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나의 차마고도

차보살 다림화 2011. 5. 30. 18:32

 

 

茶心佳道

-나의 차마고도(茶馬孤道)

 

 

 

 

 

  커피를 알기 전에 나는 홍차를 먼저 마셨다. 붉고 투명한 티(Tea). 아마도 영국 사람과 같이 직장생활을 한 때문이었을까 싶다. 그래서 녹차를 만났을 때 그리도 맑고 투명한 그린티(green tea)에 반했으며 친근했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몰랐지만 영국의 홍차의 발원이 중국의 녹차가 아니었던가.

  유럽의 패권 국가들이 세계를 식민지화 할 무렵이었다. 영국이 중국에서 녹차를 수입해 갈 때 그 긴 항해 동안 남해의 습하고 더운 기온 때문에 돌아가서 보니 발효가 되어서 블랙티가 되었다지 않은가. 찻잎으로 볼 때 녹차보다는 발효차가 그윽한 향과 깊은 맛이 더 좋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영국인들이 더 많이 그 블랙티에 매료되어서 홍차로 발전시켰는데 그때부터 영국은 홍차의 종주국이 되었다. 중국의 녹차를 많이 수입하기 위하여 아편을 팔았지만 그 폐해가 많아지자 후에 아편전쟁까지 발발하게 된 것도 모두 중국의 차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종일 차 보따리를 싣고 다니다 보니까 차가 익는 냄새가 자동차 안을 가득 메워지니 즐거움에 겨워 힘든 줄도 몰랐다. 중간에 쉼터에서 내려서 찻잎을 점검해보니 거의 다 익어서 향이 알맞게 발효가 되고 있지 않은가. 이제 그 차를 뜨거운 방에서 말리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유럽인들이 긴긴 항해 끝에 항구에 도착해 보니 차가 발효되었듯이 나의 찻잎도 보자기에 싸인 채 하루 종일 다니는 사이 자동차 안에서 내 기운과 함께 발효되고 있었다.

 

  나의 작은 방은 차향이 가득하다. 차향이 베인 방에서 향그런 낮잠을 한숨자고 나서 신차 맛을 음미하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내 오랜 차 생활 동안 올봄처럼 차가 늦은 해는 처음이다. 해마다 4월 말 쯤 되면 차밭을 점검하러 몇 번 다니는 일로 시작하여 5월을 보낸다. 해마다 5월 초에 우리 차꾼들이 주문한 찻잎을 가지러 내려갔었다. 그런데 올 해는 초봄에 한파가 몰려왔다.

  4월 초파일쯤에 우리 스님은 일 년 차 양식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초파일 행사 준비는 다른 스님에게 맡기고 차일(茶事)에만 전념했었다. 지금은 절집을 맡는 일을 그만 두었기 때문에 나도 자유롭게 내 양식을 따로 준비한다. 동지들 소식에 의하면 냉해 입은 차나무가 많아서 찻잎도 값이 비싸고 엄청 늦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이번 초파일엔 특별한 나들이를 하려고 이른 봄부터 마음만 바빴다. 차 일 때문에 언제나 초파일을 한가롭게 지낸 적이 없었다.

  19일, 역시 예정한대로 되지 않았다. 그 날은 비가 내릴 징조여서 갑자기 18일에 준비된 찻잎을 가져가란 연락을 받았다. 차는 궂은 날은 할 수가 없다. 잎을 따는 날은 새벽안개가 끼여 청명한 날 오전 내에 따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일에 만들기를 초벌 완성을 마쳐야 한다. 하동까지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여정을 위한 예비 점검을 해두고 있었다.

  새로 개통된 광양 고속도로를 달렸다. 상관 톨게이트에서 광양까지는 한 시간 반 걸렸다. 신록이 완연해서 쾌청한 날씨에 싱그러운 초록물이 찻물처럼 흐르는 것 같았다. 산과 산을 잇는 터널이 열 개가 넘는다. 첩첩 산들을 바라보며 달리는 기분은 아름다운 신록의 환영을 받는 것 같았다. 산에는 하얀 꽃들이 많아지는 계절, 현란한 봄꽃들이 물러간 뒤, 조용해져서 아늑하기만 한 산의 정취는 정다운 벗과 차분하게 녹차를 마시면 좋을 때다. 날이 따뜻해지니 갑자기 아까시 꽃들이 때보다 많이 피어 향기를 흩날리고 찔레꽃 무더기도 한껏 향을 발하고 있었다. 이팝나무 층층나무들의 하얀 꽃술이 너울처럼 휘날리는 곳이 많았다. 겨우 광양톨게이트를 빠져나와서 자동차도 숨 돌리고 배고픔을 면했다. 광양에서 하동으로 건너가는 길은 전북의 금산사 가는 길처럼 숲 속을 지나는 길이었다. 높은 고갯마루를 올라서니 오른쪽으로 멀리 광양만이 보이고 섬진강 하류가 나타났다. 건너편 강가에서 학생들이 놀이를 하는 것 같은 풍경이 보였다. 강 위의 철교로 기차가 지나는 소리는 먼 이국의 정취를 물씬 풍겼다. 길 한편은 높은 산인데 중턱에 절집이 또한 그 산의 정기를 말하는 듯했다. 혼자여서 별 풍경을 넉넉하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花落今朝風(화락금조풍)이라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졌구나

      可憐一春事(가련일춘사)가 가련하다 한 봄의 일이여

      往來風雨中(왕래풍우중)이라 비바람 속에서 왔다 가는구나

  송한필도 이렇게 노래했고, 백낙천도 “복사꽃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흩날리고, 배꽃은 아득히 내리는 눈처럼 떨어진다(桃飄火焰焰, 梨墮雪漠漠)”고 하였듯이 봄날 잠시 동안 우리를 즐겁게 하던 꽃길이 아닌 것을 아쉬워 할 여지가 없다. 신록 속의 흰 꽃들이 푸르러지는 숲을 더욱 빛부시게 하며 아름다운 청춘이 자라고 있다.

