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림원 茶 에세이

차 에세이 7, 내 마음의 차

차보살 다림화 2009. 12. 28. 13:33

 

 

 7.

내 마음의 차

 

 

  연두색이 하루하루 짙어가는 산은 싱그러운 향내마저 뿜어내며 앙탄자를 짜고 있는 듯 하다.  

오묘한 녹색 보카시 카펫에 정다운 벗들과 마주앉아서 그 연두 빛 우려진 감미로운 햇 차 맛이  

보고 싶다. 절기에 맞게 곡우가 흠뻑 내렸다. 비 내린 후, 산은 그 투명한 연 초록의 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곡우부터 입하 전까지는 세작인 햇차를 만드는 시기이다. 오늘 같이 청명한 날은  

차잎 따기에 좋은 날이다. 별이 빛나는 밤사이 은빛이슬을 가득 머금은 차잎들을 다음 날 맑은  

아침이슬이 깨기 전에 채취하여 그날 안으로 만들어야 좋은 차를 얻을 수 있다, 지금 남쪽마을  

차밭에서는 차잎 따는 아낙들이 초록빛 마시며 차밭 이랑.을 누비리라 

  해마다 이른 봄 곡우차를 빚어 제일 먼저 부처님께 차 공양을 올리던 순향(純香)같은 나의  

스승이자 차 벗이었던 그 님은 이 봄엔 어디에서 차를 빚을까. 나무 잎이 무성하여져 초록빛이  

겹겹이 누비어지는 숲을 바라보니 차를 벗하며 선비 정신을 고양하고 차의 공덕과 정취를  

노래하여 후세에 남긴 옛 성현들이 그리워진다. 

  차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마시는 기호음료 중의 하나다. 보통 우리들이 누구를 만나면 

차나 한 잔 하지 한다. 또 집에 손님이 왔을 때나 손님으로 갔을 때도 처음에 차를 내게  

마련이다. 그렇게 차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의 문을 여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그러한  

일반적인 말의 차는 엄밀히 말하자면 전통적인 정통적 차라 할 수 없다. 차는 원래 동양차와  

서양차로 나눌 수가 있다. 우리 고유의 탕 같은 것은 차의 대용일 뿐. 

  차는 차나무 잎으로 만든 것을 정통차라 하고 커피는 커피나무 열매를 볶아서 끓여 마시는  

것이니. 그러니 커피는 차가 아니다. 지난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정책적으로 우리 문화 찾기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 때를 계기로 하여 차문화도 초의선사와  

茶山 정약용선생과 추사 김정희 선생에 이어 제 2의 부흥기를 맞았다고나 할까? 2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는 차가 보편화되었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열성에 의하여 말 그대로  

다반사가 되었다. 문명의 발달과 기계화는 차 생활에도 예외가 없다. 한 때 다도(茶道)니  

다례(茶禮)니 하여 말도 많았다. 차 한 잔 마시는데 그렇게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한 것인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잘 몰라서 하는 말이며 습관화되지 않아서 하는 말인 것 같다.  

생활 속에서의 차 한 잔은 오히려 커피보다 더 간단하다.. 

  차에는 차만이 가지는 고유한 색, 향, 미 가 있다. 호수의 맑은 물빛 같은 미묘한 색과  

신비한 향이 있다. 고요한 기분으로 홀로 마시는 한 잔의 차나 마음이 통하는 서넛의 벗과  

마시는 차의 아취는 인생의 번거로움을 한꺼번에 가라앉혀주는 매력이 있다. 

  차 생활은 차와 물의 성질을 조금 알면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예술적인 심미감이나 다도의  

경지를 말하자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것은 차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히 느끼게 된다. 어떤  

일이건 기, 예, 도(技, 藝, 道) 하여 30년이라 했다. 기술적인 단련을 십여 년 쌓아 가면  

예술의 지경에 다다르며, 예술적 경지을 이루어가면 도의 경지가 보인다는 뜻이다.  

