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와 피렌체
“내 인생의 최고의 전성기에 문득 길을 읽고, 뒤를 돌아보니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르네상스를 열었던 인문학자요, 시인이었다는 페트라르카의 시 구절이라던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 경관을 가진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티 산 정상에서 아름다운 산, 바다, 거대한 가르다 호수를 바라보며 감탄하지만 정작 인간의 본질은 보지 않았다. 페트라르카의 성찰이었다. 르네상스는 그렇게 산에서 잉태되었다고나 할까.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 어둠에서 벗어나 빛의 시대, 창조의 시대를 만날 수 있을까?
르네상스가 바로 그런 시대였다. EBS를 통하여 연세대학교 김상근 교수의 안내로 르네상스미술 기행으로 초대받았다. 서양미술사를 공부할 때 늘 흥미로웠던 분야는 르네상스 미술이었다. 피렌체라면 르네상스의 고향이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서양미술을 이해하며 그 의의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제 서로마제국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중세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암흑의 시대였다.
르네상스의 서막은 시에나에서 시작한다. 시에나 초기 역사의 중심지로 현 시에나 시청사인 푸불리코 궁전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유명한 광장 중의 하나인 캄포광장에 있다.
르네상스의 초기 씨앗을 어느 도시가 뿌리느냐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게 된다. 팔라초(중세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시대에 건립된 정청(政廳)이나 규모가 큰 귀족의 개인 저택) 푸블리코 청사의 건축 자체가 중세를 대표하는 고딕식의 건축물이다. 14세기 초에 고딕식 건물로 1층은 시청사이며, 2,3층은 시립미술관인데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었다. 푸블리코에 들어가면 치열했던 경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에 대한 알레고리> 암브로조 로렌체티 (Ambrogio Lorenzetti 1290-1348)의 연작을 본다. 중세시대에 피렌체와 시에나는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래서 너무 희생이 많아져서 협상을 맺기로 했다. 시에나와 피렌체에서 전쟁을 하지 말고 각 도시에서 기사가 한 명씩 출발하여 만나는 장소를 국경으로 정하자고 했다. 아침에 가장 먼저 우는 닭소리를 듣고 피렌체와 시에나에서 기사가 달려가는 거다. 그래서 둘이 만나는 지점을 국경선으로 하기로 협정을 맺은 거다. 피렌체 사람들은 검은 닭을 선택했다. 그리고 굶겼다. 어떻게 되었을까? 시에나 국경선 12Km 지점까지 와서 두 기사가 만나게 된 거다. 피렌체 사람들의 기지를 엿볼 수 있지 않은가.
아씨시는 성프란체스코의 도시로 유명하다. 바로 성프란체스코 대성당이 있다. 시에나에서 아씨시로 가는 길은 푸른 들판이 펼쳐진 평야에 오밀조밀한 농경의 마을이 전개된다. 예의 붉은 지붕을 한 주택이 들판 가운데 점점이 박혀 있다. 마을과 들녘을 가르는 가로수가 울창하다. 유럽은 애초부터 그림 그리듯이 도시를 조성했는지, 주택의 벽채는 하얀 벽에 붉은 색조여서 한 폭의 그림이다. 아씨시는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곳으로 로마제국 시대부터 번영한 도시로 대성당은 13세기 건축된 로마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성프란체스코 대성당에는 1226년 임종했던 성프란체스코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내 40대, 인생의 전성기 때, 길을 잃었던 저 시인처럼 정신의 자유를 찾았던 시기. 지금 생각하면 어쩜 새로운 빛을 향하여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기 카토릭 신앙을 하던 때, 성프란체스코의 삶, 그중 어리시절의 성프란체스코가 자유를 위해 다 벗어던지고 들녘과 산야를 헤매던 시절을 보고 공감했던 때가 있었다. 아씨시의 풍경을 보면서 성프란체스코의 삶의 단면에서 감동했던 때가 떠올랐다.
성스럽고 웅장하고 근엄한 대성당 안에는 로렌체티와 조토(Giotto)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서양미술사 공부하면서 귀동냥했던 미술가들이다. 두 사람은 각각 시에나와 피렌체를 대표했던 르네상스 초기의 화가들이다. 로렌체티와 조토의 사이에서 그리고 시에나와 피렌체 사이에서 어떤 일이, 어떤 경쟁이 치러졌을까? 그 현장을 본다. 봄이 오는 기쁨을 즐기는 아씨시 주민들의 축제에서 느낄 수 있다. 아씨시 지역의 두 마을이 경기를 펼친다. 마그니피카와 노빌리시마의 두 마을 주민들이 행진하며 중세시대를 재현하고 합창을 겨룬다.
성프란체스코가 묻힌 대성당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로마카톨릭 순례지이다. 대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의 하나, 중세시대의 마지막 작품이랄 수 있는, 치마부에의 작품, 검은 도포를 입은 성프란체스코 수도사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치마부에(Cimabue) (1240(1250)-1302)는 피렌체 출신이며, 로마에서도 일했고 성프란체스코 대성당에서 <성모전>, <묵시록>, <그리스도의 생애>, <성프란체스코 생애> 등의 벽화 장식에 종신했다. 지오토의 스승이기도 했다.
성당 내부는 벽과 천장까지 성서의 내용의 벽화로 화려하고 근엄하게 장식되어 성스러운 분위기로 압도될 듯하다. 이곳에서 조토(Giotto)는 왜 르네상스의 아버지로 불리는지 확인한다.
조토는 상상의 세계, 신화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로 본 것을 작품으로 남김으로써 인간의 관점을 중시하는 르네상스의 기초를 세웠던 것이다. 전혀 다른 차원의 그림이 등장했다. 슬퍼하는 얼굴, 기뻐하는 얼굴 그리고 내면의 괴로움을 표현하는 얼굴들이 표현되어 있다.
<산다미아노에서 기도하는 성프란체스코>, 성프란체스코의 생애를 그린 프레스코화 연작으로 조토 디 본도네 (Giotto di Bondeone) 작품이 등장했다. 14세기는 전쟁의 시기였다. 피렌체와 시에나의 전투였다. 단순하게 황제파와 교황파의 대결이 아니다. 예술의 대결이 일어난 것이다. 대성당 지하층에 있는 로렌체티의 천사와 달리 조토는 울부짖는 천사의 얼굴에서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했다. 시에나는 가고 피렌체가 르네상스 미술의 고향으로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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