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높은 산은 우러러 보고 큰 행동은 행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연유하여 차를 내는 일을 "행차(行茶)한다"라고 합니다. 차를 내는 일은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하는 "인륜지대사"이기 때문입니다.
손님에게 차를 권하는 예의는 도교에서 비롯 되었습니다. 관윤(關尹)은 늘 함곡관(函谷館)에서 늙으신 철인(哲人:老子)을 맞이하였는데 언제나 먼저 대접하는 것은 차(茶)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를 본받아 처음 만나면 우선 차를 나누는 것을 생활화 했습니다.
도교 영향권에 있는 우리나라에도 손님에게 차를 권하는 예의가 일반화되었습니다. "오신 손님 편안히 모시고 가시는 손님 뒤가 안보일때까지 배웅하는" 미풍양속에서 제일 먼저 권하는 것이 茶요, 제일 나중 나누는 것도 또한 茶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차는 - 차잎을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 마시기도 하지만 - 차나무 잎을 더운 물에 우려 마시는 것이기에 백 번을 우려도 백번 다 그 맛이 다릅니다.
차의 품질에 따라 다르고 산지나 품천(品泉:물의 상태)에 따라서도 달라지며 온도나 우리는 시간에 따라서도 현격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심지어 다기(茶器)에 따라서도 색향미가 달라집니다. 물론 분위기도 영향을 줍니다.
좋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차를 내는 일에만 정신을 집중하고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오랜 차생활을 통하여 손에 익어야 하며, 스스로 우러나서 삼매경에 빠져들어 차를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옛 사회에서는 어느 집에 손님이 되어 갔을 때, 차 맛을 보고 잘 왔나 잘못 왔나를 판단하는 풍습이 강했습니다. 차 맛이 훌륭하면 "참 잘 왔구나. 주인이 진정 나를 반기는구나"하고 편안해 했고, 차 대접이 형식적인데다 맛도 시원찮으면 "어이쿠, 주인이 반기지 않는구나" 하고 서둘러 돌아갔습니다.
차 이야기를 많이하여 자칫 차를 내기가 겁나는 분들도 있을줄 압니다. 그러나 알고보면 차를 우리는 방법은 참으로 간편하여 한 두 번만 익히면 초심자도 금세 따라할 수 있습니다. 차잎이 함유하고 있는 성분에 영양이며 감미가 애초에 충분하기 때문에 설탕이니 하는 따위 아무 것도 첨가할 필요가 없어 더 간편합니다. 끓인 물과 차, 그리고 이 두 가지를 함께 넣어 우릴 수 있는 그릇만 있으면 차는 언제 어니에서너 가능합니다..
우선 물을 100℃로 충분히 끓인 다음 - 행차에서는 끓이는 것을 익힌다고 합니다만 - 약 70℃로 다시 식혀 차를 우립니다. 2 - 3분 정도 지나 알맞게 우러나면 잔에 고루 나누어 따라 마십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차는 이같은 간단한 과정을 되풀이하며 계속 우려 마실 수 있습니다. 보통은 서너번 정도 우려 마시지만 좋은 차는 여서일곱번을 우려도 그 색향미(色香味)가 처음과 같습니다.
물을 약 70℃로 식혀서 차를 우리는 이유는 비타민C와 같이 차에 함유된 우리 몸에 유익한 성분을 보호하기 위함이요, 또 다른 이유로는 탄닌산과 같은 쓴맛을 내는 성분이 너무 많이 우러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70℃는 또 여러가지 신비한 효능을 나타내는 차의 성분이 고루 우러나와 가장 이상적인 색향미(色香味)가 얻어지는 기준점이기도 합니다.
어느듯 우리 입맛은 "차는 뜨거워야 된다"는데 익숙해져 있어, 이런 점이 얼른 친해지지 않는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녹차는 미지근하여 차 마신 것같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몇번만 참고 마시면 그런 현상은 쉽게 사라집니다. 정말 잠시 뿐입니다. 불과 몇번 마시지 않아 친해질 수 있고, 차에 익숙해지면 "미지근하다"라는 했던 불만이 "은은하다"라는 예찬으로 바뀌며 스스로 다도 삼매경(三昧境)에 빠져들게 됩니다. 차에 있는 가르침을 배우고 싶어집니다.
