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榮華
조윤수
지난 추석은 서울에서 보냈다. 김포에 있는 한재사당의 가족묘에 예를 올렸다. 한재 이목(寒齋 李穆)은 시댁 종조 시조이기도 하니까 사당에 참배하는 일은 모든 조상을 추모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재寒齋 이목(李穆(1471-1498)은 18세기 초의선사의 茶고전으로 알려진 '다신전'과 '동다송' 보다 300여 년 앞서 우리의 최초 茶書인 <다부(茶賦)>를 지으신 분이다.
추석이라지만 음력과 양력이 같이 가는 해라서 늦더위가 심했다. 다정 앞뜰에 차밭의 푸른 기운이 힘차게 보였다. 차나무의 생장이 추운 지방에서는 어렵기 때문에 처음에는 하우스 안에서 길렀다. 가지 밑을 살펴보니 드문드문 차꽃이 피었고 옥구슬 같은 봉오리도 여기저기 보였다. '염부단금' 같은 꽃술이 말이다. 소담스런 꽃술은 꼭 금가루 같지 않은가! 맑은 향을 은근히 내어주는 귀엣 소리! 바야흐로 가을의 영화(榮華)가 열리는 것이다.
식물이 가장 영화를 누리는 때는 꽃피는 시절이다. 아니 모든 생명이 그러할 것이다. 이른봄이 되면 조용하던 겨울 들녘에서 작은 풀꽃으로 시작되는 꽃 소식이 즐비해진다. 매화, 산수유, 목련, 살구, 복숭아, 그리고 벚꽃에 이르면 꽃피는 4월의 절정이 아닌가. 그리고 여름을 익어 가을이면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그것들만이 다는 아니다. 여름이나 가을에 또는 겨울에 영화를 보는 식물들도 많다. 줄기 끝에 꽃등을 조롱조롱 달고 붉은 빛을 반짝이는 게발선인장은 내 옆에서 겨울을 영화롭게 하며, 화분의 차나무는 차운 공기에도 아랑곳없이 영화로운 꽃을 피우고 있다.
색다른 멋과 속내를 지닌 식물들도 있다. 상사초라는 꽃은 여름에 다보록하니 잎만이 올라와서 무성해진 후 꽃을 만나지도 못한 채 잎은 지쳐버린다. 잎이 진 자리에 여러 꽃대들이 올라 와 그 끝에 꽃송이를 매달기도 한다. 절 귀 마당에 많이 심기도 하는 상사화는 잎과 꽃이 서로 만날 수 없어, 서로 그리워한다 는 그 꽃의 전설들을 모르는 이가 없다. 흔히 꽃무릇이라고 불리는 꽃도 상사화와 같아, 늦여름에 실핏줄 터지는 정열의 꽃술을 화려하게 토해낸다. 그런가 하면 너무나 유명한 蓮花. 불교에서 진리를 상징하는 꽃으로 여기는 연꽃은 '방화직과'芳花직菓'다. 꽃이 피면서 열매도 동시에 맺는다. 원인과 결과가 동시라는 뜻이다.
어디 그 뿐인가. 9월 마지막 날 청원군 낭성면 무성리 마을의 누런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영조임금 태실을 오르던 길에서 가을이 이렇게 영화로운 것임을 절감할 수 있었다. 아직 추수가 이른 들녘이 황금열매를 단 벼이삭들, 둔덕에 펑퍼짐하게 널려 있던 호박을 빛나게 하던 붉은 홍초, 태실 오르는 풀밭 언덕길의 예쁜 여귀들과 산괴불꽃들이 어우러져 은빛 살결 살랑이는 억새꽃들. 아무리 밟아도 다시 일어나는 질경이 꽃들.
영조임금의 태실에 오르면서 나 또한 영조임금이 그리 하였던 것처럼 한재 선생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영조임금은 당시 어지러운 당파 싸움과 반궁까지 들어온 음란한 잡악雜樂을 모든 유생들이 관람하는 등, 사기士紀가 바르지 못함에 개탄한 영조대왕은 "오늘날 이목의 무당에 대한 곤장의 士氣가 있었던들 어찌 저런 일이 있으랴!" 하며 만고에 우뚝한 선비의 표상으로 추앙하였다는 점이다. 영조태실의 의미가 가을의 영화 속에 새롭게 다가온 것은 영조임금이 한재를 그리워했다는 대목이 새삼스러웠던 것이다.
