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문학의 샘 장흥
조윤수
다섯 손가락이 감싸 쥐고 있는 커다란 보석이다. 저 조형물은 무엇을 형상화한 것일까?
정남진리조트 뒤, 기억산으로 오르는 언덕에 올랐다. 우리가 지나왔던 길 주변과 리조트를 둘러싼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장흥이 물의 고장임을 드러낸 형상이었다. 대형 물방울, 육각을 이어 그린 선이 하얀 줄로 이어져 있다. 육각수를 나타내었다. 한 방울의 물방울이었다.
보석 같은 물방울을 감싸고 있는 손을 보자, 고려불화대전에서 보았던 일명 '물방울 관음도'를 그리게 된다. <물방울 관음도(觀音圖) 저 물방울을 조금 늘어뜨리면 기다란 물방울이 된다. 통통한 버들잎 같은 물방울 안에 그린 관음보살이다. 푸른 색 물방울 안에서 사리를 입은 우아한 보살이 '선재동자'를 맞이해 주는 그림. 700년 만에 돌아온 고려불화대전이 있던 날, 누구라도 그 그림 앞에서 넋을 놓지 않을 수 있었으랴. 세계 어느 불화도감과 소장처인 일본에서조차도 도감에 올리지 않았던 그림이었다. 최초로 그 모습을 드러낸 희대의 명작이다. 소중하게 감싸 쥔 물 한 방울을 보자니 물방울 속의 관음보살이 떠오른다.
행사장은 정남진 리조트
청소년 양영장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 한여름의 피서객들이 물러간 야영장은 한가롭다.
대형 강당은 천장이 높아 매우 시원하였다. 수상자들의 소감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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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청명한 하늘
장흥은 산 좋고 물이 좋은 곳이란다. 어느 곳에서나 적당한 거리만큼 산능성이를 바라볼 수 있다. 보살과 부처의 얼굴을 한 산 능성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요산요수樂山樂水! 지자요수知者樂水라.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장흥은 지혜롭고 어진 자들이 많이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것이 틀림없겠다. 많은 문학인들을 배출한 배경이었다.
2011년 하계수필대학 세미나는 정남진 장흥에서 열렸다. 제11회 수필과비평문학상과 제6회 황의순문학상, 신인상 수상식도 있었다. '수필과비평작가회'의 200여 명의 회원들이 전국에서 모였다. 한여름의 피서객들이 물러간 야영장은 한가롭다. 회원들의 열기가 여름의 막바지의 더위에 더하여 후끈하게 닳아 오르는 듯했지만, 대형 강당은 천장이 높아 매우 시원하였다.
정남진 전라남도 장흥군.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국토의 방위의 기점을 알리는 둥근 표지판이 있다. 그곳을 기점으로 정 동쪽은 정동진이고, 정남진이 장흥이다. 우리 전주 팀은 광주를 지나 나주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서 영산강을 건너고 23번 국도를 따라 장흥군으로 들어왔다. 행사장 가까운 유치면에 들어오니 산과 물이 어우러진 풍경이 보기 좋게 나타났다. 보림사가 있는 가지산을 지나서 남쪽으로 오자니 장흥댐이 길게 물그림자를 드리운다. 중간중간에 망향비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댐을 위하여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안타까운 심정들을 느낄 수도 있었다. 고인돌이 놓여진 '선사유적공원'이 있는 것을 보아 어찌 산과 물이 좋은 곳에 고대로부터 사람이 살지 않았으랴! 유치면에는 자연휴양림도 있고 <슬로시티를 상징하는 한옥민박단지도 있다. 장흥댐을 지나자니 바로 정남진 리조트가 기억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원에 커다란 물방울의 조형물이 장흥의 상징처럼 우뚝 솟아 있다.
시상식이 끝나고 장흥이 낳은 문학인 중 현존하고 계신 대표적인 문학인으로서 아직도 왕성하게 집필을 하시는 海山 한승원님의 문학 강연이 있었다. <시인의 마음으로 살아가기>, 목소리가 폭이 넓고 탁 트이면서도 질박한, 마치 고대 토기에서 울리는 톤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강의는 구수하여 듣기 좋았다. 이야기꾼이었던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도깨비 이야기부터 해산토굴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표적인 이야기 한 토막.
해산 선생의 시 <내 할아버지 이야기>에 나타나 있다.
“할아버지가 밤낚시를 하는데 고기들이 정신없게 입질을 했다.
