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을 두고 들장미라고 한다는 것은 진작부터 짐작했지만
국어사전에 그렇게 나온 줄은 몰랐다. 제주 출신 가수 백난아가 부른
옛노래 ‘찔레꽃’ 가사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이라
되어 있다. 그러나 보통 찔레꽃은 새하얗지, 붉은 것을 못 봐서
혹 들장미 계통은 붉은가 짐작만 했다. 어제 노루손이오름에서
막 내려온 곳, 저녁 햇살을 받고 수줍게 피어있는 이 분홍빛 순정….
간혹 꽃이 피거나 져갈 때 분홍빛을 띤 것은 보았지만 그냥
이렇게 감질날 정도로 예쁜 빛을 띤 것은 드물다.
찔레나무는 장미과의 낙엽 활엽 관목으로 높이는 2m 정도이고
가시가 있으며, 잎은 깃모양 겹잎이고 잔잎은 긴 타원형으로 톱니가
있다. 5월에 흰 꽃이 원추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장과로 10월에
빨갛게 익는다. 열매는 약용하고, 관상용, 산울타리용으로 재배하기도
한다. 산기슭의 양지와 개울가에서 자란다.
♧ 들장미 - 황금찬
피어 있다
부서진 청자
백합무늬 매병
그 조각조각 위에
전쟁이 쓸고 간
저 귀 아픈
벌판
그 날의 포연처럼 ㅡ
어제도 아니고
이제는 전설일 수밖에 없는
젊은 피의 생명 밭에
자유롭게 핀
들장미
말하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사랑을 눈으로 퍼올리듯이
그렇게 하늘만 보고
피어 있었다.
♧ 밀월蜜月 - 김종제
부전나비 날아와
살며시 앉았다 간 자리마다
희망 둥글게 부풀어가는 유월로
숲은 밀월 아니었던 때가 있었나
들장미 떨어져
빗물 가득 고인 자리마다
소망 붉게 물들어가는 유월로
강은 밀월 아니었던 때가 있었나
손 잡았던 겨울부터
입술 맞닿은 봄까지
꼿꼿히 목숨 지켰던 것은
죽은 듯 있다가도
숨 가볍게 뛰며 살아나
따뜻하게 불 지펴준
당신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살 맞대고 꿀 같은 말을 주고받아서
생이 그토록 달콤하였던 것인데
배필의 당신으로
신혼 같은 날 아닌 적 있었나
연인의 당신으로
밀월 같은 날 아닌 적 있었나
향기로운 꽃에게
나비처럼 멋드러지게 날아가
탐스런 열매 맺게 하는 것
벌겋게 달아오른 햇살로
지상이라는 밭에
씨 가득 뿌리고 있는 것
가만, 세상도 밀월중인가 보다
♧ 혹은 넝쿨장미에 대하여 - 허영미
제 사랑의 그릇
흘러 넘쳐나 꽃가지 허리가 휜다
세상사 흐드러진 꽃보다
더 향기로운 풍경이 어디 있으랴
저렇듯 한번쯤 피어 볼 일이다
사랑하기 이전부터
상처의 시린 자국이 두려워 뒷걸음질치는
연약한 인간의 자리,
사랑한 이후, 그 외로운 자리에
수없이 돋아날 들장미의 눈물도
한갓진 생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엮이어
돌아가는 길
비망록 한 장으로 펄럭여 줄 수 있다면
진정, 저렇듯 피어 볼 일이다
♧ 그가 오리라 - 이향아
어느 날 그가 말을 타고 오리라
들장미 올린 통나무 집에 살겠다던 내게
'오래간만입니다'
그가 낮은 뱃고동 소리로 모자를 벗는
문밖엔 철따라 안개며 눈비
방안엔 꽈리색 램프 짙게 타오를 때
예감처럼 그가 오리라
강물은 흘러감,
백년이 짧음
손풍금소리 구슬픈 축제의 날
반짝이는 유리잔에 적막이 고일 때
그는 내게 오리라
이제서야 철이 드나
슬픈 나를 찾아서
♧ 주일 미사 - 홍윤숙
거기만 동그랗게
해가 들고 있었다
生木 울타리 늘어선 사이 사이
빨간 들장미도 피어 있었다
바람은 울타리 밖에
파수를 서고
구름은 한 발자국 비켜서
돌아갔다
한 층 높은 빛 속에서
눈부신 사나이가
금빛 목소리로 호명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뽑힌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나와
순결한 얼굴로 무릎 꿇었다
그러면 갑자기 거기만 동그랗게
불이 켜지고
그 밖은 캄캄한 어둠으로 변했다
빛이 도려내는
차가운 가위질
나는 어둠 속에 혼자 남아
문득 두터운 빛의 유리벽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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