차의 오미는 인생의 오미
잘 우러난 차를 음미하면 다섯가지 맛(五味)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쓰고(苦) 떫고(澁) 시고(酸) 짜고(鹽) 달고(甘)의 다섯가지 맛입니다. 맨처음 혀 끝에 와 닿는 맛이 쓴 맛이며, 쓴 맛 다음으로 와 닿는 것은 떫은 맛입니다. 쓴 맛은 물론 고미물질(苦味物質)이 있기 때문이고, 떫은 맛은 탄닌산 때문입니다. 탄닌은 차의 훌륭한 성분 중 하나인데 탁한 것을 맑게하는 정화(淨化)나 해독(解毒)에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 물질입니다.
그 다음 느껴지는 신맛은 풍부한 비타민 때문이고 짠맛은 소금맛입니다. 모든 생물에는 기본적으로 염화나트륨이 함유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끝에 입안에 남는 게 단맛입니다. 이는 차에 함유된 포도당 또는 전분같은 탄수화물에서 나옵니다.
이러한 차의 오미(五味)는 흔히 희노애락고(喜怒哀樂苦)의 인생살이에 비견되기도 합니다. 희노애락 다음에 고를 붙여논 것은 어쨌든 인생은 고해(苦海)이기 때문입니다. 차의 음미(吟味)는 쓰고 떫고 시고 짠 것을 다 소화하고 포용하여 하나의 단맛으로 승화되었을 때의 기쁨을 가르쳐 줍니다. 마찬가지로 인생도 살면서 일차적으로 부빚치는 것들은 쓰고 떫고 시고 짠 것들입니다. 그 모든 것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향기로 승화시키는 일은 그 자체로 성취(成就)요, 지혜로와지는 훈련입니다.
훈련의 반복은 생활화로 이어지고, 이윽고 점입가경(漸入佳境)인 사색의 숲을 만나 자연과의 조화에 접근하게 됩니다. 그것이 곧 선(禪)이요, 깨달음이요, 아름다워지는 노력입니다.
초의선사(草衣禪師)는 동다송(東茶頌)에서 "제호(醍 ) 감로(甘露)와 함께 그 이름 전해왔네"라고 차의 단맛을 노래했습니다.
제호는 불교에서 일러오는 가장 맛있는 음식입니다. 설문신부(說文新附)에 "제호는 낙(酪)의 정(精)이다"라 하였고, 본초(本草)에는 불서(佛書)를 인용하여 "우유에서 낙(酪)을 만들고 낙에서 소( )를 만들고 소에서 제호를 만든다"면서 "황백색으로 지극히 감미로운데 좋은 소( ) 한섬에서 제호는 불과 서너되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잡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버터를 연상하면 될 것입니다.
감로(甘露)는 천하가 태평하면 내린다고 하는 단 이슬입니다. 왕충(王充)의 논형(論衡)에 "감로는 맛이 엿이나 꿀과 같은데 천하가 태평하면 내린다"고 했습니다. 미로(美露) 신장(神漿)이라 부르기도 하는 신령(神靈)의 정(精)으로 신선들의 음료라고 전합니다.
70년대 후반에 시작된 "우리 차 마시기 운동" 덕분에 차에 대한 인식도 제법 - 아직 멀었지만 - 나아졌고 차를 마시는 인구가 늘어난만큼 생산과 소비도 놀랍게 신장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연하게나마라도 차에서 제호 감로의 맛을 느껴본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반역(反逆)입니다만 실험삼아 대담하게 한약 달이듯이 차잎을 달여 들어 보십시오. 처음 입에 댈때엔 얼굴이 저절로 일그러질만큼 쓰고 떫지만 곧 생전 경험하지 못한 제호 감로의 전설적인 맛과 향기를, 어렴풋이나마 만날 것입니다. 반역을 반복해서 즐기는 것엔 찬성할 수 없지만 차의 신비한 세계가 결코 이상이 아닌 현실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의미에서 누구에게나 한번은 권하고 싶은 원시적 실험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실험에서 우리는 우리 차의 맛과 향기가,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백두산 산삼이 최고이듯 차는 지리산 야생차가 단연 최상입니다.
