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나이로 77세를 맞는다. 한자로 七七(칠칠)이라고 쓰면 기쁠 ‘喜(희)’자의 초서체와 비슷하다 하여 흔히 희수(喜壽)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이 나이는 기쁨도 아니요, 노락(老樂)을 의미하는 숫자도 아니다.
그렇다. 나는 20대 초반부터 줄곧 글을 써왔다. 그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으로 살아왔다. 평생을 쉬지 않고 평론과 논문, 에세이, 칼럼, 드라마, 시나리오, 소설, 시 그리고 얼마 전에는 뮤지컬 공연물까지 썼다. 심지어 표어까지 썼다. 올림픽 때의 ‘벽을 넘어서’와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서 가자’라는 캠페인 카피가 그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한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몰랐다. 일장기가 걸린 교실에서 일본어로 교육을 받았던 탓이다. 남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식민지 아이로 태어난 나에게는 지금까지도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한국말로 글을 쓰며 그것으로 밥 먹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고맙고 황송하고 눈물겹도록 큰 축복이라고 여겨 왔다.
그런데 아직도 쓰지 못한 글이 있다면 그것은 소설도 역사도 아닌 이를테면 한 사람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모든 한국인의 이야기, 소설이며 전기이며 동시에 역사인 그런 글이다.
용광로의 쇳물처럼 튀어오르는 저 열기가 바로 우리다. 이런 ‘집단추억’을 어느 사회에서 들을 수 있을 것인가. WBC에 출전한 한국 야구단을 응원하는 한국 교민과 응원단 [조문규 기자], [연합뉴스] | |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숫자다”는 말이 있다. 그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한 사람의 죽음은 소설이요, 100만 명의 죽음은 역사다”고 할 것이다.
우리의 불행은 ‘로마인 이야기’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도 ‘한국인 이야기’는 이념논쟁을 해야 하는 재미없는 역사교과서에서 배울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일단 그 굴레에서 벗어나면 소설보다 재미있고 역사보다 엄숙하게 흐르는 한국인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내가 쓰고 싶은 한국인의 이야기는 한 개인의 스토리가 되어서도 안 되며 추상적인 집단의 히스토리가 되어도 안 될 것이다.
생각해 보라. 누이가 나물 캐러 다니던 채집시대 때의 아이가 농경, 산업, 지식 정보시대를 걸쳐 우리 손으로 개를 복사하는 바이오 시대의 전 문명과정을 한꺼번에 겪으며 머리털이 세어 가는 그런 나라가 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을 것인가. 큰 전쟁을 두 번씩이나 겪고 혁명을 서너 번 치르며 70여 년을 블랙 홀 같은 소용돌이를 횡단한 사람들의 ‘집단추억’ 그런 이야기를 어느 사회에서 들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의 물음을 한국인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 보자. 한국인의 가슴과 성벽, 장터와 그 깃발에 부는 천의 바람을 통해 한국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어령,
사진=조문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