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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1년, 일본 문화예술계의 움직임과 변화
글 : 장지영(국민일보 기자)
지난해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지진과 쓰나미라는 자연재해에 후쿠시마 제1원전의 사고까지 겹쳐 일본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3월 1일 현재 사망자 및 행방불명자는 1만9131명에 달하고 피해액은 17조 엔(약 226억 원)에 달하고 있다. 또한 아직도 이재민만 32만여 명으로 대부분 가설주택에서 살고 있다. 여기에 원전사고 수습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며 그 피해액은 계산조차 되지 않고 있다. 문화예술계의 피해 역시 엄청나다.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파손된 문화시설은 326곳, 국보 등 문화재는 548건에 달한다. 공연이나 전시의 취소 등 간접적인 피해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미증유의 재해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 동북부지방에서는 생활기반을 비롯해 공공인프라와 산업의 복구가 차근차근 이루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복구의 우선순위가 공공인프라와 산업시설에 먼저 주어지기 때문에 문화예술 분야는 늦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해지역 주민들로부터 문화예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문화예술계 관계자들 역시 재해지역과 주민을 지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문화예술계는 무엇을 해왔으며 어떤 역할을 맡아 왔을까.
| 문화예술계의 광범위한 연대와 활동
일본 정부가 지난해 7월 발표한 ‘동일본 대지진 부흥 기본방침’에는 ‘문화, 스포츠의 진흥’ 항목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는 지역의 보물인 문화재와 역사자료의 수복을 하는 동시에 마츠리(祭り) 등 전통축제를 지원하는 것, 지역에 힘을 줄 수 있는 문화예술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예술가를 지원하는 것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빠른 동일본 대지진 직후부터 일본 문화예술계는 피해지역과 주민을 지원하기 위해 누구보다 빨리 두 팔을 걷어붙였다.
대지진 직후 예정됐던 공연이나 전시 등 문화행사가 대부분 취소되는 가운데 아티스트들은 자선행사를 속속 열어 모금활동에 나섰다. 아티스트들은 무료로 자선공연이나 강연회에 참석했으며 자신의 작품을 자선경매에 내놓았다. 가장 빨랐던 것이 대지진 발생 2일 후 미술 관계자들이 만든 ‘재팬 아트 도네이션’이다. 인터넷상에서 발족한 ‘재팬 아트 도네이션’은 화가나 조각가, 판화가 등이 자발적으로 내놓은 작품의 수익금을 지원금으로 내놓았다. ‘재팬 아트 도네이션’을 비롯해 인터넷시대답게 새로운 모금 형태가 속속 등장한 것이 특징이다.
이 가운데 세계적인 음악재단 가운데 하나로 뛰어난 현악기 컬렉션을 자랑하는 일본음악재단이 동북 지방 구호기금 마련을 위해 1721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매물로 내놓은 것도 눈에 띈다. 이 바이올린은 지난해 6월 현악기를 전문으로 거래하는 영국의 인터넷 경매사 타리시오에서 1590만 달러(약 172억 원)에 낙찰됐다. 이는 지금까지 경매에서 가장 비싼 가격으로 팔린 1697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의 360만 달러(약 39억 원)의 4배가 넘는다.
재해지역과 피해주민들의 지원활동에 나서길 희망하는 아티스트들의 연대와 조직도 속속 등장했다. 아티스트들이 개인적으로 지원활동에 나설 때 정보나 노하우 등을 몰라 시행착오를 겪거나 자칫 피해주민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 따라서 아티스트 자신의 특기, 자선활동이나 이벤트 정보, 지원 네트워크 등 각종 정보 등을 제공하고 서로의 고민과 지식을 공유하는 플랫폼 역할의 인터넷사이트가 잇따라 만들어졌다. 무용계 관계자들이 대거 참여한 NPO(Non-Profit Organization, 특정비영리활동법인)인 ‘일본 컨템포러리 댄스 네트워크’(JCDN), 연극인들이 주로 참가한 ‘연극x연극 프로젝트’와 ‘ACM 스마일 프로젝트’, 장르와 상관없이 예술계 전반에서 아티스트들이 참가한 ‘일본을 위한 행동’이나 ‘아트 NPO 에이드’ 등이 주목된다. 재해지역 가운데 하나인 센다이(仙臺)의 지역 연극인과 일본연출가협회가 중심이 되어 만든 ART>C(Art Revival Connection Tohoku)의 경우 피해지역에 거주하는 예술가들의 실상을 파악하는데 앞장섰다.
일본의 경우 원래 문화예술 분야의 NPO가 활발한 편이었지만 동일본 대지진 이후 그 수가 대폭 늘었을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들의 참가도 훨씬 적극적이 됐다. 예를 들어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피해주민들의 가설주택 공사에 참여해 조금이라도 쾌적하게 만드는 등 아티스트들은 자신만의 특기를 살려 재해지역을 돕는데 나서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재능기부’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일본에서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이와 비슷한 ‘프로 보노’(Pro Bono) 운동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프로 보노는 라틴어 ‘프로 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의 줄임말로 ‘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1989년 미국 변호사협회가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개인 또는 단체에 대하여 보수를 받지 않고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확대하는 프로젝트를 ‘프로 보노’라고 부른데서 비롯됐다. 요즘은 의료·교육·경영·노무·세무·전문기술·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전문지식과 기술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확장됐다.
