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조주의 선미 되살아나는 백림선사의 보차회

차보살 다림화 2012. 1. 28. 01:02

  

다선일미의 현장

조주의 禪味 되살아나는

백림선사의 보차회

 

중국 하북성 조현에 있는 백림선사(柏林禪寺)는 당나라 때 조주종심(趙州從  ·778∼897) 선사가 머물렀던 조주 관음원으로 ‘차나 한잔 들게나(喫茶去)’라는 화두를 통해 다선일미를 실천했던 곳이다. 이 백림선사에 새로운 다선(茶禪)바람이 분다.
지난 21일 밤 백림선사를 찾았을 때 전국의 대학생이 모인 제12차 하기생활선수련회가 한창 이었는데, 마침 정혜 화상(현 백림선사 방장)의 주도로 보차회(普茶會)가 열리고 있었다. 그 현장을 찾았다.

선미에 빠져드는 듯

천하조주(天下趙州)로 명성을 드날린 동아시아 선불교의 거장 조주는 나이 80에 이르러 조주성(趙州城) 동쪽 관음원에 머물면서 ‘차나 한잔 들게나’라는 화두를 1200년간 회자시킨 선사다.
지난 21일 참가한 하북성 백림사 보차회 보차회(普茶會:차를 마시는 담선법회)는 1200년간 면면히 이어온 것으로, 그 광경은 실로 놀라웠다. 저녁 7시 만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만불류(万佛類) 광장 앞에 수련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 가부좌를 틀고 앉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모인 인원은 500여 명. 팽주를 맡은 10여 명의 학생들이 큰 다관을 들고 학생들 앞에 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보차회가 시작되기 전 백림사 주지 명해(明海) 법사가 좌중을 정돈시킨다. 7시 30분이 되자 백림선사 방장인 정혜 화상이 들어온다. 대중들은 맨바닥에 오체투지로 큰스님께 예를 올리기 시작한다. 이어 보차회를 알리는 범종이 세 번 울리고 큰스님 앞에 지심귀명례로 예를 올린 뒤 이어서 총림가를 부른다. 정혜화상이 대중을 살핀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하안거 생활선법회에 참선하기 위해 전국에서 올라온 500여 명의 대학생 여러분은 5박 6일의 출가인이 됩니다. 오늘은 이틀째 되는 보차날 입니다. 즉 차를 마시면서 다선일미의 정신을 스스로 느끼는 시간입니다. 이 보차의식은 당나라 때 백장 선사가 청규를 제정하면서 시작된 이래 면면히 이어져오다 그 맥이 단절되었다가 허운 대사가 복원한 이래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보차의 유래는 원래 차를 마시면서 방장 스님에게 탁마의 견처를 밝히려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은 차 한잔을 앞에 높고 자신이 그 동안 공부한 도리를 큰스님에게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허운 대사는 보차의 의미를 “우리는 본시 매일 차를 마시는데 왜 오늘은 보차를 마신다고 합니까. 이것은 선배들의 노파심이니 보차를 마시는 기회를 이용하여 여러분을 깨우치기 위한 것입니다” 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여기 백림선사는 당나라 때 조주 선사가 끽다거란 화두를 통해 차 한잔으로 천하 사람들을 깨우쳤던 도량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곳보다 보차의 의미가 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백림선사는 조주 선사가 끽다거 화두를 통해 대중을 제접한 곳입니다.
하루는 조주 스님이 도풍(都風)이 고준하다는 말을 듣고 조주관음원을 찾아왔습니다. 그때 조주 스님은 한 스님을 가리키면서 말씀하되 “스님은 여기에 와본 적이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스님이 “와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조주스님은 “그러면 차나 마시게(喫茶去)”라고 하였습니다. 또 다른 스님에게 “스님은 여기에 와본 적이 있는가?”하고 묻자 그 스님이 “와본 적이 있습니다”라고 답하자 조주스님이 “차나 마시게” 했습니다. 원주가 조주 스님께 묻기를 “와본 적이 없다는 스님에게 차를 마시라는 것은 그렇다고 치고, 와본 적이 있다는 스님에게도 차를 마시라는 것은 어째서입니까”하니 조주 스님은 “원주야”하고 불렀습니다. 원주가 “예”하고 답하자 조주 스님은 다시 “차나 마시게”했습니다.
조주 선사는 왜 그에게 찾아오는 모든 이에게 “차나 한잔 마시게”라고 했는가. 이것은 조주 스님만의 독특한 수행가풍인데 뒷날 그를 찾아오는 모든 이가 조주의 끽다거를 통해 차의 맛에 들어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고사가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이신 학생들은 차 한잔으로 무엇을 얻었습니까?

