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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매월당 김시습의 숨결이 전해 오는 무량사 無量寺

차보살 다림화 2010. 12. 8. 17:57

              

                                                                                    무량사 無量寺


무량사 無量寺 : 조계종 제6교구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천년고찰 아미타기도 제일도량 무량사는

신라 문무왕 때 범일국사가 창건했으며,

신라 말 무염선사께서 중수하고

고려 고종(1213-1259) 때 중창을 하여 요사채 30여 동과 산나 12개 부속암자가 있었다.

그 후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불타버리고

조선 인조(1623-1649) 때 대중창을 하였으며,

1872년 원열화상이 중창을 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특히 생육신의 한 분인 매월당 김시습 선생의 초상화와 부도탑이 있다.

 

#매월당 김시습 (1435∼1493)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사람이며 조선 전기의 유학과 불교에 능통한 학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인『금오신화』를 남겼을 뿐 아니라

그의 저작은 다채롭고 조선 전기의 사상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유교와 불교 관계의 논문들을 남기고 있으며

15권이 넘는 분량의 한시를 남겼다.

김시습은 5세 신동으로 불렸는데,

세조의 왕위찬탈을 보고는 출가승이 되어 산천을 떠돌다가 이곳 무량사에서 육신의 옷을 벗었다.

설악산 오세암에서 병든 몸을 이끌고 무량사로 찾았다.

무량수불無量壽佛 아미타부처를 찾은 탓일까? 

 

초상화 : 보물 제1497호

김시습선생의 초상화이다.

비단에 채색하여 그려 놓은 이 그림은 조선 전기 사대부상 중의 하나로, 선생이 살아 있을 때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반신상으로, 야인의 옷차림에 패랭이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옅은 살색으로 맑게 처리하였고, 윤곽선과 눈·코·입 등은 옅은 갈색으로 그렸다.

의복은 옅은 홍색인데 필요한 부분만 약간 짙은 갈색으로 묘사했다.

이로써 얼굴과 의복을 옅은 살색과 그보다 약간 짙은 갈색을 대비시켜 조화있는 화면을 만들었다.

수염은 회색 바탕에 검은 선으로 섬세하게 그려, 당시 초상화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조선 전기의 초상화는 현재 몇 점 밖에 전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도 원본을 본 떠 그린 것이거나 덧칠을 한 것이 많은데 이 초상화는 원본 그대로 남아있어 귀중한 작품이다.

그의 저서인『매월당집』에 의하면, 김시습은 생전에 두 점의 자화상을 그렸다고 하는데, 이 그림이 그 자화상인지의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약간 찌푸린 눈매와 꼭 다문 입술, 눈에서 느껴지는 총명한 기운은 그의 내면을 생생하게 전하는 듯하여 초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 김시습 선생의 초상화

 

         @ 김시습 시비

[ 새로 돋은 반달이 나뭇가지 위에 뜨니

  산사의 저녁종이 울리기 시작하네

  달그림자 아른아른 찬 이슬에 젖는데

  뜰에 찬 서늘한 기운 창틈으로 스미네  ]     

 

@ 김시습(1435-1493) 부도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5호

무량사 일주문을 들어가기 전에 좌측으로 다르를 건너 무진암無盡庵입구에

이 절에 인연이 있는 스님들의 부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거기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매월당 김시습의 부도이다.

조선 시대의 부도들이 대개 석종형이나 달걀형으로 간소화되었던 것과는 달리

이 부도는 조선 중기에 세워졌으면서도 초기 부도의 모습인 팔각 원당형을 하고 있는 점도 오히려 이채롭다.

높이는 2.84m이며, 하대석에는 엎어진 연꽃이 도드라지고,

중대석에는 용 두 마리가 서로 얽히고 엉키어 구름 속에서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다.

연꽃인 상대석 위의 몸돌은 아무 무늬도 없이 단정하여 대조적인데 지붕돌에 다시 팔각 귀꽃이 솟았다.

엎어진 연꽃이 지붕 위를 덮는 듯하고 그 위에 동글납작한 공모양의 돌이 얹혀 있으며 다시 지붕돌 하나를 얹은 듯한 모습이다.

