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호 숭례문 全燒 소방당국, 문화재청의 "적극진화" 요청 받고도 2시간 물만 뿌려 라이터 2개 발견… 경찰 "방화 전과 용의자 1명 붙잡아 조사중"
이석우 기자 / 정지섭 기자
- 숭례문(남대문)이 화재로 전소(全燒)되며 붕괴한 것은 소방당국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불을 꺼달라"는 통보를 받고도 2시간 5분 동안이나 시간을 허비하며 소극적인 진화로 일관했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숭례문을 관할하는 서울중부소방서가 지난해 4월 화재발생에 대비해 숭례문 현장에서 가상훈련을 실시했음에도, 실제 화재가 발생하자 전혀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11일 본지가 입수한 서울중부소방서의 화재 당일(10일) 상황일지에 따르면 소방당국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숭례문이 훼손돼도 상관 없으니 적극적으로 불을 꺼달라"는 통보를 받은 것은 오후 9시35분이다. 그러나 소방당국은 그보다 2시간 5분 뒤인 오후 11시40분에서야 기와지붕의 목조건물 진화에 필수적인 지붕 해체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 서울 중구청의 내부 보고서에서도 소방당국은 화재 초기 기와지붕에만 물을 뿌리는 간접진화만 하다가 오후 10시가 돼서야 내부 기둥에 물을 뿌리는 직접 진화 방식으로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소방당국 고위 관계자는 "화재 초기 문화재라서 조심스럽게 진화하다가 오후 10시20분부터 누각 내부에 있던 소방대원들을 밖으로 빼내 지붕 해체 작업 준비를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또 서울중부소방서는 지난해 4월 숭례문 현장에서 '가상 화재훈련'을 벌였으나, 화재 발생 시 소방차 위치만 확인하는 등의 형식적 훈련만 하고 목조문화재에 화재가 발생하면 어떻게 진화할지 실전 훈련은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소방당국은 화재가 발생했을 때 숭례문 내부 구조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화재 원인을 수사 중인 경찰은 이날 용의선상에 올라 있는 10여 명의 방화 전과자 중 1명을 붙잡아 조사했다. 경찰 관계자는 "강화도 화점면에서 방화 전과자 채모(70)씨를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채씨는 2006년 4월 창경궁 문정전에 불을 지른 전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방화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회용 라이터 2개와, 철제 사다리 2개를 발견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정밀 조사를 의뢰했다.
검찰도 이날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특별수사반을 편성했다. 서울중앙지검 조주태 형사3부장이 반장을 맡고 검사 4명이 참여, 경찰의 현장 감식과 화재 원인 규명 수사를 지휘하기로 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12/20080212001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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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경보장치도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 예방시스템 엉망 소화기만 달랑 8개 배치… 화재진압 '기본수칙'조차 없어 무인 경비시스템, 화재직전 작동했지만 아무런 도움 못줘
이석우 기자 / 김진명 기자
- 5시간여 만에 잿더미로 변해 주저앉은 숭례문(남대문) 화재사건은 우리 방재시스템에 얼마나 큰 구멍이 뚫려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1398년(태조 7년) 건축돼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전쟁을 견디며 600여 년간 웅장한 자태를 뽐내던 '대한민국 국보 1호'가 전소되면서 우리 국민의 자존심도 함께 새까맣게 타버린 것이다.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 지남용 교수는 "멀쩡하던 숭례문이 잿더미로 무너져 내리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가 숭례문을 얼마나 엉터리 보호시스템 속에 방치해 두고 있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엉터리 문화재 화재 대응 매뉴얼
숭례문 화재가 이처럼 커진 것은 문화재 화재에 대비하는 기본적인 수칙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이 지난해 국정감사 때 정병국 의원(한나라당)실에 제출한 '문화재별 화재 위기 대응 현장 조치 매뉴얼'(18쪽)에는 문화재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진압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거의 없다. '침착한 소화활동'이라는 항목에서 '불꽃의 아랫부분을 끈 후 윗부분을 꺼야 하며 화점(火點)을 중심으로 포위하여 소방시설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만 돼 있다.
- 어느 부분에 물을 집중적으로 쏟아 부어야 하는지, 목조건물에 불길이 숨어 있는 곳은 어디며, 잔불을 정리할 때 주의해야 하는 점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없다. 소방당국이 화재 발생 한 시간여 뒤 큰 불길이 잡힌 것으로 보고 잔불 작업에 나선 것도 전통 목조건물 화재에 대한 기본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매뉴얼이 없는 현장의 소방관은 우왕좌왕했다. 숭례문 화재현장에서 진압에 나섰던 한 소방관은 "국보 1호라서 불을 꺼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망가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선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소한의 화재 안전장비도 없어
숭례문에는 스프링클러, 화재경보장치와 같은 기본적인 화재 안전장비가 갖춰져 있지 않았다. 유일한 소방장비는 누각 1, 2층에 4개씩 놓여 있던 소화기 8대가 전부였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숭례문은 국보급 목조 문화재이고 소방서도 1분 거리에 있어 스프링클러 같은 장비를 설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남용 교수는 "보기 흉해서, 또 돈이 들어가니까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았다는 말인데, 문화재를 모두 태워 버리는 것보다는 비용을 들여 보기 좋게 설치하는 것이 효율적이다"고 말했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화재감지기 하나 없이 단지 소화기 8개로 국보 1호를 지켜낼 것이라고 판단한 정부에 우리 국민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대웅전 등 4개의 건물이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와카야마현 고카와지라는 사찰엔 건물 내·외부에 연기감지기, 불꽃감지기, 온도감지기 등 무려 215개의 감지기가 설치돼 있다. 화재가 발생하면 곧바로 이를 감지, 경보시스템과 연결된 컴퓨터에서 즉각 화재장소를 화면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사찰 곳곳에 설치된 음향장치와 연결돼 음성으로 방송이 나온다. 또 건물 정면과 후면, 측면에 배치된 6개의 방사총(흔히 물대포라 불림)이 자동으로 물을 쏘게 된다. 건물 외부를 우산으로 막은 듯 물로 완벽히 가려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아준다.
