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속리산 법주사 들어가는 길

차보살 다림화 2008. 11. 2. 22:48

 법주사 들어가는 오리숲길

 

잊히지 않는 시월의 마지막날의 추억은 누구나가 하나 쯤 가지고 있다.

올해의 시월 마지막날은 밤안개가 너무나 자욱하여 땅바닥을 적셨다.

앞길이 잘 보이지 않아 힘들정도였다. 장렬한 여름의 태양과 폭우를

격지 않은 얼굴이 어찌 아름다울 수가 있는가. 무더위와 비바람을

잘 견디어 낸 얼굴이 상할까 조심스레 내려준 밤안개는 11월의 하늘을

맑게 열어주고 고운 단풍 빛깔을 더욱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빛나게 했다.

 

"단풍이 들고 국화가 만발할 때 사람들이 놀고 즐기는 것이 봄에 꽃과 버들을

즐기는 것과 한가지다. 사대부 가운데 옛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중양일(음9월9일)

에 높은 곳에 올라 시를 짓는다."라고 <일양세시기>에도 말했다.

 

밤안개를 가르고 이른 11월의 첫날, 행촌문학기행이 오늘날의 그런 날인가 싶다.

오늘의 감상을 시로 수필로 언젠가 튀어날 것이다.

찹쌀 전병에 감국을 눌러 부친 감국전 이나 그윽한 국화주을 대신한 머루주와

찹쌀 떡 한 조각과 맥주 한 잔에 마른 안주 등이 충분한 감흥을 돋우어 주었다.

 

 법주사 하면 대부분 3,4십여 년 전을 떠올린다.

내게는 사찰의 종교적 의미나 건축적 아름다움에 눈뜨기 전이었다.

다만 기억되는 것이 있다면 이 정이품 소나무의 자태였다.

4년 전 춘삼월의 폭설 때 이 소나무의 가지가 부러졌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이 일었기에

그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다. 옛날과는 너무나 변화된 주변 환경이어서 어디 쯤에

이 소나무가 있느지도 처음엔 알아볼 수 없었다. 남쪽에서 사진을 못 찍은 것이 아쉽다.

아직은 그런데로 나머지가 보존되고 있으니 다행스럽다. 인근 외속면 선원리에 있다는

정부인 소나무는 환경이 좋아서인지 왕성하게 건강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오리숲길에 들어서자 고운 단풍 빛깔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주차장에서 법주사까지 오리 (2킬로미터)나 된다고 하여 오리숲길이란다.

 

 

 수십 년을 넘긴 떨갈나무 류의 숲이 터널을 이룬다.

 

 벌써 겨울을 나기 위하여 바지를 끼어 입은 나무

 

 

 

 

 

 

 계곡에 물은 많지 않으나 맑은 하늘을 인 나무숲이 물 속에서도 물숲을 이루었다.

수필은 햇빛에서 본 것을 달빛이 어리게 써야한다고 했던가. 물 속에 거꾸로 선 숲이

어찌 이리도 아름다운가.뿌리가 튼튼하면 어떤 모습으로도 살 수 있다. 휘어진 소나무가

더욱 아름답듯이.

 

 

 어젯밤 유난한 안개가 내려서인지.  낙엽의 향기와 숲이 품어내는 향기가

참으로   폐부 깊숙이 베어들어 몸과 마음을 맑혀주었다. 아직도 그 숲의 향기가

코끝에 남아 있는 듯하다.

 

 

 

 

 맑게 정화된 마음으로 '호서제일가람' 이란 편액이 붙은 일주문을 들어선다.

 

'속리산대법주사'란 전서로 된 이 편액은 서산에 있는 개심사 편액의 글씨와

너무나 흡사하다. 보기 좋은 전서는 조선 후기 문인이신 김규진 선생의 작품인지..

 

 

 

 

 아! 보고싶었던 팔상전

법주사는 지금까지 눈에 익었던 남쪽 지방의 가람과는 많이 다른 특징을

보인다 가람배치도 그렇고 대웅보전과 원통보전, 팔상전, 미륵청동대불 등.

불교의 전체의 신앙 형태를 다 나타내고 있고 건축도 다양한 형태의 것이 모여있다.

맛배지붕과 팔잘지붕과 공포의 양식도 그렇다.

 

 

긴 거리를 달려온 것과는 달리, 너무나 짧은 시간 사찰의 요모조모를 많이 관찰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미륵청동불 앞에서 기원을 하며. 석가모니 열반 후 5억 7천만 년(?) 후에 용화수에

강림하신다 했던가. 아마도 지금의 세상엔 이미 많은 미륵들이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