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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만큼만

차보살 다림화 2014. 6. 1. 18:11

 

무궁화꽃만큼만

 

 

 

 

 

 

 

 

 

 

 

 

 

 

 

 

무궁화꽃이 다시 피었다.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길거래에서 배롱나무와 같이 핀다는 것을 나는 기억한다. 오래 전에 벌써 30여 년 전이다. 나는 무궁화선양회 지부장을 맡은 바 있었다. 가슴에 하얀 띠를 두르고 무궁화꽃을 알리는 켐페인도 벌인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무궁화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왜 나라꽃으로 정했는지. 무궁화의 어떤 특징이 민족의 상징이 되었는지. 궁금했다.

가까이에 무궁화나무가 없었기 때문에 무궁화나무를 찾아다녔다. 무궁화꽃나무에는 벌레가 많이 낀다고 사람들이 싫어했다. 벌레가 낀 나무는 보지 못했다. 무궁화꽃 한 송이는 하루만 핀다. 하루의 꽃은 저녘 어스름에는 꽃잎을 돌돌 말려서 오므린 채 처음 봉오릿적 모습이 되어 밤중에 언제 떨어지는 지도 모르게 떨어지고 다음날 은 새날의 꽃이 핀다. 나무 전체로 볼 때는 그 리름처럼 오래 오래 핀다. 무궁할만큼 여름내내 땡볕에서도 소나기가 나릴 때도 지칠줄 모르고 피어난다. 그 이상의 의미를 캐내지 못한 채 해마다 무궁화는 피고 또 피었다.

 

 

 

 

 

올 여름, 어느 날 해거름이 되어 주위가 어둑해졌다. 연밭을 둘러싼 울타리 나무에 돌돌 말린 붓자국 같은 무궁화꽃을 발견했다. 그때 불현 듯 떠오른 문장이 생각났다. “깊은 밤중의 무궁화나무 덩어리에는 야광 페인트처럼 빛나는 부분이 있다. 다물어서 길죽해진 꽃들이 어둠을 배경으로 짧은 붓자국의 흔적으로 나타난다.” 내가 본 것이 바로 그 어둠 속에 모아진 붓자국 같았다.

다음 날부터 한 달 여를 무궁화나무의 비밀을 캐려고 무궁화나무를 보러 다녔다. 달밤에 만덕정 아래 천변 길에 있는 무궁화나무 여섯 그루 옆에서 무궁화꽃의 번화를 바라보았다. 역시 어둑해지자 무궁화꽃은 오므라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꽃이 떨어지기까지는 기다릴 수도 없고 새벽녘에 다시 오기도 힘들었다. 어느 날은 근처 마을에서 길가에 아주 수형이 좋은 커다란 무궁화나무를 발견했다. 어찌나 아름답고 탐스런 꽃송이를 많이 달고 파란 하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빛나고 있는지 넋 놓고 바라보았다.

무궁화꽃만큼만이란 글을 쓴 고() 김점선 화가를 나는 기억한다. 그녀는 직접 무궁화꽃나무를 기르면서 조상이 왜 무궁화를 우리에게 기억하게 했는지를 체험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 무궁화나무가 촌스럽고 벌레가 낀다고 싫다고 말하는 세련된 사람들 얘기를 들은 뒤부터 무궁화나무를 생각했다고 한다. 꽃의 어떤 특징이 촌스럽고 어떤 성질을 말함일까. 왜 하필이면 이 꽃을 자손들에게 기억시키려고 했을까. 무슨 교훈이 이 꽃에 숨겨져 있어 조상들 중 누군가는 이 꽃을 사랑했을까.

