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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 조각보와 몬드리안

차보살 다림화 2011. 4. 26. 23:33

아름다운 한국

 

조각보는 말 그대로 천 조각으로 만든 보자기를 말합니다. 모든 게 귀하던 옛날에 옷 같은 것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으로 만든 보자기입니다. 옛날에 얼마나 물자를 아꼈습니까? 밥 한 톨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정신이 조각보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베나 무명 같은 옷감을 상점에서 사는 게 아니라 어머니들이 손수 짰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족들의 옷을 만들어 준 겁니다. 조선 시대에 여성들이 했던 일 가운데 가장 힘든 일이 이 옷감을 짜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서 얻은 천을 함부로 버릴 수가 없었겠지요.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용도는 무엇이든 싸는 보자기

이 조각보는 쓰임새가 많았습니다. 우선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것은 무엇이든 싸는 보자기입니다. 이불을 쌀 수도 있고 예단이나 혼수품을 쌀 수도 있겠죠. 이렇게 물건을 싸서 집에 보관할 수도 있고 어디에 물건을 정성스레 보낼 때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지금처럼 물건을 싸두거나 나를 수 있는 도구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보자기의 용도는 참으로 긴요했습니다. 아마 양반집이나 부잣집일수록 보자기가 많이 필요했을 겁니다. 어디에 물건을 보낼 일도 많을 터이고 귀한 물건은 한 겹이 아니라 두세 겹으로 쌌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밥상을 덮는 상보로도 많이 썼습니다. 여러분이 기억하는 조각보는 아마 상보일 겁니다. 이것은 지금도 꽤 사용되고 있으니까요. 이 상보에는 대체로 가운데에 꼭지가 있어서 들 수 있지요.


 

그런데 이런 실용 뒤에는 조각보를 씀으로써 복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이 조각보는 워낙 공을 들여 만드니 만들면서 복을 빌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데 만든 조각보를 장롱 밑에 깔아놓거나 혹은 귀한 물건을 싸서 깊숙한 곳에 보관해서 복을 받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지요.

 

 

조각보의 바느질이 정교한 이유는 여인들이 조각보로 바느질 훈련을 했기 때문

조각보는 매우 정교한 바느질로도 유명한데 이것은 조선조의 여성들이 어려서부터 이 조각보를 가지고 어머니로부터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여자 어린이들은 바느질을 제일 먼저 배울 때 자투리 천을 받아서 여러 가지 방법의 기술을 배웁니다. 시침질이나 감침질, 공그르기 등 다양한 바느질 법을 가지고 나름대로 조각보를 만듭니다. 이렇게 몇 년을 연습하다 보면 나중에는 사용되는 자투리 천의 색깔이나 면적의 비례를 맞추어 멋진 디자인이 시현된 조각보를 만들게 되는 겁니다.

 

 

 

20세기 최고의 추상화가인 몬드리안의 작품에도 비견되는 자랑스러운 디자인

그런데 이 조각보와 관련해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이 보자기가 가지는 예술성입니다. 십 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한국에 온 어떤 꽤 잘 나가던 미국 디자이너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한국 회사의 디자이너들을 교육하는 일을 맡았는데 그의 첫 일갈은 이러했습니다. “왜 한국 디자이너들은 유럽 사람 아니면 미국 사람만 되려고 하느냐?”라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그는 “당신네 나라의 전통적인 문물에도 디자인이 대단히 훌륭한 것들이 많다, 그런데 왜 한국 디자이너들은 이런 물건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가?”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그 예로 보여주었던 게 바로 이 조각보였습니다. 그리곤 몬드리안의 그림도 같이 제시했습니다. 그때 그가 보여준 조각보는 구할 길이 없어서 그와 비슷한 것을 여기에 실어 놓아봅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가 보여주었던 몬드리안의 그림입니다.

 

 

 

그의 말은 계속 됩니다. “이 조각보의 디자인은 이 그림의 디자인보다 못할 게 하나도 없다. 이렇게 훌륭한 디자인이 당신네 전통에 있으니 그걸 활용해야 된다.” 이런 취지였는데 그때는 솔직히 말해 조각보를 잘 모르던 때라 어리둥절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몬드리안이 누굽니까? 칸딘스키와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추상화가 아닙니까? 그런데 이름 없는 우리의 어머니들이 만든 보자기가 그의 디자인 감각을 능가한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자투리 천을 활용하다 보니 생긴, 의도하지 않은 공간 분할이 더욱 아름답다


사실 예술 작품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만 우리가 봐도 우리 조각보는 그 구도나 색채 감각이 탁월하기 짝이 없습니다. 조각보를 보면 그 구도가 반듯한 것도 적지 않게 있지만, 사다리꼴 같은 다양한 도형을 쓴 것도 많습니다. 그리고 선도 어느 정도 비뚤어진 것도 많습니다.

