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2010성탄절 인상과 우리동네 눈구경

차보살 다림화 2010. 12. 28. 03:01

 

 

2010년 성탄절의 인상

 

                                                                           조윤수

 

 

 

 

성탄절 전 날은 매서운 날씨였다. 모임이 있어 나갔다가 한옥마을에서 저녁을 먹고 나니 어두워졌다. 전통의 거리는 크리스마스와는 어울리지 않아서인지 조용했다. 전동성당의 불빛이 아니면 청사초롱만 고요한 밤을 깜박일 뻔 했다.

내 청춘 한 때의 성탄절이 생각났다. 그 시절은 문화의 컨텐츠가 모두 서울 명동에 집결되어 있었다. 예술의 전당인 국립극장도 명동 네거리에 있었다. 내가 다녔던 직장이 서울시청과 명동입구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성탄절과 연말연시로 이어지는 문화행사의 분위기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자정이 가깝도록 명동성당으로 올라가는 길은 사람들의 물결 따라 캐럴송의 리듬도 넘실거렸다. 그 시절의 사람들의 물결은 어디로 밀려갔을까.

나이 들면서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점점 빛바랜 사진처럼 퇴색해졌다. 평범한 하루가 특별한 날보다 좋은 날임을 점점 깨달았기 때문이지 싶다. 나날이 성탄이 될 수 있도록 기도했으니까. 그래도 범세계적인 축제날로 정해진 날임에……. 전동성당의 빛 장식이 아름다워서 성당으로 들어갔다.

성당 건물의 맨 꼭대기 돔의 창문 불빛과 커다란 인공별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당에도 빛탑이 서 있고, 성모상 주변에도 조배할 수 있도록 빛을 밝히고 있었다. 성당 안의 천정과 주변의 건축미를 새삼 살펴보았다.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합쳐진 것 같은 모양의 건축조각들이 불빛에 드러나서 새삼스레 아름다웠다. 전동성당의 신도들, 어린이에서 노인들까지, 모든 신심단체들이 각각의 장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자정미사를 올리기 전까지 식전의 공연행사였다. 레퍼토리는 주로 크리스마스 캐럴과 우리의 대중가요 한 곡을 선곡하여 율동을 곁들여 불렀는데 즐거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전통적으로 불러온 캐럴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기쁘다 구세주 오셨네>, <울면 안돼, 울면 안돼> 등이었다. 학생들의 재미있는 연극도 있었다. 50년 전, 중앙성당에서 크리스마스 전야제 때 연극공연을 하였던 사진도 떠올랐다. 그때는 성당 안에서 그런 행사를 할 엄두는 내지 못했기에 마당에 무대를 마련했었다. 성탄절을 앞두고 중고등학생회원들은 추위도 아랑곳없이 연극연습을 열심히 했었다.

‘울면 안돼, 울면 안돼, 우는 아이에게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신대요.’ 산타할아버는 이 무렵이면 엄마의 ‘빽’이 되어 우는 아이를 달래는 힘이 되었다. 나도 내 딸아이가 어렸을 때 마루에 전깃불 트리를 만들고 이 노래를 자주 불렀다. 투정부리는 아이를 달래는 데는 안성마춤의 노래였다. 그 노래의 꿈을 먹고 자란 아이가 커서 다시 엄마 되어 자기도 아이에게 이 노래를 불렀고, 또 오늘 많은 사람들이 역시 이 노래를 부른다.

