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트라우마, 부산 비엔날레에서

차보살 다림화 2010. 12. 27. 13:57

 

 

트라우마, 전쟁의 기억

                                   조윤수

  올가을 나는 두 번이나 통곡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서양화의 이해’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다. 교수는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현대예술가들을 소개했다. 지난 세기의 모든 예술 장르들이 현대에 와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인가. 유럽의 전위 예술가들의 퍼포먼스의 영상을 본 것이다. 우리들은 예술을 접하고 평화와 행복 그리고 안식을 취하고자 한다. 보통은 미술을 접하면 즐거움을 체험하기 때문에 좋아하고 예술 행위를 하고자 한다. 예술이란 우리들을 편안하고 즐겁게만 하는 게 아니란 것을 절감한 날이었다. 진 ․ 선 ․ 미가 예술의 발로라면 과연 무엇이 진선미란 말인가. 진리, 진실, 사실 등. 그날 진실의 적나라함이란 보기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하여 생각했다. 우리들은 진실을 회피할 때가 많다. 진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나와 상관없는 일은 회피하고 모른 체 하기 쉽다. 감추어 둔 진실 때문에 우리 사회는 맑지 못하고 혼란스러울 때가 많은 게 아닐까.

  불편한 진실을 알고 가만있을 수 없는 예술가들은 참으로 용감하다. 유럽의 전위예술가들의 퍼포먼스는 전쟁 반대의 표현이었다. 마치 현대의 십자가형을 재현한 것 같았다. 전 세계에서 동참한 천여 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오스트리아에 운집하였다. 전쟁의 처참함이 어떤 것이란 것을 몸소 실현한 것이다. 동물이 죽어서 피를 흘리고 있는 장면과 행위자들이 정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로 십자가 형틀에 매달려 피를 흘리고 있었고, 행위자들 모두가 준엄한 의식을 치르며 전나(全裸)로 호소했다. 무언의 반전운동이었다. 끔찍하고 놀라운 장면들은 전장을 최고조로 승화시킨 효과를 내었다. 난생 처음으로 이런 퍼포먼스를 보았다. 그런데 실제 그 현장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독일에 있었던 교수는 이 퍼포먼스의 참가를 놓고 많이 고민했다고 한다. 한국인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오스트리아에서 이 퍼포먼스를 주최한 예술가는 그 행위 후에 오스트리아에서 추방당했지만 독일에서는 받아들여졌다. 그런 실정이었으니 이 영상을 한국에 소개했던 우리나라 여자 교수님은 지탄 받을 일이었을까. 예술가들의 참을 수 없는 양심의 표현이었다. 무서운 진실 앞에 가슴이 몹시도 아팠다. 너무나 충격적인 영상이 많았기 때문에 다 열어 보일 수는 없었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정말 통곡하고 싶네요!” 그러자 교수님은 “심정이 예술에 닿아 있어서 그래요.” 실제로 행위의 현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통곡했다고 한다. 지금 다시 흥분한 그때의 심사가 끓어오를 듯하다. 그날 강의가 끝나고 나는 충격을 잠재우려고 이층 전시실을 배회했다. ‘먹이 주는 미학’이 전시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먹으로 그 린 산수화와 문인화 등을 보는 동안 마음을 잔잔하게 가라앉힐 수가 있었다. 그리고는 이상하게도 통쾌하게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예술의 힘인가 했다.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예술 행위가 준 효과.

  또 한 번 통곡하고 싶은 장면은 이번 가을 부산비엔날레에서다. 비엔날레는 원래 대중적인 예술이 아니다. 전위적이고 진취적인 예술가들이 인류의 진화를 위하여 모험적인 예술을 제시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역시나 전쟁의 트라우마를 지닌 예술가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유럽의 한 사진작가의 작품. 그의 어머니는 유대인으로서 독일의 아우슈비츠를 비롯해 여러 수용소를 거치면서 말할 수 없는 처참한 고통 속에서 살아남았다. 작가는 그의 어머니의 책을 통하여 알게 되고 그 수용소의 현장을 모두 답사하였다.  답사한 사진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보다 더 강력한 호소는 그의 영상 작품이었다. 그는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인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는 어머니의 입장이 되어보고자 성전환수술까지 감행했으며 그 과정을 영상에 담았다. 영상실에 들어가면 그가 나체로 여자가 되었다가 남자가 되었다 하는 장면이 반복되어 공중에서 나타나기만 한다. 이해하기는 힘들었으나 얼마나 전쟁으로 인한 깊은 상처 즉 트라우마를 지닌다는 것이 이런 행동으로 나타나는가를 생각했다. 평생을 지배하는 트라우마.

