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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종직

차보살 다림화 2008. 7. 14. 21:20

김종직은 어떤 사람인가?

 

                              

                              김종직을 모신 예림서원 구영당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아버지 김숙자를 통해 정몽주로 이어지는 고려 성리학의 맥을 계승하고 있다. 그는 또한 조선 전기 사림파의 종장(宗長)일 뿐만 아니라 영남 유학의 태두이다. 김종직은 성균사예를 지낸 아버지 선산인 김숙자와 어머니 곡산 한씨 사이의 다섯째 아들로 밀양(부북면 제대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에게서 유학을 배워 16세의 나이에 과거(科擧)에 응시하여 백룡부(白龍賦)를 지었으나 낙제(落第)하였다. 1457년에는 단종의 죽음을 애석히 여겨 '조의제문'을 지었다. 그러나 1459년 정시 문과에 급제하면서 벼슬길에 올랐다. 그는 도승지, 이조 참판, 한성부윤, 형조판서 등 중앙 관직을 두루 거쳤다.

 

                                             사당으로 가는 길

 

1470년부터 1480년대 초까지는 함양군수, 선산부사 등 지방관을 거치면서 정여창, 김굉필, 김일손 같은 훌륭한 제자들을 길러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불행도 겹쳐 세 아들을 모두 잃게 된다. 1482년에는 사랑하는 아내마저 세상을 떠난다. 한 마디로 불행의 연속이다. 그래서 '죽은 아내에게 바치는 제문'이 더욱 절절하다.

 

적막해라 서편 방 그대 있던 곳이었네.            寂廖西閤 君其在玆

옷 이불 대야 빗자루 그대 물건 그대로 있네.    衣衾盥櫛 象君平時

음식과 기물도 편의대로 따랐건만                  飮食供具 亦且隨宜

자식 낳은 수고에도 아이 하나 없으니             君昔劬勞 終無一兒

상복 입을 사람 누구인가 아아 모두 끝났구나.  執喪者誰 嗚呼已而

 

 

  
경북 고령에 있는 김종직 종가: 김호년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그는 남평 문씨와 다시 결혼해 늦게 아들을 하나 얻는다. 1489년에는 형조판서를 끝으로 은퇴하여 고향인 밀양으로 돌아온다. 그는 그곳에 추원재(追遠齋)를 마련하고 살다 1492년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그는 1498년 제자인 김일손이 자신의 '조의제문'을 사초로 채택한 일이 문제가 되어 부관참시를 당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김종직은 동시대의 변화와 발전을 추구한 개혁적 인물이었다. 그는 또한 <소학>을 중심으로 교학을 펼쳐 많은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경학에도 밝아 학문과 문장 모두에서 후세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그러한 김종직이 태어나 죽은 고장이 바로 밀양이다.

출처 : 한너울 우리문화사랑회
글쓴이 : 안젤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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