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림원 茶 에세이

차 에세이 8, 암향

차보살 다림화 2009. 12. 28. 13:38

 

 8

암향

 

 

  연두색이 하루하루 짙어가는 산은 싱그러운 향내마저 뿜어내며 앙탄자를 짜고 있는 듯 하다.  

오묘한 녹색 보카시 카펫에 정다운 벗들과 마주앉아서 그 연두 빛 우려진 감미로운 햇 차 맛이  

보고 싶다. 절기에 맞게 곡우가 흠뻑 내렸다. 비 내린 후, 산은 그 투명한 연 초록의 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곡우부터 입하 전까지는 세작인 햇차를 만드는 시기이다. 오늘 같이 청명한 날은  

차잎 따기에 좋은 날이다. 별이 빛나는 밤사이 은빛이슬을 가득 머금은 차잎들을 다음 날 맑은  

아침이슬이 깨기 전에 채취하여 그날 안으로 만들어야 좋은 차를 얻을 수 있다, 지금 남쪽마을  

차밭에서는 차잎 따는 아낙들이 초록빛 마시며 차밭 이랑.을 누비리라 

  해마다 이른 봄 곡우차를 빚어 제일 먼저 부처님께 차 공양을 올리던 순향(純香)같은 나의  

스승이자 차 벗이었던 그 님은 이 봄엔 어디에서 차를 빚을까. 나무 잎이 무성하여져 초록빛이  

겹겹이 누비어지는 숲을 바라보니 차를 벗하며 선비 정신을 고양하고 차의 공덕과 정취를  

노래하여 후세에 남긴 옛 성현들이 그리워진다. 

  차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마시는 기호음료 중의 하나다. 보통 우리들이 누구를 만나면 

차나 한 잔 하지 한다. 또 집에 손님이 왔을 때나 손님으로 갔을 때도 처음에 차를 내게  

마련이다. 그렇게 차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의 문을 여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그러한  

일반적인 말의 차는 엄밀히 말하자면 전통적인 정통적 차라 할 수 없다. 차는 원래 동양차와  

서양차로 나눌 수가 있다. 우리 고유의 탕 같은 것은 차의 대용일 뿐. 

  차는 차나무 잎으로 만든 것을 정통차라 하고 커피는 커피나무 열매를 볶아서 끓여 마시는  

것이니. 그러니 커피는 차가 아니다. 지난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정책적으로 우리 문화 찾기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 때를 계기로 하여 차문화도 초의선사와  

茶山 정약용선생과 추사 김정희 선생에 이어 제 2의 부흥기를 맞았다고나 할까? 2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는 차가 보편화되었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열성에 의하여 말 그대로  

다반사가 되었다. 문명의 발달과 기계화는 차 생활에도 예외가 없다. 한 때 다도(茶道)니  

다례(茶禮)니 하여 말도 많았다. 차 한 잔 마시는데 그렇게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한 것인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잘 몰라서 하는 말이며 습관화되지 않아서 하는 말인 것 같다.  

생활 속에서의 차 한 잔은 오히려 커피보다 더 간단하다.. 

  차에는 차만이 가지는 고유한 색, 향, 미 가 있다. 호수의 맑은 물빛 같은 미묘한 색과  

신비한 향이 있다. 고요한 기분으로 홀로 마시는 한 잔의 차나 마음이 통하는 서넛의 벗과  

마시는 차의 아취는 인생의 번거로움을 한꺼번에 가라앉혀주는 매력이 있다. 

  차 생활은 차와 물의 성질을 조금 알면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예술적인 심미감이나 다도의  

경지를 말하자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것은 차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히 느끼게 된다. 어떤  

일이건 기, 예, 도(技, 藝, 道) 하여 30년이라 했다. 기술적인 단련을 십여 년 쌓아 가면  

예술의 지경에 다다르며, 예술적 경지을 이루어가면 도의 경지가 보인다는 뜻이다.  

우리들의 인생살이도 그와 같아 열심히 살다 보면 참 삶의 길이 보일 것이다. 차에도 우리의  

인생길과 같은 길이 있다. 하지만 학문하듯 학문에 매여 그 실행을 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덕이  

되지 못할 것이다. 문명의 발달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다른 여러 분야와  

마찬가지로 차 생활도 편리해졌다. 차 생활의 3대 요소라 할 수 있는 차와 물과 불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옛날에는 차를 구하기도 어려워서 아주 귀하게 여겼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 귀양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초의선사가 손수 법제하여 보내주는 차 봉지를 받으며 오갔던 정신적 교류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다산 정약용이 차(茶)를 얻으러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를 찾아다녔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지금도 그 오솔길 주변에는 야트막한 차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있으리라. 지금은 백련사나 금산사 뿐 아니라 차 유적지 주변에서 얼마든지 훌륭한  

차도구들과 차를 구할 수 있다. 