- ◆건물 감시하는 사람 없었다
전문가들은 방화라고 추정되는 이번 사건에서 숭례문을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숭례문은 오후 8시 이후에는 상주하는 관리인 없이 무인 경비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단지 적외선 카메라에만 의존해 외부인의 출입 사실만 감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문화재 화재는 방화에 의한 경우가 잦아 감시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로 화재발생 직전인 10일 오후 8시47분 야간 경비업체인 KT텔레캅의 경비시스템에 침입자가 있다는 적외선 신호가 감지돼, 이 업체 직원이 10분쯤 뒤 현장에 도착했으나, 숭례문엔 이미 불이 붙은 상황이었다. 무인 경비가 아무런 방비를 못했음을 드러낸 것이다. 경원대 박형주 교수는 "수원 화성 서장대의 경우에도 1996년과 2006년 두 번의 화재가 있었는데 모두 방화였다"며 "불이 나도 감시인이 배치되지 않아 두 번씩이나 화재를 막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화재 진화훈련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서울중부소방서는 지난해 4월 회현 119치안센터와 함께 숭례문 화재 대비 가상훈련을 했다. 그러나 실제 훈련이 아니라 화재가 발생했을 때 소방차를 어디에 세울 것이냐는 등의 형식적인 훈련에만 그쳤다. 전문가들은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의 합동훈련이 제대로 실시되지 않은 것도 큰 문제로 지적했다. 문화재는 '보존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일반적인 방식의 진화가 어려운 특징이 있다. 때문에 문화재 화재는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 간의 합동훈련이 필수적이다. 안형준 건국대 교수는 "전통 건축물은 지붕 바로 밑 흙 속에 '적심목'이란 나무가 박혀 있는 독특한 양식을 갖고 있는데도 소방관들은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현장에서 우왕좌왕했다"고 말했다.
경원대 박형주 교수는 "산림청에 산불을 전담하는 전문인력이 있듯이 문화재청에도 문화재 화재를 전담하는 팀이 항시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12/20080212001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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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경고·조짐 여러번 무시당해
서울역 노숙자 "2층에서 불피워 놓고 잔 적 있어"
오윤희 기자 / 조백건 기자
숭례문(남대문) 화재 가능성은 그동안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관리 당사자인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이를 소홀히 여겨 국보 1호가 불에 타버리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났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심지어 서울역 주변 일부 노숙자들은 숭례문을 집 삼아 살기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11일 오후 11시쯤 서울역 대합실에서 만난 노숙자 박모(35)씨는 "서울역 주변 노숙자 중에서도 남대문 2층에서 자주 잠을 자는 사람들이 5~6명 정도 있었다"며 "나도 겨울에 추워서 깡통에 나무 조각, 합판 등을 모아 불을 피우고 그곳에서 잔 적이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신참' 노숙자들이 서울역 대합실이나 지하도에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숭례문에서 잠을 잤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또 "남대문에서 자는 노숙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사다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숭례문이 경비가 허술해 화재 위험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이미 지난해 한 시민이 문화관광부 홈페이지를 통해 지적했었다. '경복궁을 29번 탐사한 22세 청년'이라고 밝힌 중국에서 유학 중인 김영훈씨는 작년 2월 24일 문광부 홈페이지에 올린 '존경하는 장관님께'라는 제목의 글에서 "숭례문 경비 체제가 허술해 조만간 누가 방화를 저지를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숭례문 근처를 지나다가 노숙자들이 '확 불 질러 버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며 "숭례문 개방은 바람직했지만 경비가 너무 안 되어 있다. 실무자들은 책상에만 앉아 있지 말고 현장에 한번 나가봐 달라"고 당부했다.
취객이 숭례문에 무단 침입한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다. 1991년 8월엔 만취한 50대 남성이 훔친 승용차로 숭례문 철제 출입문에 충돌하기도 했고, 1997년 2월엔 만취한 30대 남성이 일본인 관광객 2명과 함께 숭례문 통제구역에 침입했다가 체포된 적도 있었다. 2006년 숭례문이 일반에 공개된 이후에는 무방비나 다름없는 상태로 노출돼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문화재 관리 당국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2005년 4월 낙산사 동종(보물 479호)이 불타 버린 이후 문화재청은 주요 목조 문화재가 화재로 소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방재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정작 국보 1호인 숭례문은 우선 순위에 밀려 방재 시스템이 설치되지 못했다. 서울시도 평일엔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경비원 3명을, 일요일과 공휴일엔 1명만 숭례문에 배치하고 오후 8시 이후엔 무인 경비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결국 일요일인 10일 화재 발생 시각 숭례문은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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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속으로 번진 불길, 지붕구조 몰라 놓쳤다
● 왜 못 껐나… 전문가 분석 "기와·진흙층 먼저 걷어내고 물 쐈어야" 문화재청·소방당국 의사소통 꽉 막혀
이재준 기자
잿더미로 변한 숭례문(남대문)은 수십 대의 소방차와 소방대원들이 동원됐고, 불을 진압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왜 불길을 제대로 잡지 못했을까. 11일 숯덩이처럼 변해버린 숭례문을 둘러본 전문가들은 초기대응에 실패했기 때문이지만, 기본적으로 국보 1호인 숭례문의 구조와 특징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통 지붕 양식 몰랐다
불을 끄기 위해 숭례문 2층에 들어간 소방대원들은 연기만 나는 것을 보고 불길이 어느 정도 잡힌 것으로 간주했다. 결국 다시 불길이 점화되는 것을 막지 못해 숭례문이 전소(全燒)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경원대 박형주 교수(소방방재공학과)는“소방대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내용이 노란색 연기가 나는데, 붉은 불씨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며“이는‘적심목’이란 우리나라 전통적인 지붕 양식을 소방대원들이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남대문 2층 지붕은 전통 건축 양식으로 되어 있다.‘ 기와·보토(30~60㎝ 진흙층)·적심목(지붕에 넣은 원목)·개판·회반죽(1㎝ 두께)·서까래’인 6겹으로 되어 있다. 지붕에 들어가 있는 나무 구조물인 적심은 밑에선 개판·회반죽에 가려 보이지 않고, 위에서도 지붕과 진흙층에 가려져 있다. 박 교수는“소방관들이 보았다는 노란색이나 검은색 연기는 적심목이 타 발생한 것”이라며“지붕 내부에서 타고 있더라도 밖에선 불길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보통 나무가 탈 때엔 흰색 등의 연기가 나지만 진흙 등에 덮여 있는 적심목은 산소가 부족해 불완전 연소하면서 노란색 등의 연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 ▲ 그래픽=신용선 기자 ysshin@chosun.com, 송윤혜 기자 ssong@chosun.com
한국 전통 건축 전문가인 고려대 주남철 명예교수(건축공학)는 때문에“적심목에 옮아 붙은 불을 끄려면 지붕 가장 밑부분인 1㎝ 두께의 개판·회반죽 부분을 완전히 들어내고 밑에서 물을 쏘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소방관들이 회반죽과 기와에 가려 있는 적심목의 존재를 몰라 불길을 일찍 차단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기와·진흙층 먼저 걷어냈어야
문화재 전문가들은 “지난 1961~63년 숭례문 보수공사를 할 때, 기와 바로 밑에 있는 진흙층인 보토에 석회 성분을 많이 넣었다”고 말했다. 진흙에 석회를 섞은 것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습기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소방관들이 외부에서 엄청나게 물을 뿌려 댔지만, 내부에선 오히려 불길이 활활 번져나갔다. 전문가들은 숭례문 지붕으로 번진 화재를 잡기 위해서는 지붕 맨 윗부분인 기와·보토 부분을 먼저 걷어낸 뒤 물을 뿌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소방당국 말이 안 통했다
숭례문이 잿더미가 되기까지 5시간17분 동안 문화재 보존 책임이 있는 문화재청과 화재 진압 책임이 있는 소방당국의 의사 소통은 꽉 막혀 있었다. 누가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지, 책임자가 언제 현장에 도착했는지조차 서로 말이 다르다.