 
이때 한 학생이 법루 앞으로 나가 오체투지를 한 뒤 큰 스님에게 여쭈었다. “차의 맛에 선미에 드는 것 같습니다.” 이 말에 정혜 방장스님이 박장대소를 하자 방장석 좌우에 있던 스님들이 함께 웃었다. 이어 또 다른 학생 10여 명이 방장석 앞으로 나와 불가의 공덕을 찬탄하는 염불송을 불렀다. 백림선사 보차회의 특징은 각기 방장스님 앞에서 자신의 공부견체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차와 선이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는 점이다.
정혜 화상은 보차회의 특징에 대해 음과 같이 말씀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보차회를 통해 한 순간에 선미에 빠져드는 순간을 감동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수련회를 통해 차 한잔으로 선미에 빠져드는 현상들을 하나하나 감지하면서 하기수련회에서 보차를 매우 중시 여깁니다.”
정혜 큰스님께서 차를 한 잔 들어 보이면서 “끽다(喫茶)”라고 말하자 학생들이 차를 음미한다. 품다를 맡은 차박사들은 연신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차를 따른다. 그 광경은 마치 선재동자가 53 선지식을 하나하나 찾아 구법하는 것 같았다. 달은 중천에 떠있고 차 한잔을 앞에 놓고 다선삼매에 빠져 있는 학생들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보차회는 저녁 9시가 되어서야 마무리 되었다.
이튿날 날이 밝자 조주탑 앞에서 만난 수련회에 참가한 학생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한 학생에게 어제 보차회가 어떻냐고 묻자 “차 한잔으로 그 많은 대중이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광경은 일찍이 체험하지 못했다”며 “앞으로 계속 수련회에 참가하겠다”고 했다. 또 한 학생은 “팽주를 맡아 학생들에게 차 따르는 심부름을 열중했기에 세세히 그 느낌을 감지하지 못했으나 그날의 광경은 환상적이었다”고 전했다.

조주탑 앞에 우뚝 솟은 조주고불선차기념비

2001년 10월 19일 한·중 차문화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하북성 백림선사의 조주탑 옆에 ‘한·중우의조주고불선차기념비’가 건립된 것이다. 한국 대표단으로 진제 스님을 비롯한 35명이 조주선사탑 앞에 마련된 특별 단상 앞에 도열하여 엄숙한 헌차의식을 거행했다. 100여 명의 중국 납자들 사이로 걸어나온 백림선사 방장 정혜 스님은 제막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중 양국의 뜻을 모아 조주선차기념비를 조주탑 앞에 세우게 된 것은 천추에 길이 남을 역사적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1998년 본지 발행인과 2003년 입적하신 고불총림방장 서옹 스님, 동화사 조실 진제 스님을 비롯한 한국 불교계와 명원문화재단의 김의정 이사장이 힘을 합쳐 조주고불선차기념비를 조주탑 앞에 세우자고 제안하자 정혜 화상은 기쁜 마음으로 승낙했다.
비석에는 무상법맥을 공식 인정함으로써 한국 선차의 연원을 1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했다. 지금까지 초의 선사 중심으로 다선일미를 주장해 온 차문화계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한 일본 중심의 다선일미 정신을 한국류로 공식인정하는 선차비 제작의식은 한·중 양국 관계자들에게 큰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그로부터 3년 뒤 선차기념비를 다시 보았다. 비석 문장을 보호하기 위해 씌워진 유리는 그 비석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비석 전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한·중의 불교는 한 뿌리이니 옛부터 한 집안이며 법맥 또한 전함이로구나. … 이 비를 세우게 된 까닭은 선다일미·임운자재의 생활선의 선풍을 발양하여 새로운 시대 인류의 정신문화로 승화시키고자 발원했다.”
백림사 곳곳의 전각마다 차향이 넘친다. 각 전각마다 차 화두를 담고 있는 것은 백림사가 선다일미의 조정으로 중국선종의 한가운데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곳곳에 풍겨나는 조주차, 조주다풍 등의 표현은 조주다풍이 면면히 이 땅으로 이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와 「조주차를 기다림」이란 시에서 이를 절절히 노래했다.

눈 앞의 흰 잔에 조주차를 마시고
손 안에는 수행의 꽃을 쥐고 있네
한 소리 가르침 받은 뒤로 점차 새로워져
봄바람 부니 어디엔들 산사가 아니리오

이 시에서 조선시대까지 조주차가 우리나라에 상당히 유행했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다. 또한 몇 해 전 운거산 진여선사의 찬림차가 천 년간 타향에서 떠돌다가 끽다거의 고향 하북성 백림선사에 돌아온 것은 조주가 되살아난 것처럼 기쁜 일이었다. 그렇게 조주차는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면면히 흘러오고 있다.

《차의 세계》2004년 8월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