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대사[達磨大師:다모다스:Bodhi Dharma:?~?532]’좌상
달마대사는 누구인가? 남인도에서 중국 광저우[廣州]로 올 때부터 갈대를 꺾어 타고 왔다는 둥, 죽어서는 한쪽 신발만 들고 서천西天을 향하여 사라졌다는 둥, 뤄양에 있을 때에 자기 나이를 150살이라고 했다는 둥 별 희한한 얘기들이 따라다니는 그다. 그와 관련된 자료라 할 수 있는 것으로는, 중국 시안[西安] 비림박물관에 있는 그의 좌상 모습의 비석을 보았고, 소림사가 있는 오유봉[五乳峰:우루펑] 산자락에 그의 조상彫像이 모셔진 초조암[初祖庵:추쭈안]과, 오유봉 정상에 새로이 조성된 초대형 좌상과, 그 밑으로 그가 면벽9년 수행했었다는 천연동굴인 묵현처(黙玄處) 달마동(達磨洞)이 있다. 여기까지는 내가 직접 발로 걸어가 확인해 보았으나 허난성[河南省] 산[陕] 현县 시리[西李] 촌村 웅이[熊耳:슝얼] 산山 아래에 있는 공상사[空相寺:쿵샹쓰]라는 곳에 그의 무덤이 있다는데 가보지 못했다.
중국 바이두 백과사전에 의하면, 그는 지금의 인도 남쪽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살제리족[刹帝利族:차디리쭈]으로 향지왕의 셋째 아들이며(전설에 의하면), 출가 후에는 대승불법에 마음을 두었고, 반야다라般若多罗 대사를 스승으로 따랐다 한다. 그런 그는 남조南朝 양무제[梁武帝:520~526] 때에 인도로부터 항해하여 광저우에 도착했으며, 남조의 수도인 건업[建業:젠예]에서 불교를 믿는 양무제와의 면담이 성사되지 못하자 하나의 갈대를 타고서 강을 건너 북쪽으로 가 북위北魏의 수도인 뤄양으로 갔다 한다. 그런 그의 이름은 보리다라菩提多罗였는데 후에 달마다라达摩多罗로 바꾸어 불렀다 한다. 이는 인도 선종 27대 조사祖师 반야다라般若多罗의 제자로서 인도 선종 제28대 조사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도 선종 28대 조사인 달마가 중국으로 건너와 보리달마[菩提达摩:Bodhidharma]라는 이름으로 중국 선종의 시조始祖가 된 셈이다.
전해지는 그의 저작(著作)으로는, 『四观行』『血脉论』『悟性论』『破相论』 등 4종이 있으며, 이들은 중국 불교 선종의 중요 경전 가운데 하나로 여기며, 역대 선종 조사가 직접 저술한 것으로 널리 존숭되고 있다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원문과 우리말 번역문이 제대로 된 것이 없다는 것이고, 한 번도 보지도 못한 그의 모습을 ‘호탕한 주정뱅이’처럼 묘사하기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불교계가 공부를 게을리 한다는 뜻이자 지식층이 아주 얇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호탕한 주정뱅이 모습이란 수행승답지 않게 너무 많이 먹어서 배불뚝이가 되어 있고, 얼굴은 번지르르하게 살이 쪄 있으며, 눈썹은 짙고, 눈동자는 크고 깊은데 무엇이 그리 좋은지 얼굴에는 늘 웃음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그를 묘사한 그림마다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의 그림을 집안에 걸면 무슨 생뚱맞은 수맥(水脈)을 차단해 주고, 무슨 얼어 죽을 액운을 다 물리쳐 준다나? 이런 생각이나 믿음을 갖고서 어쭙잖게 그림을 그리고 그것들을 사서 애지중지하니까 그의 저서 한 권 제대로 번역해 내지 못하고 읽지 못함으로써 바른 깨달음과 요원해지는 것이다.
위 사진은 비림 박물관에서 직접 촬영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불교 선종 사이트에 내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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