어른이 된 그녀는 무궁화나무가 다섯그루나 있는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 살게 되었다. 마당에는 수많은 커다란 나무들과 식물이 살았다. 가물 때는 당 속 깊숙이 흐르는 지하수를 뽑아 올려, 아침저녁으로 그들을 씻겨주었다. 그러다가 여러 나무들 사이에 무심한 듯 서 있는 무궁화나무를 한참 동안이나 손 놓고 바라보았다. 그는 아주 긴 시간을 들여 천천히 무궁화나무를 관찰하고 체험하기로 했다. 막 여름이 시작되려던 어는 날, 벌레가 먹어 구멍이 난 무궁화나무 잎사귀를 깎아 먹고 있는 벌레 한 마리를 보았다. 차츰 벌레가 많아지고 잎사귀는 구멍만 난 게 아니라 잎줄기만 남기고 통째로 펍서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말없이 매일 물로 씻기고 잡초를 뽑아주었다. 그래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약도 쓰지 않고 벌레도 죽이지 않았다. 아름다운 호랑나비도 징그러운 벌레에서 나오지 않는가 하면서 나비벌레와 나방벌레도 구별하지 못한다고 했다. 잘 알지 못하니까 아무것도 죽이지 않았다. 숲이나 생명을 다스리는 것은 하느님이지 내가 아니다 라고 그녀다운 생각을 했다. 벌레들은 무럭무럭 자라났고 강력하게 번식해나갔다. 무궁화나무 잎사귀들은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나무에도 생명력이라는 힘이 있다. 나무도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사람이 나무 편을 들어서 벌레를 죽여주는 것은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벌레는 오로지 무궁화 잎만 먹었다. 곁에 있는 나무와 다른 편에 있는 나무에도 벌레는 없었다. 단지 무궁화나무만 먹히고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물을 주었다. “스스로 살아갈 힘이 없는 나무는 죽어 바땅하고 사람도 국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우주의 질서라고 생각했다.”

벌레는 꼭 송충이 모양인데 크기만 다섯 배 정도 작았다. 몸놀림이 송충이인데, 무궁화 잎만 먹었다. 드디어 무궁화 다섯 그루의 잎이 모두 업어졌다. 그 대신 벌레들이 가득 붙어 있었다. 마치 겨울 은행나무 가지 같았을 것 같았다. 초여름에 잎도 없이 서 있는 무궁화나무. “그래도 환하게 드러난 줄기나 산가지들의 색깔이 겨울과는 달랐다. 겨울에는 거무스런 회색으로 죽은 듯한 질감인데, 지금은 희 빛을 더 많이 띤 밝은 회색이다. 연둣빛 기운이 감도는 듯했다.” 아무에게도 이에 대해 말하지 않고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보았던 그녀. 그러면서도 하루에 몇 번씩 나무들을 보러 마당에 나갔다. 나 같았으면 얼마나 호들갑 떨면서 말하고 싶었을까. 어쩜 그녀의 그런 우직한 믿음이 무궁화나무를 살린 것이 아닐까. 그야말로 타고난 은근과 끝기의 정신을 물려받은 그녀가 아니었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마침내 벌레도 먹을 것이 없어 힘이 없어보이고 숫자가 줄어들면서 언젠가는 아주 없어져버렸다. 무궁화나무는 완전히 벗은 상태가 되어 하늘 속에 모든 가지들을 뚜렷이 드러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뭇가지 끝의 영두색이 짙어진다 싶더니 싹이 텄다. 죽은 듯한 겨울나뭇가지들이 이른 봄에 연둣빛 싹이 틔우는 것 같았을 것이다. 잎들이 죽어가든 속도보다 더 빨리 피어났다. 그래도 그녀는 아무말도 않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었다. 무궁화나무는 완전히 회복되었다. 그해 여름에는 한 열흘쯤 꽃이 더디게 핀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렇다면 한 열흘 동안 나무 잎이 죽어가고 또 싹이 텄던 것일까. 아무튼 신비한 체험으로 기억하고 있다.

무궁화나무와 함께 산지 몇 년이 흐르자 무궁화나무가 사람처럼 여겨졌다. 그녀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감동을 나무에서 체험하고 싶어했다. 밤새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고, 충분히 잠을 잔 편안한 눈과 몸으로 새벽안개 속에 서 있는 나무를 한참 동안 바라보기도 했다. 외출했을 때 대문에 들어시기도 전에 무궁화나무주터 보고 담 너머로 들여다 보기를 매일 했다. 한낮에 활짝 핀 무궁화꽃을 정면으로 드려다 보기도 했다.