본지가 입수한 소방당국의 화재 당일 일지에 따르면 문화재청(대전광역시)에 숭례문 화재 발생이라는 비상연락이 간 것은 오후 8시56분. 문화재청 담당자가 화재현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10시4분이다. 불이 난 지 1시간8분이 지나서야 현장에서 소방당국과 문화재청의 공조가 이뤄졌다는 뜻이다. 현장 소방관은“숭례문은 문화재여서 우리 마음대로 판단해 진화작업을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화재 초기 소방당국에 “국보 1호이기 때문에 조심스럽 게 화 재 를 진압해 달라”고 요청했다. 불길이 커지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문화재청은 불이 난 지 47분여가 지난 오후 9시35분이 돼서야“남대문이 훼손돼도 상관없으니 적극적으로 불을 꺼달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소방당국은 문화재청의 통보를 받고도 2시간5분이나 지난 11시40분에서야 지붕 기와 일부를 들어내는 작업을 벌였다.
한국화재소방학회 손봉세(경원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학회장은“화재초기에 처음부터 두 기관이 화재현장에서 도면과 진압방식에 대해 실시간으로 교환하고 대화했다면 이처럼 문화재 전체를 태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12/20080212001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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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은? 종묘는? 창경궁은?
목조 문화재들 화재위험 노출… 100곳 중 30여곳 소화전 없어
이한수 기자 / 곽수근 기자
11일 오후 서울 동대문(흥인지문·보물 1호) 앞. 왕복 6~7차로 도로가 동대문을 감싸고 있어 일반인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차량 통행이 뜸한 밤이나 새벽에는 쉽게 건너갈 수 있는 거리다.
동대문호텔 앞에서 차도를 건너 동대문 쪽으로 건너가면 높이 1m 안팎의 작은 쇠창살 문이 나온다. 이를 넘으면 계단을 통해 누각(樓閣) 입구에 도달할 수 있다. 계단에서 누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작은 문이 있지만 성인 남성 정도면 넘을 수 있는 높이다. 이화여대 동대문병원 앞에서 차도를 건너 동대문으로 가면 작은 문도 없이 누각으로 향하는 계단이 바로 나온다. 첫 계단이 성인 어깨 높이 정도이긴 하지만 상자 같은 것을 놓으면 쉽게 딛고 오를 수 있다.
현재 누각은 사람이나 동물 침입 방지용 그물로 덮여 있지만 그물과 기둥이 맞닿은 상태라 누군가 일부러 불을 지를 경우 큰 화재로 번질 수 있다. 소화기는 11개가 있지만 화재감지기나 방사총(물대포), 방수막(땅속에 노즐을 설치해 화재가 발생하면 건물을 수막으로 감싸는 장치) 같은 방재시설은 전혀 설치되어 있지 않다. 보안업체에서 적외선 감지기를 설치했지만 이도 화재를 막는 장비가 아니다.
서울 종로구 관계자는 "낮에는 직원 순찰과 적외선 감지 등 보안시스템으로,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는 민간 경비업체의 무인 경비시스템으로 동대문을 관리하고 있다"며 "소화기를 늘리고 관리대책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11일 전남 구례 화엄사 각황전. 가로 30m, 세로 20m, 지붕 높이 20m의 거대한 2층 목조 건축물로 바로 옆 대웅전을 압도한다. 1962년 국보 제67호로 지정됐다. 통일신라 시대 쌓은 석조 기단과 지붕 기와를 빼면 전체가 100% 나무로만 지어졌다.
천장과 벽면 곳곳에는 열·연기 감지기가 달려 있고, 이것들은 건물 외부 벽면에 붙어 있는 화재경보장치에 연결돼 있다. 내부와 법당 밖 좌우에는 각각 2개씩의 소화기가 갖춰져 있었다. 앞마당에는 옥외 소화전이 설치돼 있다. 이처럼 소방 안전장비 관리 상태는 좋은 편이지만 소방차량이 들어올 수 있는 소방도로가 없어 사찰측은 여전히 대형 화재를 염려하고 있다.
◆방재시스템 관련 시행령 없어
국내 목조 문화재들은 이같이 화재 위험에 노출돼 있는데도 목조문화재 방재시스템과 관련한 법규는 전혀 없는 실정이다. 문화재보호법 제88조는 문화재에 소방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고 포괄적으로만 규정되어 있다.
문화재청이 국정감사에서 보고한 바에 따르면 목조문화재 100곳 중 30여곳은 소화전이 설치되지 않았고, 소화기가 없는 곳도 있었다. 2005년 4월 낙산사 화재 이후 문화재청은 중요 목조문화재가 화재 등 재난으로 손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방재시스템 구축사업을 추진했다.
