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를 다녀와서
속리산 법주사 하면 절 풍경보다 입구에 있었던 40여 년 전의 정이품 소나무 자태다. 4년 전 춘삼월의 폭설 때 이 소나무의 가지가 부러졌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이 일었기에 그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다. 옛날과는 너무나 변화된 주변 환경이어서 그 소나무가 어디에 있는지 처음엔 알아볼 수 없었다. 비록 한 가지가 잘려나갔지만 여전히 그 수관(樹冠)은 수려하다
하늘을 가린 참나무들이 울긋불긋한 오리 숲 터널. 계곡에 물은 많지 않으나 맑은 하늘을 인 나무숲이 거꾸로 선 물 숲의 음영이 어찌 저리도 아름다운가. 어젯밤 유난한 안개가 내려서인지, 낙엽의 향기와 숲이 품어내는 향기가 참으로 폐부 깊숙이 베어들어 몸과 마음이 맑아진다. 숲의 향기가 하루 내 코끝에 맴돌아 거룩한 향공양을 받는 기분이다. 맑게 정화된 마음으로 '호서제일가람' 이란 편액이 붙은 일주문을 들어선다. '속리산대법주사'란 전서로 된 편액은 서산에 있는 개심사 편액의 글씨와 너무나 흡사하여 숲을 지나는 동안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를 고쳐 세워 준다. 오리숲길에서 가다듬은 마음으로 일주문을 지나 금강문을 지나고 천왕문을 통과한다.
아! 만나고 싶었던 '팔상전'
1984년 화순의 쌍봉사 목탑이 불타버렸다는 비보를 들은 후 유일한 예로 남은 국보로써의 목탑이 팔상전이기에……. 보통 사찰에 들어서면 대웅보전 앞에 석탑이 있기 마련이다.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는 부처님의 무덤이기에 부처님의 몸을 상징한다. 법주사는 석탑이 없는 대신에 이 팔상전이 목조 오층탑인 셈이다. 몇 십 년 전에 스쳤던 팔상전을 늘 사진으로 소식으로 접하다가 드디어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인 성도 과정을 참배하게 되었다. 신라 553년 의신조사가 창건이래 임란 때의 소실과 조선 인조 때 다른 전각들과 함께 중건을 거쳐 1969년 무렵 해체 복원한 것으로 안다. 이층 기단 위에 5층 목탑, 각 층마다 점점 좁아지는 처마 선이 활짝 피어난 꽃잎 같아 화려하게 핀 연꽃 형상이라고 해야 할까. 각 층마다 네 귀의 공포 조각은 또 하나의 꽃 같이 아름답고 목조 특유의 부드러움과 아늑함이 있어 친근하고 포근하다. 석가모니의 성도 과정의 깨침을 뜻하여 팔(捌) 자는 깨칠 팔 자라 한다. 물론 여덟 팔로도 쓴다. 각 층의 모서리에 귀면 상을 붙여 모든 악을 물리치고 있다.
쌍계사, 선암사, 범어사에서도 볼 수 있었고, 다른 큰 사찰이라면 팔상도가 걸려있는 전각이 있기 마련이다. 모두 다 한 눈에 팔상도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법주사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성도 과정인 팔상도를 한 눈에 다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우선 팔상전 앞의 배례석에서 예의를 갖추고 육바라밀을 의미한다는 여섯 계단을 올라 전각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한 눈에 팔상도를 다 볼 수 없다. 특이하게도 밖에서는 5층으로 되어 있으나 안에서는 한 통으로 되어 있다. 마치 금산사 미륵전이 밖에서는 3층인데 안에서는 한 통속인 것과 같다. 그리하여 가운데는 4면 벽으로 된 통 기둥이 상륜부까지 이어져 있다. 한 면의 벽에 두 폭씩 석가모니의 팔상이 걸려 있다. 팔상을 다 보려면 한 바퀴를 돌아야 하고 그리되면 자연히 부처님 일생을 참배하는 탑돌이를 하게 된다. 그리고 두 면의 팔상도 밑에 부처님의 법륜상이 앉아 있고 나머지 앞면은 항마촉지인 상과 뒷면은 열반상이 누워 있다.