손님에게 차를 권하는 예의는 도교에서 비롯 되었습니다. 관윤(關尹)은 늘 함곡관(函谷館)에서 늙으신 철인(哲人:老子)을 맞이하였는데 언제나 먼저 대접하는 것은 차(茶)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를 본받아 처음 만나면 우선 차를 나누는 것을 생활화 했습니다.
도교 영향권에 있는 우리나라에도 손님에게 차를 권하는 예의가 일반화되었습니다. "오신 손님 편안히 모시고 가시는 손님 뒤가 안보일때까지 배웅하는" 미풍양속에서 제일 먼저 권하는 것이 茶요, 제일 나중 나누는 것도 또한 茶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차는 - 차잎을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 마시기도 하지만 - 차나무 잎을 더운 물에 우려 마시는 것이기에 백 번을 우려도 백번 다 그 맛이 다릅니다.
차의 품질에 따라 다르고 산지나 품천(品泉:물의 상태)에 따라서도 달라지며 온도나 우리는 시간에 따라서도 현격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심지어 다기(茶器)에 따라서도 색향미가 달라집니다. 물론 분위기도 영향을 줍니다.
좋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차를 내는 일에만 정신을 집중하고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오랜 차생활을 통하여 손에 익어야 하며, 스스로 우러나서 삼매경에 빠져들어 차를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옛 사회에서는 어느 집에 손님이 되어 갔을 때, 차 맛을 보고 잘 왔나 잘못 왔나를 판단하는 풍습이 강했습니다. 차 맛이 훌륭하면 "참 잘 왔구나. 주인이 진정 나를 반기는구나"하고 편안해 했고, 차 대접이 형식적인데다 맛도 시원찮으면 "어이쿠, 주인이 반기지 않는구나" 하고 서둘러 돌아갔습니다.
차 이야기를 많이하여 자칫 차를 내기가 겁나는 분들도 있을줄 압니다. 그러나 알고보면 차를 우리는 방법은 참으로 간편하여 한 두 번만 익히면 초심자도 금세 따라할 수 있습니다. 차잎이 함유하고 있는 성분에 영양이며 감미가 애초에 충분하기 때문에 설탕이니 하는 따위 아무 것도 첨가할 필요가 없어 더 간편합니다. 끓인 물과 차, 그리고 이 두 가지를 함께 넣어 우릴 수 있는 그릇만 있으면 차는 언제 어니에서너 가능합니다..
우선 물을 100℃로 충분히 끓인 다음 - 행차에서는 끓이는 것을 익힌다고 합니다만 - 약 70℃로 다시 식혀 차를 우립니다. 2 - 3분 정도 지나 알맞게 우러나면 잔에 고루 나누어 따라 마십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차는 이같은 간단한 과정을 되풀이하며 계속 우려 마실 수 있습니다. 보통은 서너번 정도 우려 마시지만 좋은 차는 여서일곱번을 우려도 그 색향미(色香味)가 처음과 같습니다.
물을 약 70℃로 식혀서 차를 우리는 이유는 비타민C와 같이 차에 함유된 우리 몸에 유익한 성분을 보호하기 위함이요, 또 다른 이유로는 탄닌산과 같은 쓴맛을 내는 성분이 너무 많이 우러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70℃는 또 여러가지 신비한 효능을 나타내는 차의 성분이 고루 우러나와 가장 이상적인 색향미(色香味)가 얻어지는 기준점이기도 합니다.
어느듯 우리 입맛은 "차는 뜨거워야 된다"는데 익숙해져 있어, 이런 점이 얼른 친해지지 않는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녹차는 미지근하여 차 마신 것같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몇번만 참고 마시면 그런 현상은 쉽게 사라집니다. 정말 잠시 뿐입니다. 불과 몇번 마시지 않아 친해질 수 있고, 차에 익숙해지면 "미지근하다"라는 했던 불만이 "은은하다"라는 예찬으로 바뀌며 스스로 다도 삼매경(三昧境)에 빠져들게 됩니다. 차에 있는 가르침을 배우고 싶어집니다.