지난해부터 1차로 약 15억원의 예산을 들여 해인사·봉정사·무위사·낙산사 등 네 곳에 수막설비(건물 주위 바닥에 물총처럼 물을 쏘는 노즐을 20~30㎝ 간격으로 배치한 설비)와 화재가 발생하면 조기에 경보를 울리는 시설을 설치하기도 했다. 남대문도 우선 구축 대상인 중요 목조문화재 124곳에 포함됐으나 순위가 48번째여서 방재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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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측도면 있어 희망적… 복원 2~3년 걸릴 듯
● 숭례문 되살릴 수 있나 2년전 모형제작용으로 도면 182장 만들어 1965년 발간한 수리 보고서도 도움될 듯
유석재 기자
화재로 무너져 내린 국보 제1호 숭례문(崇禮門·남대문)의 복원 공사는 어떻게 진행될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자료가 보존돼 있기 때문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국보(國寶) 지위는 일단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는 문화재청의 방침과는 달리 원형대로 복원하더라도 국보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거의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지정 해제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3년 동안 200억원 들여 복원
문화재청은 11일 오전 숭례문 현장에서 문화재위원회 긴급회의를 열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내놓지 못한 채 '숭례문 복구 기본방침'을 발표했다. ▲남아 있는 부재(部材)를 최대한 다시 사용해 숭례문을 원형대로 복원하고 ▲이를 위해 문화재위원과 소방관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복원자문위원회를 만들며 ▲기존 부재의 구체적인 사용범위는 현장 확인조사와 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추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김상구 문화재청 건축문화재과장은 "대체로 원형을 복원하는 데 2~3년, 예산은 200억원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또 일제강점기에 변형됐던 숭례문의 좌·우측 성벽도 원형대로 복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초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놓은 주먹구구식 방침에 이미 2년 전부터 계획된 성벽 복원 내용을 슬쩍 끼워 넣은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 ▲ 10일 화재 때 바닥으로 떨어진 숭례문 현판이 고궁박물관에 임시로 보관돼 있다. 형체는 겨우 보존됐지만 곳곳에 금이 가고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현판을 박물관 직원이 살펴보고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쓸 수 있는 부재, 10%도 안 될 것"
남은 부재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현 상황대로라면 제대로 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김동현 문화재위원은 "(숭례문 누각의) 1층에는 그런대로 화재에서 살아남은 부재들이 많이 있고, 2층에서도 일부 포부재(包部材)는 화를 면했다"고 말했다. 포부재는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맞춰 댄 나무쪽인 공포(?包)를 구성하는 부재다. 그는 "겉만 조금 그을린 나무라도 최대한 복원에 활용하기로 했지만, 그게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타지 않은 부재들도 물에 너무 많이 젖었기 때문에 다시 쓰기 어려울 것이고, 활용할 수 있는 부재는 10% 미만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거운 부재가 한꺼번에 떨어져 내렸기 때문에 석축도 구조안전진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옛 숭례문 부재 중 2005년 충남 부여의 한국전통문화학교로 옮겨져 보존된 서까래·포부재·기와 등 350여 점이 있지만, 부러지거나 부식돼 복원 작업에는 쓸 수 없는 상태다.
◆실측 도면으로 복원한다고 국보 유지?
숭례문의 원형 복원 과정에서 기본이 되는 자료는 지난 2006년에 나온 182장 분량의 정밀 실측 도면이며, 참고자료로는 1965년에 발간된 수리보고서가 활용될 계획이다. 정밀 실측 도면은 당시 숭례문의 모형 제작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후대에 숭례문이 파괴될 경우라도 복원을 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리보고서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복원하기 위해 1961~1963년 이뤄진 대규모 보수공사의 보고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실측 도면을 통해 원형대로 복원하게 되면 국보 지위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지만, 지난 2005년 산불로 녹아버린 낙산사 동종이 복원을 했는데도 보물에서 해제된 등의 전례를 볼 때 전망은 어두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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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부재(部材) 최대한 활용해 원형 복구
부족한 나무는 강원도 금강소나무 쓸듯
유석재 기자
숭례문(남대문)의 복원작업에는 어떤 나무가 사용될까. 원래 숭례문의 부재(部材)로 사용된 나무들은 모두 소나무다. 1960년대 초 보수공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숭례문 누각 기둥의 최대 길이는 2.98m, 최대 지름은 58.6㎝ 정도였다. 당시 공사 때는 강원도 삼척에서 베어 낸 금강소나무를 부재로 썼으며, 전체 부재의 10% 정도를 대체했다.
강원도와 경북 일대에서 주로 자라는 금강소나무는 재질이 단단하고 잘 썩지 않으며 곧게 자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궁궐을 짓거나 왕의 관을 만드는 데 쓰였다. 지난해 광화문 복원을 위해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서 시범 벌목된 소나무는 수령 150년에 지름이 94㎝였다. 광화문에는 강릉·양양의 수령 80~250년, 지름 56~94㎝ 소나무 26그루가 기둥 등의 부재로 사용된다. 김동현 문화재위원은 "무슨 나무를 쓸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할 상황이 아니지만 강원도산이 가장 좋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2001년 경복궁 복원 때는 경북 울진에서 난 소나무가 쓰이기도 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12/20080212001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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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화재보험가액 고작 9500만원
복원엔 200억원 들어… 문화재 고려없이 목조건물로만 계산
김진명 기자
국보 1호 숭례문이 '9500만원'?
문화재청 대신 숭례문을 관리하는 서울시는 지난 1998년 지방자치단체들이 가입하는 한국지방재정공제회의 화재보험에 들었다. 이때 숭례문의 보험료 산정기준이 된 '보험가액'은 고작 9500만원에 불과했다.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성격상 문화재 가치가 고려되지 않은 채 목재 건축물로만 산정이 됐기 때문이다. 11일 문화재청이 향후 2~3년 안에 숭례문을 원형대로 복원하는 데 드는 비용으로 제시한 '200억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낮은 액수다.
문화재청은 아예 숭례문에 대해 보험을 들지 않았다. 문화재청 문화재안전과는 "숭례문처럼 관리를 지방자치단체에서 맡고 있거나 관리자가 따로 있는 경우에는 보험을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손을 떠난 문제라는 식이다. 문화재청은 이제까지 전국 550여 문화재에 대해서만 민간 손해보험사와 보험 계약을 맺었다. 총 보험가액은 약 411억5400만원이다. 경복궁, 창덕궁, 홍릉 등 전국 대부분의 궁궐과 능을 포함한 500여 동의 건축문화재 가격이 400억원을 조금 넘기는 정도인 셈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이 내는 연간 보험료는 고작 3479만8000원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12/20080212001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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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이 지은 이름… 태조실록 '속칭 남대문'이라 적어
● 역사 속 숭례문
8괘로 보면 불의 괘… 불길의 형상 본따 세로로 현판 써
이덕일 역사평론가
숭례문이란 이름은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鄭道傳)이 지었다.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따서 동대문은 흥인문(興仁門), 서대문은 돈의문(敦義門), 남대문은 숭례문(崇禮門)이라고 지은 것이다. '태조실록' 5년 9월조는 '속칭 남대문'이라고 적어 남대문이 일제의 비칭(卑稱)이 아님을 말해준다. 세종 29년(1447)과 성종 10년(1479)에 중수했는데, 중종 31년(1536)에는 문신 김안로(金安老)의 건의로 종을 달아 백성들에게 시각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이 종은 곧 울리지 않게 되었다. 폐사(廢寺)에 방치되었던 종을 가져다 달았는데, 종소리가 동남쪽의 지맥(地脈)을 제압해 국가 운수에 불리하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이 종은 명종 18년(1563)에 사라진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문정왕후의 분부로 내수사(內需司)로 보내졌다가 어느 사찰에 전해진 뒤로는 행방을 알 수 없다.
