종 보급로가 차단되고 군량미조달이 어려웠던 것이 패인이었음을 분석하고 일으킨 전쟁이며, 그 대상은 호남 즉 섬진강이었다. 섬진강을 공략하는 것은 곧 한반도 중앙을 동서로 양단하며 호남과 영남을 초토화시키려는 작전이었고, 그에 따른 전투는 1차 조선침략을 실패한 보복이 가미되어 왜군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조선 백성들의 참상은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생지옥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반도 내륙으로 들어오는 섬진강을 방어하고 서부 호남평야를 지키는 중요한 요새였던 순천도호부(順天都護府)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을 지켜 왜적을 물리친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은 퇴각한 일본이 재침할 것을 예견하고 전쟁에 지친 백성을 위로하는 한편 중요 거점을 순시 성을 보수하고 대비케 하면서, 저 유명한 “국가군저(國家軍儲) 개고호남(皆靠湖南) 약무호남(若無湖南) 시무국가야(是無國家也) 국가의 군비는 다 호남을 의존하고 있는데, 만약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어진다.” 는, 유명한 말로 호남인들의 자긍심을 되살려 재침에 대비 마침내는 7년의 왜란을 승리로 이끈 동력으로 만들었다. 일본의 조선침략의 관문인 남해바다를 장악한 이순신 장군이 노심초사한 것이, 한번 뚫리면 파죽지세(破竹之勢)로 한반도를 동서로 양단하며 초토화시켜버리는 섬진강 물길을 방어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섬진강과 대황강(大荒江 보성강)이 합류 호남의 내륙을 동서와 남북으로 연결하는 곡성의 압록을 비롯하여, 구례 잔수진(潺水津) 등 중요 요새를 직접 답사한 끝에 섬진강의 입구인 구례 석주관(石柱關)을 방비케 하였다. 이순신 장군이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어진다.”며, 민심을 독려(督勵)한 결과 1,000여 명의 의병과 150여 명의 승병(僧兵)들이 패주(敗走)하기에 급급한 관군을 대신하여, 하동방면에서 섬진강을 거슬러 오는 적장 요시히로(의홍(義弘))의 대군을 맞아 결사항전 끝에 시산혈해(屍山血海)를 이루며 옥쇄(玉碎) 항전의 역사를 피로 새겼고, 훗날 사람들은 이 의로운 충혼의 넋을 기리며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골짜기를 “혈천(血川)”이라 불렀는데, 저 유명한 피아골의 이름이었다. 동국여지승람 구례현의 기록을 보면, “석주관(石柱關) : 동쪽으로 25리에 있으며, 좌우로 산세가 험하고, 강변에 길이 있는데, 사람과 말이 가까스로 지난다. 북쪽에는 커다란 협곡이 있고, 그 안에 수십 리의 긴 강이 있다. 고려(高麗) 말기에 왜구를 막기 위하여 강의 남북 쪽 산에 성을 쌓았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성터만 남아 있다. 여기에서 호남(湖南)ㆍ영남(嶺南)으로 나누어진다.”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혈천(血川)”이며 오늘의 피아골이다. 이 피아골은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한 의병들의 항전(抗戰)으로 “피가 냇물처럼 흘렀다.”하여 지어진 “혈천(血川)”이라는 참으로 가슴 아픈 구국의 역사가 세월에 묻히면서 변형된 것인데, 다시 이것을 여순반란을 일으켜 수많은 양민들을 학살하고 6·25 당시 후방을 교란 주민들을 살해하며 방화를 일삼던 지리산 빨치산들의 “영웅적인 투쟁의 역사(?)”로 미화 왜곡시켜버린 것이, 자유대한에서 기생하는 좌익세력들이었다. 부연하면, 오늘날 구례군 가을 단풍축제의 이름으로 전락해버린 피아골의 역사를 4백 년 전 강토를 침략하는 수많은 왜적을 맞아 시산혈해를 이루며 죽어간 이름 없는 의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미래의 교훈으로 삼는 의로운 정신문화계승으로 바꾸어야할 것이다. 이처럼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의병들이 일어나 호남을 지켜낸 역사에서 보듯이, 동양의 유토피아 삼신산(三神山)의 우두머리 방장산(方丈山 지리산)이 있는 호남은 대대로 국가의 재정을 충당하고 군량미를 공급하는 생명줄이었다. 긴 역사 속에서 보아도 부패한 신라가 망하면서 삼국으로 분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낙동강과 영산강 세력들을 연계 후삼국을 통일 고려를 세운 것이 이 섬진강이었고,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하는 비책(秘策)을 구한 것도 이 강이었으며, “국가의 군비는 다 호남을 의존하고 있는데, 만약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어진다.”