법주사는 신라 시대에 창건한 의신조사의 뜻대로 속세를 떠나 인도로부터 가지고 온 불법의 진리를 펼 수 있는 터임에 틀림없었던 것 같다. 천여 년의 세월을 넘기면서 소실되고 중창을 거처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펼쳤던 불법의 진면목들이 있었다면 어디에서 구현되고 있을까. 속세를 떠나 깊은 산에서 불도를 닦으며 진리의 빛을 밝혔던 법력에 의해서 오늘날 이 세상이 이렇게 발전했을까. 이 가람에 석등이 네 기나 있는 것은 그를 입증하는 것도 같다. 특히 국보 5호로 지정된 쌍사자 석등의 아름다운 조각이 대변하듯, 진리의 빛을 드높이 올려 두루 비추려 쌍사자가 온 힘을 다 해 화사석을 떠받치고 있지 않은가. 석등을 받치고 있는 사자 둘이 서로 무슨 말을 하는 듯도 하며, 두 발에 예쁜 신발까지 입고 키 발까지 세워 화사석을 돌리고도 있는 것 같다. 그 오랜 세월 키 발로 석등을 받치고 있노라 힘들었을 텐 데도 그저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그리하여 천 오백여 년 동안 세상은 변하여 조용하던 절 집 문턱 앞까지 자동차와 사람물결이 밀려드는 것일까. 대형버스가 물밀듯 들어오며 오리숲길 앞에는 저자거리가 야단법석이 따로 없다. 번뇌가 곧 보리(깨달음)이며 중생이 부처이고, 승속(僧俗)이 하나가 된 세상이 된 듯하다. 언뜻 보기에 법주사의 가람 배치가 어수선한 것 같음은 원래의 배치가 후에 변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원통전 앞에 '희견보살상'이란 석조인물상이 있다. 이는 보살상과는 거리가 먼 형상이다. 이 석조인물상이 희견보살이라 명명된 것은 조선시대에 와서 새로 해석된 신앙을 나타낸 것이란 설이다. 이 석조인물상은 '봉(捧)향로 공양자상'으로 부를 수 있으며 불법의 가르침을 얻기 위하여 온 몸을 태우며 공양을 드리는 모습이기도 하다. 일제시대의 사진을 보면, 당시에는 석조인물상의 앞쪽에 본래 미륵불상을 모셨던 전각, 산호전(용화전)이 있었다. 가람 배치 면에서 미룩불과의 관련성이 있다. 따라서 석조인물상은 미륵불을 향해 향을 공양하는 모습의 공양자를 표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동서 축을 일직선으로 석등과 석연지의 존재, 석조인물상 뒤에 석등, 석연지를 한 줄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이는 미륵불에 대한 일련의 공양 (향공양, 등공양, 정수공양)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당시의 법주사는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이었다. 통일 신라 이전에는 이 지역이 삼국의 접전 지였으므로 백제 유민들이 미륵하생을 기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륵도량을 세웠다는 설이다. 금산사를 창건한 진표율사가 백제 유민으로써 미륵사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금산사에서 이룩하고자 했던 뜻을 법주사의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잇고자 하였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지금은 가람배치 축이 달라졌다. 일주문과 대웅보전까지 남북일직선 상 금강문과 사천왕문, 팔상전과 쌍사자 석등이 배치되고 옆으로 원통보전과 미륵불이 배치되어 있다.
마곡사 대광보전의 비로자나불은 동쪽을 향해 앉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5층 석탑이 그 앞에 있다.
뭐니 해도 사찰의 주 전각은 대웅보전이다. 이 전각의 지붕은 2층이지만 내부는 통청이다. l층이 높아 2층 탑 같은 형상이다. 공포가 많은 다포식이어서 화려하고 계단돌도 예쁘다. 이런 전각은 마곡사에서도 같은 형태의 대웅보전을 볼 수 있다. 마곡사에는 대웅보전 아래에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보전이 따로 있다. 대웅보전에 들어가서 예를 올렸다. 보통 대웅보전의 주불은 항마촉지인 상의 석가모니불인데, 주불을 비로자나불로 모시고 있다. 수인의 지권인도 왼손을 감싸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로 보아 '대적광전'이라고 하지 않은 까닭은 알 수 없지만, 대웅보전의 삼존불이 이 사찰의 품을 말하고 있다. 지금의 시대가 부르는 것은 화엄사상일 지도 모르겠다만, 화엄사상과 미륵사상, 불교의 법 전체가 한 통으로 형상화된 것으로도 보인다. 법주사는 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삼라만상의 대응과 조화의 이치를 상징하는 것이고, 그와 같은 이치에 인간이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모든아름다운생명들!
마곡사의 대웅보전도 법주사의 대웅보전과 같이 2층 탑 형이다.
"단풍이 들고 국화가 만발할 때 사람들이 놀고 즐기는 것이 봄에 꽃과 버들을 즐기는 것과 한가지다. 사대부 가운데 옛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중양일(음9월9일) 에 높은 곳에 올라 시를 짓는다."라고 <일양세시기>에도 말했지. 시월 마지막날의 밤 안개를 가르고 이른 11월의 첫날 오늘의 나들이가 그런 날이었던가 싶다. 부처님을 참배하여 마음도 맑히는 은혜를 입었고 단풍도 즐겼다. 찹쌀 전병에 감국을 눌러 부친 감국전 이나 그윽한 국화주을 대신한 머루주와 찹쌀 떡 한 조각과 맥주 한 잔에 마른안주 등이 충분한 감흥을 돋우어 주었다.
(200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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