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르네상스 미술 기행의 초대, 베네치아

차보살 다림화 2016. 7. 8. 18:03

 

 

 

 

 

 

 

 

 

 

 

 

 

 

 

 

 

 

 

 

 

 

 

베네치아 - 두 개의 상상이 펼쳐지는 베네치아, 세상의 다른 곳, 베네치아, 이탈리아의 인구는 61백만 명(2012), 면적은 약 30만 킬로미터, 한반도 면적의 1.5배다. 피렌체에서 북동쪽으로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로 이동한다. 옛날부터 베네치아는 알테르 문디’ Alter Mundei'라고 불렀다. ‘세상의 다른 곳이라는 뜻이란다. 이 세상에 그런 곳이 없다는 것이다. ‘세래니시마 리퍼불리카 (Serenissima Republicka di Venezia)라고 불렀다. 르네상스의 꽃이 어떻게 만개했는지 그곳에는 어떤 작품이 있는지 또 어떤 역사가 펼쳐질리 너무 궁금하다.

우리의 호기심과 벅찬 기대감을 안고 르네상스의 기차는 계속 질주했다. 창밖의 풍경은 질서정연하게 구회된 들녘과 숲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Venice, 베네치아의 영어식 이름. 5세기에 세워진 베니스는 물의 도시라 불리며 118개의 섬이 약 400여 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다 베니스 입구에 산타루치아 역이 보인다.

산타루치아라는 노래에 등장하는 그 Santalucia의 이름이다. 베니스는 바다에 도시를 심은 것 같다. 건물의 밑바닥은 어떻게 지탱하고 있을까. 바위 위에 심고, 석호에 심은 것이다.

서기 828년 북아프리카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큰 도난 사건이 벌어졌다. 베니스의 상인들이 성자 성 마가의 시신을 훔쳐서 이곳으로 도망쳐 온 것이다. ? 베니스의 상인들은 성 마가의 시신을 훔쳐왔을까. 이 도시의 수호성자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성 마가는 베니스 사람들에 의해 마르코라 불렸다. 그래서 두칼레 궁전 앞에 있는 저 기둥 위에 큰 사자의 조각상이 전시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아름다운 광장을 산마르코 광장이라고 부르게 됐다.

성마르코 광장베니스의 정치, 종교, 문화의 중심지.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두칼레 궁전과 그 옆 건물의 일층은 아취문이 나열해 있는 긴 회랑이 이어진다. 광장에는 비둘기도 사람 수만큼 무리지어 놀고 있다. 광장에서 , 솔레미오를 한 곡 부탁받은

가수가 멋지게 노래를 불러 광장의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르네상스 미술에 초대했던 안내자인 김상근 교수가 회랑에서 연극배우가 된다. 섹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대사를 읊는다. ‘당신이 우리를 찌르면 우리는 피 흘리지 않나요?“ ”당신들이 우리를 해코지한다면 우리가 복수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 아닌가요?“ ’베니스의 상인3막에 나오는 내용이란다.

