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스크랩] 전통의 향기(5) 다도 삼매경과 인정의 나눔

차보살 다림화 2008. 2. 17. 18:58
삼매의 경지

"오직 한가지 일에만 마음을 모아 생각하는 일심불란의 경지" 또는 "순수한 집중을 통하여 마음이 고요해진 상태"를 일컬어 삼매(三昧)의 상태라고 합니다. 독서에 붙여 삼매경이란 단어를 접했을 겁니다.

더 쉽게 풀이하면 주관과 객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마음이, 올바른 관찰과 마음가짐을 통하여 일체가 되고, 마침내 그 세 가지에 대한 생각까지 잊어버린 경지에 들어간 것을 뜻합니다.

삼매의 상태는 곧 불교수행의 이상적인 경지이기 때문에 불교 경전에서는 삼매를 이루는 방법을 다각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능엄경은 수능엄삼매를, 화엄경은 화엄삼매와 해인삼매 사자분신삼매를, 반야경은 108 삼매를, 법화경은 무량의처삼매와 법화삼매를, 금강경은 무쟁삼매를, 열반경은 25삼매를 주장하고 있으며, 대승기신론은 일행삼매(一行三昧)와 진여삼매(眞如三昧)를 논하고 있습니다.

선정(禪定)의 깊고 옅음을 구별하여 나눈 5륜삼매(五輪三昧: 地輪 水輪 風輪 金沙輪 金剛輪) 분류법도 있고, 여환삼매(如幻三昧) 관불삼매(觀佛三昧) 보현삼매(普賢三昧) 염불삼매(念佛三昧) 등도 자주 언급됩니다. 그러나 삼매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삼매를 정확하게 분류하여 설명한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이를 가장 명확하게 정의하고 분류한 대표적인 고승은 신라 원효입니다.

원효는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에서, 삼매는 곧 정사(正思)로서, 정(定)에 들었을 때 관계되는 경계인 소연경(所緣境)을 깊이 살피고 바르게 생각하고 통찰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따라서 삼매에는 혼침(昏沈: 마음이 어두워 자세히 살필 수 없는 상태)과 심사(尋伺: 바르고 거짓된 것을 분별하는 마음)가 있어서는 안됨을 강조 했습니다.

분별과 무분별에 두루 통하고 침울하지도 들뜨지도 않은 채 바르고 자세히 생각하여야만 올바른 삼매라고 하였습니다.

다도의 도는 순리체득의 길

다도에서의 삼매는 순리를 체득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차(茶)에 도(道)를 붙여 다도(茶道)라 부르는 것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절대로 그럴 필요 없습니다.

차는 흐린 것을 맑게 하는 효능이 탁월한 음료요, 도(道)는 애초부터 "삶의 길"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도는 "길 도"로써 "인생 여로"를 의미합니다. 다만 동양의 여러 종교들이 이 도(道)를 매우 중요한 가치기준으로 여겼기 때문에 철학·문학·사상·예술·문화 등 동양의 여러 정신적·물질적 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시대와 장소, 그리고 인물에 따라 각각 상이하게 설명되어지면서 추상적인 의미가 첨가되기도 하고, 인간의 행위에 꼭 따라야 할 기준과 원칙으로 이해되기도 했을 뿐입니다.

도교에서의 도는 종교로서의 의미가 강하게 부각되어 우주만유의 본체이면서 형태지을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실재(實在)였습니다. 불교에서의 도는 "곧 진리이며 바름"이었고, 유교에서는 이 도로써 도덕적인 면을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가치기준을 가름하는 핵심적 규범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종교에서의 도는 이렇게 각각 다른 옷을 입게 됩니다만 공통되는 점은 인간의 인간다움을 도에서 찾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사람은 이 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현실의 피상적인 차별이나 변화를 떠나 절대불변의 참다운 자유를 얻게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도는 순리(順理)입니다.

