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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다신전> 다시 보기(‘차 만들기’를 중심으로)

차보살 다림화 2007. 5. 27. 01:20
<다신전(茶神傳)>은 초의스님이 1828년 화개 칠불사에서 등초(謄抄; 베끼다)하여 내려와 1830년에 정서(正書)한 책이다. 그 원전(原典)은 1595년 명나라 사람 장원(張源)이 지은 <다록(茶錄)>이 틀림없으나, 칠불사 아자방(亞字房)에 있었던 원서(原書)가 무엇이었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동다송(東茶頌)>의 주(註)를 살펴보면, 명나라 때 유정(喩政)이 엮은 <다서(茶書)>와 청나라 때 모환문(毛煥文)이 엮은 <만보전서(萬寶全書)>가 예시되어 있는데, 두 책 모두 <다록>을 싣고 있다.


 

1. 구체화(具體化)된 다도(茶道)

<다신전>을 펴내는 목적은 아래와 같이 적시되어 있다.


“총림에 조주선사(趙州禪師)의 다풍(茶風)이 있다고는 하나, 그것만으로는 다도(茶道)를 충분히 알 수가 없어, 후생(後生)들을 위해 이 책을 펴내 보인다.”


당나라 때 선승(禪僧)으로 이름 높았던 조주스님은 그 누가 찾아와 무엇을 물어도 “끽다거(喫茶去; 여기서의 거(去)는 동사가 아닌 어기조사로, ‘차를 마시고 가라’가 아니고 ‘차나 한 잔 마셔라’라는 뜻)!”라고 답하였다.


당대의 선지식이였던 초의스님이 조주선다(趙州禪茶)의 본의를 몰랐을 리 없으니, <다신전>에서 추구하려 했던 다도는 추상화된 관념적 다도가 아니라, ‘정성껏 만들고, 잘 갈무리하여, 제대로 마시는’ 실용적 다도였던 셈이다.


<다신전>에서는 ‘차나무는 어디에서 기르고, 차잎은 언제 어떻게 따며, 차는 어떻게 만드는가’로 시작하여, 차의 저장과 분별, 물의 선택과 끓이기, 차 우리기, 다기, 다구,...등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다신(茶神)은 거룩한 차의 정신(精神)이 아니라 좋은 차와 좋은 물과 좋은 솜씨가 제대로 어우러져 나타내는 참된 색향미이고, 다도(茶道)는 그것을 구현해 내는 실체적 방법인 것이다.


2. <다신전>에 대한 편애(偏愛)

당송대에 성행한 ‘쪄 익히고, 찧고, 덩이 짓고, 구워서 말린’ 찐 덩이차는 명대에 와서 ‘덖어 익히고, 비벼서, 말리는’ 덖음 잎 녹차로 발전하였고, 음다법 또한 끓이거나(자다(煮茶)) 가루 내어 타서(점다(點茶)) 마시는 법에서 우려내어 마시는 포다법(泡茶法)으로 바뀌게 된다.


명대에 정립된 ‘덖어 익히고, 비벼서, 덖어 말리는’ 덖음 잎 녹차의 정수를 담은 결정판이 <다신전>의 원전인 장원의 <다록>이다. 


<동다송>에는 역대의 다서(茶書)들과 차에 관한 시문(時文)들이 종횡무진하게 섭렵되어 함축적 표현과 심오한 내용으로 담겨져 있는데,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마시는’ 실용적 부분에서만은 <다신전>의 내용을 유독(唯獨)하게 담고 있다.


초의스님은 역대 차문화에 정통하였고 당대 세도가와의 교유를 통하여 당시 중국의 차에 대한 견식이 짧지 않았을 것이다. <동다송>의 주에 예시한 유정(喩政)이 엮은 <다서(茶書)>(일명 <다서전집(茶書全集>)에만 해도 당대부터 명대까지의 다서 총 27종이 실려 있다.


그렇다면, 유불(儒彿)과 시서(詩書)와 차에 두루 능통하였던 그이가 장원의 <다록>을 편애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3. <다록>이 가진 시대적 지역적 특수성(特殊性)

장원은 명나라 때 강소성(江蘇省) 진택현(震澤縣) 동정서산(洞庭西山)에 살았던 이이니, 그 당시 강소성에서 만들던 덖음 잎 녹차가 <다록>의 현실 조건이다.


이는 육우의 <다경>이 당대의 찐 덩이차를 주로 말하고, 채양의 <다록>이나 휘종의 <대관다론> 등이 무이산에서 주로 만들어진 송대의 용단봉병을 다루고 있는 것과 확연히 다른 점이다.