  옛날에는 사찰주변의 자생 차 밭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잠을 깨기 위하여 혹은 약용으로 쓰기  

위하여 차를 법제하였다. 또한 궁중에 차를 진상하기 위하여 차가 생산되는 마을 에선 민초들  

노역 때문에 원성이 대단하였다 한다. 현대는 차밭 조성도 많이 되어있고, 다도도 생산자와 소비자  

다도가 구분되기도 한다. 차를 구하기도 쉽고, 물 또한 생수와 정수기가 일반화되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선인들은 좋은 물을 구하기 위하여 산정을 올라야 했고 강 가운데까지 들어가야 했다. 중국의  

다성(茶聖)이었던 육우의 다경에 보면 물의 품성을 20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체성이 좋은 불을  

얻기 위하여 땔감으로 쓰일 나무 가지를 선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은 전기와 가스가  

있으니 얼마든지 화력을 조정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현대인은 바쁘다. 탁한 마음을 여과시킬  

한적한 시간을 낼 수 없다. 문명 중독의 메뉴가 많아지는 현대에야 말로 차는 그 중독성과 취기를  

걸러내는 역할의 한 부분을 한다고 하니 벗 삼을 만 하지 않은가? 

  탕수를 끓이는데 있어서도 옛사람들은 그 물 끓는 모양을 보고 들으며 시끄러운 마음을 달래었다.  

게눈이 지나가고 고기 눈이 일어나고, 소소히 솔바람소리 들려오네. 이는 물이 끓기 시작하는 모양과  

소리를 주의 깊게 살펴본 옛사람들의 표현이다. 물이 완숙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아 물이 맹탕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일상 먹는 밥의 물도 뜸이 알맞게 들어야 맛이 있듯이 물도 알맞게  

익어야 한다. 그리하여 차와 물의 조화가 잘 되어 간이 잘 맞아야 좋은 맛을 낸다. 싱거운 사람,  

짠 사람 하는 말도 이 차의 맛에서 비롯된 것이라 알고 있다. 

  우리의 인생살이도 삼삼하고 담백하게 간을 맞추어 한 없이 들끓는 내부의 혼(魂)을 맑혀  

우리의 소중한 생명을 맹탕 헛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어지럽고 들뜬 마음일 때 평화의 간을  

하고, 맹렬하게 휘몰아치는 물기운 같은 때 봄비에 황사가 가라앉듯 오월의 솔바람 같은 아늑한  

정적의 간을 할까. 채워도 채워도 가득 차지 않는 욕망의 불기둥은 비우고 나누는 사랑의 간을 맞추자.  

무엇보다 자신을 성찰하고 현실을 깊이 여과하는 지성의 간을 맞추어 경박한 부딪침 소리가 나지  

않는 맛갈스런 삶의 맛을 내보도록 해보자. 

  우리가 이루어 온 근대화와 민주화만큼이나 우리 인간성도 성숙해졌을까? 차의 계절을 맞아, 

우리의 전통문화가 얼마나 여과되어 우리의 현실에 재조명되고 수용되고 있는가를 생각해본다.  

선인들이 이루어 놓은 차 생활의 덕목마저 축제와 상업화 한 이벤트에 가리어져 우리 삶의  

간이 맹탕으로 되고 있지나 않은지 염려되는 마음도 없지 않다. 

 

 

 

 

9. 다림에서 다님을 안고 동침하다

    

  산이 연두 빛을 띠기 시작하면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그 산 빛 우려내어 정다운 벗과 마주하고

차를 마시고 싶다 했지. 차나무에도 새 순이 치밀어 오르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서성거리기

마련이다. 신들린 사람처럼 차신(茶神)이 들어와 달려가게 된다. 오늘이 세 번째 찾아가는 길이다.

벌써 열흘이 지나서야 날을 받을 수 있었다. 그새 송화가 피어서 날리고 비도 지난 후라 찻잎은

많이 피었고 잎을 딸 때마다 송화가루가 풍겼다. 녹차를 만들기보다 발효차를 만들기에 알맞은

크기였다.