동양이 전통적으로, 인위적인 기교보다 자연적 섭리에 따르는 무위자연적(無爲自然的) 삶을 숭상해 온 것도 결국 같은 맥락입니다.

도의 자리

도(道)를 논(論)하는 기회가 흔치 않은만큼 이야기를 꺼낸 김에 도의 자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도는 존재 이전의 이데아, 즉 우주본래의 근본입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의 자리이자 무극(無極)의 자리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법(法)이전에 윤리나 도덕에 의한 무형의 위계질서(位階秩序)가 있어 왔습니다. 옛 성현들은 그 위계실체를 기·정·의·덕·도·자연(技·政·義·德〕·自然)으로 순서를 정리했습니다.

기(技)는 일반적인 삶의 기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가지 소질은 갖고 태어나며, 한가지 기술만 익히면 일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만큼 집단생활이 필요하여 기(技)는 정(政)의 지배를 필요로 합니다. 정은 관리입니다. 관리 규모가 커지면 정치라는 말로 발전합니다. 정치는 조화여서 상식석에서 행해지는 것이 이상적이라 했습니다. 정치에 절대로 기술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데모크라시 정치론도 이러한 근본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政) 위에 의(義)를 두어 바르게 행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의(義)는 다시 덕(德)의 지배를 받습니다. 아무리 바르게 잘 하려고 해도 덕이 없으면 훈훈함이 없습니다. 너무 맑기만 한 물에서는 고기가 살 수 없듯 맑고 바른 것 만 추구하다보면 자칫 경직되기 쉽고 한쪽으로 치우칠 염려도 있습니다. 청렴강직한 지도급 인사가 아랫사람 잘못으로 물러날 때 "德이 없어 물러난다"는 말은 여기 연유합니다.

덕(德) 위가 도(道)의 자리입니다. 도(道)가 곧 순리(順理)라는 말이 이제는 이해되어야 합니다. 앞에 나열한 모든 것을 갖추고 행하되 순리로 하여야지 억지가 깃들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도(道)는 인간이 자연(自然)으로 통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

결국 도(道)는 자기 본분을 깨닫고 순리를 거역하지않는 범위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길입니다. 인간사회를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이념(弘益理念)으로 귀결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제 이해가 되시는지요. 茶는 사유(思惟)의 반려라는 뜻에서도 다도삼매경(茶道三昧境)은 매우 귀중하고 유익한 과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차와 술의 비교

차와 커피는 지구촌을 대표하는 동격의 음료여서 자주 비교했지만 술과의 비교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인정을 나누는 자리에 차 못지않게 자주 오르내리는 것이 술이기 때문입니다.

차와 술은 동격은 아닙니다만, 우리 생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취하는 방법에 따라 상호 보완이 되기도 하고 서로 상반되는 작용을 하기도 합니다. 상식적으로도 자극성 강한 음료는 그만큼 조심해야 합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술은 마실수록 취하여 정신을 흐트러지게 합니다. 반면 차는 조심하지 않아도 마실수록 정신이 맑아지고 옷깃을 단정히 여미게 합니다. 술은 흥을 돋구지만 차는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것입니다.

역사를 보아도 다인치고 술 사양하는 사람 드물고, 술꾼치고 차 싫어하는 경우 역시 찾아보기 힘듭니다. 옛부터 성현이 모두 차를 가까이 하였나니… 라는 구절을 기억하십니까. 나라를 중흥시키고 꿈에 술을 얻은 은(殷)나라 고종(高宗)은, 술이 맑은 것을 성(聖)스럽다 하고, 흐린 것을 어질다(賢) 하였으니, 성현(聖賢)의 근원이 곧 술에 있는 셈입니다.

주다론(酒茶論)에 보면 술(酒)과 차(茶)가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말싸움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술은 근심을 잊게않다하여 망우군(忘憂君)이고, 차는 번민을 없애준다하여 척번자(滌煩子)라 이름하고 있습니다.