이 부도가 일제 시대에 태풍에 쓰러졌을 때 그 안에서 사리가 나왔는데 지금은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 중대석,

                                                           용 두 마리가 서로 얽히고 엉키어 구름 속에서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다.

 

 

만수산萬壽山 무량사無量寺 ...

수명이 다함이 없는 산에,

한량없는 광명의 부처 아미타불이 계시는 절이다

 

 


# 극락전 : 보물 제356호

무량사의 본전에 걸맞게 아미타불을 모시는 전각의 명칭인 극락전이다.

곧 하나같이 다 이 절집이 극락세계임을 뜻하는 이름들이다.

무량사는 임진왜란 때 크게 불탄 뒤 인조 때에 중창하였으니

이 극락전도 그 때에 지은 것으로, 조선 중기 건축의 장중한 맛을 잘 드러내 준다.

2층집인 점이 우리나라 여느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독특한 모습이다. 

 

                  @ 중층의 예는 오층 목탑 형식인 법주사 팔상전, 3층 전각인 금산사 미륵전,

                                         그외 화엄사 각황전,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등이 있다.

 

 

그 집들 모두가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까지 뚫린 통층通層인 점이 공통된다.

따라서 이런 2층을 올린 것은 기능보다는 위엄과 장엄에 그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래층은 앞에서 바라보아 5칸, 옆에서는 4칸이며 위층은 정면이 3칸, 옆면이 2칸으로 되어 있다.

아래층 문살은 가운데가 네 짝이고 점차 두 짝, 한 짝씩으로 줄었다.

칸살이 넓어 전체적으로 집이 평활해 보인다.

정면은 모두 창살문을 달았으며 2층 정면도 지금은 판자벽이지만 원래는 살문을 달아 집안에 빛이 잘 들어오도록 했던 듯하다.

다른 벽들은 모두 흙벽[土壁]이 아니고 나무판자를 대서 만든 판벽板壁이다.

이런 점은 평지가 아닌 산간에서나 볼 수 있는 독특한 보기이다.

불전 안에는 가운데에 아미타불(5.4m)이, 양쪽에 관세음보살(4.8m)과 대세지보살(4.8m)이 있는데,

이 아미타삼존불은 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불로서는 동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 극락전 아미타소조삼존불  

어깨는 당당하나 상호가 사실성 없이 평판적이며 옷주름 등은 도식성을 보여, 단순해져 가는 조선 후기의 양식을 보여 준다.

본존불의 손이 매우 큰데 한 손은 올리고 한 손은 무릎에 내린 채 양쪽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어

아미타구품인 중에서 중품중생인을 나타내고 있다.

보살상은 전대에 견주어 영락 장식은 줄어든 편이나 보관이 매우 화려해지는 모습이 또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성을 내보이고 있다.

불상의 복장 유물에서 발원문이 나와 이 불상이 1633년에 흙으로 빚은 아미타불임이 분명히 밝혀져 연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예가 되었으며,

아울러 극락전 건물도 같은 시기에 지었을 것으로 짐작하게 되었다.

극락전 안에는 또 1627년에 그린 괘불이 보관되어 있다. 

 

* 전패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77호

무량사에 소장되어 있는 나무로 만든 전패 3기로, 규모는 높이 150㎝, 폭 53.5㎝이다.

1654년에 만들어진 삼전패는 머리, 몸체, 대좌의 삼단三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몸체부는 대좌와 분리할 수 있으며, 몸체에는 직사각형의 명문곽을 만들어 불상의 명칭인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나무관세음보살南無觀世音菩薩>,

<나무대세지보살南無大勢至菩薩>을 묵서墨書로 써 놓았다.

중심 문양은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며 그 사이를 운문雲文으로 꽉 채웠으며 모두 투각기법을 사용하였다.

부여 무량사 삼전패는 약 35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국내 최대의 규모이며 조각기법이나 채색에 있어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서 예술성과 불교 미술적, 사료적 가치가 있다.

 

# 무량사 동종 :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162호

무량사 극락전 안에 있는 동종 꼭대기에 한 마리의 용이 입에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고 다리는 활짝 핀 연꽃모양이 장식되어 있다.

