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씬한 고전미인 같은 봉암사 삼층석탑 (2)
지증대사비문 속의 봉암사 정경은 남아 있지 않고 폐허와 중창을 거듭했으니 지금의 대웅전과 여러 전각들은 유적으로의 가치는 없는 셈이다. 극락전만은 옛 목조탑의 형식으로 이층 구도로 옛 맛이 풍긴다. 그리고 이 도량을 묵묵히 지켜온 석조유물들은 천년의 숨결을 느끼기에 유감이 없다. 석조유물들은 모두 국가에서 지정한 보물들이다. 불국사 삼층석탑이 우리나라 석탑의 전형이 된 뒤로는 모든 탑은 그 전후로 따지게 된다. 봉암사의 삼층석탑은 불국사 삼층석탑의 형태를 고스란히 이어받고 다듬어져 아담하다. 지붕돌의 곡선미까지 살려냈으며 기단부가 훤칠하게 커서 늘씬한 미인을 연상케 한다는 비유가 얼마나 기막힌지. 옥개석의 이끼는 세월을 거쳐 간 선승들의 숨결이 고인 것 같아 숭고미를 더한다. 남원의 실상사의 삼층석탑과 유사한 형상으로 상륜부까지 온전하게 남아서 당당하게 선종의 뼈대를 지켜냈다.
노주석 한 쌍
지탑증대사적조비와 부도탑
봉암사는 선종구산문의 하나인 희양산파의 종찰이고, 지증대사의 창건설이 전설처럼 내려온다. 한문으로 된 문장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나로서는 그냥 신화적인 최치원의 4산 비문 중 내가 만날 수 있었던 두 번째 탑비란 것만으로도 행운으로 생각한다. 히말라야의 티벧 사원에서는 경전을 읽을 수 없는 민중들이 마니차를 돌리는 것으로 경전 읽는 공덕을 쌓는다는 것처럼 말이다. 비문은 하대신라의 선종을 연구하고 설명하는 논문에서 빠져서는 안 될 글로서, 최치원의 글맛이 이 비문보다 더 잘 나타난 것이 없다고 해서 유홍준에게는 더욱 꿈같은 절이 되었다고 한다. 나도 가까운 시간 내에 그 번역본이라도 읽어봐야 할 일이아슬아슬하게 기둥에 기대어 서 있는 지증대사탑비 옆에는 대사의 부도탑이 있다. 지금은 보호각 안에 있다. 통일신라의 모든 기량이 모인 듯 내가 본 부도들 중에서 최고의 작품이다. 받침돌부터 상륜부까지 균형미가 빼어날 뿐 아니라 각부마다 비천상들의 조각이 선명하다. 악기를 부르고 공양을 올리며 기도하는 천신들의 표정도 살아있다. 치밀한 돋을새김의 정교한 솜씨는 예술성 짙은 장식성보다 고매했던 대사를 흠모했던 임금의 태도까지 짐작케 한다. 지붕돌의 처마 선까지 살짝 들어 올려진 것이 매력이다. 떨어진 한쪽 지붕돌 조각에서 오히려 세월을 뛰어넘는 대사의 법문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옛 고전미가 흐르는 극락전 주춧돌만은 옛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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