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소쇄원에서 겨울눈꽃맞이

차보살 다림화 2009. 12. 21. 12:06

 

[소쇄원] 시냇물 서늘히 벽오동 아래로 흐르니

허리를 낮추고 손님을 맞는 자세로 마련한 밀알의 터
  
소년 양산보는,
어린 시절 계곡에서 놀다 아름다운 풍광에 반해
그 자리에 별서 정원을 세우리라 마음먹었습니다.
허리를 낮추고 손님을 맞는 자세로 겸손한 생활을 했던 그는,
송강 정철이나 면앙정 송순 등 많은 문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 유적인 '가사문학'을 탄생시킨 밀알의 터,
소쇄원을 마련합니다

 

 

 

뜨거운 볕 아래서 흘렸던 여름날의 땀을 씻어주었던 대나무 숲. 소쇄원 입구로 들어서면 대나무 숲길이 S자 모양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며
이마에 서늘한 기운이 닿았지요. 하늘을 가리는 대나무 숲에 드리워진 그늘에 흰눈이 쌓였습니다. 소쇄원을 떠올릴 때마다 더불어 그려지던

그림과는 아주 색다른 대나무 다운 대나무 숲길입니다.

소소거리며 부딪는 댓잎 소리가 옷깃을 여미게 하는데, 저들끼리 무어라 소곤거리나 엿듣고 싶었으나....

아마도 날씨가 추운 다음에야  가치가 드러나는 선비의 정신을 생각해보라는 뜻으로 새겨봅니다.

 

 

 

 

 

 

 

 

소쇄원을 '별서정원(집 근처 경치 좋은 곳에 지은, 문화생활과 전원생활을 겸할 수 있는 정원)'으로 일구고 가꾼 사람은 중종 때의 양산보(梁山甫 : 1503~1557)입니다.
16세기,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능주로 유배되자 그의 문하생이었던 양산보는 스승을 따라 능주까지 따라갔다 낙향하여 생을 마칠 때까지 은둔하며 살았습니다.

 

 

 

 

 

 

 

 

 

 

 

 

 

 

 

 이 다리를 건너면 광풍곽과 제월당에 오릅니다.

 

소년 양산보는 마을 뒤 계곡에서 놀다가 물오리를 따라 거슬러 지금의 소쇄원이 있는 곳까지 올라온 적이 있었는데, 너무 아름다운 풍광에 반해 '언젠가는 이곳에 집을 짓고 살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합니다.

낙향하여 벗들과 교류를 즐기던 양산보는 30대에 이르러 소쇄원의 조영에 들어가 40대 초반에 이르러 완공을 했고, 벼슬길도 마다한 채 부모에게 효를 다하며 소쇄원에 묻혀 지내다 50대에 생을 마쳤습니다.

 

 

소년 양산보가 어린 날 뛰어놀며 꿈을 키운 계곡에 자리한 소쇄원은, 깨끗하고[瀟], 시원한[灑] 이름에 걸맞게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모양새로 너르게 자리한 곳이지만, 양산보의 15대 장손은 '소쇄'의 의미를 '속세를 떠났다거나, 처량하다'는 의미로도 풀이한 걸 보면, 소쇄옹이라 불리우길 바란 양산보의 은일자적인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곳이기도 합니다.
소쇄원을 이루는 뜰 안의 곳곳은 어느 정자, 어느 돌담 하나 주인의 정성과 세심한 배려가 깊게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1,400여 평의 정원 마당 입구로 들어서면 왼편으로
처음 만나는 정자는, 대나무 숲길이 끝나는 곳에 짚을 이어 지붕을 얹은 '대봉대(待鳳臺)'입니다. 손님[客]을 봉황처럼 귀히 여기겠다는 주인의 속깊은 배려에 그곳을 찾은 나그네의 어깨는 절로 으쓱해지기도 합니다.

계곡이 얼어붙은 한겨울에도 눈이 녹지 않았을 정도로 유난히 볕이 바른 곳에 자리하여 이름 붙여진 '애양단(愛陽壇)'은, 부모님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는 공간으로 효(孝)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담장 안에는 애양단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담장 밖으로 해서 오곡문을 통과하면서 정원 밖의 풍광과 어우러짐을 보고 싶었습니다.

 

애양단 밖으로 해서 조금 꺾어들면 물길을 틔우느라 담 밑에 구멍을 뚫고 계곡을 가로질러 쌓은 흙담이 나오는데,

흘러든 물이 암반 위에서 다섯 굽이를 이룬다 하여 '오곡문(五曲門)'이라 불리웁니다.
야트막한 담장에 기와를 얹은 지붕도 특이하거니와 거스르지 않는 순환의 흐름을 즐기려고
두 구멍을 파 놓은 마음 씀씀이가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얼핏 '개구멍'처럼 보이기도 해 허리 구부리고 드나들다 숨바꼭질 하며 장난치고 싶어집니다.

 
 

 개구멍 같은 이 구명을 오곡문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

 

 

 

 

소쇄원 48영가(詠歌)를 지은 양산보의 벗 하서 김인후(1510~1560)는

'담장을 뚫고 흐르는 계곡 물'에서 담장과 계곡의 절묘한 조화를 칭송하기도 했습니다.

 

걸음 걸음 물결을 보고 걷자니
한 걸음에 시 한 수 생각은 깊어지는데
흐르는 물의 근원을 알 수 없으니
물끄러미 담장 밑 계류만 바라보네.


 

 

 

오곡문 옆으로 외나무 다리 하나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이 다리를 건너야만 소쇄원의 본 마당에 들어서며 다리 건너 두 갈래 길을 따라 각각

'광풍각(光風閣)'과 '제월당(齊月堂)'이 자리합니다.

 

 

 

 

 

 제월당 마당에서

 

 

오곡문 옆으로 외나무 다리 하나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이 다리를 건너야만 소쇄원의 본 마당에 들어서며 다리 건너 두 갈래 길을 따라 각각 '광풍각(光風閣)'과 '제월당(齊月堂)'이 자리합니다.

 

 

 

 

 

 

소쇄원 곳곳을 넘나드는 물소리 바람소리는 '광풍각(光風閣)'에서 가장 잘 들린다고 합니다.

사방이 개방된 마루로, 가운데 한 칸만 온돌방이고 정면과 측면 각 세 칸의 팔작지붕인

광풍각은 손님맞이 사랑방입니다. 소쇄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한 중심 공간이기도 합니다.

 

 

 

 

 

 

 제월당 벽에는 소쇄원 48영을 새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달빛에 절로 밝아지는 방' 제월당은, 소쇄원의 가장 높은 양지에 있는 곳으로 늘 밝은 볕이 들어 주인이 사색하고 책을 읽던 공간으로

손색이 없는 곳입니다.

  
학자, 예술가 등 양산보와 교류를 나누던 벗들은 꼭꼭 걸어잠근 대문이 없어 제집처럼 드나듦에 스스럼이 없었고,

자연이 내뿜는 너그러운 내음에 동화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세상사를 나누고 시를 읊으며 가슴속에 넘쳐나는 흥취를 가다듬었을 것

또한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옛날의 선비들의 사색 공간이었던 정원을  관광객이 되어 산책하면서 전설의 이야기로만 접어두어야 할지를 고민합나다.

각자의 집은 대문도 현관도 꼭꼭 걸어 잠군 뒤 이런 공간을 찾아 들면서 옛 숨결을 느끼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기분 전환만으로  지나치지 못하는 이 시대의 당면 과제들이 너무도 많은 것이 또한 사실임을

 더욱 뼈에 사무치는 뭔가가 있음이 절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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