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떠난다]차 달이고 향 사르는 곳에 옛길이 통했네 | ||||||
수행자나 차꾼들은 차를 음식 먹듯 마셨다. 그래서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이 나왔다. 불가에서는 차를 마음의 안락을 체험하는 수행의 방편으로 마셨다. 그렇다고 차가 불가(佛家)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다. 유가에서는 차를 군자와 같이 여겼고, 조선조 조정에서는 일하기 전에 차 마시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를 다시(茶時)라 하였다.
다사는 차나무가 자생하거나 차나무 숲이 잘 조성된 호남과 영남에 많다. 차나무는 추운 땅을 싫어하고 따듯한 햇볕과 바람, 맑은 이슬과 안개를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지나온 발자국이 어지럽혀져 있지는 않은지 가만히 뒤돌아보는 차 한 잔의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이럴 때 차는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는 향기로운 회랑일 터이다. 다소촌(茶所村)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도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적멸보궁 사리탑 주변에는 차나무들이 자생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통도사 산내암자 수행자들의 차살림 양식이었을 것이다. 귀로는 솔바람 소리가 들린다. 극락암에 주석하셨던 경봉스님은 그 소리를 송도활성(松濤活聲)이라 했다. 파도처럼 살아 있는 솔바람 소리라는 뜻이리라.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을 터. 선다원에서 청나라 때의 찻잔에 보이차를 몇 잔 마시고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나던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저잣거리의 힘든 삶이 한 순간에 녹으며 또 다른 경계가 펼쳐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옛 길이란 모든 수행자들이 이르고자 했던 ‘자유의 길’, 즉 해탈의 길이 아니었을까. 찻집에 앉아 잠깐 동안이나마 스님의 게송 한 구절을 화두로 삼아보면 어떨까 싶다. 차를 즐겨했던 연기조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등이 머물렀던 인연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다솔사 조실로 후학을 가르치다 1979년 입적한 효당 최범술의 존재감 때문이다. 효당은 다솔사의 죽로지실(竹露之室)에서 승속의 제자들에게 다도(茶道)와 다론(茶論)을 펼쳤는데, 무엇보다 그의 큰 공헌은 차를 일반인들에게 대중화시켰다는 점이다. 절 이름도 정겹고, 법당 뒤로 부챗살처럼 펼쳐진 차밭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차밭에 그늘을 던지는 황금빛 편백나무 숲도 눈을 부시게 한다. 경내의 찻집에 들르면 그림자마저 한가해진다. 아기자기한 찻잔이나 다탁(茶卓)들도 눈길을 붙든다. 찻집에 앉아 효당의 한 마디를 다시 새기는 것도 정복(淨福)이다. ‘아이 눈 봐! 깨끗도 하네.’ 이 말이 진언(眞言)이다. 누구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니다. 자연에게 천지를 향해 불쑥 느낀 바 감동을 그대로 읊어서 한 말이기에 진언이다.” 얼마나 많은 말의 홍수와 군더더기 속에서 살아 왔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말씀이다. 그래서 차 한 잔 마실 때의 침묵이 소중한 것이리라. 어느 골짜기를 들어서도 크고 작은 다원이 있고, 찻잔 속에 다원 주인장들의 따뜻한 인정까지 담아 마실 수 있다. 그러니 여행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쌍계사 경내에는 최치원이 지은 진감선사의 비문이 있는데, 선사의 차 마시는 가풍이 잘 드러나 있다.
“중국차를 공양하는 사람이 있으면 돌솥에 섶으로 불을 지펴 가루로 만들지 않고 끓이면서 ‘나는 이것이 무슨 맛인지 알지 못하겠다. 배를 적실 뿐이다’라고 했다. 진(眞)을 지키고 속(俗)을 거스르는 것이 모두 이러했다.” 다인이 됐던 때문이었다. 국문의 후유증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던 그에게 차는 심신을 추스르는 영약(靈藥)이 되었던 것이다. ‘병을 낫게 해주기만 바랄 뿐 쌓아두고 먹을 욕심은 없다오’라는 제목의 걸명(乞茗) 시를 보냈을까.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의 오솔길은 가파르지 않아 쉬엄쉬엄 걷기에 그만이다. 햇살을 받아 꽃 못지않게 아름다운 동백나무도 있고, 마음을 쉬게 하는 잔잔한 바다도 보이고, 바닷가 갈대숲 위를 나는 철새떼도 흐르는 계절을 느끼게 해준다. 절의 역사를 얘기해 주곤 했는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음식의 코스 요리처럼 차 한 잔을 시키면 찻잔을 달리해서 여러 차를 우려내 주었는데, 특히 투명한 유리잔에 내주던 ‘달빛차’가 인상적이었다. 발효차일 텐데 그 거사는 꼭 ‘달빛차’라고 부르며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 주었던 것이다. 달빛차를 마시며 ‘동 트기 전에 일어나라, 기록하기를 좋아하라’고 한 다산의 말씀을 떠올리며 게을러진 삶의 태도를 바로잡았던 그 시간을 다시 갖고 싶다. 암자 앞 산자락에 차밭이 있지만 세월이 더 흘러야 풍광이 생길 것 같다. 암자의 특산물은 뭐니뭐니해도 유천(乳泉)에서 나는 샘물 맛이다. 초의선사는 물을 차의 몸(體)이라고 했다. 그만큼 물은 차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일지암 물맛의 비결은 두륜산 속에 묻힌 맥반석이라고 한다. 일지암 누각에서 두륜산 자락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풍류는 세상의 그 무엇도 부럽지 않게 한다. 더불어 누군가가 초의선사의 ‘동다송’ 중에서 가장 빼어난 구절을 읊조린다면 선경(禪境)이 따로 없을 터. 맑고 찬 기운 뼈에 스며 마음을 깨워주네/ 흰 구름 밝은 달 청해 두 손님 되니/ 도인의 찻자리 이것이 빼어난 경지라네.’ 대흥사 경내의 찻집에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만 가지 천 가지의 말도 차 한 잔 마시는 것 밖에 있지 않다(萬語與千言 不外喫茶去)고 했던가. 어디서 마신들 고요히 마시는 차 한 잔의 의미가 어찌 퇴색하겠는가. ▲전남 화순 쌍봉사 앞에 암자를 짓고 사는 소설가 정찬주씨는 사찰과 인연이 깊다. 저서 ‘암자로 가는 길’로 암자기행의 전범을 보여준 그는 최근 역사 속 다인(茶人) 50명의 이야기를 모아 ‘다인기행’(열림원)을 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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