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JIFF

차보살 다림화 2008. 5. 2. 20:45

 

 "5월이 완벽한 사랑을 나누자네요. 행복한 왕관을 쓰고 행복하세요" 라는 문자를 5월의 첫날 받았다.

나는 '꽃이란 꽃이 / 다 피어난 /5월은/ 허망하여라' 라고 답했다. 그것은 너무 가득차서 공만 空滿함이었다. 

한껏 푸르른 나무잎에 참으로 잘 어룰리는 철쭉들이 활개를 펴기에 너무나 햇살이 따거운 5월이다.

도시의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꽃들이 활기차다. 바야흐로 전주는 영화의 꽃을 피운다고.

  나는 영화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감독의 작품이 나오기를 기다릴 정도로

영화에 대한 각별한 앎이 많기도 하다는데. 마치 음악을 들을 때 그 음악의 작곡가는 누구며 지휘자는 누구라는

것도 잘 아는 마니아 같이 그렇게 영화인들에게는 영화제가 축제인 모양이다. 좋아하는 사람 둘레의 사람도

그냥 좋을 뿐이다.

 영화라면 40여 년 전에 '벤허'를 서울의 대한극장에서 보고 많이 울었다는 기억이 있다. 언뜻 생각나는 것들은

'로마의 휴일', '초원의 빛''라라가 주인공이던 그 제목이?,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 그리고 더 젊을 때

이 영화의 거리 어디 쯤엔가 있었던 시민극장 (지금은 우신호텔이던가)에서 상영했던 '마음의 행로'가

생각난다. 고등학생이었던 때다. 그 시절엔 학생이 영화를 마음대로 볼 수 없었다. 몰래 극장에 가서

그 영화를 보았다. 영화관에서 검열하시던 선생님에게 들켰었다. 그러나 징게는 받지 않았다. 내가

모범학생이었으므로 눈감아 주신거였다. '마음의 행로'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옛 기억을 찾아온 그집 앞.

 지금의 젊은이들은 얼마나 화려하고 발랄한지, 옛날과 비교하자면 우리의 젊은 시절은 도시가 사막같았다고

여겨진다. 지금의 젊은이들과 내용은 달랐지만 그래도 치열하게 뭔가를 추구하며 달리기 바빴던 것 같다.

 전주의 문화의 거리를 오랫만에 들여다 보며 걸었다.  우리나라에서 영화제가 열리게 된 이유는 잘은 모르지만

우리나라 영화 관람자 수가 세계에서 6위라던가 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다는데. 그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놀 줄 몰라서라는 말도 되는 것 같아서 좀 씁씁하기도 하다. 시야가 그만큼 좁다는 이야기도 되고

또 그 상상력이 아이티 강국을 만든 것일까 싶기도 하다. 잘 모르겠다. 나 같은 문외한은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 예술장르가 한 통 속인 것만은 알 것도 같다. 무엇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개성과 역할이 있을 것이다.

과연 얼마나 예술이 인류를 발달시키려는지, 혹은 인류가 무엇을 누릴 것인지는 앞으로 가봐야 하리라.

먼 앞으로 혹은 뒤로.

 

 

 거리의 바닥에도 'Jeonju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의 이니셜이 찍혀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한 순간도 그냥 있지 않는다. 가만 있는 시간은 언제나 핸드폰으로 논다.

 

 

 벌써 여름을 빨면서 거리를 활보하는 아름다운 젊음

 

 옛날 한성여관 골목으로 들어가는데, 아버지가 아들 둘이와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다.

 

 

 로드스톤에 기어다니는 하늘소? 인가 하는 곤충이 신기해서 한참 바라보고 있어 나도 그를

눈여겨 보았다. 어찌나 신기하게 생겼던지 어떻게 이 거리에 왔는지 궁금했다. 영화에 출연하려는지.

바로 내 사진전에 출연한 거다.

 

 

 오전의 문화거리는 하루를 위한 전시준비가 바빴다.

 

 

 젊은 자원봉사자들이 거리마다 안내를 하고 있다.

