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능소화 피는 7월

차보살 다림화 2009. 7. 4. 00:50

능소화 피는 7월

       김용옥의 꽃 이야기

 

  천국의 문설주에는 저 높이 능소화가 피어 있을까? 그 문안에는 기화요초 만발하여 환상적일까? 너무 가난한 천국일까?
말세와 휴거라는 어휘가 돌림병처럼 돌아다닐 때, 천국에 다녀왔다며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들의 말에 의할 것 같으면, 천국은 찬란한 금기둥과 진주문과 다이아몬드 조상들이 휘황한 곳이라고 했다. 그건,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귀하며 빛나는 것으로 비유하여 표현한 탓일 테지만, 참, 욕심보 하나 더 붙어 있는 놀부가 본 천국 모습일 것이다. 아무려나, 가난한 시인이 누려보고 싶은 천국은, 이 땅의 참 순하고 고운 꽃들로 이루어진 천국이다.
 

  능소화 피는 나의 7월.
  능소화는 아마 높은 이상을 지닌 꽃인가 보다. 태양을 따고 싶은가, 태양을 양모하여 일신(一身)이 되고자 닮아 가는가, 마치 지상에 걸린 작은 태양 같은 꽃이다. 불볕기운을 들이마시며 속가슴에 불붙다 못해 기어이 능소화 핀다. 염천 7월, 이글거리는 한여름에.
  우리 집 능소화는 베란다 철제 난간을 끌어안고 산다. 등걸은, 걱정스레 겉껍질이 터지고 거칠어 죽은 몸 같은데도 새 줄기 순은 해마다 왕성하게 뻗는다. 여름내내 짱짱하고 짙푸르러 향내와 그늘과 꽃과 꿀을 주는 능소화, 여간해서 가뭄도 장마도 타지 않으니 생활력과 생명력이 강한 여성의 상징 같다.

            

 

 

 

 

 

 

능소화 피는 7월.
  기와 고옥의 주택가를 거닐면, 능소화는 등대불처럼 멀리서부터 발길을 이끌어간다. 꿈을 꾸는 나무 능소화는 쥐며느리의 발 같은 흡근(吸根)의 힘으로, 시골집 대문 밖 가죽나무를 타고 하늘을 향해 오른다. 어느새 마른 가죽나무의 몸통이 초록 능소화 잎으로 덮이고, 그 나무 꼭대기에서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끝줄기들이 치렁치렁 늘어진다. 새의 부리 같은 꽃봉을 쫑긋쫑긋 매단 채. 높은 굴뚝이나 대문기둥, 말라 가는 키다리 나무를 품엣 자식 마냥 끌어안는 능소화.
  원만한 나팔 같은 꽃이지만, 그 통꽃의 속은 깊어서 고개를 디밀어 들여다보아야만 속을 짚어볼 수 있다. 암술 하나에 딱 두 개의 수술. 열매를 갈라보면 씨알 또한 딱 두 개다. 마치 이상과 현실을, 감정과 이성을, 땅과 하늘을 품은 듯이.
 옛날옛적 조선시대에는 양반집 정원에만 심을 수 있었기에 양반꽃이라고도 한다. 밝으나 휘황하지 않고, 추하게 시드니 스스로 가야 할 때를 알아 꽃받기까지 톡 떨어지는 강직함을 사모했을까.

 

 

사진 - 조윤수  (2009/6/26)

         

    능소화 꽃그늘에 서 있으면, 능소화 꽃목이 툭, 뚝, 끊어져 낙화하는 소리가 선명히 들린다. 떨어져 누운 낙화들이 지상에 또 한 번 꽃밭을 이룬다. 깨끗하게, 미련없이, 여전히 곱고 환한 얼굴로 뚝 지고 마는 꽃 능소화. 아직도 저리 고운데, 생의 끈을 놓다니, 요절을 생각한다.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사람은 더 이상 사랑도 없이 상처 내고 분노하고 증오하면서도 매달려 살아가는데, 아름다운 것들을 송두리째 잃고서도 삶을 포기하지 못하는데. 능소화 꽃지는 꽃소리에 손을 내밀어 본다. 아직 아름다울 때 지는 그 꽃목숨이 아쉬워서, 그리고 그렇게 삶사랑을 잃기 전에 떠나간 그리운 이들을 능소화 꽃잎 속에 쭈그려 앉힌다. 그리운 사랑들을.
  밤이면 어둠 속에서, 아무도 몰래 해의 간을 빼 먹었을까. 그러다 달빛이나 가로등빛에 놀라 훅훅 토해 놓았을까. 열대야 잠 못 드는 밤에 멱물 좌악 끼얹고 고샅길을 돌면 가장 환하게 눈맞추던 능소화. 가느란 바람결에도 달랑달랑 흔들려주는 꽃. 고개를 끄덕이듯이.
  농소화 피는 나의 7월도 가고 가을이 동동동 지랄같이 뒤흔들어놓고 가버리면, 긴 겨울밤 허리를 무얼 위해 동강낼까. 안개 같은, 쓸쓸한 새의 소리 같은 과거의 이야기들이 강물처럼 흐르는 창 밖 멀리, 지난여름 뚝뚝 떨구어진 능소화 꽃송이들이 좌악 깔려 있다. 저건 가로등불이 아니다. 추억의 능소화가 돋아난 것이다. 길게 긁는 현악의 울림이 일렁여온다.
  밤을 지키는 불빛인지 능소화꽃인지… 여전히 손을 내민 채, 아주 사소하고 까마득한 일들과 이름들을 되생각한다. 한때는 열정과 괴로움에 떨게 하던 것들이, 겨우,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조용히 응시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화면을 배경으로 조용한 슬픔이 일어선다. 비로소 과거 속 때를 닦고 잃어버린 내면을 주워담는다. 내 어둠에 돋아나는 꽃들.
  꽃은 잃어버린 추억의 향기며 각성의 그림이다. 꽃은 아름다운 한 생의 기다림이며 그 응답이다. 나는 한여름의 작은 태양꽃 능소화처럼 꽃피기를 기다리며 산다. 신비로운 꽃의 영혼에, 어린 마음이 아니고선 닿을 수 없는데…….
  창 넓은 자리에 앉아서 저녁놀이 눈을 감기를 기다린다. 창 밖 어둠 짙어지고 창 안의 전등불이 점점점 꺼지면, 창 밖 어둔 하늘에 능소화가 총총총 피어난다. 꼭 한 번 다시 피우고 싶은 사랑 같은 꽃 능소화가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