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쟈스민

차보살 다림화 2007. 9. 17. 01:11

 지난 9월 8일 논산에서 쟈스민을 만났다. 너무 반가워서 봉오리가 많이

맺혀있는 그 화분을 샀다. 늦여름에 이렇게 쟈스민 향기를 함께 할 수 있다니.

 

 가을에 잎을 다 따주면 다음 해 봄에 꽃이 많이 핀다고 했다. 몇 년을 함께

그렇게 해온 쟈스민 화분은 지금 잎만 무성한데... 스스로 잎을 떨구지 못하는 쟈스민은

나와 함께 겨울동안 긴 기도시간을 가지면서 내면을 더 실하게 가꾸어야 한다.

 

 

 

 연록색의 꽃받침속에서 보라빛 꽃봉이 주름져 있다

 

 꽃봉오리가 점점 부풀고 있다

 

 

 

 

 반개한 쟈스민과 봉오리

 

 

 저 홀로 피어나는 모습. 누가 보아줄까 기다릴리는 없건만

 바라보는 내 마음이 어찌 이리 떨릴까

 

 아직 활짝 펴지 않은 꽃잎이  웃음 짖고 있는 것 같다

 꽃심 안의 꽃술이 결코 튀어나오지 않는 쟈스민

 묘한 향기의 비밀이 그 속에 있는지도 모르겠네

 

 

 

 

 

 

 꽃잎이 막 벙그러지려 한다. 잠시 눈 돌리고 나면 살포시 열리고 만다.

 나에겐 한 순간 같지만 꽃의 마음은 어떨까. 기다려 왔던 한 세상이 열리는 순간.

 쟈스민은 활짝 필 때까지는 보라색이었다가 점점 하얀색으로 빛이 바랜다.

 향기로 말하기가 힘들어서일까?

 아! 꽃의 신비여!

 

 

 

 

 

 쟈스민은 딱 두 주일 동안 꽃의 영광을 누리면서

 즐거움을 주었다. 그러나 눈 앞에 사라졌다 해서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그것이 안 돌려진다 해도
서러워 말지어다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힘을 찾으소서!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쟈스민
                                                            

                                                                                        조윤수


   여름 내내 식물원에 맡겼던 쟈스민 화분을 늦가을에 찾아왔다. 봄에 다시 꽃을 피우려면 가지에 붙어있는 잎을 모두 따주라고 식물원 아저씨가 말해 주었다. 과감히 잎을 모두 따준 쟈스민은 삐죽이 마른 가지만 남아 볼품이 없었다. 그래도 춥다고 아프다고 말이 없었다. 푸른 잎 달린 다른 화분 사이에서 죽은 듯 소리 없이 나보다도 더 간절히 봄을 기다렸으리라.
 
  실내지만 꽃샘바람 지난 고요한 날부터 잎과 잎 사이에 콩알만한 봉오리가 꽈리모양을 하고 맺혔다. 그리고는 여러 날 부풀었다. 그 연두빛 꽈리 모양 안에서 꽃대롱이 크고 있었다. 어느 날 그 꽃봉은 꽃받침이 되고 그 안에서 주름진 연보랏빛 꽃봉을 단 꽃대롱이 솟아나오게 된다. 화려하지 않은 쟈스민 꽃은 처음 야들한 보라빛으로 핀 다음 향기를 발하면서 차츰 흰색으로 변한다. 그 향기가 요염하지도 않고 분 냄새를 진하게 풍기지도 않으며 그윽하게 퍼져 코끝을 간지럽히며 실내의 분위기를 향 맑게 한다. 아마도 보라색 향기를 품어내고 나면 힘없어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끝까지 향기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다.  내가 나갈 때면 붙잡는 듯 향을 품어내고 돌아올 때면 버선발로 마중 나오는 듯 내음으로 확 안겨온다.  
 
  쟈스민 화분 옆에 서면 남쪽 유리창은 무릉도원 풍경화를 걸어놓은 듯 하다. 겨우내 잎 다 떨군 복숭아나무 가지에는 열매를 싸주었던 봉지만 남아서 깃발처럼 달랑거리고 있었다. 이미 약속이 된 듯 잎 떨어진 자리에 발갛게 꽃눈이 맺혀 눈바람을 맞고 있었다. 겨울나무는 맨 몸으로 뼈마디 속까지 싸늘한 추위를 잘 견뎌내야 오늘과 같은 찬란한 봄을 맞는다는 것을 저절로 아는 것이다. 새로운 성장을 위하여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과수를 보면 나태해지려는 나를 다시 고쳐 잡는다. 실한 열매를 맺기 위하여 한 자리에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인내하며 맞이해야 하는 나무처럼 내 자리를 살펴보게 된다.

  화분의 식물들은 사람의 손길에 달려 있다. 어떤 물질이든 저마다의 물성(物性)이 있는데 그것을 잘 알고 그에 맞추기가 쉽지가 않다. 자라는 생명이야말로 유전적으로, 환경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 그 특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 성정을 알아서 서로 조화롭게 자라게 하는 일이 우리의 할 일이다. 같은 쟈스민 화분을 가지고 있는 친구에게 잎을 따 주라고 말했더니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생 잎을 따주는 것이 아깝고 아프기 때문에 용단을 내리지 못한 줄로 안다. 그러니 큰 잎만 가지고 있을 뿐 꽃을 많이 피우지 못했다. 천지간에 사람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가. 자연의 이치를 배워서 그 순리를 따르는 일은 어렵고도 긴 여정이다. 나도 가을이면 내 영혼에 묻어 있을 군더더기와 곁가지들을 떨어내리라. 겸허한 자세로 배우고 또 익혀서 자연과 동화하며 천지인(天地人)의 합일을 이루는 이상(理想)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지. 
 
  쟈스민의 열매는 향기다. 두고두고 마음으로 음미하는 열매이리라. 사람도 나이 들면서 자기 얼굴에 자기 스스로 열매를 그린다. 한평생을 살아오면서 영혼의 빛 바랜 잎들도 떨어지고 다시 새 잎을 피우기를 수십 번씩 하면서 나이테에 어떤 향기가 새겨질까. 잎 떨어진 자리에 어떤 마음의 열매들을 열리게 했을까. 여러 가지 마음의 열매 중에는 한 개인의 내면에 초석이 되는 바탕의 성품이 있을 것이며, 기둥이 되어야 하는 것이 있을 것이고, 아름다운 인테리어가 되어주는 것이 있을 것이다. 여러 역할의 성품이 쌓이는 만큼 그만의 향을 지닌 영혼의 집이 만들어질 테지.
(2005년 4월)

 

 

 

 

 



 



Fantastic Pan Pi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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