베네치아의 역사는 서기 4-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틴 사람들은 석호에 말뚝을 박고 살기 시작했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가장 동경하는 것은 마른 땅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봉건제도가 발생할 수 없었다. ? 땅이 없었으니까. 베네치아에 있는 모든 배들, 갯기선(돌과 노가 있는 군용선)들은 국가의 소유였다. 그해서 그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바다였고 땅이 없어 농업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국, 무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두칼레 궁전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거인의 계단에 두 명의 거인이 서 있다. 바로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교역과 무역의 신 헤르메스이다. 바닷가에 대종루가 서 있다. 꼭대기 상부는 종탑이다. 그곳이 바로 베네치아의 산 조르조 마조레성당이다. 1432년 코시모 데 베디치가 이곳으로 망명을 왔다.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을 은신처로 삼았다. 미켈로초가 자신을 후원했던 코시모 데 메디치를 보호하겠노라고 찾아왔다. “자네는 칼을 쓸 줄 안나? 창을 쓸 줄 아나?” “자네는 건축가가 아닌가? 이왕 여기 왔으니 베네치아 시민들을 위해서 건축 하나 해주게.” 그래서 건축된 노랑색 건물이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의 도서관이다. 바로 그곳에서 두 위대했던 도시가 만남으로써 르네상스는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 남쪽 해상에 떠 있는 산 조르조 섬에 있는 교회인 것이다. 바로 그 성당에서 피렌체의 르네상스 건축 미학이 베네치아로 전수된 것이다. 그곳에서 위대했던 도시가 만남으로써 르네상스는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피렌체에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면 베네치아에는 단돌로 가문이 있었다. 어떻게 베네치아가 지중해의 해상 무역을 장악하는 거대한 무역국가로 변모할 수 있었을까. 4차 십자군 때 단돌로는 당시 베네치아를 통치하던 통영이었다. 그리고 실제 전투에서 90 노이이었던 단돌로가 전쟁에 나서게 되었다. 실명 상태였던 단돌로가. 베네치아 시민들은 그 장면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고 용기를 내서 전쟁에 참여하게 되고 지중해의 무역을 장악하는 거대한 해양국가로 변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카페 플로리안>1720년에 개업한 카페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카사노바, 괴테 등 유명 인들의 단골 카페였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점점 내면화되기 시작했다. 아마 그래서 세계 최초의 커피숍으로 알려진 플로리안1720년에 문을 열게 됐는지도 모른다. 쓴 커피를 마시며 멜랑콜리에 접어들었는지도 모른다. 르네상스가 피렌체에서 시작된 지 꼭 100년 만에 르네상스의 물결이 베네치아 해안에 도착하게 된다. 바로 이곳에서 르네상스의 마지막 물결이 일어나게 된다. 지중해 해상권을 오스만투르크에게 빼앗긴 베네치아 인들은 물질에 대한 욕망을 멈추게 된다. 베네치아 아카데미아에는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작품이 소장된 곳이다. 그리고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팔려나가게 된다. 하지만 아직도 수백 점의 작품이 아카데미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베네치아 르네상스를 이해하기 위해서 세 명의 화가를 만나야 한다. 첫 번째 인물은 조르조네, 두 번째 인물은 티치아노, 그리고 마지막 인물은 틴토레토이다.

<산 마르코의 유해 발굴> 1562-1566, 16세기 중후반에 베네치아에서 활약한 화가 틴토레토의 작품. <산 마르코의 기적> 1567-1568, 색채와 구도를 모두 중시했던 틴토레토의 작품

<피에타> 1576, 미완으로 남은 티치아노의 마지막 작품, 피에타는 미켈란젤로 이후 대대로 많은 화가들이 조각이나 회화로 재해석하기도 하여 재창조하고 있는 것 같다. <폭풍우> 1505, 16세기 베네치아 회화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조르조네의 대표작이다.

 

 

 

 

 

 

 

 

 

 

 

 

 

 

 

 

 

 

 

 

 

 

 

 

 

 

 

 

 

 

 

 

 

 

 

 

 

 

 

 

 

 

 

 

 

 

 

 

 

베네치아에서는 곤돌라(택시 기능)를 타는 것이 제격인 것 같다. 안내자는 이제 르네상스 미술의 기행을 마무리하고 곤돌라를 타고 더 넒은 아드리아해로 나가고자 한다. 좁은 골목을 지나는 것처럼 좁은 수로를 연결하는 아취형 다리 밑을 곤돌라가 지난다.

오티움 쿰 디그니타테 - Otium cum dignitate', 여행은 위엄을 갖춘 여가여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먹고 마시고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이 여행의 전부가 아니다. 새로운 영감을 얻는 것, 미래에 대한 돌파구를 발견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삶이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작은 해답이 르네상스 미술의 여행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새로운 영감과 미래에 대한 돌파구를 찾는 계기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내자의 바람이었다. 안내자를 태운 곤돌라는 이제 아드리아해의 큰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더 넓은 바다가 암시하듯, 우리들 의식도 새롭고 넓은 지평을 열어가야 하지 않을까.

중세의 어둠에서 빛을 찾아 새로운 창조의 시대를 열 수 있었던 것은 위대한 예술가와 인문학자들 그리고 그들의 창조적 자유가 주어졌던 환경과 후원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대까지 많은 예술사조가 시대를 대변하고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어쩌면 현대는 혼돈의 무지개가 나무하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삶의 공간이 여행지가 된 지금 우리의 르네상스라는 조선 후기의 예술과 인문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인본주의가 극에 달하여 위험한 시대에 직면하고 있는 지구촌인 것 같다. 다시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인본주의를 넘어서 휴휴머니즘보다 더 멀리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인간도 생물이라는 차원에서 살아있는 모든 생물에 연결된 나, 인간, 자연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대에 와서 기술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다시 정신의 세계로 나아가야 할 것 같다. 황지우 시인의 <나는 너다>라는 시의 주인공처럼 너의 자리에는 사랑 혹은 모든 생물, 자연물이 자리해야 하는 자리이리라. 동서를 막론하고 페트라르카의 위대한 발견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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