1495년 이목선생이 저술한 다부는 賦詩文形으로 쓰인 차의 예찬서이다. 다른 고전과 달리 내가 주목하고 지침서로 사랑하는 까닭은, 다부는 15세기까지에 탐람探覽할 수 있는 茶고전과 경서를 섭렵한 여즙의 저술로 차생활을 통한 수신구도의 自誡書이기 때문이다. 28세에 절명가를 짓고 홀연히 세상을 걷어찰 수 있었던 절개를 무엇으로 가늠할까만, 30여 년의 차생활에서 겨우 짐작할 수 있는 그의 차정신을 그는 벌써 깨우치고 차나무 같은 성정으로 사셨던 분이기에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다. 사당 앞의 차나무의 푸르름과 꽃의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그의 정신이 사후 몇 백년을 넘어서 빛을 발하는 것은 올곧은 선비정신이 차나무의 정신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란 것을.
흔히 사군자를 으뜸으로 곱을 수도 있으나, 어떤 나무 중에서도 차나무만큼 영화로운 나무가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이태백도 노래했지. '형주, 옥천사, 청계 여러 산에 차나무가 널려 있는데, 가지와 잎이 푸른 옥 같으며 옥천사 진공이 늘 따 마신다'고 했다. '천선인귀구애중天仙人鬼俱愛重. 천, 선, 인, 귀, 모두 愛之重之하니 네 품물品物됨이 진실 기절함을 알겠구나'
차나무는 '밀엽토선관동청密葉鬪霰貫冬靑'하는 나무다. 떨기나무가 대부분이지만 중국의 茶王樹를 보면 느티나무처럼 큰 나무도 있다. '잎 촘촘 싸락눈 겨뤄 삼동 푸르게 뚫고' 새순을 온전히 내어준다. 초봄의 새순은 지난해의 열매를 같은 가지에서 상봉하고 영화로웠던 가을의 이야기를 듣는다. 초의 선사의 동다송 2송에 그랬지, '소화탁상발추영素花濯霜發秋榮 서리 씻긴 흰 꽃 가을 영화로이 피었네'. 가을에 꽃이 피고진 자리에 맺힌 열매가 봄에 맺혀 여름을 키우고 가을로 와서, 같은 가지에서 동생 꽃과 만나는 해후를 누리고 그 익은 열매는 떨어진다. 그래서 '화실상봉수花實相逢樹' 라 하니 꽃 중에 이보다 더 영화로운 꽃이 어디 있단 말인가.
송나라 때 주돈이는 그의 '애련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余謂 菊花之隱逸者也 牡丹花之富貴者也(여위 국화지은일자야 목단화지부귀자야)
나는 국화꽃은 숨어서 여일하는 자요, 목단꽃은 부귀자이며,
蓮花之君子者也(련화지군자자야) 연꽃은 군자라 말하겠노라.
噫! 菊之愛 陶後鮮有聞 蓮之愛同予者何人(희! 국지애 도후선유문 연지애동여자하인)
아, 국화사랑은 도연명 이후 듣기 드물고, 연꽃을 사랑하는 자는 얼마나 되겠는가!
꽃을 좋아하지 않는 자는 없겠으나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뜻이겠다. 오늘날 차 생활이 범람하고 있지만, 이목이 사랑하고 살았던 茶精神으로 얼마나 사랑하는 지 의문이 되기도 한다. 차나무 사랑이 그에 못 미치니 나 세상 떠난 후에 이 차 사랑을 이어갈 자 있어 얼마나 나를 기억해 줄까. 짧게 살았어도 굵게 살아 그의 정신은 후세 대대로 다인들에 의하여 회자될 터이니 위대한 삶이었다.
올해는 추석 때부터 경기도 한재사당에서 차나무 숲에서 그 어른을 추모하고, 10월에는 전주 중인리 친구 집의 정원에서도 차꽃들을 만났다. 시월이 익어갈 때 차지기 네 집의 차나무 정원에는 차꽃들이 만발하여 은은한 꽃향기에 둘러싸여 그들의 영화가 은혜로웠다. 토실한 차씨앗을 구하고 차꽃도 허락하여 이 겨울에도 그 영화를 마신다. 한재사당 앞의 차나무에 꽃이 피고 늘푸른 잎들이 생전의 선비정신을 빛내는 것처럼 사후에까지 생의 정신을 남길 수 있는 삶이라면 영화로우리라. (2008 겨울)
2008년 12월에 핀 차꽃
2009년 1월 23일 금요일 서울 가기 전에 이렇게 구슬 같은 봉오리가
일주일 후 다녀와서 보니 홀로 피고 있었다. 빨래도 널지 않는 찬 베란다에서
과연 삼동을 뚫는구나, 금술의 향이 감동적인 생기를 주네
가을부터 젖꼭지 만하던 구슬이 겨우네 크더니...
2009년 2월 1일 차꽃 피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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