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다시 봄, 전주경기전

차보살 다림화 2012. 4. 13. 16:34

봄, 봄, 참 볼 일 많다

 

 

                                                                        조  윤 수

 

 

 

 

 

 내 마음에는 이미 사계절이 다 들어앉아 있건만, 그래도 긴 겨울 속에서 봄을 안고 그리다 보니 봄이

눈 앞에 나타나고 있다. 동네의 거리에서 시내 나가는 길 가의 매화나무, 살구나무들이 벌써 환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경기전의 고매를 감상하다가 내 생각이 났다는 한 후배의 문자를 받았다. 봄 향기가 말 끝에서도

물씬 풍겨나오는 듯했다. 말의 향기 따라 경기전 사고 문을 들어서자 달작지근한 내음이 살며시 안겨왔다.

암향이 사고 뜰 안에 가득 바람 따라 걸음마다 코 끝에 맴돈다. 올해는 몹씨 늦은 매화다. 

어느 해는 이른 3월 20일에 활찍 만개한 적도 있었고, 해는 설중매를 만난적도 있었다. 

지난 겨울은 몹씨 추었지만 이 지방에는 눈이 많이 쌓이지 않아서 설중매를 보진 못했다.

전주 한옥마을의 중심에 경기전이 있어 관광왔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그치지 않는 이곳이다.

경기전 정전을 둘러보고 사고문을 들어서면서 어떤 이가 고매 앞을 서성거리는 사람들 틈으로 들어오더니

'이것이 목련이야?'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다. 어쩔거나? 매화와 목련도 구별 못하도록 도시에서 맴돌았단 말인가. 

그래도 봄이 되어야 꽃구경 나들이를 겨우 할 수 있는 도시 사람들인가. 하기야 내 젊은 날에도 추억의 매화나

목련의 사진이 없으니 그럴만 한 일이기도 하다. 꽃꽂이 재료로 사용하려고 야생 꽃나무를 채취하러 산에 간 적이

있어도 탐매하려는 풍류는 몰랐지 않은가.

 

 

그러나 문인화 공부하러 다닐 때 내 스승은 미스 조는 참 풍류객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어떤 점을 보고 그리 말하셨는지 모를 일이었다. 대나무나 매화나무를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문인화를 배우다 보니 매화 그림을 볼 수 있었고 그대로 따라 홍매나 청매를 흉내내어 그려보았던 것일 뿐.

후에 대나무를 보고 매화를 보았을 때는 그릴 흥이 나질 않았다. 이제 풍류를 즐길만한 나이와 처지가 되어서야

옛 스승의 말씀의 뜻을 헤아려 본다.

다만  그때는  설악산을 가기 위해서는 관광버스가 인재를 넘고 대관령을 넘을려면 버스가 몹씨 흔들거리기도 한

도로 사정이었던 것만은 또렷이 기억이 된다. 비오는 기후를 만났을 때 도로가 파괴되어 인근의 군부대의 군인들이

복구하기를 기다린 적도 있으니 그시절 나들이는 참 귀한 일이었다. 탐매를 즐겨 찾아나설 때는 아니었다.

 

 

 

 

 

 옛 선비들이 세한삼우, (대나무, 소나무와 매화)를 선비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여 기리는 글은 지금도 수없이 회자되어 그런 글을 탐하기도 하여, 현대의 문인들도 추운 겨울에 제일 먼저 꽃을 피우면서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를 들면서 선비의 곧은 지조를 예찬하는 이들이 많다. 이제 더이상 매화지절을 노래하는 일이 더 촌스런 일 같기만 한 요즈음 같기도 하다.  매실을 얻기 위하여 외래종 매화를 빈 터마다 많이 심어서 좁은 나라 땅 어디를 가도 매화는 흐드러진다. 

청매실 농원의 매화 축제는 더 이상 매화지절을 노래하지 않고 매화 뽕짝이 즐겨울 뿐 아닌가. 그냥 초봄 어느 꽃보다 추위를 마다 않고 먼저 피어서 고맙고 반갑고 기쁘게 반기면 될 뿐이다.  그래도 이름 난 선암사 고매와 지리산 아래 정당매나 산청매처럼 몇 백 년을 의연히 옹이진 그루터기에서도 불쑥 한 송이 불거져 나오는 꽃송이만큼은 옛선비의 고아하고 고매한 향취를 느낄만 하다.

 

 

 

 

경기전 사고 뜰안의 고매는 아마도 백년 가까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 매화나무를 옮겨 심은 나무의 주 그루터기는 땅 위에서 죽었는지도 모른다. 땅 속에 남은 그루터기에서 한 가지가 살아남아서 굽어지면서 세월 동안 이렇게 굵어지고 세 번이나 꺽어진 끝 줄기에서 꽃을 피워내고 있다. 참 매화나무 다운 기상을 지녔다고 보아 기릴만 하다. 꽃잎이 겹인 것이 귀하게 보이고 더 예쁘기도 하지만 우리의 고유 종자는

아닌지도 모른다. 겹꽃이기에.

 

 

 

 

 

김홍도의 매화 그림 이야기는 유명하다. 어느 분에게서 3000냥을 받고 매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은 김홍도는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그림은 그리지 않고 매화나무를 심는데 2000냥을 쓰고, 매화 텄다고 지인들과 매화연을 벌이는데 800냥을 쓰고, 매화 그리는 화구 값으로는 겨우 200냥만 들었다고 하지 않은가.  지금 생각하면 매화를 그만치 알고 사랑할 줄 알아야만 매화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김홍도보다 후대의 조희룡의 매화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홍매를 한 송이씩 그리면서 겨울을 보내고 매화 병풍 둘르고 매화차만 마셨으니 좋은 매화 그림을 남길 수 있었겠다. 옛 선비들의 무거운 사군자의 상징성을 내려놓고 단지 아름답고 화사하고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환해지는  그의그림이어서 더욱 좋다. 그런 꽃이면 족하리라. 매화그림 흉내내던 젊은날이 그래서 젊은 시절이었다. 얼마큼이라도 사군자의 어떤 풍정 한 점이라도 몸의식에 들어와 있으면 다행이겠다. 고소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어찌하건 다시 봄, 봄, 새 봄. 매화로 시작해서 산수유 살구시작 본격적으로 목련, 진달래, 개나리가 흐드러진다. 그리고 봄의 절정, 벚나무 꽃구름. 아직은 참 볼일  많은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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