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가을 하늘 가을 물소리

차보살 다림화 2009. 10. 29. 19:32

 

가을 하늘 가을 물소리
    
                                                                                 조윤수

  
 

  해가 짧아진다. 사월이 두근거림으로 온다면 시월은 서성거림으로 온다. 가을은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이 되어 오는 계절. 가을 숲의 단풍에서는 찬 서리 앉은 앙상한 나뭇가지도 얼비친다. 가을 햇살에 여물어 가는 곡식이나 열매들은 바라보기만 하여도 뿌듯하다 못해 차라리 허기가 진다. 맑은 가을 하늘 아래 풀꽃 언덕을 거닐 때 더욱 소슬해지는 까닭은, 핏줄을 타는 가을 향기가 어스름에 불어오는 까슬한 바람이 되어 그리움 한 줄기를 불러내기 때문이다. 그래도 황금빛 들판에서 한들대는 살살이 꽃과 억새풀 사각거리는 소리는 본래로 가는 들녘의 풍요로운 찬가이기도 하다.

   가을은 어딘가에서 숨결을 고르다 사라져간 모든 이들이 그리운 계절. 철없던 시절의 잊혀졌던 짝사랑들까지도 새록새록 그리움의 색깔을 피워낸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만나야 할 생명들의 얼굴들이 마음을 파고든다. 어째도 시월은 괜스레 마음이 바빠진다. 하루해가 짧아서 만날 수 없으면 뜰에 내려가 풀꽃 한 송이에서 보고싶은 얼굴들을 찾아보리라. 달 밝은 밤엔 동산에 올라 달빛을 타고 흐르는 가을을 새기고, 맑은 별밤에는 나뭇가지의 익은 열매를 따듯이 하늘의 보석을 점찍을 것이다.

 

 

 

  장구목 계곡은 신이 빚어놓은 조각공원이다. 얼마나 긴 세월 동안 흐르는 물살에 씻긴 바위들이었을까. 낯익은 여러 형상들로 빚어져 신성한 조각품으로 부활하였다. 조각품 하나하나를 쓰다듬고 매끄럽게 흐르는 빗살 무늬 물살이 바위 밑으로 떨어지면 소용돌이를 치면서 세차게 뒤집힌다. 크고 작은 거품을 내뿜으면서 바닥 면의 생김새대로 다양한 물소리를 낸다. 소나무에 비 내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가 이윽고는 주전자의 찻물이 끓는 소리같이 운치 있게 들리기도 한다. 아! 저 맑은 가을 하늘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어디서부터 내려와 내 눈앞에 저리 흘러내리고 있는가. 내 핏물이 다 응고될 때까지 저렇게 흘러내리다가 자자손손 대를 이어 막히는 일 없이 흘러내렸으면 좋겠다.
 
  물소리는 수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들에 부딪치는 대로 소리를 낸다. 큰돌과 자갈 위에서 내는 소리 등 그 바닥의 모양에 따라 만 가지 형태로 만 가지의 소리를 낼 것이다. 널따란 바위 위로 미끄러지는 물소리는 투명한 하늘빛을 그린다. 강가에서 들으면 어울리는 구라모토의 피아노와 첼로소리의 화음이라 할까. 나의 밑바탕에는 어떤 것들이 깔려 있어 어떤 소리를 내고 있을까. 잠시도 멈춤 없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그 생명의 소리가 혈관을 타고 흐르며 한없는 하늘을 날게 한다.

 

요강바위

 

  그 조각공원에는 특이한 바위가 하나 있다. 이름하여 요강바위라 하는데, 나는 그 바위를 우물바위라고 부르고 싶다. 큰바위가 우물처럼 파여져서 물이 고여 있다. 한 사람이 들어갔다 나올만한 크기다. 나는 그 우물바위 옆에 앉아 우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거기, 또 하나의 우주 속에서 아름다운 요정이 나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산천과 바위를 타고 흐르는 저 물소리에서 들려오는 생명의 울림이 휘돈다.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나르시스들. 호수에 내려 비치는 산 그림자가 아름답듯이 물 속에 비치는 모습은 달빛을 받은 나무처럼 은은하다. 물 속에 뜬 달을 주우려다 물에 빠진 옛 시인이 떠오르기도 하고, 문득 수선화를 떠올리기도 한다.
  어느 숲 속에 은처럼 빛나는 맑은 샘이 있었다. 나뭇잎이나 가지가 떨어져 수면이 더럽혀지는 일도 없었고, 신선한 풀만이 자라고, 바위는 햇빛을 가려 주었다. 어느 날 나르시스는 사냥을 하느라 더위와 갈증에 지쳐 이 샘에 왔다. 그는 몸을 굽혀 물을 마시려 했을 때 물 속에 비친 자기 그림자를 보았다.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자기의 아름다운 모습을 물의 요정으로 착각하고 사랑에 빠졌다. 입맞춤을 하려고 입술을 가져갔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포옹하듯 팔을 물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그 그림자는 달아났고, 잠시 후 그림자는 다시 나타났다. 나르시스는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는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잊고 언제까지나 샘 가를 서성거리며 다른 요정이라 생각하는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나르시스가 말라죽은 자리에 청초한 수선화가 피어났다.

 

   박지원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를 생각했다. 자기 흉중에 품고 있는 뜻대로 귀에 들리는 물소리는 올바른 소리가 아니라 했지. 자기 관념에 따라 변하는 모습, 들리는 소리는 사물이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보고 듣는 것이 아니리라. 인생의 강을 건너는 동안 우리는 외부의 모든 빛과 소리, 현상들에 얼마나 흔들려 왔던가.
  사람에게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나'를 아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남을 알려면 또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는가. 결국 자기를 아는 만큼 세상을 아는 것이 아닐까. 테니슨이 노래하였듯이, 풀 한 포기라도 뿌리 끝에서 잎사귀 끝까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인생이 무엇인지도 가을 물소리의 뜻도 알 수 있으리라.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은 냇가에서 오면 가야하는 사연들을 들으며 물 속의 나를 본다. 우물물 속에 비친 것이 내 모습인가. 물 밖의 내가 나인가. 나의 진정한 모습은 어디에 있는가.  <조윤수 수필집 <바람의 커튼> 2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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