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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간화선을 세계에 전하는 프랑스인

차보살 다림화 2011. 8. 1. 14:41

사회
종합

비행기 잘못 타서 한국 왔다가 비구니로… 서구 수행자도 '이뭣고' 화두 좋아하데요

입력 : 2011.08.01 03:03 / 수정 : 2011.08.01 06:24

한국 간화선 세계에 전하는 프랑스인 배춸러
한 달 있다가 일본 가려 했는데 구산 스님 만나고 10년 눌러앉아…
日사찰은 군대식, 한국은 가족적

까칠한 프랑스 소녀를 한국으로 이끈 건 부처님 인연이었다. 소녀는 불합리한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저널리스트의 꿈을 키웠다. 그러던 18세 때 친구 집에서 법구경(法句經)을 처음 접했다. 모든 게 달라졌다. "세상을 바꾸기보다 나를 바꾸는 게 낫겠다." 22세 때 한국에서 비구니로 출가한 뒤 10년간 구산 스님과 경봉 스님 등 전설적인 대선사(大禪師)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수행했다. '푸른 눈의 비구니 성일(性日)'이었던 마르틴 배춸러(Batchelor·58·사진). 지금은 세계 각국을 누비며 한국 간화선(看話禪·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수행)을 전파한다. 한국 수행 경험을 담은 그녀의 책 '출가 10년 나를 낮추다'(Women in Korean Zen·웅진뜰)가 최근 서울대 조은수 교수(철학)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남편과 함께 영국에 머무는 그녀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배춸러는 '화두(話頭)', '간화선', '성성적적(惺惺寂寂·깨끗하고 깨끗하며 고요하고 고요한 상태)' 같은 불교 용어들은 우리말로 분명하게 발음했다.

―어떻게 한국에 와서 출가했나?

"대학에 들어갔지만 딱 두 시간 강의를 듣고 접었다. 아르바이트로 500달러를 모아 22세 되던 1975년 태국일본 불교를 공부하러 여행을 떠났다. 방콕을 거쳐 도쿄로 갈 생각이었는데 티켓 발권이 잘못돼 서울을 거치게 됐다. 한 달만 한국에 머물다 일본으로 가자고 마음먹었는데, 선방(禪房)에 10년을 눌러앉게 됐다."

―부모님이 "넌 절대 승려는 못 된다"고 하셨다는데?

"원체 제멋대로고 독립적인 성격이었다. 규율이 엄격한 수도생활을 견디지 못할 거라 생각하신 거지. 일본에서라면 정말 못 견뎠을지도 모른다. 일본 사찰은 격식을 무척 따지고 엄격하다. 독일식, 군대식이랄까. 한국 사찰도 물론 엄격하지만 좀 더 따뜻하고 이해심이 많다. 이탈리아식이고, 가족 같은 분위기다."

한국 비구니들과 공동생활을 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승복 안에 입었던 색깔 있는 속옷들은 빨랫줄에 걸어놓기만 하면 없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계율에 어긋나 압수당한 거였다. 안거 결재 기간 한방에서 다섯 명이 함께 칼잠을 자는 것도 낯선 경험이었다. 땔감 구하기, 밥 짓기, 청소도 쉽지 않았다. 자신을 변호하는 데 익숙한 프랑스인이 "잘못했습니다, 참회합니다"라고 고개 숙이는 법을 배워야 했다. 맨바닥에 앉는 게 힘들어 참선 시간만 되면 피해 다니기도 했다.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나?

"당시 송광사 방장이던 구산(九山·1910~1983) 스님은 지금도 내 마음의 큰 스승이다. 처음 내게 '이뭣고' 화두를, 그 뒤엔 조주 스님의 '무(無)'자 화두를 주셨다. 스님은 또 내게 '억지로 참으라'는 글을 직접 써주셨다.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인내를 경험해보라는 뜻이었다. 3년쯤 억지로 참았더니 마침내 몸과 마음 그 자체가 의문부호가 되듯 화두에 몰두할 수 있게 됐다."

―묵언정진도 했는데.

"처음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까지 하던 말들이 얼마나 불필요했는지 깨닫게 됐다. 무엇을 말할까보다 무엇을 말해선 안 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전에 비하면 좀 더 지혜롭게 말하게 되는 걸 느꼈다."

한국에서 수행하던 시절, 법명이‘성일(性日)’이었던 마르틴 배춸러(맨 왼쪽)가 동료 비구니 스님들과 함께했다. 맨 앞은 배춸러의 출가 은사인 선경스님. /스티븐 배춸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젊은 시절 10년을 선방에서 보냈다. 무얼 깨달았나?

"화두를 들면서 지혜와 자비심은 조금씩 점진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다. 내게는 깨달음 자체보다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했다. 그러다 보면 집착을 내려놓고 내 안의 불성(佛性)이 저절로 드러나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좋은 공부인데 왜 환속했나?

"역시 인연 때문이다. 구산 스님이 돌아가신 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난 것 같았다. 이제는 돌아가 그동안 배운 것을 전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즈음 남편도 만났다."

―간화선 수행에 대한 서구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나는 미국·호주·유럽·남아공 등 세계 각국을 다니며 간화선에 대해 강연한다. '이뭣고' 화두에 대해 알려주면 사람들은 매우 유용하다고 느끼고 좋아한다. 그들의 수행에 실질적인 무언가(something)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영국 남부 데본에서는 매년 4월에 간화선 수행 캠프도 열린다. 각계각층의 60여명이 모여 일주일간 한국식 참선을 한다. 무척 인기 있는 캠프다."

―한국이 그리운가?

"물론이다. 한국에서 10년 수행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행복할 수 있다. 유튜브에 '이뭣고' 화두에 관한 동영상을 영어와 프랑스어로 만들어 올린 것도 내 한국 불교 수행 경험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서다."

―마르틴 배춸러에게 선(禪)은 무엇인가?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지혜(wisdom)와 자비(compassion)를 갖고 살아가고 수행하는 것, 그것이 내게 선이고 불교다."

☞이뭣고

참선할 때의 대표적 화두. ‘이 내 몸을 움직이는 주인공은 무얼까’라는 근본적 의심을 뜻한다. ‘부모에게서 나기 전 참 나는 무엇인가’, ‘염불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등 다양한 화두로 변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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