 

이것을 두고 파격미라고도 하고 자유분방미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의도했다기보다는 만들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을 겁니다. 천이 잘라진 대로 그대로 사용하다 보니 그렇게 됐을 겁니다. 그렇게 대충 하는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는 아주 아름다운 공간 분할이 생깁니다. 저는 바로 이런 게 한국미의 정수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은 무엇을 하든 세부적으로 보기보다는 큰 틀로 사물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공간지각력이 대단히 뛰어납니다. 조각보도 그냥 남은 천을 가지고 ‘대충’ 잇는 것 같은데 나중에는 극히 예술적인 작품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때의 대충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대충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고도로 계산된 대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의 ‘대충주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따라 하기가 아주 어려운 한국인들의 고유한 성향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정신은 음악이나 춤 같은 다른 장르의 예술에서도 많이 보입니다.

 

그리고 조각보의 색깔 감각도 뛰어나기 그지없습니다. 국수적인 견해인지 모르지만, 색채 감각 역시 조각보가 몬드리안 것보다 낫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조각보는 섬세하면서 따뜻하고 유려합니다. 반면 몬드리안의 것은 합리적으로 보여 차게 느껴집니다. 무엇이 반드시 낫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한국인의 눈에는 조각보가 더 다정합니다.


 

 

이름없는 조선 여성들이 만든 조각보를 통해, 조선의 예술성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어

조각보에 관한 한 아마 가장 많은 자료를 가진 사전자수박물관의 대표로 계신 허동화 선생이 그러시더군요. 조각보를 가지고 외국에서 전시하면 이구동성으로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의 작품이냐?”라고 묻는다고 말입니다. 서양인들은 조각보를 일상용품이 아니라 예술작품으로 보나 봅니다.

 

그런데 이걸 만든 게 누굽니까? 이름 없는 조선의 여성들이었죠? 그런데 그분들이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습니까? 아니면 디자인 학원에 다녔습니까? 그런 교육적 배경 없이 이런 탁월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동인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당시 조선의 디자인 수준이 그만큼 높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누가 만들던 이런 수작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겁니다.

 

개인들은 사회의 수준을 그대로 따라가는 법입니다. 저는 이 조각보 하나만 두고도 조선의 예술성이 얼마나 높은지 절감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조선의 이런 면이 잘 인정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미국 디자이너의 방을 나오면서 보니까 방패연이 걸려 있었고 온통 한국적인 기물로 가득 차 있더군요.

 

 

 

[우리 박물관 숨은 보물] 한국자수박물관 '조각보'| 소년한국일보 2009-11-30
예술은 숨결이다. 새하얀 도화지는 화가의 붓놀림을 머금고 한 장의 그림으로 다시 태어나고, 거칠고 투박한 돌은 날선 칼끝에 다듬어져 조각으로 거듭난다.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한국자수박물관에서는 생명의 실로 수놓은 3000여 점의 자수품을 한데 모아 전시하고...
서울디자인올림픽 2008 심볼마크 '조각보' 형상 | 노컷뉴스 2008-03-13
서울시는 오는 10월 개막하는 국제디자인종합축제의 명칭을 '서울디자인올림픽 2008(Seoul Design Olympiad 2008)'로 공식 결정했다. 서울시는 개최지의 지명을 행사명칭에 포함시키는 이유에 대해 “현재 세계적인 전시회의 흐름이며, 행사의 명칭에서부터 서울의...
‘평화의 조각보’ 다함께 만들어요| 한겨레 2008-08-31
아이에게 미술활동을 하면서 평화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행사가 있다. 대안미술공간 소나무가 주최하고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후원하는 ‘함께 만들어요 평화의 조각보’ 행사가 그것이다. 이 행사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조각보의 의미를 오늘에 되살려 남녀노소...

 

 

 

글∙사진∙그림 최준식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였다. 한국문화와 인간의식 발달에 관심이 많으며 대표저서로는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