복건차를 비롯하여 남부지역의 차들이 주인공인 다서들에서는 우수나 경칩 시기를 맏물차 따기의 적기(適期)로 보면서 그 때 따서 만든 사전차(社前茶)와 화전차(火前茶)를 최고의 차로 여기는 반면, <다록>에서는 우리와 비슷한 곡우 전(前)을 맏물차의 채다 기준으로 삼고 있다.


사실, 우리차에 대한 긍지로 떳떳하였던 초의스님은 <동다송>에서 “우리차가 절강차에 미치지 못한다고 의심하는 이가 있는데, 내 보기엔 색향기미(色香氣味)가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육안차는 맛이 좋고 몽산차는 효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우리차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었으니, 다성 육우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반드시 수긍할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중일은 고대로부터 공통의 한자문화권을 형성하여 왔고, 차문화 또한 천년 넘게 공유하여 왔으니, 장원의 <다록>에 대한 국적의식은 오늘날과는 달랐을 것이다.


맹목적 사대주의니 편협한 국수주의니 하는 논쟁은 걷어치우고, 그이의 선택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추적해 보자!


4. <다소(茶疏)>와 <다록(茶錄)>

<다록>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덖음 잎 녹차를 다룬 대표적 명저(名著)가 같은 시기에 인접해 살던 절강성(浙江省) 전당(錢塘) 사람인 허차서(許次紓)가 엮어낸 <다소(茶疏)>이다. <다록>이 간결 명쾌하다면 <다소>는 풍부 다채롭달까?


여러모로 닮은 두 책 사이에서도 엄연한 제다법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데, <다록>의 조다(造茶)편과 <다소>의 초다(炒茶)편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차이는 ‘첫 덖기의 열도(熱度)와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다록>에서는 ‘극열급초(極熱急炒; 높은 열도에서 잽싸게 덖어 익힘)’하고, <다소>에서는 ‘선문재무(先文再武; 낮은 열도에서 천천히 덖다가 뜨거운 열도로 덖어 익힘)’한다.


그밖에도 한 번에 덖는 차잎의 양(量), 손놀림, 비비기와 말리기의 방식,...등이 다른데, 그 특징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항주(杭州) 서호용정(西湖龍井)과 소주(蘇州) 동정벽라춘(洞庭碧螺春)의 제다법에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5. 하늘과 땅과 사람의 조화(調和)

소주와 항주는 양자강 하류의 남쪽 지역으로 춘추전국시대의 오나라와 월나라이다. 이웃하고 있으나 동정양산(洞庭兩山)이 있는 태호(太湖)와 용정차(龍井茶)가 나는 서호(西湖)의 자연환경은 서로 다르다.


두 지역 모두 온화하고 강수량이 풍부한 기후이나, 서호 지역은 강수량이 더 많고 특히 봄 차 철에 비가 많이 내린다.  서호변은 모래가 많이 섞인 사질(砂質)토양인 반면, 태호 지역은 토질이 비옥하여 각종 과실이 잘 된다.


이러한 자연조건의 차이가 차잎에 반영되어, 동정종(洞庭種)은 작으면서 단단하고  용정종(龍井種)은 비교적 길고 가늘면서 부드러운데, 이 같은 차잎 성질의 차이가 서로 다른 제다법을 낳게 되는 것이다.


6. 우리차에 알맞은 제다법

우리나라 남녁에 분포하고 있는 대부분의 차 산지(産地)는 강이나 바다를 끼고 있는 온난다습한 지역이다. 강수량이 풍부하긴 하지만 봄 차 철에 상시 비가 내리진 않는다. 서쪽 지역의 우리 땅 대부분은 고생대 이전의 지질이라서 바다가 융기되거나 빙하의 침식이 없었던 옥토(沃土)이다. 더구나, 좋은 차잎이 나는 차밭들은 거의 부엽토가 두터운 산록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와 가까운 차잎은 동정종이다. 이는 용정차와 벽라춘을 함께 우려내어, 제법의 차이에 의해 좌우되는 찻물의 색향미는 차치하고, 그 우려낸 차잎의 생김새를 비교하여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때문에, <다록>을 간택한 초의스님의 식견과 혜안에 경탄해 마지않는다.


우리 토종 차잎과 중국의 유력 품종들에 대한 형태, 색상, 경도, 중량, 성분,... 등의 과학적 분석을 통한 유전학적 비교 연구의 성과를 가지고 계신 사계 전문가의 하교를 기다린다.             