  한국계 미국인 어린이 환경운동가 조너던 리(12)가 베이징 텐안먼 앞에서 중국의 지지를 호소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비무장지대(DMZ)에 어린이 평화숲을 만들자는 주장을 펴는 조너던 리(12)는 22일 오전 10시 (현지시간) 중국 안팎에서 물려온 관광객들로 가득 찬 텐안먼 앞에서 ‘남북 평화협정 체결’, ‘한반도 비핵화’, ‘DMZ에 어린이 평화숲을’이라는 문구가 쓰인 작은 풀래카드를 펼쳤다. 리군은 중국이 평화숲 조성을 지지해달라는 취지의 공개서한을 낭독하기 시작했으나 텐안먼 주변을 지키고 있던 공안들이 달려와 리군의 행동을 제지하면서 ‘깜짝 1인 시위’는 불과 수십 초 만에 끝나고 말았다. 리군은 1인 시위를 하기 전 “북한에 다녀온 뒤 중국이 한반도 평화 조성에 큰 영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후진타오 국가주석으로부터 DMZ 어린이 평화숲 조성의 협조를 받고 싶어 이번 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 그린맨(Go Greenman)으로 유명한 리군의 갸륵한 행위에 내 마음시울이 시큰해졌다.

  봄에 일어난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폭격 사태는 여전히 우리의 안보와 평화에 위험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지구상의 가장 목가적이기도 하고 수많은 지뢰 사이에 30 종류 이상의 포유동물이 살고, 아름다운 동식물들이 살아가는 낙원이면서 가장 위험한 비무장지대를 둔 세계 유일의 분단국. 전쟁의 기억, 다시는 이러한 전쟁이 없어야 한다. 평화를 위한 노력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의 의무다.”

 나에게도 우리민족에게도 전쟁의 상처로 인한 공통 트라우마가 있다. 아직도 우리의 근대 역사의 트라우마를 남북한이 공유하고 있으면서, 결코 잊어서도 안 되지만 잠시 잊을 만하면 남북의 문제는 불거지고 만다. 불씨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 몸통의 허리를 졸라매고 있으니 어쩔 것인가.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있으니. 저 어린 12살의 리군은 얼마나 절실했을까. 나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 절실하고 간절한 그의 심정에 나는 무엇을 보탤 수 있는가. 저 양심의 소리 때문에 이렇게 글이라고 토해놓고 싶었다.

  리군의 행동에 관한 기사를 보고 부끄러웠다. 우리 젊은이들은 안보의식이 없어서 잘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국민들이 각자의 트라우마를 숨겨둔 채 너무나 나태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기 앞의 이익만 따지기에 바쁘지 않은가. 다행히 젊은이들이 이번 연평도 사건으로 인하여 해병대 지원생이 늘었다는 소식이다. 애국심일 수도 있고, 이왕 갈 군대라면 어렵고 위험한 곳에 갔다 와야겠다는 오기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젊은이들의 행동은 북한의 으름장에 대응하는 한 방편이 될 수도 있겠다. 그나마 아름답게 보전될 수 있었던 비무장지대가 다시 쑥대밭이 될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수많은 전쟁의 기억이 만든 인류의 트라우마, 그리고 지금도 통곡하고 있는 연평도 주민들에게 덮친 충격은 언제나 치유될까. (2010/12)

 

 

 *트라우마(trauma): 충격 후 스트레스 장애, 외상성신경증이란 정신의학 용어로 과거의 충격이 현재까지 미치는 것을 말함. 예술용어로도 자주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