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번영
에도시대 이시카와 문화전
2011. 10. 18 - 11. 27국립전주박물관 문화체험관 전시실
일본 에도시대로의 시간여행
이시카와 사람들
국립전주박물관은 일본 이시카와현립역사박물관과
교류하여 온 지 20주년이 되었답니다. 그간 양국의
문화를 서로 알리고 이해하며 우정을 쌓아 왔습니다.
지금부터 일본 에도시대 사람들 생활 속으로
신간여행을 떠나 볼까요?
에도시대는 1603년부터 1867년까지 무사계급의 최고 지위에 있는 쇼군이 막강한 권력으로 일본 전역을 지배하던 엄격한 신분중심의 사회였지요. 중요한 일들이 이뤄지던 곳이 에도였기 때문에 그 지명을 붙여 에도시대라고 불렀습니다.
이시카와현 중심 도시는 가나자와시입니다. 전주시와 자매 결연을 맺은 도시로 알고 있습니다. 전통문화가 살아 있는 도시이며, 기술 공예도 발달한 곳이기도 합니다. 마을의 여러곳으로 용수가 흐르는 운치 있는 마을입니다. 전주 한옥마을 길의 작은 시내는 그곳의 용수를 본따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임란 이후 고종황제 시절까지라고 보면 됩니다.
일본과의 정치적 배경을 접어두고 문화의 교류만을 통하여 동양권의 문화 속에 흐르는 하나의 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전시회입니다. 일본을 여행한다고 해도 문화 속을 들여다보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이런 기회에 자세히 관람하면서
문화로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빨간 색의 부분이 이시카와현인데 가운데는 가나자와 시 입니다. 위로 툭 튀어나온 반도는 노토반도인데, 얼마전에 북한을 탈출한
해가 표류하여 닿은 곳입니다. 경치도 좋은 곳이 많고, 농토가 많아 생산물이 많아서 살기 좋은 곳이랍니다. 센다이와는 반대편
이어서 쓰나미에도 별 피해가 없었답니다.
터치뮤점 실에는 각종 이시카와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각종 생활용품이 전시되었습니다.
찻잔을 나르는 접시를 들고 있는 무사 인형.
가면극에 쓰이는 가면을 어린이들이 써보기도 합니다.
바늘 꽂이와 다식으로 사용되는 쌀과자 등도 여러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무사의 옷을 입어보고 있는 어린이 관람자.
무사들의 행렬도가 그려진 병풍
우리나라 정조임금의 화성 행차도의 두루마리를 연상하게 합니다.
무사의 소지품
다이묘의 한 가문인 초가의 갑옷인데 부조를 화려하게 새겼습니다. 공예가 많이 발달하였기에 가나자와 시는 유네스코 지정 창의도시입니다.
지붕 장식인 막새에는 매화꽃 문양이 있습니다. 기와는 납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지붕이 하얗습니다.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마에다 가문의 용품에는 이 매화꽃 문양이 새겨집니다. 마에다 가문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덕수궁을 잘 보면 이씨의 배꽃(오얏꽃) 문양을 여러곳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이시카와 현에는 후지와 타테야마와 더불어 일본의 3대 산의 하나인 하쿠 산이 있어 자연 환경이 매우 아름답고 온천 지역도
발달했습니다.
가부끼 공연의 포스터 그림 같습니다.
에도시대에 화가들은 원근법을 쓰고 있습니다.
당시에 유키예오란 원색적 포스터 그림들을 판화로 찍어내는 것이 발달하였습니다.
18세기 유럽의 인상파 화가들이 일본의 유키예오 그림을 아주 좋아했답니다.
유럽으로 수출하는 일본 상품을 판화로 찍은 포장지를 사용했다는데 유럽의 예술가들이
그 판화 그림에 반하여 수집하고 일본 여행을 감행하기도 했다는군요. 실제로 인상파
화가 중에 유명한 모네는 그의 정원에 일본식 다리를 만들고 수련이 핀 연못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원색적 인상이 그들이 추구하는 인상파의 그림에 영향을 준 듯합니다.
그들의 풍속을 엿볼 수 있는 풍속화첩입니다.
조선말엽에서 일제시대에 활약했던 김준근의 기산풍속화첩이 있습니다. 김준근은 전시대 김홍도의 미적가치를 나타낸 그림과는
달리 후기 조선 사람의 풍속을 알 수 있는 생활 그림을 단편적으로 많이 그렸습니다. 해서 서양사람들이 좋아하여 많이 팔았다고
합니다.
