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배롱나무 - 국립전주박물관에서 -

차보살 다림화 2009. 7. 30. 19:22

국립전주박물관 뜰에는 배롱나무꽃

환하게 피고 있습니다.

 지난 해 마른 장마로 인하여 물부족이 심했지요.

올 장마는 지난 해의 누적된 장마비까지 한목에 내리는가 봅니다.

역시 우주 안에 있는 것은 사라지는 법은 없습니다.  사람마다

장소마다 원하는 것이 달라서 하느님은 누구의 원을 먼저 들어줄

고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너른 조화의 법에 순응하는 일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빗줄기 사이 잠깐 맑은 날입니다. 파란 하늘에 흰 뭉게구름의

춤사위가 즐겁습니다. 때마침 붉게 피어나는 배롱나무 꽃잎이

환희로움으로 떨리고 있습니다.             

곳곳에 피해도 많았지만 잘 해결해나가리라 믿습니다. (2009년 7월 29일)

 

한국 박물관 개관100 주년 기념으로 전주박물관에서도 <전북의 명품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귀한 유물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수피가 없는 배롱나무 몸통은 아낙의 허벅지 속살 같아서 만지기만 해도 간지럼을 탔을까. 간지럼나무는 백일홍의 별명이다. 그래서 지금도 백일홍의 몸에 간지럼을 태우곤 하지만, 나무는 끄떡도 않는데 그 꽃송이들만 간지럼탄 듯 갈깔깔깔 자지러지는 웃음소리로 핀다. 또 한 가지. 백일홍은, 봄을 맞기에는 게으름뱅이다.

 

 

 

 

 

 

 

 

 

사진 - 조윤수

 

 

 

