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보원사지

차보살 다림화 2016. 7. 21. 13:30

 

보원사지를 거닐며

 

 

여린 햇살이 다정했던 어느 가을날 오후. 보령 성주사지에 다녀오는 길이다. , , 그날들을 회상하며 성주사지에서 따뜻한 마음을 챙기고 돌아오는 길. 서산을 들려서 보원사지를 걷고 싶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폐사지(敝寺址)를 찾는 일이 좋아졌다. 답사할 때는 같이 공부하는 즐거움으로 가지만, 다시 찾아 흘러가버린 시간의 폐허에 젖고 싶은 마음이 남는다. 무한한 상상 속에서 그날들과 오늘과 미래에 겹쳐진 세월의 의미를 더듬어 보고 싶은 거댜.

충청남도 지방은 예부터 살기 좋은 내포지방이라 하여 조선시대 벼슬자리나 차지했던 사람들은 내포 지방에 땅과 집을 소유했던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백제시대부터 태안과 서산 지역은 중국과의 중요한 교통로였다는 점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그에 따라서 불교문화도 융성했던 것 같다. 옛 사람들은 거석과 거목들을 숭배하였다. 그런 거석에다 불상을 조각하였으니 종교심은 더욱 컸으리라. 나도 석탑과 석불을 만나기를 좋아하고 거목들을 바라보기 좋아한다. 딱히 뭔가를 기원한다기보다 그런 시간이 알 수 없는 시간의 힘이 느껴져서일지 모른다.

보원사지를 찾으면서 태안의 마애삼존불과 백제의 미소라 일컬어지는 서산마애삼존불(국보 제84)을 떠올리게 된다. 서산마애삼존불을 두어 번 찾은 적이 있다. 고요히 다시 찾고 싶었지만, 오늘은 시간이 좀 모자란다. 삼존불의 미소만은 항상 내 마음에 들어있다. 최근에는 삼존불의 보호각을 걷었기 때문에 본래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서산에서 용현계곡을 지난다면 반드시 마애삼존불을 만나고 가야한다.

산 중턱 벼랑 바위에 새긴 삼존불. 본존불은 머리의 보주형 육계는 작지만, 머리 부분에 영기 무늬가 또렷한 광배가 부처를 더욱 환하게 하여 그 친근하고 푸근한 미소가 가까이 느껴지게 한다. 우협시보살은 본존과 같이 살이 통통하게 올라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풍기고 있다. 두 손은 가슴 앞에서 보주를 잡고 있다. 발밑에 복련연화좌가 있다. 좌협시보살은 또 어떤가, 반가사유상인데 그 천진스런 미소라니! 두 협시보살 모두 미소를 풍겨주는 광배가 있다. 이런 삼존상은 <<법화경>>, 즉 석가불,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단다. 법화경 사상이 백제 사회에 유행한 사실을 입증해 주는 가장 중요한 사료라고 한다. 그런 사료적 가치는 몰라도 된다. 거대한 바위 안에서 걸어 나와서 우뚝 서버린 부처들이 그렇게 천년의 미소를 누구를 향하여 미소 짓고 있을 수 있는가. 물어야 하지 않을까.

어찌 돌에다 미소를 조각할 수가 있단 말인가. 특별한 예를 갖추지 않아도, 위엄을 내려놓은 부처 앞에서 누구나 편안하게 마주 미소 지을 수 있지 않은가. 마음이 울적하거든 이 백제의 미소를 만나보시라.

태안마애삼존불, 역시 백제시대의 불상이다.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태안읍의 진산이라는 그리 높지 않은 백화산 등성이에 있다. 마애불 아래는 현대에 조성한 절이 있다. 우리는 그 절에는 들어가지 않고 태안마애삼존불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어 답사한 적이 있다. 보물이었던 태안마애삼존불은 2004년 국보 제307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백제의 초기 불상으로 그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알 수 없는 것은, 삼존불 가운데 본존불이 보살상으로 작다는 것이다. 좌우 협시가 부처상이라는 점이다. 중앙에 보살, 좌우에 불상을 배치한 독특한 형식을 취하였다. 좌우의 불상은 중앙의 보살보다 상대적으로 큼직하여 1보살, 2여래라고 하는 파격적인 배치를 보여주는 특이한 구도인 것이다. 그 당시에 관음보살 숭배 사상이 유행했던 것일까. 서산마애삼존불은 그 조각 솜씨가 빼어난데 비하여 태안마애삼존불은 형식도 특이하고 많이 마모되었지만 충분한 경외심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하다. 서산마매삼존불의 앞선 형식이란 것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얼굴은 살이 붙어 양감이 있는 데다 근육이 팽창되어 강건한 인상을 보여 주고 있다. 백제가 융성했을 때 조성한 것이 아닐까. 모든 예술품이 그러하듯 그 시대의 작가의 특성이 잘 나타나는 것이 아니랴! 중국과의 교역이 많았던 백제였기 때문에 불상 또한 수나라 불상의 장대한 양식 계열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전문가의 이론이 짐작된다.

