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다
“이별이게 그러나 영~이별은 말고 ․ ․ ․ ”
어디 내생에 친구 같이 반갑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이별 같이 모든 생명과 물성과 만나고 이별하리라. 그와의 만남과 이별이 몇 철 전 바람 같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다. 서정주의 시(詩) 같은…….
(2011년 1월)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조윤수
겨울 연 방죽에 갔더니 호수가 하얗게 얼었다. 분홍빛 바람이 향기로웠던 호수는 이별의 슬픔이 얼어붙어서 극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빙판에 툭툭 꺾여 넘어진 연잎과 갈색 줄기들이 거칠게 붓질한 화가의 그림 같다. 천년 간다는 연자(蓮子)를 품고 있던 동안 달콤했던 천년의 꿈을 놓아버린 연화는 바람이 되었고, 누런 잎줄기들이 찬란했던 여름의 기억을 품은 채 허리 잘린 갈대가 되어버렸다. 꿈꾸는 화석처럼.
우리는 진정으로 과거를 잘 떠나보내는지 궁금하다.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덕담을 주고받지만 사실은 잘 마무리 하지 못한 지난 일들의 찌꺼기들이 꼬리를 물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새로 만든다. 새 달력을 걸면서 나도 과거를 잘 떠나보냈는지를 살펴본다. 올해부터는 오늘의 설거지를 다음날까지 미루지 않기도 한다. 마음 설거지까지. 습관처럼 미루는 일이 없는지. 공부하고 글 쓰던 일이 마무리 되지 않으면 주변이 어수선해진 채로 날을 넘기고 만다.
완주군 복지과에서 비상전화를 설치하고 갔다. 지난해에 서울의 내 주소를 이곳으로 옮겼더니 완주군의 호구 조사에 내가 ‘DKNY’가 된 것이다. 아직 이런 시설에 의지할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혼자 있을 때 어떤 실수를 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어서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나의 거동 반경에서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 센서가 감지하여 센터로 연결된다. 우주의 진공에서 나온 센서가 나를 에워싸고 있는 느낌이다. 가스가 누출되었다거나 화재발생의 조짐이 보인다거나. 갑작스런 도움이 필요할 때 버턴만 누르면 되는 전화다. 4시간 이상 아무 것도 감지가 되지 않으면 전화가 걸려온단다. 외출 시에는 외출 버턴을 누르고 나가야 한다. 이렇게 올해는 또 하나의 메탈 친구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삶이 만남이라고’ 했지만, 삶은 이별의 연속이기도 하다. 철학자들이 말하는 행복의 비밀은 익숙한 것과의 이별에 있다고 한 말이 깊게 와 닿는다. 지난 일과 앞으로의 일에 대한 걱정을 담고 있지 않을 것. 마음속에 아픈 과거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품고 있지 않는 것. 이별을 잘 해야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진다. 누군가, 뭔가를 만나고 이별하는 일이 삶이다. 만남이 주는 것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싫어하는 사람이나 상황과의 만남, 좋아하는 사람이나 상황과의 이별,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생기는 슬픔 ․ 비탄 ․ 근심 등의 괴로움이 일차적 고(苦)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 이루어졌다고 해도 삶에 있어서 행복한 느낌이나 조건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괴고성(壞苦性)이 있다. 그 다음으로는 철학적인 존재 자체의 물음이 남는다. 무엇보다 존재 자체의 물음이 우선해야 모든 일이 순조로울 것이다. 비로소 행복은 세상의 고해(苦海)를 즐겁게 건너가는 일이 될 것이기에.
오래 사용하던 생활용품도 몸에 붙은 습관으로 이별하기가 주저될 때도 많다. 익숙한 쓰임새에 대한 인연의 정이 베였기 때문이다. 하물며 사람이랴. 그 사람과 이별한지도 벌써 4년이나 지났다. 그와 이별하고 혼자, 조용하게 딱 한 번의 통곡으로 모든 결별의 여운을 청산할 수 있었다. 그가 없다는 사실이 확연해져왔기 때문에, 그와의 만남이 잘 이루어져서 잘 이별할 수 있었다는 감격에 겨운 슬픔이었다고나 할까. 그가 다시 살아온다고 해도 더 이상의 최선은 있을 수 없기에 아쉬움을 떨어버릴 수 있었다. 살면서 각자의 영혼의 자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지 싶다.
그는 확실히 나보다 수행의 단수가 높았다. 내가 이렇게 성숙할 수 있게 된 것은 그의 발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솔직히 고백할 수 있고, 그는 나에게 성장할 기회를 주었다. 그가 홀연히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세상보다 다른 차원의 수행이 필요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편한 마음으로 떠났던 그가 부러울 때도 있다. 아주 가끔. 대신에 나는 그 4년 동안 수필집 2권을 출간했다. 그가 없는 공간을 잊기 위함이 아니라, 늘 그래왔던 일들을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생활 구성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이렇게 한 생 동안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짜진 세월의 천에 연화의 꿈을 새긴다. 어떤 무늬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마 세월을 운영하는 사람을 닮을 것 같다.
살아있을 때 자주 잔소리 같았던 그의 말이 지금 옆에 있는 것 이상으로 나를 깨우기 때문에 그렇게 이별 같지가 않다. 나는 아직 덜 닦여져서 세상에 좀 더 남아야 할 것 같다. 깔끔했던 그와는 달리 정리해야 할 일이 많고 지켜 볼 일도 많다. 그가 허락한 일이기 때문에 더 잘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니 그가 못다 한 일도 나는 두 배로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별을 잘하면 더 좋은 만남이 이루어진다. 더 깊고 넓은 사랑을 할 수 있고 세상을 더욱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모든 생명과 물성들이 나에게 더 깊게 들어온다. 그렇듯 내가 만나는 모든 사물과 작은 생명은 나의 또 다른 분신 같아서 그를 대하듯 나를 대하듯 그리 해야 하리라.
만남과 이별이 잘 이루어지는 사이는 만남과 이별이라는 이름도 없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이별이어도 이별 같지 않은 듯, 만남도 꼭 그랬어야 했을 걸. 아무런 계산 없이 그냥 그대로 볼 수 있는 그런 만남이 진정한 만남이 아닐까 싶다. 만남도 이별도 없는 그런 곳으로 나는 더 진화하고 싶다. 그래서 올해는 그동안 쌓였던 습관이나, 혹여 지난 감정들이 남아 있다면 그것들과도 이별하고 싶다. 하던 일 그대로도 처음 하듯 하고 싶다.
“이별이게 그러나 영~이별은 말고 ․ ․ ․ ”
어디 내생에 친구 같이 반갑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이별 같이 모든 생명과 물성과 만나고 이별하리라. 그와의 만남과 이별이 몇 철 전 바람 같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다. 서정주의 시(詩) 같은…….
(2011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