일본메세나협회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GB펀드’(문화예술에 의한 부흥지원 펀드)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어로 예술(藝術, Geijutsu)의 G, 문화(文化, Bunka)의 B, 펀드와 부흥(復興, Fukkou)을 동시에 의미하는 F를 딴 GB펀드는 재해지역의 예술활동과 유무형의 문화자원 재생 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향후 5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이 기금은 기업과 개인의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운영되는데, 3월 1일 현재 6천만 엔 남짓 모였으며 89건에 4천6백만 엔 정도가 지원금으로 결정됐다. 기본적으로 NPO들이 피해지역에서 더욱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지만 아티스트 개인이나 예술 애호가 등 시민까지 그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정부가 아닌 민간에서 조직적으로 기부금을 조성하고 체계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GB펀드는 앞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 대지진 이후 일본 문화예술계의 변화
동일본 대지진은 2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 외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살아남았지만 가족과 지인을 잃은 슬픔 때문에 재해지역 주민 상당수가 아직도 우울증과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대지진 직후부터 의료계와 함께 피해주민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95년 효고현(兵庫縣) 일대를 강타해 6천여 명의 사망자를 낸 한신대지진 이후 우울증 환자와 자살이 급증했던 것 이상의 사회문제가 대두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일본 대지진의 경우 직접적인 피해를 겪은 사람들의 수가 한신대지진 때의 수십 배 이상에 달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문화예술계도 재해지역 주민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호스피털 아트’(hospital art), 이른바 병원예술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들이 많다. 이들은 병원이나 요양원, 피난소 등을 방문해 환자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등 예술 작품을 만들고 있다. 한신대지진 이후 미술작가들로 구성된 NPO법인 '아트프로젝트’가 발족해 PTSD 환자들의 정서 안정에 큰 도움을 준 바 있는데, 동일본 대지진의 경우 한신 대지진보다 피해자가 훨씬 많을 뿐만 아니라 원전폭발의 후유증까지 더해진 상황이라 호스피털 아트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진 상태다.
특히 재해지역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심리 안정을 위한 예술체험 등 문화활동이 잇따라 행해지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부모 가운데 한쪽을 잃은 어린이가 1천3백여 명, 양쪽을 모두 잃은 어린이가 230여 명이나 되고, 학교에서 친구들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에 따라 이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음악, 연극, 무용 등 다양한 예술적 체험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도모할 필요성이 크다. 1994년 효고현 현립극단으로 만들어진 피콜로극단은 한신대지진 직후 재해지역 학교를 방문해 연극교실을 열어 아이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했는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현재 ‘아트 포 재팬’ 등 많은 NPO와 예술단체가 당시 피콜로극단의 활동을 참고해 재해지역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예술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은 예술의 소재와 주제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대지진의 공포와 상처를 소재로 한 문학이나 연극 등이 많아졌다. 일본 연극계의 ‘포스트 제로 세대’의 선두주자인 파이파이(快快)가 지난 6월 ‘시바하마’를 무대에 올리는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대지진과 관련있는 작품들을 들고 나왔다.
또 원전 사고를 계기로 일본 내에서 반핵 및 탈원전 운동이 거세졌고, 예술가들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반핵과 탈원전을 주장하고 나섰다. 특히 후쿠시마 출신 예술가들이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세계에 알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희망을 알리는 ‘프로젝트 후쿠시마’는 주목할 만하다. 또 사이타마의 마루키미술관을 비롯해 도쿄, 홋카이도, 히로시마, 나가사키 등 전국 곳곳에서 반핵을 테마로 수십여 명의 예술가들이 참가한 전시회가 열렸다. 노벨문학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는 아예 전면에 나서서 일본의 탈원전 운동을 이끌고 있을 정도다.
한편 대지진 이후 일본의 전통축제인 ‘마츠리’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진 것을 빼놓을 수 없다. 대지진 피해가 가장 컸던 동북 지방의 경우 7월 말부터 8월 중순에 걸쳐 마부타 마츠리, 간토 마츠리, 센다이 타나바타 마츠리 등 마츠리가 잇따라 열리는데, 등(燈)을 이용해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에는 ‘다시’(山車, 축제 때 끌고 다니는 장식을 한 수레) 등 마츠리에 필요한 도구들이 대지진과 쓰나미 때문에 망가지는 바람에 제대로 열릴 수 있을지 우려됐으나 대부분 문제없이 예정대로 실시됐다. 대지진의 영향 때문에 외지 관광객은 다소 줄긴 했지만 지역주민들의 참여는 오히려 뜨거웠다. 공동체에 닥친 재난을 극복하고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기사입력 : 2012.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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