배롱나무

-  김용옥의 꽃이야기 중에서 -


  식물은 살아 있다. 세상에서 가장 끈질긴 사랑, 가장 서러운 사랑,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살아 있다. 수만 가지 종류로, 또 한 종류가 천태만상 다른 몸짓과 표정을 지으면서 그야말로 자연스레 살아 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고, 그 말장난을 빌려 나는 말한다. 사람 나고 꽃 났나? 꽃 나고 사람 났지, 라고 이 풍진 세상을 건너는 태도를 딱 식물만큼만 하면 어김없으렷다 싶다.
  마호메트는 두 개의 빵이 있거든 한 개로 수선화와 바꾸라고 했던가. 파브르던가, 도라지꽃 한 송이가 그리스어나 라틴어 사전보다 훨씬 시적(詩的)이다 고 한 사람은. 참, 예수님은 솔로몬의 황금빛 찬란한 옷보다 들에 핀 백합꽃이 더 고귀하다고 했지. 나는 말한다. 아무리 화장단장한 미모도 보잘것없는 풀꽃 한 송이보다 아름답지 못하고, 아무리 잘 배운 지식으로도 풀꽃목숨보다 지혜롭지 못하다고.
  그래설까, 인간만이 아름다움을 앞에 두고 비통할 수 있는지 모른다.
  비통을 느끼게 하는 꽃 중에 백일홍이 있다.
  초록바탕 화면에 몇 점 붉은 물감이 톡톡톡 튀었나 싶으면 어느새 화들짝, 매혹적인 진분홍 활옷을 둥시레 걸쳐 입는 꽃나무, 화무십일홍이라 하지만 백 날을 두고 총 총 총 총 피고 피고 피는 꽃, 백일홍, 설사 한 꽃잎 두 꽃잎 지기로서니 잇달아 피어나는 꽃잎의 환희에 가려져 낙화의 슬픔을 생각할 틈이 없는 꽃이다.
  배롱나무는 야산이나 맨땅에 어울리는, 추위를 잘 타는 화목이다. 그래선지 기후가 온화하고 겨울 혹한이 드문 땅 전라도 땅에 특히 많으며 벼농사의 땅 전라북도의 도화(道花)이다. 그런데 농부들이 가장 지겨워하는 꽃이래나.
  긴긴 해의 여름날 백날 동안, 여든여덟 번의 손길로 돌봐야 벼를 수확한다. 불볕여름과 가뭄이나 장마, 태풍과 싸워 이겨내야 누렇게 단내 뿜는 벼이삭을 얻을 수 있는데, 꼭 그 기간 동안 활활 피고 피는 꽃이 백일홍이니, "저놈의 간지럼밥나무꽃은 언제나 진다냐,"고 원망처럼 배롱나무꽃 지기를 학수고대할 밖에.
  일손 놓고 꽃구경하는 사람이야 "백일홍 세 번 피면 쌀밥 먹는다,"고 그저 좋아라 하지만 말이다.
  현대인은 거의 도시집중생활을 하고 있다. 인공적인 색, 색, 색과 벽, 벽, 벽, 인공의 울안에서 살다보니 사는 것도 인위적이 되어 인간의 자연성을 잊고 잃어버린다. 정신이 벽 같다. 도시의 매연처럼 이미 죽은 건물 사이를 유령처럼 유영한다. 이런 생각에 진저리가 나면, 불볕 아래 울컥울컥 피어나는 배롱나무를 찾아간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있는 곳 경기전에 서서, 그 깨끗하고 근육질인 배롱나무의 몸을 어루만지며 저녁놀을 바라본다. 진분홍이 노을빛에 물들어 선혈빛이다. 누군가 견디기 힘든 하루를 보내고서 피울음 운다.
  때로는 전주 근교 죽림온천 쪽으로 횡하니 달려간다. 그 건너편  '일국가든'이라는 다슬기수제비 - 이 음식은 위장을 위한 보양식품으로 정말 일미요 별미다. - 전문음식점을 향한다. 열두 폭 진분홍 치마폭을 펼치고서 기다리는 백일홍잔칫상을 덤으로 받으러.
  아하, 요즘사람들은 나무 한 그루도 유명해야 찾는다는데, 무슨 무슨 이름을 얻은 나무를 보았으니 어쩌란 말이랴만, 그 구미나 잠깐 맞춰줄까 한다.
  멀리로는 부산 양정동에 팔백 년도 더 묵은 백일홍이 위풍당당한데, 천연기념물 168호다. 세월이 깊어갈수록 기품과 가치가 배가 되는 고전을 펼쳐놓고 읽는 듯하다. 해묵어도 좋은 글을 쓰고 싶어지게 한다.
  강릉 오죽헌에 들르던 날, 그 배롱나무 꽃길에선 단심(丹心)이 폴폴 지고 있었다. 담양 명옥헌과 소쇄원 뜨락에 깨끗하게 서 있는 백일홍은 누가 가꾸는가. 선비정신이 저 홀로 꼿꼿하다.
  그냥 스쳐 지나가면서 안복을 누리게 하는 배롱나무 가로수길 70리. 태안반도 안면도로 가는 2차선 국도인데, 그 길은 아직 젊은 정열이 너울너울 춤추는 길이다.
  지금도 꿈꾸듯 떠올리는 백일백 꽃은 바로 통도사의 말사인 극락암에 거하고 계신다. 일중(一中) 선생이 초서로 쓰신 여천(如天) 문(門) 아래 비껴서 만발한 백일백 하이얀 꽃무리는, 마악 하늘문을 향해 나래 펴는 백로때였다. 꽃을 만나되 그때를 맞춰야 제대로 된 인연복이다.
  이제 고향땅에서, 제각각 성가해서 사는 형제 만나듯, 이따금 마주보는 백일홍을 꼽아 보아야겠다.
  김제 금산사 경내 삼성각 처마 끝에 백일홍은 역사처럼 굴곡이 많다. 울퉁불퉁, 아픈 세월을 견디느라 옹이진 몸이 늘 비통한 삶을 생각게 한다. 그러나 그 몸에서도 해마다 꽃은 저리 붉게 피고 핀다. 고통스러워도 살라 한다.
  고창 선운사 절마당에 들면, 햇빛에 바랜 살색 마당에 백일홍이 저 혼자 붉다. 고요하게, 적막하게 붉다. 석 달 열흘 백일기도에 일심전력한 여인네의 화신 같다. 기다림과 인내의 꽃이 핀 백일홍.
  백제의 서러운 꿈이 서린 왕궁탑을 향해, 조정에 든 문무백관들이 양쪽에서 머리 조아리듯 사열하고 있는 백일홍은 영고성쇠를 돌아보게 한다. 역사도 인생도 흘러가고 사라져간다. 이 땅과 사랑을 위해 나는 얼마큼 끈질기게 피어나려 할 것인가.
  자잘한 이야기나 덧붙이자, 그냥.
  수피가 없는 배롱나무 몸통은 아낙의 허벅지 속살 같아서 만지기만 해도 간지럼을 탔을까. 간지럼나무는 백일홍의 별명이다. 그래서 지금도 백일홍의 몸에 간지럼을 태우곤 하지만, 나무는 끄떡도 않는데 그 꽃송이들만 간지럼탄 듯 갈깔깔깔 자지러지는 웃음소리로 핀다.
  또 한 가지. 백일홍은, 봄을 맞기에는 게으름뱅이다.
  소양 종남산 자락에 보이스카웃 야양장을 지었던 때, 봄이면 고사리와 취나물을 뜯기도 하고 야생화에 넋을 놓곤 하며 숙사에서 별과 함께 산새소리를 들을 때였다. 그 숙사 창가에 배롱나무가 봄내내 기척이 없는 거다. 실가지를 꺾어 보며 "아직 죽지는 않았네, 물기가 있는 걸 보니," 그러느라고, 부챗살처럼 퍼진 실가지들을 몇 번씩 끊어보곤 했다. 아이고, 배롱나무는 늦잠 자는 나무인 것을.
  백일홍, 이무기의 제물 앞에서 목숨을 구해준 청년을 오매불망 기다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환생한 나무.
  한여름 내내 매미소리와 어울러 피는 꽃. 피 토하듯 터지나 밝고 환해서 상서로운 꽃, 불볕 무더위에 헉헉거리거나 그늘에 숨지 않고 불지르듯 피는 꽃 백일홍꽃.
  저, 저 가슴에 피, 벌컥 벌컥 저 가슴에 피 토해놓는 배롱나무꽃이 피면 꺼이꺼이 목놓아 운다.
              ( - 김용옥의 꽃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