차의 오미는 인생의 오미
잘 우러난 차를 음미하면 다섯가지 맛(五味)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쓰고(苦) 떫고(澁) 시고(酸) 짜고(鹽) 달고(甘)의 다섯가지 맛입니다. 맨처음 혀 끝에 와 닿는 맛이 쓴 맛이며, 쓴 맛 다음으로 와 닿는 것은 떫은 맛입니다. 쓴 맛은 물론 고미물질(苦味物質)이 있기 때문이고, 떫은 맛은 탄닌산 때문입니다. 탄닌은 차의 훌륭한 성분 중 하나인데 탁한 것을 맑게하는 정화(淨化)나 해독(解毒)에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 물질입니다.
그 다음 느껴지는 신맛은 풍부한 비타민 때문이고 짠맛은 소금맛입니다. 모든 생물에는 기본적으로 염화나트륨이 함유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끝에 입안에 남는 게 단맛입니다. 이는 차에 함유된 포도당 또는 전분같은 탄수화물에서 나옵니다.
이러한 차의 오미(五味)는 흔히 희노애락고(喜怒哀樂苦)의 인생살이에 비견되기도 합니다. 희노애락 다음에 고를 붙여논 것은 어쨌든 인생은 고해(苦海)이기 때문입니다. 차의 음미(吟味)는 쓰고 떫고 시고 짠 것을 다 소화하고 포용하여 하나의 단맛으로 승화되었을 때의 기쁨을 가르쳐 줍니다. 마찬가지로 인생도 살면서 일차적으로 부빚치는 것들은 쓰고 떫고 시고 짠 것들입니다. 그 모든 것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향기로 승화시키는 일은 그 자체로 성취(成就)요, 지혜로와지는 훈련입니다.
훈련의 반복은 생활화로 이어지고, 이윽고 점입가경(漸入佳境)인 사색의 숲을 만나 자연과의 조화에 접근하게 됩니다. 그것이 곧 선(禪)이요, 깨달음이요, 아름다워지는 노력입니다.
초의선사(草衣禪師)는 동다송(東茶頌)에서 "제호(醍 ) 감로(甘露)와 함께 그 이름 전해왔네"라고 차의 단맛을 노래했습니다.
제호는 불교에서 일러오는 가장 맛있는 음식입니다. 설문신부(說文新附)에 "제호는 낙(酪)의 정(精)이다"라 하였고, 본초(本草)에는 불서(佛書)를 인용하여 "우유에서 낙(酪)을 만들고 낙에서 소( )를 만들고 소에서 제호를 만든다"면서 "황백색으로 지극히 감미로운데 좋은 소( ) 한섬에서 제호는 불과 서너되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잡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버터를 연상하면 될 것입니다.
감로(甘露)는 천하가 태평하면 내린다고 하는 단 이슬입니다. 왕충(王充)의 논형(論衡)에 "감로는 맛이 엿이나 꿀과 같은데 천하가 태평하면 내린다"고 했습니다. 미로(美露) 신장(神漿)이라 부르기도 하는 신령(神靈)의 정(精)으로 신선들의 음료라고 전합니다.
70년대 후반에 시작된 "우리 차 마시기 운동" 덕분에 차에 대한 인식도 제법 - 아직 멀었지만 - 나아졌고 차를 마시는 인구가 늘어난만큼 생산과 소비도 놀랍게 신장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연하게나마라도 차에서 제호 감로의 맛을 느껴본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반역(反逆)입니다만 실험삼아 대담하게 한약 달이듯이 차잎을 달여 들어 보십시오. 처음 입에 댈때엔 얼굴이 저절로 일그러질만큼 쓰고 떫지만 곧 생전 경험하지 못한 제호 감로의 전설적인 맛과 향기를, 어렴풋이나마 만날 것입니다. 반역을 반복해서 즐기는 것엔 찬성할 수 없지만 차의 신비한 세계가 결코 이상이 아닌 현실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의미에서 누구에게나 한번은 권하고 싶은 원시적 실험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실험에서 우리는 우리 차의 맛과 향기가,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백두산 산삼이 최고이듯 차는 지리산 야생차가 단연 최상입니다.
출처 : 인천시무형문화재10호범패와작법무
글쓴이 : 모봉형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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