  찻잎과 종일 서로 비벼대며 맛보고 놀고 햇빛이 여려져서야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한 잎 한 잎

딸 때마다 오체투지의 자세로 님을 받았다. 흠모하는 마음으로 천지의 은혜에 감사함이 새록새록

우러났다. 찻물이 우러나듯이 내 마음도 그렇게 우러나는 것 같았다. 황토숯가마방으로 가서 같이

찜질도 하고 땀을 흘리면서 차잎을 애무하고 같이 누워서 잠을 자기도 했다. 차 잎이 익어가는

향에 젖어서 힘든 줄도 모르고 자정이 다 되도록 서로 젖어들었다.

  너 댓 시간 단계마다 습이 빠지고 향이 모아져서 찻잎이 익어갔다. 마침 알맞은 향이 되었을 때

발효를 멈추고 뜨거운 방에서 말렸다. 내 몸에서도 어느 듯 피곤이 가시고 습이 빠져 마음이 차

마음처럼 익은 듯했다. 차향이 유념(留念)되어 맛있는 발효향을 지니게 된 것 같다.

  차향처럼 그렇게 맛있는 향을 지닌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냥 차향이라도 몸에

베게 하고 싶다. 차 계절 한 철, 이 향을 맛봄으로 한 해의 기운을 보장이라도 받는 것 같다. 하루

아침의 절운동으로 기도와 하루를 보장받는 것처럼. 참 희한한 일이다.

  영국인들이 청나라에서 차잎을 운반하다 영국에 도착하여 보니 묘한 향에 매료되어서 홍차를

개발했다던가. 오늘 나는 차잎을 온종일 따서 저녁 내내 황토방에서 차와 동침하다보니 묘한 향을

지닌 차가 되었다.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나를 이렇게 몰입하여 사랑할

수 있게 할 것인가. 그 어느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나에게 들어올 수가 있을까.

  "옛날 중산선생이 거문고를 좋아해 부(賦)를 지은 것과 도연명이 국화를 사랑해 노래한 것은

은밀한 것을 드러나게 한 것이거늘 하물며 차는 그 공덕이 높음에도 아직 찬송하는 자 없으니

이는 어진 이를 버림과 같아 또한 잘못된 일이 아니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차의 경전으로

일컫는 차(茶)부(賦)을 남기신 이(李)목(穆)선생은 차부병서에 그렇게 썼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차는 스스로 세금을 들여오지만 반대로 사람에게는 고통이 된다고 하는데 그대는 노래 글을

지으려고 하는가?" 하여 선생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어찌 하늘이 만물을 만든 본 뜻이겠는가,

이는 사람 탓이지 차 탓이 아니다. 또 나는 차에 대한 남다른 기호가 있어서 그런 것을 언급할

겨를이 없다."

  그로 보아 조선 초에 차를 진상하기 위하여 차 마을 백성들의 원성과 고통이 얼마나 심했나를

알 수 있다. 오죽 하면 차가 나지 않은 마을 사람들이 찻세를 내기 위하여 차가 나는 지방에 가서

쌀 한 말을 주고 차 한 되를 샀다 했으니 말이다. 지금도 차 한 되와 쌀 한 말과 맛 먹지 않을까

싶다. 아니, 차 값이 더 나갈 것 같다. 심지어는 백성들이 차밭에 불을 지르기까지 했다고도 한다.

문인들 역시 찻세가 무서워 마음대로 차를 마시지 못하는 이러한 상황에서 차를 예찬하고 나서니

주위의 시선이 곱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목 선생도 이백이 달을 좋아하고 도연명이 국화를 좋아하여 노래한 것 같이 평소 좋아하는

차가 그 공덕이 크므로 찬양하지 않을 수 없노라고 그 <다부>를 쓰게 된 동기를

밝혔다.

  옛 중국의 죽림칠현 중에 중산(혜강)이란 사람은 거문고를 좋아하여 금부(琴賦)를 썼고, 유령은

술을 찬양하여 주덕송(酒德頌)을 지었다. '죽림칠현'을 그린 그림에 거문고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이

바로 혜강이라고 했다.  유령은 주덕송에 이렇게 말했다 한다. "술잔을 물고 막걸리로 양치질을

하고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술찌끼를 깔고 앉고 누룩을 베고 누었다"

  내가 딱 그런가? 아마도 옛날 단차를 만들 때 같으면 그 차 덩이를 베고 잤을 법도 하다.

4O대 젊을 때는 나도 차를 끼고 다니면서 차멀미 날 때나 시중에서 밥을 먹을 때는 식후에 찻잎을

씹었다. 양치 효과 이상이거든. 양치를 하고 나면 치약의 여운이 좋지 않아 차를 더 마시고

싶기도 한 것이다. 나이 들어서는 녹차보다 발효차가 좋아서 낮이나 밤이나 마실 수 있고 요즘에

와서는 잘 운용하면 내장을 잘 다스려주어서 양생에 좋다. 정신적으로는 지기지우(知己之友)를

끼고 있는 것 같아 흡족하기 이를 데 없다.