6.25 전후 세대들에게는 미국의 산타할아버지가 보내는 구호물자가 있었다. 어린이들에게는 구호물자의 유혹은 절실했고 대신 예배당에 가야하고 성당에 가게 되었다. 나는 전쟁으로 얻은 엄마의 병 때문에 약을 타러 부산 앞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미국메리놀병원에 언니와 함께 자주 드나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찔레꽃 같은 하얀 꽃관을 쓰고 세례도 받고 엄마와 같이 성당에 다녔다. 그때 집 방문을 다니던 수년님들의 모습은 구원의 상징이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공부밖에 모른다고, 수녀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었다. 딸이 넷이나 되었으니 하나쯤은 하느님께 봉헌해도 되지 싶으셨던 게다. 남자가 되기를 바랐던 부모의 기대와 달리 셋째와 넷째까지 여자로 태어났으니! 일생을 살고 보니 어쩌면 부모의 기대대로 살아온 것 같다. 수녀복은 입지 않았으나 성직자들의 생각을 알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얻은 천주교 신자의 명분은 인생의 중년까지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시대의 신자들을 구호물자 신앙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어느 성탄절에 받았던 구호물자 선물은 환상적인 것이었다. 차라리 그것이 초콜릿이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먹으면 없어져버리는 것이 아닌 한 상자의 양초셋트였다. 상자의 뚜껑을 열면 산타할아버지 모형의 양초가 몇 십 개나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때는 신기하고 귀한 것이었다. 지금도 눈에 선한 그 선물을 소중히 간직하다가 실제로 태워 봤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전깃불이 자주 나가도 그 양초가 아까워서 태울 수가 없었다. 순전히 장식용이었으니까. 구호물자 속에 스며든 미국정신에 물들여지는 것을 어른이 되도록 자각하지 못했다.

그런 양초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성탄절 트리 대신에 지금은 사회적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촛불 시위로 쓰이게까지 되었다. 더욱이 미국과의 FTA를 반대하는 시위에도 쓰였다니 참 아이러니했다. 미국의 양초들의 환상적인 유혹이 북한을 매료시킬 수 있는 촛불이 될 수는 없었다. 기독교의 참 정신을 밝힐 수 있는 진정한 촛불의 의미로 태워졌어야 했다.

미국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성경책 위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한다.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유언이 참 무색하다. 2천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참 그리스도는 온 것 같지 않다. 아직도 계속 오고 계신가. 2천 년 전의 예수님은 당신으로 인하여 세계의 정신이 갈라지게 되고 종교전쟁까지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을까? 하긴 성서에 “내가 평화를 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려 왔다.” 하였으니…. 과연 그렇다. 그 칼의 싸움이 어떻게 끝이 나야 평화가 온단 말인가.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부와 권력에 아부하는 비굴함이 삶의 언저리를 맴도는 일, 그 불편한 진실을 우리는 덮고 있지 않은가. 권위와 힘을 앞세워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약자들을 자신의 틀에 맞추기 위한 노력을 자랑으로 여기는 많은 사람들의 무리가 세계를 받치고 있는 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모든 관계의 갈등이 그렇다. 정치나 경제 분야의 운영자들, 세계를 주름잡는 자들, 개인의 내면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사회도 나라도 세계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평화를 만들어주는 사람은 따로 있지 않다. 하느님조차도 아닌 것을.

전동성당 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교회나 성당에서 자정이 되기까지 크리스마스 전야의 캐럴이 울렸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끊임없는 혁명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혁명은 반드시 고정을 깨고 부서지는 아픈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아직도 세계의 평화는 그러한 고난의 긴 여정 위에 있는 것인가. 어느 특별한 축제기간 캐럴을 부르면서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다가 지구가 멸망할 징조인 폭풍 전야 같은 고요한 날을 맞는다면 어쩔까. 그런 때가 새로 시작하는 날이 될까.

공연이 다 끝나기도 전에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추어져서 자정까지 있을 필요도 없었다. 이제 ‘고요함과 거룩함’이 내 안에 있음을 알았기에. 모든 생명들이 삶을 영위하는 과정이 참 거룩하지 않은가. 캐럴송에 이끌려서 거리를 서성이지 않아도, 미사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진정한 미사가 무엇인지 알아버렸으니 어느 순간에도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그 정신을 실행할 수 있으면 성스러운 성탄이 될 것이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감사하다.

 

 

 

 

 

 

 

 

 

 

 

 

 

 

 

 

 

 

 

 

 

 

 

 

 

 

 

 

 

 

 

 

 

 

 

 

 

 

 

 별이 떨어지네요! 유성이예요, 빨리 소원을 빌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