아흔아홉 마리째 잡아 올리고 난 할아버지가 결리는 옆구리를 외틀고 후유 하고 한숨을 쉬는데 뱃전 밑에서 도깨비가 히히 웃으며 말했다. ‘신나게 한바탕 잡아 올렸지?’ 깜짝 놀 라 구럭 안을 보니, 단 한 마리뿐이다. 할아버지가 구럭에 고기를 던져 넣으면 도깨비가 몰래 가재다가 낚시에 꿰어주고, 던져 넣으면 또 가져다가 꿰어주곤 하기를 아흔 여덟 번 이나 한 것이다. 화난 할어버지가 ‘너 이놈! 나한테 죽어봐라!’ 소리치며 주먹을 그러쥐자 도깨비가 도망치며 말했다. ‘잠시나마 행복했지? 그렇지만 너무 화내지 마라, 한 마리나 아흔아홉 마리나 그것이 그것이니라.”
15년 전, 해산 선생은 고향으로 내려온 뒤 집필실의 이름을 '해산토굴'이란 당호를 붙였다. 잘 모르는 사람은 토굴이라고 하니 토굴에서 삭히는 새우젖을 생각하고 새우젖을 찾는 사람이 있단다. 토굴이란 스님들이 자신의 수행처를 낮춰 지칭하는 것인데, 선생님도 자신의 수행처라는 의미로 붙였다. 같은 사물이나 글자를 보더라도 자기 눈높이나 자신의 관심사대로 읽는다. 시인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란 것. 어쨌든 해산토굴에서 새우젖이 익어가듯 자신의 글도 익을 것이니 그 토굴이나 이 토굴이나 그것이 그것이니라 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 같다.
다음날 문학기행에서 해산토굴은 제외된다고 해서 나는 선생님과 증명사진을 찍었다. 다음에 꼭 해산토굴에서 차를 따서 같이 차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해산토굴의 차맛이 보고 싶어서 기대했었지만, 행사 계획상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
뷔폐식으로 차려진 저녁 식사를 느긋하게 하고 밤이 이슥하여 너른 마당에서 캠프파이어를 둘러싸고 뒤풀이의 즐거움을 나누었다.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는 智者들과 仁者들이 다 모였으니 산이 있는 곳에 물이 있기 마련. 물방울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타오르는 불꽃 속으로 하나의 물결을 이루었다.
숙소가 모자라서 삼삼오오 캠핑카에서 한 밤을 보낸 사람들도 많았다. 하룻밤 풋사랑이 캠핑카에서 채 익기도 전에 추억 속의 사진으로 남았다. 너른 잔디밭의 야외 캠핑카는 다섯 명 정도는 숙식을 할 수 있는 짜임으로 되었다. 밤에 모기 창을 열면 시원하게 달님 별님도 기웃거릴 것 같다.
편백숲우드랜드에서
폭우와 비바람과 태풍으로 얼룩진 나날 속에 가끔 햇볕 쨍하면 반가울 정도였던 이 여름이었다. 9월이 오면 다시 태풍이 하나 더 있다지만, 범람하는 폭우는 이제 그만. 문학기행 날은 쾌청한 날씨에 뭉텅뭉텅 흰구름도 동반하여 장흥의 억불산 기슭의 편백숲우드랜드에 든다. 울울창창한 편백나무들 사이로 산책로가 걷기 좋다. 향그런 숲 속을 거닐다가 벤취에서 혹은 누어서 복식호흡을 마음껏 했다.
목재문화체험관에는 나무뿌리에서 시작하여 나무잎까지 나무에 대한 역사와 쓰임새와 활용도와 숲의 순환과정까지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전시되어 있다. 나무로 만든 실로폰 등 악기도 있어 두드려 볼 수도 있고 나무 침대와 나무의자에 앉아 볼 수도 있다. 한국의 저명인사들의 판각화도 걸려 있다. 숲 속에는 나무집에서 숙박할 수도 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누드 숲도 있다. 입장료를 내고 종이옷으로 갈아입고 삼림욕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단다. 편백숲은 장성에도 있고 우리 고장에도 많이 있다. 장흥편백숲은 다양한 형태로 개발하여 정남진의 특화된 장소로 유명해졌다. 우리고장의 편백숲이 토종이라면 이곳은 세련된 산책로라고나 해야 할 것 같다. 푸른 숲길에 하얀 옥잠화와 벌개미취들이 숲속의 액센트가 되어 발걸음도 싱그럽게 한다.
나무에 판각한 한국의 저명 인사들이다.
다음 일정은 여다지해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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