 

 

 

 

 

여름이 깊어가는 어는 날 저녁 무렵에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젖은 잔디를 밟으며 무심히 걷다가 습관처럼 고개를 들고 무궁화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물기로 가득 찬 하늘 속에 싱싱한 꽃을 가득히 매달고 서 있는 커다란 무궁화나무를 갑작스럽게 본 그 순간, 그녀는 숨이 멎었다고 했다. 머리 뼈 속에서는 갑작스런 움직이이 생기면서 어떤 세포층이 지진을 일으키듯이 일어나고 커다란 틈새가 벌러졌단다. 그 사이로 수십 년간 품어오던 질문의 해달들이 한꺼번에 쏘다져 흘렀다고 술회했다. “이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조상들이 내게 주려고 한 것 이 꽃을 통해서 내게 전달하려고 했던 게 바로 이것이다. 싱싱하고 건강한 아르다움. 숨겨진 듯해 얼필 눈에 듸지 않는 모습. 글들은 우기가 이렇게 살기를 원했다.”

올 여름은 폭염이 계속되는 날이 길었다. 아침 일찍, 저녘 늦게, 달밤에 한낮에도 땀을 흘리면서 무궁화꽃을 찾았다. 점선이 체험했던 무궁화꽃을 나도

그대로 체험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아! 그래, 그녀가 체험했던. “싱싱하고 건강한 아름다움이 와락 내 가슴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리 덥고 폭염이 내려쬐는 날에도 무궁화꽃은 싱싱하고 건강하게 무심한 듯 그 자태를 하늘 아래 드러내고 있었다.

광복절 기념날에 하얀 태극기가 펄럭이는 모습에 하얀 묵우화 꽃이 겹여져 펄럭이는 것 같았다. 무궁화나무는 언제나 어느 때고 싱싱하고 건강한 모습이다. 시든 꽃잎은 볼 수가 없다. 한 꽃송이로 볼 때 일생을 시든 모습을 보이지 않고 건강한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돌아갈 때는 첫 모습으로 돌아가

누구도 보지 않는 때 땅에 떨어진다. 고운 모습 그대로. 무궁화나무 가지는 잘 꺽여지지 않는다. 다른 나무처럼 툭 잘라지지 않고 질기게 껍질이 벗겨진다. 가지에 잎이 엇갈리며 나는데, 잎겨드랑이에 꽃봉오리가 맺히고 가지 끝에는 여러개의 꽃봉오리가 맺힌다. 꽃이 핀 나뭇가지를 보면 수많은 내일의 그래고 모래의 꽃봉오리들이 맺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아주 옛날부터 자생하던 근화라는 꽃에서 그러한 특징을 발견한 조상이 나라꽃으로 정하고 우리의 무궁화 민족의 앞날을 그렸던 것이지 싶다.

여자들은 모름지기 무궁화꽃만큼만 아름다울 것이며, 사랑은 무궁화꽃처럼 드러나지 않을 만큼 애정이 깃들이 오랜 눈길 속에서만 비로소 아름답게 나타난다. 무궁화는 촌스런 꽃이다. 건강하고 튼튼한 꽃나무다. 무궁화꽃은 촌여자처럼 아름답다. 제 할 일 다하면서 바쁘게 살다가 얼핏 모양낸, 그런 여자처럼 쪼금만 아름다운 꽃이다. 본래의 아름다움이 무엇엔가 가려저셔 조금난 보이는 듯한 그런 꽃이다. 그 가려진 것을 치우고 싶게 만드는 그런 꽃이다. 언젠가 더욱 아름다워질 것만 같은 그런 꽃이다. 무궁화꽃에는 절제 속에 가득한 힘, 숨겨진 힘, 절제와 질서와 힘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듯한 이상한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 그때, 그런 아름다움이 빗물에 적은 커다란 무궁화나무 전체에 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