척번자 : 대저 하늘과 땅 사이 있는 것은 사람·금수·산천·초목이지
요. 그 중 제일 귀한 것이 사람입니다. 차(茶)라는 글자를 분석
해보면 풀 초(艸)와 나무 목(木) 사이에 사람 인(人)이 있어 자
연과 더불어 사는 것을 뜻합니다. 술이라는 글자는 물 수( )변
에 새 유(酉)이니, 술에 취하면 사람에 미치지 못하는 금수(禽
獸)가 된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까.

망우군 :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구료. 사람에게는 귀천(貴賤)이 있
고, 위계(位階)도 있는 법인데, 사람이 풀과 나무 사이에 있다
면 어찌 귀공자라 하리이까. 꿩이나 토끼를 잡는 사냥꾼이거나
꼴군·나뭇군에 불과하겠지요. 특히 다인들은 꽃을 보면서 차
마시기를 즐기는 데, 이는 욕정(欲情) 가득한 살풍경 아닙니까.
당(唐)나라 이백(李白)과 두보(杜甫)는 천하가 인정하는 명사입
니다. 늘 물가의 새를 사랑한 두 분은 개원(開元:洛陽)에서 만
나 두 마리 새가 불리었는데 그 날개가 천하를 가렸습니다.

척번자 : 나는 금수(禽獸)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지 않지만 그
대가 그렇게 말하니 한마디 하지요. 덩어리 차 문양에는 봉황
도 있고 용도 있습니다. 또 차를 달일 때는 기린숯을 쓰는 데
이것들은 모두 금수의 우두머리들이지요. 이들에게 둘러싸인
차 앞에서 물 가의 새는 어디로 날개를 펼칠런지요. 다구(茶具)
를 논해도 주기(酒器)와는 가치를 비교할 수 없을만큼 보배로
운 것이 많습니다.

망우군 : 아아, 미천한 그대여, 풍류란 마음이 너그럽고 온화한 것인 것
을 어찌 값으로 논한단 말이오. 술잔에도 금잔·은잔이 있고
약옥선(藥玉船)도 있소이다 그려. 그러나 주선(酒仙)들은 금잔
은잔보다 계절에 맞는 술을 더 즐겼지요. 봄에는 오얏동산(桃
李園)에서 복숭아술 기울이며 달에 취했고, 여름이면 댓잎술(竹
葉酒)로 더위를 잊었습니다.

척번자 : 그렇다면 그대의 술은 갈대처럼 변하는 여심과 같구료. 차에도
백미(百味)가 있으나 계절 따위에는 구애되지 않습니다. 차에
아홉가지 어려움이 있으니 이 아홉가지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
하는 데서 빚어지는 백미이지요. 무릇 다도는 백미를 즐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신수련을 통해 아홉가지 어려움을 극복하
여 한 가지 맛을 얻는 데 있는 것입니다. 육우는 다경에 이르
기를 정행검덕(精行儉德)이라, 했습니다. 정성스럽게 행하고 검
소하게 덕을 쌓으라는 뜻입니다. 인생 교훈이 차에 있는 것입
니다…

아침에 시작한 두 사람의 논쟁은 석양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때 한 선인(仙人)이 다가와 둘에게 이야기 합니다.

"지금은 천하에 근심이 없고 나라에는 현묘한 도가 있으니 좋은 세월입니다. 이러한 때에 두 사람의 논쟁은 아무 일 없는 데 일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허공을 입 삼고 수미를 혀 삼아 아승기겁 논한다 하여도 술의 덕을 다 말할 수 없고 차의 공을 다 노래할 수 없을 겁니다. 나는 술도 잘 마시고 차도 좋아합니다"