며 단언한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은 이러한 호남의 지리적 조건과 역사를 정확히 꿰뚫어 본 영웅이었다. 이후 조선말기 고종황제가 호남의 의병들을 의지하고, 전남 장성의 기우만(奇宇萬), 충청남도 회덕(懷德)의 송병선(宋秉璿), 전북 전주의 전우(田愚)선생은 물론 경기도 포천 출신의 최익현 (崔益鉉 1833∼1906(순조 33∼고종 43)) 선생 등등 우국지사들이 섬진강으로 달려와 나라를 구할 방책을 논하고 의병을 일으킨 것은, 모두 이러한 한반도의 지리적 조건과 역사적 사실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특히 백 년 전, 한반도를 침략한 일본은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庚戌國恥)로 대변되는 대한제국을 합병하기 전, 강력히 저항하는 호남의 의병들을 놔두고서는 조선을 합병할 수 없다고 판단 1909년 군대를 동원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南韓暴徒大討伐作戰)”으로 호남 의병들을 대대적으로 소탕했는데, 이것은 4백 년 전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정벌하려다 호남 의병들로 인하여 실패한 쓰라린 패전을 경험한 일본이 역사를 현실로 끌어내 성공한 전략이었다. 이때 일본이 실시한 “남한폭도대토벌작전(南韓暴徒大討伐作戰)” 역시 섬진강 유역의 의병들을 주적(主敵)으로 삼은 작전이었다. 어디 이것뿐이랴? 2006년 봄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 한국이 강력하게 반발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독도해역 해저측량 조사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한 D데이 4월 14일이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끈 조선 침략 선봉 제1군 18,700명의 대군이 700여척의 병선으로 부산포(釜山浦)를 내습 부산진성(釜山鎭城)을 함락 조선 침략을 위한 해안 교두보를 확보한 기념비적인 승전의 날인데, 이는 2006년 4월 14일 독도에 대한 일본의 도발은 사전 치밀하게 준비된 침략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최근 한국의 현대사에서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로 국민들을 분열시켜 적으로 삼아 집권에 성공한 지역주의의 원조이며 호남의 맹주인 김대중이 목포를 방문 “무호남 무국가(無湖南 無國家)”라는 방명록을 썼는데, 이는 이순신 장군의 고사를 악용 다시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부추겨 자신의 지팡이 아래로 모이라는 반역사적인 범죄이며, 전라좌수영을 지키던 거북선을 마치 해남 울돌목에 있었다는 듯 기만하고 있는 것과 같은 역사왜곡이다.
지금의 한국 상황은 4백 년 전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때와 백 년 전 조선이 멸망한 그때와 똑같이 나라는 끊임없는 당파싸움과 부정부패로 썩을 대로 썩어버렸고, 국가의 흥망이 외세에 의해 논의되고 있는 누란의 위기에 처했음에도, 다시 또 국민을 이간 분열시켜 국민을 적으로 삼는 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이완용과 무엇이 다르다 하겠는가? 때마침 그동안 국가안보를 위해 노심초사하던 김승규 국정원장이 포의(布衣 벼슬이 없는 선비,)가 되었는데.......얼치기 사상놀음과 밥그릇 싸움으로 예(禮)도, 의(義)도, 인(仁)도, 없는 작금의 정치판에 무슨 미련이 무슨 희망이 있을 것인가? 바라건대 포의(布衣) 김승규는 4백 년 전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白衣從軍)의 몸으로 이 강으로 내려와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했듯이, 남은여생을 3김의 탐욕으로 분열된 동서의 갈등을 씻어내고 남북대립을 해소 21세기 삼한(三韓)을 통합하는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가 되어봄이 어떠한가? 오늘도 경상도와 전라도 수많은 산골짜기에서 흘러오는 물들을 하나로 아우르며 바다로 가는 섬진강 강나루를 지키는 빈 배는 국민을 분열시키는 증오(憎惡)의 정치가 아닌 선(善)의 정치로 삼한 통합을 이루고 이 민족을 살려줄 성인(聖人)을 학수고대(鶴首苦待)하고 있다. 성출산(聖出山) 단심대(丹心臺)에서 | |||||
[박혜범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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