- ▲ 펜화 작가 김영택씨가 그린‘숭례문’(2007년작). 김씨는 구한말 사진과 현장 답사를 바탕으로 서울에 전차와 전봇대가 들어서기 직전인 1900년의 남대문을 정밀하게 재현했다. /김영택씨 제공
숭례문은 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북문인 숙청문(肅淸門)이 음방(陰方)으로 여자의 방위라면 남문인 숭례문은 양방(陽方)으로 남자의 방위였고, 8괘로 숙청문은 '감(坎)'괘로서 물을 뜻하고 숭례문은 '리(離)' 괘로서 불을 뜻했다. 양방의 숭례문은 늘 개방한 반면 음방의 숙청문은 가뭄 때만 열었다. 실록에서 "날이 가물어 숭례문을 닫고 숙청문을 열었다"는 기록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 문 남쪽에 만든 연못이 남지(南池), 또는 연지(蓮池)였다. 숙종 32년(1706)에는 연못의 물빛이 푸르다가 붉게 변하면서 끓는 물처럼 뜨거워져 고기가 죽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다른 대문의 편액이 모두 가로로 썼지만 숭례문만 세로로 쓴 것도 불이 타오르는 형상을 나타낸 것인데, 사신을 맞는 장소이므로 서서 맞는 것이 예법에 맞기 때문이란 설도 있다. 명작으로 유명한 숭례문 편액을 쓴 이는 아직 논란거리다. 오세창(吳世昌)은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서 유진동(柳辰仝:1497~1561)의 글씨라고 말했지만 아닌 것으로 판명 났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양녕대군(讓寧大君)의 글씨라고 전하고 있는데, 양녕대군의 사당인 지덕사(至德祠)에는 '崇禮門(숭례문)' 탁본이 남아 있다 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기이한 이야기가 전한다. 임진왜란 때 편액을 잃어버렸는데 남지에서 밤마다 빛이 나 파보니 숭례문 액판이 묻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편액은 조선 전기 명필인 정난종(鄭蘭宗:1433∼1489)의 글씨라고 말하고 있다. 어느 것이 사실인지 알 수 없으나 정난종의 글씨라면 3년 전 화재 때 녹아버린 낙산사의 종명(鐘銘)도 그의 글씨이니 우리 시대와는 악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도 건재했던 숭례문이 우리 시대에 타버린 것은 선조들은 물론 후손들에게도 얼굴을 들 수 없는 수치 중의 수치이다. 번드르르한 외양만 추구할 뿐 기본에는 허술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다시 보여준 것이다. 세종 15년(1433)에 숭례문 밖에 군포(軍鋪)를 지어 순라군들을 상주시켰다. 복원하는 숭례문에는 연못도 만들고 군포도 지어 사람이라도 상주시켜야겠다. 현판이라도 건진 것이 불행 중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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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고 불탄게 너뿐이랴… 역사 홀대한 우리의 업보
"용서하라 숭례문이여"… 김병종 교수가 바치는 弔辭
김병종 서울대 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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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숭례문이여. 이 죄를 어찌할꼬. 대체 어찌할꼬. 600년의 세월을 민족과 함께했던 그 문은 무너져 버렸다. 검은 연기와 불길 사이로 그렇게 내려앉았다. 호기롭던 양녕대군의 글씨가 새겨진 현판은 바닥으로 내팽개쳐지고 곱고 단아하던 단청들은 불길의 혀가 삼켜버렸다. 하늘을 향해 날렵하던 누각은 검은 그림자처럼 흔들리다 사라져 갔다. 임진왜란의 전화 속에서도, 6·25의 포화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아 민족과 명운을 함께했던 그 역사의 문은 처연하게 무너졌다. 무너지고 불탄 것이 어찌 집뿐이랴. 불탄 기와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릴 때 우리의 마음도 함께 무너지고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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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나가 높은 집을 짓는다고 자랑하지 말아라. 오늘 우리는 다만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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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애초에 그것은 세월을 이고 선 왕조의 집 한 채만은 아니었다. 그저 숨결 없이 서 있는 흙과 나무로 된 누각일 뿐이었다면 이 억장 무너지는 슬픔을 설명할 길이 없다. 차마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워 흐린 구름이라도 겹겹이 드리워 동터 오는 하늘빛을 막아주었으면 싶었던 참담한 마음 또한 설명할 길이 없다. 국보 1호라서, 2호보다 더 소중하다는 그런 숫자놀음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우리의 혈육이었고 숨결이었음을 차마 뉘라서 부인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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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8년 조선왕조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이후, 숭례문은 늘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여러 차례의 개·보수 공사를 통해 상처와 흉터들을 제 안에 간직한 채로, 한민족의 영광과 고난의 순간들을 고스란히 함께해 왔다. 이 땅과 백성들이 찢기고 아파하고 울부짖던 순간순간을 같이 견뎌내었다. 주린 배를 움켜쥐어야 했던 시절에도, 기적적인 발전을 이루어냈던 시절에도 거기 그렇게 서 있었다. 새벽에 일터로 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았고 달랑 가방 하나 들고 서울역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들에게는, 설렘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민초들의 발길과 숨결이 닿는 바로 곁에서 한 식구처럼 볼 것, 못 볼 것 죄다 보아오며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리 장엄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수더분한 낯빛으로 우리와 눈을 맞추어왔다. 민족의 자랑이자 상징으로서, 역사의 증언자로서 언제까지나 함께할 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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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 사라져 버렸다. 말없는 것들은 이렇게 사라지고 나서야, 남은 사람의 가슴을 찢어놓는가.
