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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비양도의 백합의 눈부심

차보살 다림화 2010. 6. 14. 20:22

 

어젯밤 월드컵 승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침 일찍 밥을 먹고 

비양도에 같이 갈 제주어보전회 팀을 만나 한림항으로 향했다. 미리

약속이 된 거라 초등학교 동창회 체육대회와 다른 모임엔 갈 수 없는

것을 세 배로 즐기기 위해 노력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한 번

돌다가 어느 집 울타리 안에서 이 백합을 만났다. 반가웠다.


백합(百合)은 백합과 백합속의 여러해살이풀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높이는 30~100cm이며, 잎은 촘촘히 어긋나고 피침 모양이다. 꽃은

크고 꽃부리는 6개로 갈라지는데 향기가 좋아 관상용으로 많이 이용한다.

알뿌리로 번식하고 비늘줄기는 식용하며 뿌리는 약용한다. 70~100여

종이 온대에 분포한다.



 

♧ 백합 향기 - 권달웅


 버스가 화원 앞 정류장을 지날 때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백합 한 다발을 안고 올라왔다. 운전기사가 백미러를 본다. 새하얗게 언 차창으로는 앙상한 플라타너스가 지나가고 버스에 탄 몇은 쿨룩거린다. 갑자기 버스 안은 백합 향기가 난다. 작업복을 걸친 젊은이가 일어나 노인을 부축한다. 콩나물 봉지를 든 아주머니가 흐뭇하게 웃는다. 그 아주머니를 보고 책가방을 든 학생이 웃는다. 나는 그 학생을 보고 웃는다. 변두리로 가는 버스에는 앙상한 플라타너스가 흔들리고 고단한 몇은 웃는다. 누구에게 주려는 백합일까. 밖은 살을 에는 찬바람이 부는데 버스 안은 온통 백합 향기로 가득하다.


 

♧ 백합의 말 - 이해인  


지금은

긴 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을 만나

되살아난

목숨의 향기


캄캄한 가슴 속엔

당신이 떨어뜨린

별 하나가 숨어 살아요.


당신의 부재조차

절망이 될 수 없는

나의 믿음을


승리의 향기로

피워 올리면


흰 옷 입은

천사의 나팔 소리


나는 오늘도

부활하는 꽃이에요.


 

♧ 백합에게 - 이준호


아침을 쓸어내리며 흐르는 순백의 살결,

이슬 빛에 촉촉이 젖어 내린

그대의 청아함이 나는 좋습니다.

입술을 살포시 깨어 물듯

바다처럼 다물어진 입가에 흐르는

잔잔한 미소가 나는 좋습니다.


숨 가쁜 메마름의 언덕 위를

바람처럼 비집고 들어와선

햇살 몇 조각 잔잔히 뿌려 놓고

날마다 고개를 들이밀어

내게 눈부심으로 몰아쳐오는

그대가 나는 좋습니다.

 

지루한 세상의 몸짓과

밤하늘의 적막함,

그리고 가녀린 세상의 하늘에

한 떨기 자그마한 소망으로 피어

가슴이 시릴수록 손끝이 따스한

그대가 나는 좋습니다.


텅 빈 거리를 서성이다

힘없이 돌아오는 저녁이

마냥 고독함으로 남을 때

저만치 하얀 속삭임으로 다가와

발걸음 가볍게 나를 불러

온통 그리움 되어 쏟아지는

그대가 나는 좋습니다.



 

♧ 초원의 빛, 테스에게 - 김윤자


백합의 꽃술로 축제의 날 그를 만난 건

가슴 흔들어 놓은 그 사람을 만난 건

승화된 슬픔이라 여기자.

가문의 혈통에 눈 먼 아버지가

끌려가는 짐승으로 마차에 실려 보낼 때도

가난이 죄였겠지.

거짓 혈통임을 알았을 때도

사촌 오라비, 알렉이 부랑아란 것도

아침 찬바람이라 여기자.

 

 

참을 수 없는 건 달빛 숲에서 꽃성이 무너진 것

한 번의 박힌 칼날이 생의 절벽이 된 것

당하여 눈물로 살아간 너보다

읽어 내리는 내 눈이 더 서러워라.

목사의 아들 에인젤, 백합의 향기로 다가온

그 최초의 젠틀맨은 널 사랑한다 했지

네 몸 속 검은 그림자를 이끌어 내기 전까지는.

잔인한 입술 침묵할 것을

죄의 불꽃이 일렁여도 안으로 삭일 것을

물망초 소녀 테스야, 형장의 이슬로 잠든 언덕에

참회의 눈물로 무릎 꿇은 그를 이제는 용서하길.

초원의 빛으로, 초원의 사랑으로.



 

♧ 가난한 사랑을 꿈꾸었다 - (宵火)고은영


어스름에

석양 진 하늘가 구름 몇 점 머쓱하고

마당 흐드러진 백합이 등불 같은 날


눈보다 더 시린 흰 고무신 신고

섬돌 내려서는 러닝 바람에

검게 물들인 군용 바지가 잘 어울리는 그


백합꽃 향기 담은 가슴 언저리

반딧불 같은 담배를 피워 물고

박꽃보다 환한 웃음을 짓는 그


 

겨울엔 삼나무 내리는 눈길

끝없는 그리움과 동무하고

천 리도 마다 않고 끊긴 길 트고

날 향해 오는 그


그의 성역 같은 흰 고무신은

늘 백합을 연상케 했고 백합을 보면

흰 고무신이 떠오르던 내 청춘


언제나 가난한 사랑을 꿈꾸었다

황순원의 소나기 초희가 되어서

  


 

♧ 편지 하나 - 하두자

    

비가 흠씬 묻어나는 오후입니다

그리움보다 먼 당신에게

몇 자의 글귀를 띄울 무렵 내 집 창 밖은 온통 회색빛입니다

매일, 나의 기쁨이자 고통인 당신을 위하여

하늘과 구름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조그맣게 몸짓 내밀며 보이는 싹눈들의 연둣빛 꿈

그 기다림으로 비워진 하오을 채우지만

이제 하늘은 어두어져 비는 내릴 것이고

습관처럼 견딜 수 없는 적막함에 목이 잠깁니다

속절없이 무너지는 꽃잎, 뜨락 앞에서

보이지 않는 저 길 저편으로

아득한 어둠도 보였습니다

강물은 흘러 바다로 가고

계절마다 깊고 푸른 꿈을 향해 바지런히

키운 그간의 세월 … 혹시, 만약에, 내가 그 이름을

만날 수 없다 하더라도 강물 따라 흘러갈 백합꽃 향기와

말갛게 닦아 준 안경알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당신을

만나뵐 수 있을 겁니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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