차를 처음 좋아하여 가까이 하였을 때는 차에 관련된 차문화에 치우친 바 있어 공부하게도 되었다.

그 세월이 쌓여 감에 따라 차의 품성과 정신을 닮고 싶어 좋아하는 이상이 된 바,

이제쯤에야 다도(茶道)에 입문은 하였구나 하는 안심이 되는 것도 같은 요즈음이다. 하여

나도 이목 어른의 뜻을 이어받아 그의 차 정신의 경지를 음미하며 차에 대한 덕을 체험한 바를

내 손주들에게 남기고 싶다. 이제 다도에 입문 한 것 같으니 양극단을 버리고 중도의 길을 꾸준히

정진할 바이다. 차가 동반자가 되어줄 것을 믿을 뿐이다.  (2008/5/9)

 

 

 

 

 

초순선미(初巡鮮味) 재즉감순(再則甘醇)

  이른 봄 연두 빛 산색이다. 상긋하여 신묘스런 향이다. 입안의 맑은 찻물 흘러 가슴으로 내리는

소리가 퍼지는 듯도 하다. 연 초록 안개가 몸 안으로 서려온다.

  가까운 이웃에서 만난 차나무에서 어린 찻잎을 한웅큼 채취하는 행운을 얻어 즐거웠다.

이미 잎이 다 피어나서 작설(雀舌)이 아니라 펴오르는 날개 같지만 첫 잎이어서 야드레하다.

다소(茶疏)의 저자인 허차서(許次 ))의 말대로 해보기로 한다. 어떤 스님이 청발효차를 만들면

신선한 향과 빛을 즐길 수 있다 하였다. 차의 경전으로는 다경(茶經)을 치지만 다경은 당나라 사람

육우가 지었고, 그 때는 오늘과 같은 잎차보다 단차와 덩이차를 애용하여 오늘의 잎차와는 거리가

멀어서 참고할 사항이 많지 않다. 다소는 명나라 때의 차생활에 대한 글이므로 오늘날과 같은

잎차가 성행하는 때에 맞는 차의 고전으로 그 근원을 살피기에 알맞다.

  청발효차는 섭씨 60도쯤 되는 온도의 솥에 천천히 오래 덖으면 서서히 익으면서 발효가 약간

되고 청빛이 살아 있다고 했다. 다소의 글대로라면, "한 솥에는 겨우 넉냥(150그램)을 수용한다.

먼저 문화(文火), 여린 불,을 써서 부드럽게 덖고, 다음에 무화(武火), 센 불,을 써서 재촉한다.

손에는 나무손을 쥐고 급급히 뒤집어 익히는데, 반 익은 정도에서 조금 기다려 향기가 발하면

이 징후일 때가 마땅하다." 이번에 나는 처음 열을 약간 올린 솥에 찻잎을 넣고 향기가 나는

징후가 발할 때까지 서서히 덖었다. 차 익는 향이 솥에서 밖으로 피어오를 때 익은 찻잎을

꺼내어서 면綿 보자기에서 한 번 비벼서 털었다. 다시 솥에 넣고 사분히 덖었다. 찻잎이

익어갈 때마다 솥에서도 비벼가면서 덖었다. 알맞은 향기가 될 때 덖기를 그치고 차 솥이

식을 때까지 비빈 것을 밤 새워 두고 다음 날 다시 더운 솥에서 마무리를 했다.

  차 잎이 익어가며 향을 발할 때의 맛 때문에 차를 만든다. 바로 그 과정의 맛 때문에!

불발효차든 발효차든 그 익어 가는 향기는 그 무엇에도 비길 수가 없는 맛이다. 그 향기로

인하여 한 해의 차를 다 마신 듯도 하고 한 해의 정기를 모두는 기분이 든다. 다음 날 고요히

그 차를 우려 보았더니, 바로 허차서의 말 대로였다.