오늘 숭례문을 불태워버린 것은 바로 우리다. 역사의 유물로만 밀쳐두고 진정 가슴에 담아 귀히 간직할 줄 몰랐던 우리의 업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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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기억은 유난히 빨리 잊혀진다. 불길에 휩싸이던 낙산사의 기억도, 수원 화성의 화재도 우리는 잊어버렸다. 숭례문의 불길은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 다시 내린 아픈 채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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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은 부끄러운 일들을 잊지 말자. 무너진 자리에 숭례문의 역사를 다시 세우자. 우리의 부끄럽고 아픈 오늘을 후손들에게 낱낱이 전하며 철저한 고증을 거쳐 복원하자. 이것이 그나마 역사 앞에 속죄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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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을 떠나간 숭례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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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잔뜩 흐리고 차마 나는 얼굴 들고 조사(弔辭)나마 읽을 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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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라 숭례문이여. 미안하다 숭례문이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11/20080211017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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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통신 "밤에는 경비도 없는 국보 1호"
●외신반응 AFP "한국전쟁 때도 살아남은 역사적 건축물"
도쿄=정권현 특파원 / 이태훈 기자
외신들은 '600년 풍상을 견뎌온 한국의 국보 1호인 남대문(숭례문)이 단 5시간의 화재로 하룻밤 새 무너져 내렸다'며 주요 뉴스로 전했다.
NHK 등 일본 방송들은 남대문이 화염에 휩싸여 있는 장면을 현장 리포트로 전하면서, 화재 현장 주변에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진화 장면을 지켜보던 시민들의 반응을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은 불타버린 남대문이 지어진 지 600년이 넘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고 소개하면서 주변에 대규모 남대문시장이 있어 일본 관광객들의 명소라고 전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남대문의 전소(全燒) 붕괴에 한국 사회가 강한 충격을 받고 있다고 전하면서, 남대문을 복원하는 데는 적어도 2년 이상이 걸릴 것이며, 200억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추정했다. 교도통신은 남대문은 국보 1호인데 소화기 이외의 소방설비가 없고, 심야에서 아침까지는 경비원도 없다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은 "어린 학생부터 평범한 서민들까지 검은 잿더미로 변해버린 국가적 상징을 전율하며 바라봤다"고 전했다. 통신은 또 "남대문은 매일 외국인을 태운 수십 대의 관광버스가 와서 서는 명소였으며, 인근에 같은 이름의 전통 시장으로 연결되는 한국 관광산업의 중심이었다"고 전했다.
AFP통신은 "남대문은 일본의 잔인한 식민 통치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역사적 건축물이었다"고 전했다.
말레이시아 국영 베르나마 통신은 11일 '한국인들이 국보 1호 남대문의 붕괴를 애도하다'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에서 "음력설 이후 첫 월요일 아침, 깊은 슬픔이 서울의 거리를 휩쓸었다"고 보도했다.
아랍어 위성뉴스 채널 알자지라는 "화재가 서울의 역사적 건축물 남대문을 파괴했다"며 "많은 방문객이 검게 타버린 잔해 앞에서 슬퍼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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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국보 1호가 '와르르'… 9·11 같은 충격"
"임란 때도 지켰는데… 우린 역사의 죄인" 잿더미 숭례문 앞에서 시민들 弔花 애도 "책임 소재 가려 역사 앞에 무릎 꿇려야"
김철중 기자 / 정혜진 기자
● 시민 반응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전쟁 와중에도 지켰던 국보 1호를 어떻게 아무 일 없는 평화시기에 우리가 잿더미로 만들 수 있나. 우리는 역사의 죄인이다." (김희철·62·남대문시장 상인)
"전 국민이 4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남대문이 불에 타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한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한국판 9·11'이 아니고 무엇이냐." (홍옥선·61·주부)
610년 역사의 풍상에도 꿋꿋하게 버텨온 국보 1호 '숭례문(崇禮門·남대문)이 한순간의 화마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본 시민들은 11일 충격과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표시했다.
숭례문 바로 앞에서 생계를 꾸렸던 남대문시장 상인 김희철씨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첨단장비를 갖춘 소방방재청이 멀쩡히 있으면서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국보 1호가 새까맣게 타 들어가도록 만들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는 "책임 소재를 철저히 가려서 역사 앞에 무릎을 꿇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역삼동에 사는 홍옥선씨는 "아들이 '엄마, 남대문에 불났어'라고 해서 남대문시장에 불이 난 줄 알았다"며 "평소 고궁에 들어갈 때 입장료를 다 내는데 도대체 그런 돈들은 다 어디에 쓰는 거냐"며 문화재 관련 당국을 질타했다.
국민대 4학년 변인수(28)씨는 "새벽 1시 19분에 친구한테 '젠장, 빌어먹을, 국보 1호가 불타 없어지는 이런 경우가 어딨어'라는 문자를 받고 알았다"며 "공무원들은 도대체 뭘 하며 국민 세금을 먹느냐"고 말했다.
이날 문화관광부 홈페이지와 문화재청 홈페이지엔 허술한 문화재 관리를 비판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문화재청 홈페이지는 네티즌의 방문이 폭주하면서 오전 1시부터 8시까지 7시간 동안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아이디 '김영훈'을 쓰는 네티즌은 문화관광부 홈페이지 게시판에 '운현궁은 차 돌진으로 문이 부서지고, 숭례문은 불타고, 화성의 장안문도 그을리고, 수어장대(서장대의 오기인 듯)도 불타 없어지고, 양양 낙산사는 다 타버리고…. 관리 좀 똑바로 하자'는 개탄의 글을 올렸다.
- ▲ 11일 오전 시커먼 잔해만 남은 숭례문을 보며 한 시민이 마치 제 몸이 불탄 듯 안타까워하며 울고 있다./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숭례문에 생명이 있었던 것으로 여겼던 양 잿더미로 변한 숭례문 앞에 조화를 놓고 애도하는 시민들도 줄을 이었다. 이날 오후 숭례문 주변을 둘러싼 폴리스라인 앞에는 '애도'의 뜻을 담은 국화와 백합 다발이 수북하게 쌓였다. 김종희(여·58·서울 중랑구)씨는 하얀 국화 다발을 숭례문 주변을 둘러싼 폴리스라인 앞에 내려놓으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국화 한 송이를 들고 이곳을 찾은 40대 남성은 숭례문을 향해 절을 한 뒤 "세계 최고 수준의 목조 건축물이 불타버려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한 꽃다발에는 '조상님의 유산을 못 지켜 죄송합니다'라는 검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원고지를 들고 현장을 찾은 초등학생들이 잿더미로 변한 숭례문 앞에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글을 쓰는 모습도 보였다.
