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선운사의 차밭과 꽃무릇

차보살 다림화 2010. 10. 24. 17:56

 

 

 

 

가을, 환상교향곡 (2)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선운산 숲은 언제나 깊게 다가온다. 그곳 푸른 숲 사이사이에도 꽃자리를 깔았다. 특히 푸르기만 한 차나무 밭을 배경으로 드문드문 서 있는 꽃무릇이 빼어나서 가까이 갔다. 차나무 가지에 탱글탱글 커 가는 꽃몽우리의 뽀얀 살결을 보자니 무언가 몰래 훔친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린 차 순이 제법 많아서 한 웅큼 따서 향기를 맡아보니 그 향기가 또한 가슴 깊게 파고들었다. 내려 간 김에 올라 올 때 고창 선운사에 들렸던 것이다. 선운산 축제 때 있었던 백파율사의 심포지엄에 참석하지 못하여 그 소식을 듣고자 했다.  대웅전 입구 극락교를 보수 중이어서 어수선했지만, 빼어난 추사의 글씨체로 쓴 <華嚴宗主白波大律師大機大用之碑>를 보면서 치열하게 학문과 종교를 교류했던 선인들의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선운사의 동백숲과 차나무 숲 그리고 어느 곳보다도 고귀한 단풍 숲에는 인생과 학문과 불심의 향기가 베어 있다.
  가슴이 또 뛰었다.

 

 

 

 

 

 

 

 

 

 

 

 

 

 

 

 

 

 

 

 

 

 

 

 


  오후가 되자 빗방울이 돋기 때문이었다. 어서 집에 가서 드러눕고 싶어져서 마음이 바빠졌다. 평생 짝사랑으로 가슴앓이를 했던 베를리오즈는 기어이 '환상교향곡'을 작곡하여 '처음 사랑한 여인에게 헌정' 한다고 했다. 삶은 만남이고 만남은 사랑이니, 사랑의 장엄함이여, 그 황홀함과 고단함이여, 우리 사랑과 나태를 노래하자 했던가. 우리가 가질만한 값진 것은 오로지 그것들뿐이라고. 언제나 첫사랑은 가슴 뛰게 한다. 시월 첫날, 사랑의 환상은 이렇게 고요한 내 가슴을 뛰게 하였다. 차 꽃이 조롱조롱 매달려 피고 있다고 생각하면 언제라도 달려가고 싶을 거다. '나 일어나 갈 거야 그 숲 속으로' 왜냐면 꽃무릇이 속절없이 가고 난 그 밭에서 지금 노란 꽃술을 담은 차 꽃의 하얀 살결이 터지고 또 터지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