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2일
수필의 날 행사를 마치고 나니 날이 어두어진다.
동국대학교 경주 캠퍼스의 학생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주변을 둘러싼 동쪽 숲에 두루미들이 떼거리로 모여서 웅성거렸다.
가까이 가서 두루미들을 사진에 담아보려고 해도 너무 멀었다.
저녁이 되어 모두 잠자리로 모여들어 하루의 일과를 주고받는지
숲속이 수런거리는 모양이 새들의 모임 또한 즐거운 것 같다.
서로 파닥파닥, 꺅꺅거리고 가까운 하늘을 배회하다가 돌아오곤 했다.
푸른 숲에 하얀 두루미들이 보기 좋았다. 학들이 모여서
똥을 싸면 나무들이 죽는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 학들을
모두 쫒아야 될까. 모두 생명인 것을. 뭔가 생태계의 오묘한 작전이 숨어 있지 않을까.
학들도 잠자리를 찾아 기슭으로 모여드는 것 같다. 우리도 잠자리를
찾아야 하는 시간.
신라의 동궐지었다는 안압지 앞이다.
주차장이 자동차들로 붐빈다. 야경의 안압지를 구경나온 객들이 학들이 모여드는 것
처럼 웅성대고 있다. 안압지의 야경이 황홀하다는 구전을 들은지 오래. 지닌 봄에도
멀리서만 안압지 전각의 그림자만 흘깃거렸다. 어딘들 좋지 않은 곳이 있으랴.
경주 고도의 사계절은 각기 특색있게 즐길 수 있는 곳. 사계절을 다 본 뒤, 그래도 뚜껑 없는
박물관을 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1975년 무렵의 발굴로 해서 신라 월성의 동궐지란 것이 밝혀졌다. 궁궐지를 비롯하여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어 이곳이 본래 월지(달못)이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이곳의 유물들만 모아서 경주박물관에 안압지관이 따로 있다. 경주박물관에 갔었지만 이곳을 다 관람하지 못하여 아직 숙제로 남아 있다. 첫번째의 전각 안에 조촐하나마 이곳에서 발굴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안압지라는 이름은 신라가 멸망한 뒤 오랜 세월 폐허가 되어 안압들만 모여들기 때문에 조선시대 사람들이 안압지로 부르게 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신라 때를 고증할 수 있어 궁궐지 외 전각 자리들이 밝혀지고, 주춧돌이 남아 있는 자리 등을 정리한 뒤, 누각도 지금의 형태로 복원하였다. 야간 조명이 전각 처먀 단청을 비추어서 물 속에 거꾸러 떠있는 연못의 전각은 주변 풍광과 어울려 환상적인 하모니를 자아내고 있다.
옛날 신라를 찾았던 손님들과 같이 연못 주위를 산책하는 사람들. 신라가 삼한을 통일한 뒤 나라가 왕성한 힘을 발휘할 때 궁궐도 정비하고
통일신라의 면모를 재정비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동궐을 구축하고 임해전를 짓고 외국의 사신들이나 손님들이 방문했을 때 접대와 연회를
베풀었던 곳이었다. 천년 전의 사람이 되어 안압지에 미친 여자, 신라의 공주와 배회했다. 연인과 사랑을 속삭이듯 사랑을 읽고 아픈 가슴이라도 달래는 듯, 애잔한 불빛이 가슴으로 파고 드는 가락이 느껴지다가 수많은 세월 옛사람들의 삶의 애환, 나라를 읽고 가족을 잃기도 하면서 역사를 이루왔던 지금 이때에 서서 세월을 한숨으로 세어본다. 어디 편안하기만 했을까. 숲 속 어딘가에서는 남들이 알지 못하도록 자신의 안위만을 모색하는 모반을 획책하기도 하지 않았을까. 이 못 가에서 몰래 한 숨 짓는 사람도 있었으리. 한쪽에서 탄식하고 한편으로 승리를 자축하기도 한 절절한 사연들이 이 호수 밑의 유물에 녹아 있었으리라. 역사의 승리와 한이 오늘의 사람 가슴마다 어떤 한의 무늬가 되었으리라.
연못은 발해만 동쪽에 있다는 삼신산(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을 형상화했다는데, 신선 사상을 나타내었다. 남원의 광한루 앞의 연못이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안압지는 어디서 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도록 꾸며졌다. 끝이 보이지 않아 드넓은 바다를 연상하도록 했다는 거다. 다 둘러보지 않고서 한 곳에서는 어디의 끝도 보이지 않는다. 한계가 보이지 않아 가보고 싶은 바다를 그린다.
물안에 또하나의 전각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누구 물 속의 전각으로 뚜벅 걸어들어 갈까 싶다.
연못 가는 직각으로 축대가 쌓여지기도 하고 한 쪽은 둥글게 곡선을 이루기도 하는 절묘하게 자연스럽다.
본래 연지여서 연잎이 뜨면 물이 좁게 보이기 때문에 물 속의 연뿌리를 제거하고 돌과 자갈을 깔았단다.
수중 궁전에는 용왕이 머물고 있지 않을까. 신라 사람들, 아니 삼한의 영혼이 어리어 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한여름 밤, 땀에 젖어, 환상에 젖어, 땀에 젖어도 신라의 달밤은 휘황찬란하다.
달이 뜬들 이 땅의 전광 달을 어찌 내려다 볼까. 빛이 부시어서.
여기 추억을 남긴 사라들이여 한장 주어가도록 하세요.
앙압지에 미친 신라의 공주가 환생했나. 나도 안압지에 물들어 자꾸만 미쳐들어가는 것 같다.
건너편 숲속을 보라 저 바다 끝에서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
오른 편 연못 가는 직각으로 처리되었지만, 왼편 연못 가는 둥글게 휘어진 곡선이다.
안압지 앞은 연밭이다. 쓰개치마를 입고 초롱불을 조심스럽게 밝히며
'월하정인' 을 만나는 조선의 회화를 오늘은 어떻게 그려내야 할까.
그 밤과 이 밤의 시공간을 무엇으로 가늠하리.
달밤에 몰래 연인을 만나지 않아도, 그리 조심하지 않아도 당당하다.
불빛에 반사되는 꿈의 궁전을 즐기는 선남선녀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연못 주위를 배회하며 영원 속의 오늘을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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