1748년 32명의 조선의 통신사 일행이 배 안에 그려져 있습니다. 일본사람이 그렸기 때문에 인물의 모양이 조선 인물화와는 인상이 다릅니다만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모양은 같습니다. 그 당시 통신사들이 선물로 가져간 그림을 아주 좋아하여 동행한 화원은 그림 주문의 청탁을 받기에 바빴다고 하지요.
공중돌기를 하면서 계단을 내려가는 장치인형은 (위의 빨간 인형) 수은이 중심을 이동하는 원리로 움직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임진란으로 문화의 맥을 잃은 것이 많았습니다. 한편으로 일본으러 건너간 우리문화가 그들에게 전해져
공업화와 산업화하여 생활 속으로 스며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개구리 모양의 인형은 전력의 힘으로 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어린이들이 장수풍덩이를 작은 밧데리로 움직이게 하여 놀고 있습니다. 일본은 그 때 벌써 그런 공업적인 장난감을
만들었습니다. 움직이는 찻잔 수레도 있습니다. 에도시대 무사들은 우리의 막사발에 환장을 했답니다. 우리의 막사발이 그들의
국보가 되기도 했습니다. 풍신수길이 도공을 데려간 이야기는 누구나가 다 알고 있습니다. 무사들이 둘러앉아 차를 마실 때 유용하게 찻잔수례가 쓰였겠다 싶습니다. 사실 막사발에 말차를 타서 무사들이 혈맹을 나누는 것처럼 돌려 마시기도 했다니까요.
마에다 가문의 것옷에도 매화꽃 문양이 상징적으로 등장합니다.
마쯔리에 쓰이는 고사떡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정초에 텐진(학문의 신)도를 그리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여 한 해의 기원을 한다고 합니다.
사자탈
조선 사람이 그린 공원 풍경
마에다 가문에 전래되어 온 여성의 의복으로 국화, 소나무, 매화, 갈대, 물결 등을 염색과 자수로 화려하게 표현하였습니다.
마에다 가문 문양 마키에 종이함
미술품도 작품성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볼만 합니다. 중구과 한국, 일본의 것과의 차이점을 느껴볼 수 있는 재미가 있습니다.
말 안장
신선도와 소나무와 학 그림
이외에도 재미있는 하이쿠(하이카이)를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이쿠 시 그림이 백미입니다. 시중화, 화중시를 만납니다.
하이쿠란 5,7,5의 17음으로 이뤄진 일본 고유의 짧은 시구를 말합니다. 서민생활을 주제로 해학적이고 응축된 어휘로 계절, 사랑의 감정 등을 재치 있게 표현하였습니다. 이 그림들은 직접 보면서 우리도 하이쿠를 지을 수 있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말을 탈 때 발을 올려놓는 발안장
가나자와성 공원의 일부인데, 세발 석등이 인상적입니다.
이시카와현립박물관, 이런 빨간 벽돌 건축물은 우리나라 목포와 군산에는 근대유산으로 남아 있는 것이 몇 군데 있습니다.
일본에는 다양한 마쯔리가 발달해 왔습니다. 이시카와현의 가나자와에도 많은 마쯔리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역시나 마에다 가문에 기원합니다. 가나자와 하쿠만고쿠 마쓰리는 가가 초대 번주 마에다 도시이에가 1583년 6월 14일에 가나자와에 입성해서 가나자와의 기초를 닦은 위업을 기리는 의미에서 열립니다. 호화로운 하쿠만고쿠 행렬을 비롯하여 400년 걸쳐 계승되어 온 가나자와만의 전통적인 행사가 이어지는 대 이벤트입니다. 마에다 가문은 14대에 걸쳐 번영을 누렸다고 하는데요, 그 비결은 처세술에 있었다고 합니다. 에도 막부에 가서 외교술과 덕치로 가문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여러 축제들은 그동안 전통의 맥이 끊긴 긴 세월이 있었기에 자연스럽지 못한 점이 많습니다. 그저 전통이란 끈 하나에
의지해서 관의 주도 하에 이루어져 상업적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을 민초들에서 우러나와 자생한 축제가 아니기에 어쩐지 맞지 않는 것옷이 헐렁거리는 것 같은 점이 있습니다. 전시회를 통하여 우리의 전통을 살리고 보존하여 생활 속의 일부분이 되는 일을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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