전문가들은 '국보 1호'가 잿더미로 변하는 전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의 심리적 충격을 우려했다. 울산의대 강릉아산병원 정신과 백상빈 교수는 "미국의 상징물인 세계무역센터가 9·11 테러로 무너지는 모습을 TV로 지켜본 미국 사람들이 심리적 공황에 빠진 것처럼 남대문 붕괴를 눈으로 지켜본 한국 사람들이 엄청난 상실감과 참담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재난 현장을 직접 눈으로 지켜보는 경우 정신의학적으로 이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투사'(投射)현상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불안감과 공포감이 더 증폭된다고 백 교수는 덧붙였다.
건국대병원 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흔히 '남대문이 열렸다'는 말을 해왔듯이 남대문은 이순신 장군 동상과 함께 우리를 지켜주는 상징물이었다"며 "남대문을 잃은 상실감과 불안감은 우리 가슴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는 차분한 대응을 주문했다. 그는 "집단적인 분노가 자칫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으로 발전할 수 있다"며 "허탈한 심정을 누르고 꼼꼼히 사후 대책을 논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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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문화재 정책
일본-49년 금당벽화 화재 후 '예방의 날' 지정 중국-자금성 등 주요 시설에 소방대 상주시켜 프랑스-문화부 예산의 39%는 보존관리에 사용
도쿄=선우정 특파원 / 파리=강경희 특파원 / 베이징=이명진 특파원
일본의 '천 년 사찰'인 나라(奈良)현 호류지(法隆寺)에서는 1949년 화재로 고구려인 담징의 금당벽화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현재 이 사찰의 금당(金堂)과 남대문 등 일본 국보(國寶)로 지정된 건조물의 실내는 직경 2㎜ 이하의 가는 동관(銅管)이 감싸고 있다. 화재시 발생하는 열로 공기가 팽창하는 것을 감지해 화재 사실을 1초라도 빨리 알리는 자동 화재탐지 설비다.
일본 문화청에 따르면 국보나 중요문화재를 보유한 사찰 등 건축물의 90% 이상이 호류지와 같은 화재탐지 설비를, 70% 이상이 자체 소화시설을 갖추고 있다. 대부분 콘크리트 수장고(收藏庫)도 있다. 보호설비를 마련할 경우 정부가 비용의 최고 85%까지 지원(원칙은 50%)하는 국고보조제도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1월 26일이 '문화재 화재 방지의 날'이다. 1949년 1월 26일 나라의 호류지 금당에서 일어난 불로 세계적 예술인 금당벽화가 불에 타 사라져 버린 날을 영원히 잊지 말자는 뜻에서 지정됐다. 이듬해 '문화재 보호법'이 제정됐고, 매년 전국적인 소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에선 1950년 교토의 금각사(金閣寺) 화재 사건 이후 국보 건축물이 화재로 소실된 경우가 없다. 60년 전 쓰라린 경험을 교훈으로 '문화재 보호 선진국'이 된 것이다.
화재에 취약한 목조 유물이 많은 중국도 1978년 개혁개방 이래 문화재 보존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모두 118곳의 문화재급 목조건축물을 가진 중국은 화재로 인한 소실을 막기 위해 1984년 '고건축물 소방관리규칙'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중국의 주요 문화재 시설들은 아예 자체 소방서를 두는 경우도 있다. 베이징의 자금성(고궁)에는 1975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의 지시로 설립된 '자금성 소방중대'가 내부에 상주하면서 불이 났을 때 1~2분이면 긴급 출동할 수 있는 24시간 화재 감시체제를 구축해 놓고 있다. 티베트의 포탈라(Potala·布達拉) 궁전도 1984년부터 200명 규모의 소방대를 상주시켜 정기적으로 주변 잡초 제거 작업을 벌이는 등 화재 예방에 나서고 있다.
'문화대국' 프랑스의 문화재 보호 노력도 각별하다. 건물에 대한 화재 방지 규정은 말할 것도 없고, 건물 내부도 철저하게 관리한다. 프랑스는 2008년에 전체 문화부 예산(30억4904만유로)의 39%를 문화재 관리 및 보존에 쓴다. 인건비를 제외한 순수 사업비 지출 비중으로 따지면 예산의 43%가 문화재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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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원인·발화지점 못 밝혀… 초동수사도 실패
방화 용의자 신고했는데도 제대로 조치 안해 '국보 1호 경비' 사설업체에 맡긴 경위도 조사
박시영 기자 / 오현석 기자
숭례문 화재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11일 소방당국 등과 함께 화재현장에 대한 감식을 벌였지만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는 데 실패했다. 경찰은 방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면서도 아직까지 누전(漏電)인지 방화인지도 최종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특히 현장의 목격자가 방화범으로 추정되는 50대 남자를 신고했는데도 현장에 있던 경찰관이 제대로 조치하지 않아, 초동 수사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경찰 수사가 진척을 보이지 않자 서울 중앙지검은 특별수사반을 구성해 화재원인 조사에 나섰다.
◆정밀 감식하고도 원인 못 밝혀
경찰은 11일 서울경찰청 과학수사팀, 소방방재청 등 관계 기관 전문가 20여명으로 감식팀을 꾸려 숭례문 화재현장에 대한 감식작업을 벌였다. 하지만 정밀감식을 위해서는 화재로 인한 잔해를 모두 치워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채 육안으로 현장을 점검하는데 그쳤다.
경찰은 일단 방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화재 발생 당시 용의자로 추정되는 50대 남자를 봤다는 목격자 세 명의 진술도 확보했다. 경찰은 "목격자들의 진술이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며 진술 내용을 밝히지 않았지만,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숭례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진술이 일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목격자 이모(43·용산구 후암동)씨는 경찰에서 "10일 오후 7시10분쯤 숭례문 울타리 안으로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이 오른쪽 어깨에는 알루미늄 사다리를 걸치고 왼손에는 침낭으로 보이는 어두운 색 짐을 들고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목격자 A씨도 "이씨가 말한 인상 착의의 남성이 숭례문 2층으로 올라갔다가 곧 내려왔다"고 진술했다. 이상곤(44·택시기사)씨도 화재 직후 "한 남성이 쇼핑백을 들고 숭례문에 들어간 이후 빨간 불꽃이 일었다"고 밝혔다.
용의자를 봤다는 제보도 잇따르고 있다. 택시기사 이모(49)씨는 "화재 직후 숭례문 인근 횡단보도에서 용의자로 보이는 50대 남성을 태웠다"며 "그 남자에게서 술 냄새가 났고 손을 심하게 떠는 등 매우 불안한 표정이었다"고 신고해 왔다. 경찰은 "용의자인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목격자 진술대로 사고 현장에서 방화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다리 두 개와 라이터 두 개도 발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정밀 감식을 의뢰했다.