이는 술도 이롭게만 마시면 천하에 다시없는 보약이요 인생의 반려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정도를 지나쳤을 때 나타나는 술의 폐해는 엄청납니다. 분별선악소기경(分別善惡所起經)에 술 마시고 취하기를 즐길 때 나타나는 서른 여섯가지 허물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부모(父母) 인군(仁君)을 공경하지 않게 되어 위 아래가 없어지고 ▲말하는데 잘못이 많아진다. ▲두 번 말하기와 잔소리가 늘고 ▲평소에 감추고 숨겼던 사사로운 일도 불쑥 화제를 삼는다. ▲하늘을 꾸짖거나 사당에 오줌누는 일도 서슴치 않으며 ▲길 가운데 눕거나 소지품을 잃기도 하고 ▲몸은 반듯하게 가누지 못한다. ▲비틀거리다가 구덩이에 떨어지기도 하고 ▲넘어져 다치기도 한다 ▲사고 파는 일이 잘못되어 법에 걸리고 ▲할 일을 잊을 정도니 생활도 근심하지 않아 ▲가난을 불러들인다. ▲처자가 굶는 것을 두렵게 여기지 않고 ▲법을 겁내지 않게 되며 ▲부끄러움이 없어져 심하면 옷도 벗은 벌거숭이로 다닌다. ▲남의 부녀자 앞에서 어지러운 말로 희롱하기를 예사로 여기며 ▲툭하면 옆 사람과 다투려 하고 ▲고함을 쳐서 이웃을 놀라게 하고 ▲벌레나 짐승 죽이기를 즐긴다 ▲순간적으로 흥분하여 집안 세간을 부수기도 하고 ▲집안 사람들과 사사건건 충돌하며 ▲나쁜 벗이 늘어나고 ▲어진 벗은 멀어진다 ▲취했다 깨어나니 몸이 질병에 걸린 것 같고 ▲잘 토하니 그 더러운 것을 모두 싫어하게 되고 ▲머리가 멍청해져서 위기도 분간하지 못하게 된다. ▲책을 멀리하게 되고 ▲음란하여져서 가리는 게 없어지고 ▲미친 듯한 모습이 되어 사람들을 놀라 달아나게 하고 ▲쓰러지면 죽은 듯하여 아무 것도 모른다 ▲이윽고 병이 들면 얼굴이 붓고 누렇게 되고 ▲모든 주위로부터 미움을 받게 된다. ▲피를 나눈 친지까지 멀어지는데 ▲스스로는 세상이 발 아래 놓인 듯 거만이 극에 달하니 ▲죽은 뒤 지옥에 가서 뜨거운 쇳물 마시는 형벌을 받게 된다. ▲윤회 법칙에 의해 환생하면 어리석어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 된다. 주변에 어리석은 사람은 모두 전생(前生), 즉 옛 세상에서 술을 지나치게 즐긴 사람들이니 현명한 자는 마땅히 술을 삼갈지어다.

18세기 이후 영국 사람들은 티 파티를 즐기고 있습니다. 차와 음식과 음악과 춤이 메뉴입니다. 건전하고 흥겨운 파티입니다. 술이 차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술을 마셔야만 흥이 난다는 생각은 습관에서 나온 것일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술 때문에 과식이 버릇되어 비만에 고생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차생활은 모든 것을 정상으로 만들어 줍니다.

차는 소화를 돕고 비만을 막아준다고 했습니다. 또 주독(酒毒)을 푸는 데 차 이상 탁월한 효능을 가진 선약(仙藥)이 없습니다. 콩나물 따위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효능입니다. 역사를 보아도 술과 차를 함께 좋아하거나 차만을 즐긴 현인군자는 많습니다. 반면 술만 즐긴 경우는 없습니다. 술만 즐기다보면 종내 인생을 그르치고 말아 현인 반열에 오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제 차와 술의 관계도 이해가 되실 겁니다. 차 없이는 술도 절대 제 구실 못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출처 : 인천시무형문화재10호범패와작법무
글쓴이 : 모봉형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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