  초순선미(初巡鮮味) 재즉감순(再則甘醇)

  오늘에 와서야 중국(中國)의 글자인 한자에 목마를 줄이야! 우리는 한글 세대여서 학창시절에

한자는 소홀히 하고 영어 공부에 온 정열을 다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영어를 해야 먹고살기

쉬웠으니 늙으면 서양 할머니가 될게다 고 내 언니가 말했었다. 그러면서도 이웃의 나라말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늦게야 중국말에 갈증을 느끼게 된 것은 차(茶)의 고전이 모두 중국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인이 모두 중국에 유학하였기 때문에 또한 한자로 책을 썼기 때문이다. 나의

조상을 따져보아도 '주자가례'의 성현 '주희'의 주씨 성을 이어받는 어머니 성에다, 아버지의

성씨는 조나라 조(趙)였으니, 원 고향은 중국이 아니던가. 왜 이제야 중국말에 초점이 꽂히는가

한탄스럽다. 사실 문자명이 한자일 뿐이지 갑골문 6000자는 동이족이 만들고 그 이후는 여러

민족에 의해서 발전시켜온 동반 공유문자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 맞다. 특히 우리조상이 3000년

이상을 우리 글로 써온 문자인 것을. 시대를 탓하랴, 누구를 탓하랴!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져본다.

한문을 공부했으면 원어가 지닌 맛을 더 깊히 느낄 수 있을 터인데….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한글공부였고, 그것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새롭게 하는 일이었다. 그렇듯

언어 그 자체는 그 나라의 정신이요 문화의 집결이 아니던가. 차로 인하여 중국의 말과 문화에 더

주의가 높아진다. 중국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근간을 함께 이해하고 우리의 고유성을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어찌됐던 번역의 말로라면, 첫잔은 맛이 선(鮮)선(仙), 둘째 잔은 달금순박하며, 셋째 잔은

의욕을 다하게 한다. 즉 삼순의욕진의(三巡意慾盡矣) 이다. 흔히 차를 처음 대하는 자들이 듣는

차의 맛을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있다. 첫 잔은 십오륙세의 아릿따운 맛이요, 둘 째는 익은 여인의

맛이며, 셋 째 이상은 늙은 맛이란 말이다. 이 말들은 허차서의 다소에서 비롯된 말인 듯하다.

  허차서에게는 명(明) 당대의 사람으로 시문에 능했고 은퇴 후에 여러 서실을 운영했다는 풍개지란

친구가 있었다. 풍개지와 차를 살펴들며 농담하는 말로, "이초순위정정(以初巡爲停停), 뇨뇨십삼여

(  十三女), 재순위벽옥파과년(再巡爲碧玉破瓜年), 삼순이래,록엽성음의(三巡以來),(綠葉成陰矣)"

라 한 것이다. 번역된 글로는, "첫 잔의 차는 아리땁고 여리고 부드러운 열 세 살이오,

(정정뇨뇨(    )라는 속자가 있는데 그 뜻이 아리땁고 여리고 부드러움의 뜻이란다. 계집 녀

변이 붙은 글자가 재미있다.) 언제 저런 한문 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내 가 차(茶)를 가까이

하지 않았던들…. 둘째 잔은 벽옥같은 15-16세요, 경도가 시작되는 과기(瓜期)의 '과' 자는 8자가

두 개이니 2, 8이 16이 된다는 말이 또한 재미있지 않은가. 남자들끼리라면 차 잔의 맛을 겨루어

그런 농을 능히 주고받을 만 했겠다. 풍개지는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단다.

  그러하니 차관을 작게 하여 두 순배로 끝내고 차라리 남은 향기는 오히려 찻잎에 머물게

하였다가 오직 밥 먹은 뒤에 입가심 용도로 제공됨이 마땅함으로 버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 또한 차를 다룰 때 집에서 그렇게 하고 있으며, 여러 번 덖은 차는 몇 잔이라도 좋은 맛을

내니 네 째 잔 이상도 목마름을 달래는 데도 쓰고 다른 용도로도 쓴다.

  과연 그렇다 굳이 차 맛을 뭐라 알맞은 말을 찾을 일이 없다. 옛 차인들의 말 그대로라,

차 맛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이지만, 요즘 낭자들이 옛사람이 말한 그런 차 맛에 비유될

낭자들이 있을까. 현대 문명의 맛이 덧칠해진 요즘 처녀들은 어떤 맛에 비유해야 할 지.

  우리의 어여쁜 손주들이 어릴 때부터 차를 다루고 차 맛에 길들여져서 그 청순함을 잃지

않도록 노력할 일이다. 그 초순과 재순의 맛을 지니도록 차의 맛과 품성을 배우면 좋으리라.

차가 익어가며 향기를 발하는 것처럼 자라고 성숙해 감에 따라 발효차가 내는 풍미처럼 깊은

맛을 지니는 여인으로, 어머니로 할머니로 되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옛 차인들이 노래한 차 경전과 다소와 다부들의 글귀가 새삼 가슴에 스며든다. 허공에 잔을

받쳐 올리고 차 노래를 읊조리며 차 한 순배 두 순배를 나눈다.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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