◆발화지점이 어딘지도 확인 못해
경찰은 처음 불이 붙은 지점이 어딘지도 아직 밝히지 못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는 숭례문 주변 CCTV 판독 결과 숭례문 2층 왼쪽 지붕 안에서 불길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지만, 경찰은 아직 발화지점에 대한 수사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이와 관련, 문화재청은 화재사고 예방을 위해 지난 2004년 실시한 숭례문 '방염(防炎)도포' 작업에서 문화재 훼손 우려와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단청이 있는 상부를 도포작업에서 제외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부분은 화재 당시 연기가 집중적으로 발생해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경찰은 야간시간에 숭례문 경비를 맡고 있는 무인 경비업체가 지난달 31일 변경된 사실을 확인했다. 조사 결과, 중구청은 5년간 무상으로 경비를 맡는 조건으로 관리업체를 변경했지만, 경비업체와 중구청은 기계의 정상작동 여부 확인이나 관리 감독을 한번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숭례문과 같은 중요한 시설에 대한 경비를 사설업체에 떠맡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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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곳만 감시한 '숭례문 CCTV'
모두 4대 설치… 계단·2층 누각은 비추지 않아
박시영 기자
숭례문 주변에 설치된 경비업체의 CCTV가 무용지물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11일 숭례문 보안을 담당하는 KT 텔레캅이 설치한 CCTV 4대의 녹화분량을 확보해 분석했지만 방화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숭례문 주변에 설치된 CCTV 4대 중 한 대는 후문 방향을 비추고 있었고, 한 대는 숭례문 안쪽 방향, 나머지 두 대는 정면 방향을 비추고 있었다. 카메라들이 방화 용의자가 지나간 것으로 추정되는 계단과 발화지점인 2층 누각은 비추지 않고 엉뚱한 곳만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재 발생 3분 전인 10일 오후 8시47분쯤 외부인의 침입을 알리는 적외선 센서가 2층 누각과 후문에서 각각 울렸지만 CCTV는 침입의 흔적을 전혀 잡지 못했다.
경찰은 경비업체의 CCTV 외에 인근 빌딩에 설치된 CCTV에 기대를 걸었지만 11일까지 성과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10여대의 CCTV가 설치된 것으로 파악했지만 결정적인 자료 확보에는 실패한 것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12/20080212001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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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감·공격 충동 뒤섞여 방화로 연결
대구 지하철 방화범 "세상에 앙갚음하고 싶었다" 대부분 사회·경제지위 낮고 음주상태에서 범행
최재혁 기자 / 장상진 기자
● 왜 불 지르나
숭례문 화재가 방화범에 의한 것이라면 '어떤 사람들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범죄심리 전문가들은 방화범의 일반적 특징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방화(放火)는 충동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심리 상황(충동조절장애)과 특정 대상에 대한 적대감이 뒤섞여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번 화재도 그런 경우에 속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 2003년 2월 18일 192명의 사망자를 낸 대구 지하철 참사의 경우도 그랬다. 방화범 김모씨를 면접 조사했던 김교헌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불우한 처지였던 김씨는 '세상에 앙갚음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며 "사회적 고립에서 생긴 분노와 공격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무 상관도 없는 지하철에 불을 질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도 1950년 7월 2일 교토 로쿠온지(鹿苑寺)의 연못에 자리잡은 국보 긴카쿠(金閣·사리전)가 방화로 인해 잿더미로 변했다. 범인은 어려서 절에 맡겨져 자란 21살의 수도승이었다. 범인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싶었다"며 "사회에 복수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11일 구속영장이 신청된 노숙자 김모씨는 방화로 1년간 복역하다 출소한 지 열흘 만에 길거리 화물트럭 적재함에서 쓰레기를 태우다 다시 잡혔다. 김씨 같은 병적인 경우를 방화광(放火狂·pyromaniac)이라고 일컫는다. 강박적으로 방화 욕구를 느끼고 방화를 통해서만 심리적 긴장을 해소한다.
방화범들은 자신의 동선(動線) 안에 있는 익숙한 대상에 불을 지르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박형민 전문연구원은 "방화범들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고 대부분 음주상태에서 접근이 쉬운 곳에 불을 지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남대문이 그런 조건에 부합한다고 봤다. 공공건물 가운데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운 곳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범인이 남대문을 우리 사회의 표상(表象)으로 받아들이고 방화했을 수 있다는 추론도 나왔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이윤호 교수는 "방화범으로서는 남대문 같은 상징적인 대상에 불을 지름으로써 '사회 전체에 대해 복수를 했다'는 자기 만족과 불만 표출을 동시에 극대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화와 관련해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건은 64년 있었던 '로마 대(大)화재'이다. 폭군 네로 황제가 불을 지른 뒤 그 광경을 보면서 현악기를 연주했다는 야사(野史)가 전해 내려오지만 확인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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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방화했다면 최고 무기징역
손진석 기자
● 어떤 처벌 받나
숭례문 화재가 방화(放火)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방화범에 대한 처벌 수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방화일 경우 범인은 최고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민사상 책임도 져야 한다.
문화재보호법, 형법 등에 따르면 문화재를 불태운 사람은 최고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방화범은 국보 1호를 전소시킨 데다 숭례문 복원에 수백억원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에 중형(重刑)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일부 판사들은 "(방화범이) 엄하게 처벌되겠지만 인명피해가 없었기 때문에 최고형(무기징역)까지 선고될 확률은 낮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서울중앙지법의 A판사는 "술에 취했거나 심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면 형량이 더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방화범은 민사상의 책임도 져야 한다. 그러나 개인이 숭례문의 막대한 금전적 가치를 전액 변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서울중앙지법 B판사는 "법원이 얼마를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리더라도 판결문이 휴지조각이 될 확률이 크다"고 말했다.
방화범 외에도 제때 화재를 진압하지 못해 숭례문을 전소시켰다는 비난을 사고 있는 소방방재청, 문화재청, 서울시청 등 관련자들도 처벌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방화범 외의 형사 처벌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소방관들이 고의로 진화작업을 소홀히 했다는 정황이 뚜렷하지 않은 이상 형사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방화가 아니라 전기 누전 등 실화(失火)로 밝혀지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 경우 숭례문을 평소 관리해온 관계자들이 규정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면 직무 유기 등의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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