거대한 보원사지의 터에 설 때면 백제의 융성했던 문화미를 생각하게 된다. 보원사지가 백제시대 고찰임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를 알 수 있는 사지(寺誌)나 사적기(寺跡記) 등의 문헌기록이 남아 있지 않단다. 사지에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이 6세기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보원사지 근처에 있는 서산마애삼존불과 태안마애삼존불이 서로 연관이 있는 시대 불상이란 것을 짐작하게 된다.

용현계곡 보원사지 삼거리에서 조금 들어가자면 너른 들판에 우뚝 솟은 당간지주와 마주하게 된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는 한창 발굴 중이었다. 그 동안 모든 발굴이 끝나고 터가 정리되었다. 당간지주 뒤로 절터의 가운데 자리쯤에 5층석탑이 보이고 산기슭 아래 탑비가 멀리서도 보인다. 도랑을 건너는 징검다리를 건너서 마당으로 들어서면 5층석탑 앞에 선다. 5층석탑은 언뜻 보아도 통일신라시대 후기와 고려시대 초기에 만든 것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각 층의 옥개석은 얇고 넓게 펴져서 끝이 살짝 치켜든 것이 백제 양식이고, 옥개석 받침이 4층인 것은 신라 식이며, 각 층의 몸돌을 받치는 굄석을 하나 더 받쳤다는 것은 고려 식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탑 전체의 모습은 미려하고 경쾌하여 아름답다. 기단부의 면석에 팔부중이 합장하고 있는 모습을 돋을새김의 조각이 천년의 세월을 뛰어 넘고도 또렷하다. 1층 탑신 각 면에 자물쇠 모양이 새겨져 있다. 상륜부는 정상에 노반석이 놓였고 그 위에 긴 찰간이 꽂혀 있을 뿐 다른 부재는 남아 있지 않다. 이 절은 고려 때에 중창하였다고 하는데 이 때 탑도 세워졌을 것이라고 한다. 보물 제104호로 지정되었다.

절터의 맨 뒤쪽 산기슭 아래 부도와 탑비가 유려하게 서 있다. 바로 보물 제 105호인 고려시대의 고승 법인국사 탄문의 부도와 탑비이다. 부도, 즉 승탑은 바닥 돌부터 지붕돌까지의 단면이 8각으로 신라 승탑의 전형적인 양식인 8각원당형을 따랐다. 아래받침돌은 윗단과 아랫단으로 구성되었는데 아랫단은 옆면의 각 면마다 1구씩의 안상이 조각되었는데, 안상 안에는 각각 모습을 달리한 사자상이 1구씩 돋을새김 되어 있다. 윗 받침돌의 옆면에는 구름 무늬와 용무늬를 돋을새김 하였다. 용머리의 부리부리한 눈과 코, 입 그리고 몸통의 비늘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위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불교가 융성하던 시절의 석물들은 거의 화려한 조각 솜씨를 엿볼 수 있는 재미를 더한다. 보물 제106호인 법인국사보승탑비. 전체높이 450cm. 너비 116.5cm. 장쾌한 느낌을 주는 탑비의 머리장식(이수)은 상부에 용이 양쪽에서 노니는 연못을 새기고, 네 귀퉁이에서 안쪽을 바라보는 용을 새겨 용이 사방에서 모이도록 조각하였다. 비석의 빋침은 거북모양이나,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모습이다. 이만한 승탑과 탑비로 기념할만한 승려라면 과연 어떤 분인가. 법인국사 탄문은 신라말, 고려초의 명승으로 고씨이며, 968(광종 19)에 왕사, 974년에 국사가 되었고 이듬해 보원사에서 입적하였다. 978년 왕은 '법인'이라 시호를 추증하고 '보승'이라는 탑명을 내렸다. 고려 초기에는 구양순체를 쓴 대가가 많았다는데 그 중에서도 이 비석의 글씨는 백미에 속한단다. 역시나 글씨를 읽을 수 없음이 이럴 때 아쉬울 뿐이다.

이밖에도 서산시에는 해미읍성과 유서 깊은 개심사가 있다. 보원사지 뒷쪽 산을 오르면 개심사로 넘어가는 길이 있는 것 같지만, 언제 그 길을 걸아 가볼 수 있을까. 벌써 가을바람이 햇살을 서서히 밀어내고 있다. 황량한 들판 같지만 긴 세월 100여 칸이나 되는 전각들이 남긴 추춧돌이며 석물들이 한가득 마당을 차지하고 있다. 입구의 물통으로 쓰였던 넓직한 석조는 휑뎅그레 수풀 속에 비어 있지만, 그 옛날의 분주한 역할을 했던 기억만은 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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