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모든 시작에는 마술이

차보살 다림화 2012. 3. 10. 12:42

 모든 시작에는 마술이

 

                                                                                                조윤수

 

  꽃들을 지켜보면 야생이든 온실이든‘열흘 이상 가는 꽃이 없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봉오리들이 한 열흘 만에 다 피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제 꽃은 만발했고 천리향의 영화가 절정을 넘습니다. 식탁에 앉아 햇살이 내려앉은 베란다 숲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오늘은 춥지 않아 창문을 활짝 열어 직접 나뭇잎들에게 싱싱한 햇빛을 안겨줍니다. 겨우내 농축된 영혼의 향이 창밖 만리까지 퍼지도록 말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유년의 아이들이 어린이 집이나 초등학교에 입학하였지요.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여 ‘아이와의 전쟁’을 호소하는 젊은 부모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현대인의 약 95퍼센트가 실내에서 생활한다고 하지요. 따라서 요즈음 아이들의 부모 역시 거의 대부분 온실의 화초처럼 살면서 온실에서 아이들을 보호해왔기 때문에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도시생활 자체가 모든 일들이 자연과는 분리된 생활이어서 적극적으로 단계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사람을 온실의 화초처럼 자라게 하여서는 진정한 사람으로 자라기 어려울 것입니다. 덕(德),체(體),지혜(智慧)를 갖춘 사람의 향기는 만리(萬里)를 간다고 하지요. 위대한 선각자들의 향기는 세대를 초월합니다. 온실의 천리향처럼 자란 사람들이 어찌 사람의 진정한 향기를 지닐 수 있을 지요.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과 여행의 준비가 되어 있는 자만이 마비시키는 습관을 헤어날 수 있도다.” 모든 시작에는 마술이 깃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한 단계 한 단계 씩씩하게 훈련해 가면 좋겠지요. 명랑하게 한 공간 한 공간을 통해 잘 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다시 새 봄의 마술을 맛봅니다. 1월부터 천리향 꽃눈이 맺기 시작하여 2월 중순부터 눈을 뜨기 시작하여 고유한 향을 풍겼습니다. 동시에 그 향의 울림을 듣고 솟아오른 춘란의 새 촉이 함께 봄의 교향곡을 합주하는군요. 올해는 꽃 시기가 좀 빠른 것 같아요. 천리향은 2월 21일부터 나를 따라다녔습니다. 제주도 비바리들이 제주시내 천리향 가까이 가서 '아이 향기 좋아라' 하며 천리향 아래서 코를 발름거리면 다음 날 전라도 완도까지 향기가 건너간다 고, 시인 고은이 노래했습니다. 나도 우리 집 천리향 아래서 향기 가득 담고 제주도로 건너가니 거기 천리향이 이미 퍼지고 있었지요. 지난 주 남녘의 순천, 진주, 통영의 미륵산 정상까지 퍼져나가 매향과 조우했습니다.

 

 

 

 

 

  부산에서 전주까지 올라오는 동안 가로의 산수유가 활짝 피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봄에는 물가에서 놀아야 멋있다고 했는데요, 근래는 가물어서 마른 개천이나 저수지가 보기 안타까웠습니다. 고향 마을 큰들의 진주남강 물도 줄어서 강의 밑바닥이 보이는 곳이 있습니다. 섬진강 댐 옥정호의 붕어 섬도 갈증에 시달리고 있더군요. 들 물이 붇고 줄어 넘친 흔적이 붉은 맨 바닥으로 층층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강바닥만 본다면 어찌 새 봄의 못이라 할 수 있을 지요. 성긴 수풀이 뿌리까지 서리맞아 황량하고 밋밋한 늦가을 풍경에 봄물이 차올라 힘찬 새 출발을 준비할 때인데... '春水만사택'이란 절구가 무색했습니다. 냇가에는 바야흐로 '柳枝絲絲綠'이나, 단원 김홍도나 이인문의 그림 <少年行樂>의 화제처럼 '春日路傍情'을 생의 가을 녘에 더욱 깊은 즐거움을 음미하건만, 춘경을 만끽할 수도 없는 것은 옛 산천과 옛 사람이 아니어서 일까요. 베란다의 천리향이나 춘란도 언제까지 내 옆에서 새 봄을 구가할 수 있을 지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2008 새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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