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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종처럼 매달린 때죽나무꽃

차보살 다림화 2010. 6. 14. 20:21

 

 

 이 꽃을 피웠던 때죽나무는 지금 동글동글 열매를 맺고 있다.

전국 지방 선거는 3,991명의 당선자를 내고 끝났지만

그 많은 인원 속에 들어간 사람보다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 많으니, 우리나라도 그만큼 인재가 많다는 얘기다.


나를 업고 동네방네 다니며 고추 자랑을 했다는

증조모 제사를 끝내, 정리를 마치고 들어 앉아

스페인과의 마지막 월드컵 평가전을 보면서

이 글을 올린다.


종(鐘)처럼 매달려 핀다고 제주에서 ‘종낭’이라 불리는 때죽나무는

때죽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는 10m에 이르며, 잎은

어긋나고 긴 타원형이거나 마름모형이다. 늦봄에 흰 꽃이 총상

꽃차례로 늘어져 피고 열매는 둥근 핵과(核果)를 맺는다.

산기슭이나 산 중턱의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때죽나무 - 구순희


한 나무의 중심을 벗어난 이파리는

어긋난 이파리의 중심에 닿지 못한다

섭섭함이 쌓여 품은 독 등뒤에 숨기고

벼랑에 선, 시퍼렇게 벼린 칼 한 자루

둥글고 파란 시절 한가운데를 작파한다

신뢰의 낯익은 겨드랑이에 흐르는 시간

무성한 한 때, 절정을 향해 넋 놓았다

꽃 지고 열매 맺으면 눈물 한 방울에도

남빛 물감 드는 추억의 고개 넘어가던

상심이 익어 터진 껍데기를 보아라

꽁꽁 싸맨 독 비로소 몸 푸는 때가 왔다


물고기 자유로운 냇물에 독을 뿌린다

사철 함께 했던 새에게 일용할 씨를 준다

잎 다 떨군 나무는 쪼개고 다듬어져

사람의 집으로 가서 붙박힌다

독 안에 든 열매는 목걸이가 되는……


한 몸에서 떨어져 나온 일생이 잘 얽힌다

애증도 섭섭함의 중심도 한 시절 다 흘러갔다.



 

♧ 때죽나무꽃 - 안재동


봄이 한창 무르익어 갈 즈음

때죽나무에 활짝 핀 무수한 하이얀 꽃들이

그 순백의 꽃들이 하나같이

땅바닥만 바라보며 웃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을 한 점이라도 더 받으려는 양

어쩌면 세상에서 제멋만이 최고인 양

그도 아니면

푸른 하늘에 앞다투어 얼싸 안기려는 양

가지가지 색깔과 양태로 요란하게 분단장한

세상의 여느 꽃들과는 딴판이다

때죽나무꽃에 그 연유를 물었더니

단 한 순간도 땅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려

애쓰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가로등에 물어보라고만 한다


 

때죽나무꽃의 주문을 헤아리려

땅거미가 온 거리를 삼킨 뒤의 저녁 무렵

가로등에 바짝 다가섰으나

고개를 쳐들고 바라만 보고 섰다가 조용히

돌아서고 말았다

그렇게, 사람은 가로등을 만들지만

고장 나기 전까진 그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산다

어쩌면 때죽나무꽃과 가로등의 심정으로

지금 나를 바라보는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가끔

땅을 바라보며 걷는 것이 즐거울 때 있다


세상 모든 꽃들이 하늘만 바라보는데

때죽나무꽃이 아니라면

어느 꽃이 맨땅에 눈길 한번 줄 것인가

제 얼굴의 아름다움도

땅에 의지하고 있는 제 뿌리 때문임을

꽃들은 알기나 할까?

땅은 때죽나무꽃더러 이른다

세상 그 어느 꽃보다 수더분한 이름이여

그 어느 꽃도 비할 수 없는 참빛의 얼굴이여

갈수기의 단비처럼 고마운 존재여

순박의 사랑이여



 

♧ 때죽나무꽃 - 이광석


온갖 봄꽃 다 진 자리에

밥풀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때죽나무꽃

외할머니는 저 희디흰 꽃잎으로

하이얀 쌀밥을 지어 내셨다

새들이 휘파람으로 불러모은

5월의 푸른 들판에

거짓말처럼 내린

설화雪花

외할머니 옥양목 치맛자락

때죽나무 가지마다

눈부시다



 

♧ 끼리끼리 - 김영천 

 

산에 가면

소나무는 소나무끼리

가문비나무는 가문비나무끼리

때죽나무와 상수리나무도 끼리끼리 서로

모여 있는 것을 봅니다만

그들은 구태여 자기들끼리만 어울리기를 주장하거나

제 구역을 획정하지는 않습니다


서로 틈을 내어 바람을 나누며

발아래 흐르는 물에 공평하게 뿌리를 적시며

씨앗을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보내기 위해

새나 짐승들에게 제 소산을 먹힙니다

더러 씨앗이 제 밑에 떨어져도 훼방하지 않고

같이 자라고

큰 바람은 서로 은근히 막아줍니다


보세요

사람만 사람끼리 등 돌리고 서 있습니다



 

♧ 막이 올랐습니다 - 이향아

    

봄날은 한 바탕 북새통에 가라앉고

연습은 충분히 끝났습니다


때죽나무 그늘에선 때죽꽃이 마르고

이팝나무 그늘에선 이팝꽃이 시들어

해는 어제보다 한 뼘이나 길어졌습니다

저녁노을 꽈리색도 사무칠 것입니다


총연습은 끝나고

6월,

막이 올랐습니다

 


질경이, 익모초, 쑥부쟁이 같은

엉겅퀴, 명아주, 개망초 같은

약 오른 풀들이 대궁이를 흔들면서 

차려 입은 미루나무 때까치들도

그 발아래 새 살 돋는 벌레들까지

북장구를 치며 설레발을 치며

소리소리 목숨을 공연하는 중입니다


바람은 남양군도 쪽에서 불어 와

찌가 익어 떨어진 언덕 아래로

뱀딸기 눈짓하는 풀밭 속을 파고들고

햇살은 힘주어 대낮을 색칠할 것입니다

묵은 연방죽 진흙 수렁에서도   

영양분 넘치는 진한 향내가

행군하는 음악을 실어다 줄 것입니다


막이 오르고

나도 숨이 가쁩니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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