눈을 부릅뜬 무서운 얼굴과 날카로운 등지느러미가 인상적인 용의 자세는 역동감이 넘치며 만개한 연꽃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동종은 주석과 청동의 합금 비율이 적절하며 균형 잡힌 모양은 풍부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조선 중기 전통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종에 새겨진 문양과 배치를 통해 다라니陀羅尼 신앙 또는 밀교적密敎的 신앙 등 당시 신앙의 성격을 알 수 있다.

 

 

 

 


@ 괘불 : 보물 제1265호

세로 12m, 가로 6.9m의 큰 모시천에 그린 이 괘불은 미래불인 미륵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 여덟 구씩의 16화불을 그린 괘불이다.

가운데 모신 미륵보살의 광배를, 16화불들이 춤추듯이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매우 아름답다.

   * 괘불이란 야외에서 사월초파일이나 다른 재齋를 올릴 때 등

      큰 법회나 의식을 진행할 때 예배를 드리는 대상으로 법당 앞뜰에 걸어놓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미륵불은 연꽃대좌 위에서 두 손에 연꽃을 들고 서 있으며, 

두 손으로 용화수 나뭇가지를 받쳐 들고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서 있다.

보관의 끝에는 6구의 불상이 있고 그 사이로는 동자童子와 동녀童女 등 59구의 얼굴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다.

네모난 얼굴에는 눈과 속눈썹, 도톰한 입술, 콧수염까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고 옷에는 화려한 장식들이 달려있다.

머리광배와 몸광배가 그려져 있고 몸광배에는 연꽃과 모란 등의 무늬가 있다.

머리광배와 몸광배 밖으로는 오색의 구름과 함께 배치된 작은 불상들이 마치 미륵불을 수호하고 있는 듯하다.

녹색과 붉은색을 주로 사용하여 화려하게 채색되었으나 전체적으로 형식화된 모습이다.

조선 인조 5년(1627)에 그려진 이 불화는 5단의 화면을 이어 한 화면을 만든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으며

17세기 전반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근엄하고 당당한 모습과 중후한 형태미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연대와 함께 혜윤, 인학, 희상이라고, 그린 스님들의 이름도 적혀 있어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 극락전 후불탱화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3호  


# 무량사오층석탑 : 보물 제185호

극락전 앞에 있는 무량사오층석탑은 매우 장중하면서도 경쾌하고, 엄격하면서도 부드러운 백제계 석탑의 느낌을 받는다.

나지막한 2층 기단 위에 매우 안정된 비례로 5층을 올렸는데,

밑변 5.2m의 널찍한 기단 위에 7.5m 높이로 올린 탑이라 안정감을 준다.

그러면서도 층층이 쌓아올린 적당한 체감으로 불안하지 않은 상승감도 갖추고 있다.

상륜부에는 노반, 복발, 앙화가 소박한 형태로 얹혀 있어 탑이 무거워지지 않고 깔끔한 마무리가 되게 하는 것에 한몫 한다.

한편 너비는 넓고 기울기는 평평하다시피 완만한 지붕돌이라든지

목조건물처럼 살짝 반전을 이루어 경박하지 않은 경쾌함을 보여주는 처마선 등은 부여 정림사터 탑을 그대로 빼닮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이 탑 역시 고려 시대에 조성된 백제계 석탑으로 손꼽는다.

그런가 하면 지붕돌 처마 밑에는 빗물이 탑 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절수구切水溝를 파놓아 세심한 배려를 볼 수 있다.

이런 수법은 신라 말 고려 초기에 조성된 탑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또 특징적인 것은 기단부의 면석받침과 갑석의 부연이다.

흔히 정연하게 깎은 돌을 놓게 마련이나

이 탑만은 전체적으로 돌아가며 모를 죽이고 반원형으로 부드럽게 공글려서 백제계 석탑의 부드러움을 한층 더 맛볼 수 있다.

1971년에 탑을 보수할 때 5층 몸돌에서 청동합 속에 든 수정병, 다라니경, 자단목, 향가루와 사리 등 사리장치가 나오고

1층 몸돌에서는 남쪽을 향하여 있는 고려시대의 금동아미타삼존불이 나왔다.

