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장흥 여다지 해변에서

차보살 다림화 2011. 8. 29. 16:54

 

 

 

 

 

 

 

마르지 않는 문학의 샘 장흥 (2)

 

 

                                                                                              조윤수

 

다음 일정은 여다지(여닫이)해변이다. 숙박지가 있는 곳은 부산면이고 동남쪽으로 내려가안양면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장흥은 남국의 정취가 물씬하게 느껴지는 종류나무 가로수길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한쪽으로만 열리는 여닫이문처럼 육지 쪽 물만 내보내는 수문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란다. 관광공사가 '가장 깨끗한 개펄이 숨 쉬는 아름다운 바닷가'로 꼽은 해변길 600m에 '한승원문학산책로'가 나 있다. 해변 산책로를 걸으면서 느긋하게 시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다. 아침 이른 시간이나 노을 때 왔으면 ‘노을’이란 시가 얼마나 어울렸으랴! '나 그냥 그렇게 산다'에 우선 눈길이 간다.

 

'구름이 물었다 요즘 무얼 하고 사느냐고/ 내가 말했다 미역 냄새 맡으며 모래알하고/ 마주 앉아 짐짓 그의 시간에 대하여 묻고/ 갈매기하고 물떼새하고 갯방풍하고 갯잔디하고/ 통보 리사초 나문재하고 더불어/ …/ 나 그냥 그렇게 산다.'

 

장마 끝에 맑은 날이지만 후덥지근하게 더운 한낮에 바다 빛은 오히려 사막같이 느껴졌다. 마지막 꽃인 듯 해당화 몇 송이가 익어가는 열매와 함께 물결에 비쳐들어 반겼다. 여름 손님들을 보내고 쓸쓸하게 지친 듯한 해변에는 배 한 척이 그림처럼 배경으로 서 있고, 조개껍질들이 줄줄이 모여 있다. 물이 빠진 개펄에서 엎드려 썰매 타듯 바닥의 조개를 채취하는 율산마을 사람들의 삶의 허물들인가. 시인은 그들의 삶을 노래했고 이 바다에 헌시를 받쳤지 싶다.

율산마을 집필실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하늘, 해와 달과 별과 산과 섬과 들판에 내리는 빛과 어둠과 눈비와 바람과 안개와 그 속에 서식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을 다 사버린 해산 선생은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란다. 시와 소설을 쓰는 일에 아주 확실하게 미쳐버린다는 조건으로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고 도깨비와 거래했다. 거기에다 차밭을 600여 평 경영하면서 차를 손수 만들어 마실 수 있으니, 다른 소설은 몰라도 ‘차 한 잔의 깨달음’으로 나는 더 가깝게 느꼈다. 차생활을 수행삼아 하고 있는 나에게는 얼마나 부러운 일이랴! 이번에 방문할 수 없으니 다음에라도 꼭 해산토굴의 차맛을 보러 갈 것이다.

 

문학산책로를 뒤로 하고 안양면을 돌아서 회진면 진목마을의 이청준 생가로 향했다. 바다길 마을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동안 바다 낚싯터와 정남진 전망대 등 풍경이 좋은 그림들이 이어졌다. 득량만의 왼편으로 보성군이고 오른편으로는 강진만으로 이어진다. 정남진이긴 하지만 남서쪽 바다라고 해야 더 마땅할 것 같다. 서해 끝이 남해로 이어지는 곳이지 싶다. 동해바다와 부산 앞 바다에서 청춘의 열기를 식혔던 나는 서해가 가까운 부안이나 군산 바다에서는 늘 갈증이 느껴졌었다. 서해의 정서에는 바다에 생계를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갯벌에 질펀하게 배어있어 애달픈 사연도 많은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동해에서는 일출을 맞으며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고 자신의 의지를 시험해보며 희망을 그리기도 한다. 누가 그랬던가. 동해가 남성적이고 철학적이라면 서해는 여성적이며 문학적이라고. 그래서 서해 가까운 마을에서는 문학인들이 많이 탄생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부산 앞바다와 남해는 역사적이라고 해야 하나 싶다.

달리는 차창 밖은 그림 전시장 같았다. 적당한 거리로 보이는 산 능성이들이 구불구불하게 이어지고 너른 들이 강을 따라 넉넉하게 퍼져 있으며 바다로 뻗어나가는 길가에 종려나무들이 어우러져 마땅히 문화예술인들의 고장답게 보였다. 작가 이청준의 생가로 향하는 길이다. 회진면으로 들어서니 그곳에 천년학영화촬영지가 있다고 했다. 그곳 산이 날으는 학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 문우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산을 바라다보니 양 날개를 펴는 학의 형상인 산봉우리가 보였다.

 

이청준의 생가로 들어가는 골목길을 걸으니 거름 냄새가 고향 냄새인 듯 싫지 않았고 담쟁이덩굴이 그림의 바탕처럼 디자인 된 농가의 담장이 정겨웠다. 이 마을에 들어서자니 선생의 말이 절감된다.

 

“문학은 불행의 그림자를 먹고 사는 괴물이다. 삶의 압력, 현실의 압력이 가중되면 이걸 견뎌내려는 정신의 틀을 만드는 것, 이것이 문학활동이고 문학적 상상력이다. 그러니까 행복한 시대에서는 새로운 문학의 틀이 만들어지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 그렇다면 오늘날 행복한 듯한 시대에 사는 사람에게는 어떤 문학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한다. 풍요의 겉옷으로 부풀리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는 또 다른 차원의 불행의 씨앗을 안고 있으려니 언제나 현실의 압력은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점심시간에 맞추어 장흥 읍내로 돌아왔다. 탐진강 가의 공원이 아름다웠다. 물축제를 열었던 곳이다. 개천이기보다는 강 같은 둔치에 연못까지 조성되어 분수대가 시원하게 물줄기를 내뿜고 있다.

 

내려올 때 갈 수 없었던 가지산의 보림사를 올라가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시간이 없어 비자림 속의 차밭까지는 올라갈 수 없음이 또한 아쉬움을 남겼다. 산이 좋으면 물이 좋기 마련이다. 이곳 약수는 맛이 좋았다. 불유(佛乳) 그 자체다. 깔끔하고 맑고 가벼운 느낌. 이 물을 정법으로 끓여서 차를 우리면 정말 좋은 차맛이 날 게다. 단번에 비자림의 차잎을 따서 비비고 찻물을 끓인다. 모양 없는 다관에다 차잎을 넣고 모양 없는 찻잔에 차를 따라서 비로자나불 철불께 헌차한 후 돌아선다. 마음으로 올린 차 한 잔.

장흥 정남진 리조트에 조형된 푸른 물 한 방울의 의미를 여기서 다시 절감한다. 왜 ‘물방울 관음도’를 그렸는지 그 뜻이 오묘하다. 관음보살의 음성인 듯, 해산의 말씀인 듯 ‘차 한 잔의 깨달음’을 여기서도 얻는다. 강물도 거대한 바다도 물 한 방울이 모여서 이룬 것. 물 한 방울 속에 모든 생명체의 원형이 담겨 있으니 물 한 방울처럼 사람도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모여서 우리임을 알기에, 오늘 다시 고귀한 물방울의 관음을 음미하다. 푸른 물방울 보석을 가슴에 단다.

 

  (2011년 8월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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