  꽃놀이 하던 인파들은 온데간데없고 벚찌가 익어가고 매실이 익어간다. 광양까지 이어진 매화 길은 초록 물결 속에 매실이 통통하게 크고 있었다. 다압면으로 이어진 길, 꽃 진 철이니 한가로운 홍쌍리 청매실농원에도 들러볼 수 있었다. 19번 국도의 반대 길을 택하여 화개장터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찻잎을 빨리 가져가기 위해서는 일찍 차밭부터 가야하는데 어차피 내려온 김에 나는 차의 길 주변의 풍광을 살펴보고 싶어졌다. 차밭 아주머니가 나보다 차를 잘 만들기 때문에 잘 갈무리를 해줄 것을 믿었다.

  일차 손질한 차보따리를 안고 돌아오는 길, 하동에서 전통차문화센터의 상황과 지난번 야생차축제의 현장을 돌아보았다. 30여 년 전에 폐허 같았던 곳이 지금은 한국의 차 메카가 된 것이다. 옛날에는 지각없는 차꾼들이 이 쌍계사 주변의 야생차밭을 훑어대어 차밭이 대단한 몸살을 앓아 몰골이 흉흉하던 것을 차츰 정리하고 발전시켜왔던 것이다. 그 때는 찻물 구하기도 어려웠고 차 수건도 손수 수를 놓았으며, 포장지도 한지로 만들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것이 기계화되어 전문화 되었으니 차 생활하기가 어떤 면에서는 사치에 흐르기 쉬운 점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오래 차를 마시다보면 차의 본질에 닿기 마련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마침 부산에서 온 고등학생들이 차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어서 같이 참여하여 차향 속에 묻힐 수도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차를 가까이 하면 덕이 될 터이니 다행한 일이었다.

 

  그렇게 이곳저곳 살펴보다 화개 장터에서 늦은 점심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장터의 옛 맛이 우러나온 반찬들이 관광지답지 않게 믿을 만 했다. 결국 한밤중까지 내 차를 잠재울 수 있는 곳을 못 찾았다. 생각해보니 이미 다 익은 차를 말리기만 하면 될 것을, 내 방을 따뜻하게 데워서 말리면 될 일이었다. 차 보따리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서 잡냄새 없는 한 방을 불을 지피고 종이 위에 차잎을 널었다.

  2년 전의 달빛 내려앉은 하늘집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해는 셋이서 섬진강 물길 따라 하동으로 내려가면서 차생활에 얽힌 삶의 이야기가 벚꽃구름 피듯 했다. 초록 잎이 하늘을 가린 터널을 지나면서 벌써 녹빛 우러나는 찻물에 빠져 있는 듯했다. 차(茶)를 하기 위해서 만난 사람들이기에 차의 철에만 만나도 호흡이 맞아 흡족한 길이었다.

 

 

 

 

 

 

 

 

 

 

 

 

 

 

 

 

 

 

 

 

 

 

 

 

 

 

 

 

 

 

 

 

 

 

 

   악양 다원에서 맞춤한 차 잎을 소중하게 안고 우리는 차의 전설를 엮었다. 여름 안거 들어간 스님의 빈 토굴은 우리들의 차방이 되었다.  마침 악양 벌판을 내려다보는 보름달이 훤하게 동녘 하늘에 오르니 인적 없는 깊은 산 중턱의 암자, 달밤이 내려앉은 마당은 은빛 물결이었다. 따끈한 방에서 익어가는 차향이 창호지를 뚫으니 달빛에 어린 차향 그윽한 초여름 밤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달빛 차를 함께 마셨다. 한밤중에 차 끓이는 일이 어찌 선승들의 옛 고사(故事)만이랴!

 

 

 

 

  새벽이슬에 젖은 차밭에서 찔레 향으로 입맛 다시며 찻잎을 땄다. 앞치마 가득 찻잎을 안고 내려와서 해 오르기 전에 청차를 덖어 말렸다. 이렇게 달빛과 이슬에 빚은 첫차를 시음하니 하늘 아래 천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이구동성이었다. 그때는 악양 들판의 정기를 먹은 다원들을 답사하고 산책할 수 있었다.

   올해는 서로 시간을 맞추다가 날씨 관계와 차밭의 사정이 어긋나서 각자 따로 했지만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차이야기는 여전했다. 올라오던 길에 불꽃처럼 타오르는 꽃양귀비들 속을 거닐 수 있었던 것은 예기치 않은 행운의 위로였다. 장마가 오기 전에 한 번 더 찻잎을 따고 싶었다.

“사랑의 풀이 없으면 인간은 사막이다. 오아시스도 없는 사막이다. 보이는 끝까지 찾아다녀도, 목숨이 있는 때까지 방황하여도, 보이는 것은 거친 모래뿐일 것이다. 이상의 꽃이 없으면, 쓸쓸한 인간에게 남는 것은 영락(零落)과 부패(腐敗) 뿐이다. 낙원을 장식하는 천자만홍(千紫萬紅)이 어디 있으며,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온갖 과실이 어디 있으랴?” 이는 나의 차(茶)를 두고 한 말 같기만 하다. 작은 방문을 열면 아직도 차향이 스민다. (2011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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