 

 

 

                                          * 오층석탑과 2그루의 느티나무가 신묘한 조화를 이루어 낸다. 

 

 

@ 오층석탑출토유물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0호

1971년 무량사 오층석탑 해체·복원 작업중 발견된 9점의 유물이 나왔다.

석탑 1층 몸돌에서 아미타불좌상을 주존으로 한 금동제 삼존불이 나왔는데,

금동제 삼존불의 본존인 아미타좌상은 높이 33.5㎝로,

얼굴을 앞으로 수그린 자세에 오른손은 어깨 앞으로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왼손도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모양을 하고 있다.

관음보살좌상은 아미타불의 좌측에 있으며, 아미타불과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높이는 25.9㎝로 3개의 산모양 관 중앙에 부처가 새겨 있고, 늘어진 목걸이 장식이 화려하다. 손모양은 같으나 방향이 다르다.

지장보살좌상은 높이 26㎝로 관음보살과 모습은 같으나 삼산관이 없고 손모양이 반대이다.

3층 몸돌에서도 금동보살좌상 1구가 발견되었는데, 높이 35.2㎝로, 관과 두 손이 파손되었다.

5층 몸돌에서는 사리구가 발견되었다.

청동 외합과 내합이 들어있는 사리구로, 내합 안에는 수정으로 된 작은 병, 다라니경, 자단나무와 방분향으로 가득 차 있다.

수정병 안에는 청색 사리가 1개 들어 있었다.

아미타불은 도난당한 후 회수하지 못했다.

 

# 무량사석등 : 보물 제233호

오층석탑의 바로 옆에 있는 이 석등은 선이나 비례가 매우 아름답다.

상대석과 하대석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연꽃이 조각되어 있고 팔각 화사석을 갖추고 있는 점 등이

통일 신라 이래 우리나라 석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춘 고려 초기 석등이다.

상대석이 좀 좁은 편이지만 기둥돌이 짧은 편이므로 오히려 그 덕에 전체적으로 둔중하지 않게 되었다.

팔각 화사석은, 네 군데로 난 화창은 넓고 그 나머지 면은 좁으나 그렇게 어색하지 않다.

팔각 지붕돌의, 좀 큰 듯한 추녀선도 탑에 견주어서는 매우 경쾌하다.

지붕돌 위에는 연봉오리 모양의 보주로 단정하게 마무리했다.

높이 2.5m로 탑과 비례를 잘 이루는 것으로 보아 함께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 당간지주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7호

무량사 천왕문 동쪽에 남아 있는 것으로, 두 개의 길다란 돌기둥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기둥 끝은 안쪽 면에서 바깥쪽으로 둥글게 다듬었고, 앞뒷면의 가장자리에는 테두리 선을 돌렸으며,

양 옆면 가운데에는 세로로 돌출된 띠를 새겼다.

마주보는 기둥의 안쪽 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2개의 구멍을 각각 뚫어 놓았다.

돌기둥 사이에는 당간 받침돌이 끼워져 있는데, 그 중앙에 당간을 받는 기둥자리를 파고 그 주위를 둥글고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통일신라시대에서 굳어진 제작방식을 따라 고려 전기에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 원통전

 

    @ 원통전 안의 천수관음상

 

# 영산전 

  

                                      @ 영산전 앞의 소박한 석등

 

  # 삼성각과 또 하나의 당우 [청정당淸晶堂]

    @ 멀리서 본 모습 ...

 

 

 

 

    @ 삼성각으로 건너 가는 길...

 

# 삼성각 옆에 있는 [청정당淸晶堂]의 현판 .... 글씨가 아름답다고 스님께서 직접 안내해 주셨다.(감사합니다)

 

# 천왕문

 

# 천왕문의 담벽 앞에 있는 당간지주 주의의 풍경... 담 안에 종각도 보인다.

 

# 주위에는 풍치보안림....이라는 석주도 있다.

 

# 걸맞게 주위의  풍경이 아름답다...

   지는 해가 나무 사이에서 한결 운치를 더해 준다.

 

 

# 일주문의 모습.... 일주문의 뒤에는 [광명문光明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 주의의 잘 익은 감이 가을의 맛을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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