 

 오거리 문화의 광장 무대

 

 

 사랑해요 전주, 손도장

 

 마침 문화광장의 분수쇼가 예행연습을 하여

 

 

 

 국제영화제라는 것이 실감났다. 어떤 외국인이 'Box office' 가 어디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나중에 이곳을 찾았다. 자원봉사자에게 물어보라고 했어야 했다.

 

 

 셔틀버스의 창에 비친 연등이 달린 푸른 가로수가 멋지다.

 

 영화제에 참석한 외국인이다.

 

 

 이 봉사자는 이 영화제 소식을 전하는 다음의 멤버인 모양이다.

 

 

 거리의 벤취에 앉아 영화제의 스케쥴을 체크하고 있는 모습

 

 거리 다방의 아줌마도 즐겁다.

 

 

 

 

 

 

 

 

 오전 중 가게로 배달하는 야채 아줌마도

 

 

 

 음식 배달통을 들고

 

 피시방 야간은 700원? 입장료인가? 한 번도 들어갈 기회가 없었다. 

 

 

 이 분도 이번 영화제에 참석, 무엇을 볼 것인가 물어볼 시간이 없었다. 이야기를 좀 나눌 걸.

 

 시원한 분수 쇼

 

 나이에 무관한 젊음만이 생동하고 있는 거리였다.

 

 객사 지붕이 현대 건축물 속에 이색적이었다.

 

어떤 꿈을 그렸었던가, 그 부산의 바닷가에서. 625 후, 국제시장이 폐허가 되었던 부산의 거리에도

국제영화제가 열린다. 나는 영화 속으로 들어갈 시간은 없었고 그 복구된 현대의 거리를 몇 년 전에

걸어보았다. 부산도 지금의 전주 이상으로 현대 미술관이 되었다. 샌프란시스코를 방불케 하였다.

사막 같았던 도시에서 천국을 꿈꾸었을까.

  지구 끝이 보인 듯 했다. 여기저기 돌아오는 동안.

바다마을을 출발 지점으로 해서 산마을에도 가보고, 강마을에도 아름다운 골짜기 험한 계곡도 거너보았다.

여러 도시 언저리에서 더 이상 찾을 것은 없었다. 언제나 천국은 그곳 그자리, 이곳 이자리였다 는 것을

알았다. 마음이 그럴질데는. 이 도시의 한가운데, 도시의 네모난 사방 몇 블럭인 문화의 거리에도 천국이 있다.

지금 여기.

 거리 끝에서 마지막으로 그 건물 이름도 모르지만 (옛 전주백화점)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사진 작가 박성민씨가 안내하여 그 사진전을 본 것으로 나의 영화제 거리 출연을 끝냈다.

  '매그넘 영화 사진전 MAGIC OF CINEMA'

"예술로 승화된 세계 영화사의 한 장면 - 매그넘 영화 사진-

위대한 사진각가들의 영화 속의 기막힌 장면들이다. 젊은 날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영화배우들과 명장면들이었다.

'멜화라와 잉그릿드버그만'이 그윽하게 서로 바라보는 장면. 브리짓드 바르도와 마리린몬로. 가장 아름다움의 절정을

포착한 '에리자베스테일러' , 젊은 날의 오드리햅번. 사진으로써만 잡을 수 있었던 장면들이 감동적이었다.

  "영화가 사진의 유산을 공유하면서 영화의 발전은 사진에 큰 빚을 졌다. 나아가 사진과 영화가 산업에서

분리되면서 쌍방 창조적인 상호작용의 풍부한 역사를 갖게 되었다. 영화의 창의적인 프로세스와 개성을 담은

"The Magic of Cinema" 전은 매그넘 사진작가가 진술하는 예술로서 사진과 영화 간의 긴 대화이다. -

전시기획, 연출 이기명-

  매그넘은 1947년 세계사진사의 한 획을 그은 쟁징한 인물들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세계최고의

다큐사진작가들의 모임이란다. 그 사진작가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 이름까지 여기에 열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관심있는 자들은 스스로 알게 될 것이기에.

 

 오드리 햅번

 

 엘리자베스 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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