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내내 아름다운 배우, 최진실의 죽음은 나라를 온통 뒤흔덜어놓고도 남음이 있었다. 파란만장하지만 짧았던 삶을
살았던 그녀를 추모하면서도 극단적인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적 고통이 야닯고 안타가워 나까지 우울해졌었다.
더이상 그녀의 밝은 웃음을 지켜볼 수 없다는 사실은 그녀를 사랑했으나 그녀의 삶에 무심했던 내게도 슬픔을 감염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와중에 예정된 건강 검진을 받기 위해 지정병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회복단계에 들어간 지안을 병문안하느라 정릉엘 다녀왔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은 어떤 형식으로든 살아거거나 살아내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소독약 냄새와 함께 나를 숙연하게 했다. 살이에 대한 시니컬한 심정이 떠나간 여배우를 추억하는 일과
겹쳐지면서 나는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황망히 떠올린다.
나무는 제 생이 다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도 몸을 누일 수가 없다. 미물들조차 죽을 때만큼은 몸을 눕히고 편히
생을 마감하는데 서럽게도 나무는 죽을 때까지 누워 쉴 수가 없는 운명이다. 조학한 육신을 굉음의 전기톱이 순식간에
밑둥까지 잘라내고 나서야 비로소 힘든 몸을 땅위에 눕힐 수 있다. 그나마 수명이 다한 나뭇가지들은 온몸에 저장했던
수분들이 먼지로 변한 지 오래여서 손끝으로 툭 건드리기만 해도 풀썩, 하고 바스라질 것만 같아서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몸을 세워서 있었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태초에 나무는 神으로부터 죽음에 대한 어떤 언질이라도 받었던 것은 아닐까.
상상력이 여기까지 이르면 나는 나무에 대한 경건함이 연민을 넘어서 나무를 향한 겉잡을 수 없는 애정으로 몸이 떨린다.
오늘따라 유난스러울 정도로 마른 풀 냄새가 코끝에 스민다. 무더웠던 여름내내 제 몸속에 가뒀던 초록물을 다 토해내고
스스로 말라가는 쇠락의 냄새가 서럽기는 커녕 푸근하다. 수명이 다하기 전에 스러져간 나무의 삶과 한 여배우의 삶을
추억하는 일에 나의 센티멘탈을 겹치는 일은 에고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무는 단지 나무의 삶을 살았을 뿐인데 말이다.
죽어서 늘 푸르고 올곧은 한 그루의 나무가 되 싶다는 나의 바람은 차라리 허영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사진출저: 고 최진실 홈피와 네이버에소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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