이제, <다신전>의 제다법 가운데 특별히 유의(有意)할 점을 살펴보자! <다신전> 조다편은 ‘열초(熱炒)’ ‘단나(團挪)’ ‘배건(焙乾)’ 세 마디 말로 요약할 수 있는데...


7, ‘열초(熱炒)’

‘열초’는 ‘뜨거운 솥에서 덖어 익히기’이다. 여기서의 솥은 삶거나 찌기에 알맞은 날개와 벽과 뚜껑이 있는 가마솥인 부(釜)가 아니라 반구형(半球形) 노구솥인 과(鍋)이다.


‘열초’는 솥의 열도, 투입량, 손놀림, 덖는 시간 등을 적절하게 조화시켜야 하는데, 덖어지면서 달라지는 차잎의 열도와 촉감, 내음, 빛깔, 생김새 등을 면밀하게 살펴서 알맞게 익혀 낸다.


제대로 익혀 만든 차의 향미는 맑고 은은하며 달고 매끄럽다. 태우거나, 설익히거나, 마르게 익히거나, 안팎을 고르게 익히지 못하거나, 일부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차는 탄 냄새, 풋 냄새, 뜬 냄새 등이 배여 있고 쓰고 떫으며 거칠고 텁텁하다.


쪄 익혀서 덖어 말리거나, 데쳐서 익히거나, 물을 가하여 익히거나, 많은 양을 높은 열도에서 익히면서 자체 수분으로 찌듯이 익히는 제법들은 모두 덖음차의 본령을 벗어난 것들이라, 비릿한 풋 냄새가 섞여 있고 답답한 맛을 낸다.


8. ‘단나(團挪)’

‘단나’는 ‘덩이 지어 비비기’이다. 가볍게 덩이 지어 살살 비비다가, 조금씩 세게 비벼서 뭉치가 단단해지면, 낱낱이 턴다. 비비고 털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여 제대로 비벼야 한다.


제대로 비벼진 차는 단단히 말려 있고 생김새가 가지런하다. 비비다 만 차는 부스스하고, 털다 만 차는 뭉쳐져 있으며, 너무 세게 비빈 차는 가루가 나거나 부서져 있다.


찻물색이 맑고 밝으며, 우려낸 잎이 생생하게 살아 있으면 잘 만든 차이다. 찻물색이 뿌옇거나 어둡거나 누렇고 붉은 색을 띠며, 우려낸 잎이 깨지거나 동강나 있고 잎맥이나 잎줄기가 누렇거나 붉게 변해 있으면 잘 못 비벼 만든 차이다.


9. ‘배건(焙乾)’

‘배건’은 ‘덖어 말리기’이다. 익혀서 비빈 차잎을 다시 솥에 넣고 점점 열도를 낮추어가며 덖어 말린다. 차잎이 말라가는 정도를 잘 살펴서 솥의 열도를 알맞게 조절하여야 한다.


불기운이 고르게 잘 든 차에는 본연의 향미가 잘 살아 있는데, 맑고 상쾌하며 은은하면서 풍부하다. 불기운이 약하면 향미가 가늘면서 옅고, 불기운이 너무 강하면 탄 냄새가 배이면서 본연의 향미는 날아가 버린다.


냉풍이나 열풍에 말리거나 열판이나 온돌에 널어 말리면 손쉽다. 그러나, 풋 냄새와 뜬 냄새가 섞이기 쉽고, 본연의 향미는 살아나기 어렵다. 그래서, 마무리 덖기를 넘치게 하여 담는데, 구수하면서 단(?) 쌀 볶은 냄새만 일색인 차가 된다.


10. 마무리

초의스님은 옛 시문에 집착하여 차를 갑론을박하거나, 무리지어 놀면서 차를 음풍농월하던 이가 아니고, 실제로 차나무를 가꾸고 차를 만들면서 맛보았던 이이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제대로 된 우리차를 무척이나 만들어 보고 싶었을 것이고, <다신전>을 그 간절한 염원의 실천적 지침으로 삼으려 한 것이 아닐까?


<다신전>을 무시하거나 폄훼하는 것은 손가락 끝에만 눈이 머문 미망(迷妄)이요, 입으로는 <다신전>는 부르짖으면서 사이비 차를 만들고 마시는 것은 남을 해하고 스스로를 망치는 기망(欺罔)이며, <다신전>에 빌붙어 이익과 권위를 구하는 것은 후생(後生)의 의리(義理)를 저버린 패망(敗亡)이다. (0608春樹)    

                                                     


출처 : 雪濤淸純甘潤爲上(설도청순감윤위상)
글쓴이 : 麗春佳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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