우리들의 인생살이도 그와 같아 열심히 살다 보면 참 삶의 길이 보일 것이다. 차에도 우리의  

인생길과 같은 길이 있다. 하지만 학문하듯 학문에 매여 그 실행을 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덕이  

되지 못할 것이다. 문명의 발달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다른 여러 분야와  

마찬가지로 차 생활도 편리해졌다. 차 생활의 3대 요소라 할 수 있는 차와 물과 불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옛날에는 차를 구하기도 어려워서 아주 귀하게 여겼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 귀양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초의선사가 손수 법제하여 보내주는 차 봉지를 받으며 오갔던 정신적 교류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다산 정약용이 차(茶)를 얻으러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를 찾아다녔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지금도 그 오솔길 주변에는 야트막한 차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있으리라. 지금은 백련사나 금산사 뿐 아니라 차 유적지 주변에서 얼마든지 훌륭한  

차도구들과 차를 구할 수 있다. 

  옛날에는 사찰주변의 자생 차 밭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잠을 깨기 위하여 혹은 약용으로 쓰기  

위하여 차를 법제하였다. 또한 궁중에 차를 진상하기 위하여 차가 생산되는 마을 에선 민초들  

노역 때문에 원성이 대단하였다 한다. 현대는 차밭 조성도 많이 되어있고, 다도도 생산자와 소비자  

다도가 구분되기도 한다. 차를 구하기도 쉽고, 물 또한 생수와 정수기가 일반화되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선인들은 좋은 물을 구하기 위하여 산정을 올라야 했고 강 가운데까지 들어가야 했다. 중국의  

다성(茶聖)이었던 육우의 다경에 보면 물의 품성을 20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체성이 좋은 불을  

얻기 위하여 땔감으로 쓰일 나무 가지를 선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은 전기와 가스가  

있으니 얼마든지 화력을 조정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현대인은 바쁘다. 탁한 마음을 여과시킬  

한적한 시간을 낼 수 없다. 문명 중독의 메뉴가 많아지는 현대에야 말로 차는 그 중독성과 취기를  

걸러내는 역할의 한 부분을 한다고 하니 벗 삼을 만 하지 않은가? 

  탕수를 끓이는데 있어서도 옛사람들은 그 물 끓는 모양을 보고 들으며 시끄러운 마음을 달래었다.  

게눈이 지나가고 고기 눈이 일어나고, 소소히 솔바람소리 들려오네. 이는 물이 끓기 시작하는 모양과  

소리를 주의 깊게 살펴본 옛사람들의 표현이다. 물이 완숙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아 물이 맹탕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일상 먹는 밥의 물도 뜸이 알맞게 들어야 맛이 있듯이 물도 알맞게  

익어야 한다. 그리하여 차와 물의 조화가 잘 되어 간이 잘 맞아야 좋은 맛을 낸다. 싱거운 사람,  

짠 사람 하는 말도 이 차의 맛에서 비롯된 것이라 알고 있다. 

  우리의 인생살이도 삼삼하고 담백하게 간을 맞추어 한 없이 들끓는 내부의 혼(魂)을 맑혀  

우리의 소중한 생명을 맹탕 헛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어지럽고 들뜬 마음일 때 평화의 간을  

하고, 맹렬하게 휘몰아치는 물기운 같은 때 봄비에 황사가 가라앉듯 오월의 솔바람 같은 아늑한  

정적의 간을 할까. 채워도 채워도 가득 차지 않는 욕망의 불기둥은 비우고 나누는 사랑의 간을 맞추자.  

무엇보다 자신을 성찰하고 현실을 깊이 여과하는 지성의 간을 맞추어 경박한 부딪침 소리가 나지  

않는 맛갈스런 삶의 맛을 내보도록 해보자. 

  우리가 이루어 온 근대화와 민주화만큼이나 우리 인간성도 성숙해졌을까? 차의 계절을 맞아, 

우리의 전통문화가 얼마나 여과되어 우리의 현실에 재조명되고 수용되고 있는가를 생각해본다.  

선인들이 이루어 놓은 차 생활의 덕목마저 축제와 상업화 한 이벤트에 가리어져 우리 삶의  

간이 맹탕으로 되고 있지나 않은지 염려되는 마음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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