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한국최고차수를 찾아서 (하동)

차보살 다림화 2010. 5. 22. 20:04

2010년 5월 20일

차마고도를 넘는 옛 사람들처럼 차잎을 구하러가는 날이다.

 

화개골에서는 차잎 따는 일을 이번 주에 끝낸다는 소식이다.

날씨가 좋은 날을 택해야 하기 때문에 적당한 날짜를 잡지 못하다가

5월 18일 가기로 했는데, 비가 왔다. 종일 비가 온 날 다음 날도 차 잎

따기는 좋지 않다. 20일 목요일 아침부터 날이 맑았다. 그리고 주말에는

다시 비가 온다는 예보다. 만사를 제치고 그날 차잎을 구해서 만들어야 한다.

반짝 하루 맑은 날을 택해서 가야 하기 때문에 누구와 약속을 미리 할 수도 없다.

멀리서 소식을 전해주는 차꾼들에 의해서 재빨리 행동에 옮겨야 한다.

 

도시락을 준비하고 나니 11시 40분이다. 옛날의 전주부성은 전국에서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였다.

평양과 개성 그리고 한양 다음으로 전주였다. 해서 남쪽에서 전주부성으로 올라오려면 남관과 상관면

을 거쳐 한벽당 앞으로 들어선다.

상관면 신리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오늘은 내려간다. 남관으로 내려가는 길은 산 속으로 말 타고 다니던 때의

협곡 길이 상상되어 즐겁기까지 하다. 30여분 내달아 가면 남원으로 들어가는 춘향터널을 지난다. 바로

이어서 남원으로 들어가는 길 위 쪽의 고가도로로 우회 길을 택해야 한다. 구례와 순천 방향이다.

구례 방향으로 10여분 달리면 밤재 터널을 만난다. 이 밤재 터널이 전북과 전남의 경계이다. 밤재 터널

이 편은 남원시 주천면이고 터널을 지나면 전남 구례군 산동만을이 나온다.  지리산 원경을 왼편으로

바라보이며 너른 구례들판이 펼쳐지고 오른편으로 섬진강 물길이 나타난다.

구례 로타리에서 하동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17번 국도에서 19번 국도로 바꾸어야 한다. 이 길 가에는

지리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유명한 사찰 이정표가 나그네의 마음을 유혹한다. 천은사, 화엄사 연곡사

등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냥 유람이 아니라  차茶를 해야 하는 날이기 때문에 그 어떤 옆길로 마음을

돌릴 수가 없다.

구례에서 하동까지 섬진강 길은 속도를 60키로로 제한 되어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천천히 이 길을

음미하면서 지날만 하다. 작은 곡전재를 지나서 녹빛 저수지 주위에는 아까시 꽃이 흐드러졌다. 혼자서

다니는 길은 더 많은 님들을 만날 수 있어서 깊은 맛이 있어 좋다. 일행이 있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자운영 밭도 볼 수 있다.  조선양반가옥으로 유명한 운조루 팻말이 보이지만 그냥 지나친다. 하지만

방향을 뒤돌려서 운조루 마을에 그전에 없었던 한옥 마을이 조성되고 있어서 들려보기로 한다. 

 

 

 

 

 

 

 문수사 들어가는 입구까지 한옥마을 앞을 지나 한 바퀴 돌아나왔다.

 

 

운조루는 서기 1776년 (영조 52년) 경상도 안동 출생인 류이주가 순천부사 때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99칸 집을 지었다.

운조루 라는 이름은 "운무 속에 새가 깃들어 살았다."는 중국의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에서 따온 두 글자로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새들은 날다가 지쳐 둥우리로 돌아 오네'라는 첫머리 두 글자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집 뒤에는 삼신산(한라산, 금강산)의 하나인 지리산 노고단(1,507m)의 웅장한 험산준령을 타고 내려온 형제봉 끝자락이 마을을 둘러싸고 집 앞에는 내수구(內水口)를 따라 맑은 물이 졸졸 흐르며 드넓은 들이 펼쳐져 있고 더 멀리에는 외수구(外水口)인 섬진강 맑은 물줄기가 넘실댄다. 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서 무릎을 탁 치며 “아, 여기가 내가 살 조선제일의 택지(宅地)로구나!”기뻐하며 금환낙지(金環落地=천장에서 옥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다는 터) 터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저기 보이는 마을 뒷산이 삼신산의 하나인 지리산 노고단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과연 마을을 싸고 있는 산 아래 펼쳐진 들이 너무나 보기 좋아

지금도 살고 싶은 마을로 생각되어서 마을을 둘러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도 집 앞으로 내수구를 따라 맑은 물이 졸졸 노래소리처럼

흐르고 있다.

 

 

 

이제 섬진강 벚꽃길로 접어들었다. 분홍꽃구름이 하늘을 덮었던 곳은 초록빛으로 덮어 시원하고 보고 또 보아도 그 초록빛은 꽃무리들을

상기시켜주기도 하고 분홍빛 연가의 추억에 젖어들게도 하여 또한 초여름의 정취에서 지난 세월의 아쉬움보다 희망의 그리움이 피어나기도 한다.

첫번 째 전망 좋은 곳이다. 언젠가 배롱나무꽃이 피었을 때도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었지.

은행나무 쉽터이다.

 

 강 둑마다 언덕마다 흐드러진 찔레와 아까시 향기가 싱싱한 여름을 부르고

은행나무 쉼터에는 차와 약초를 판매를 하는 가게가 하나 있다. 여기서 도시락을 먹었다. 아저씨가 따뜻한 결명자 차를 한 잔

주었다. 약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녹차 잎을 보여주었다. 잎이 이렇게 커버렸다고 하면서 녹차 장아찌를 만들어보려고 한다고

했다. 어떤 맛이 될까. 차잎에는 오미가 들어 있고 해독도 하는 성분이 있으니  괜찮을 것 같다.

 

 

 두 번째 전망 좋은 쉼터에서 또 쉬었다.

오후 내 딴 차잎을 가지러 가는 길이니까. 5시 안으로 도착하면 되기에..

 

 

언젠가 좋은 사람과 쉬면서 벚꽃 아래에서 사진도 찍었던 자리는 풀잎만 무성하고 빈 벤취가

허전하기만 하다. 강건너 배가 한 척 메여 있다. 이편에 있다면 그 쪽배를 타고 강건너 마을에 가고 싶다.

돌아올 때는 강건너 길로 올라오려고 마음 먹는다.

 

 

 

 

화개장터 밑으로는 경상남도이다. 하루에 삼 도의 땅을 짚어 본다. 화개장터 밑으로 가면 최참판댁 (<토지>의 주 무대)이 나오는 길이다.

화개장터 구경할 시간이 없다. 화개천을 따라 주로 다니는 쌍개사 입구로 가는 길, 오른 편 길로 올라간다. 그 길로 올라가야 한국최고차나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자락마다 차밭이다. 저 많은 차밭에 오늘 같은 날 차 잎 따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 아쉽고 아깝기만 하다.

우리가 처음 차를 알고 차를 만들고 했을 당시는 이런 차 밭이 없었다. 불과 20여  년 되었을까 싶다.

80년 도 처음 우리는 금산사 주변의 야생차잎을 따서 금산사 요사체의 철 솥에서 차를 만들었다.

그 때는 옛날 방식으로 불을 때는 사람 따로 부뚜막에서 차잎을 덖는 사람 그리고 덖은 차잎을

받아서 비비는 사람 등이 한 팀을 이루어 잔치 날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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