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암사 백운계곡에서 마애보살좌상을 만나다
봉암사 경내를 벗어나 계곡 위쪽으로 30분 정도 걸었다. 이 계곡은 예로부터 ‘봉암용곡’이라 불려왔단다. 봉황과 같은 바위산에 용과 같은 계곡물이 흐른다는 뜻이다. 20여리에 이른다는 계곡은 옥빛 물줄기가 기묘한 정원수목들을 벗하며 넓은 암반 위를 용 같이 꿈틀거리며 흐른다. 신록으로 빛나는 숲속을 용틀임 하는 폭포소리를 들으며 일념으로 걷는다. 비록 힘은 들지라도 그 용솟음치는 물소리가 계속 기운을 생동케 한다. 마침내 드러난 마당 바위 동북쪽에 마애보살좌상이 고요한 동자상으로 앉아 있다. 앞마당처럼 너른 바위 위쪽 소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비질하듯 경사진 바위 마당으로 미끄러져 내린다. 보살상 앞에는 하얀 천막을 친 단이 있다. 저절로 엎드리고 싶어진다. 평소에 사람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 계곡에 갑자기 사람들로 북적이게 되었으니 보살도 만면에 미소를 띄는 것인지. 시끄럽다고 할는지. 그 어떤 소리도 물소리에 잠겨버리고 부처님의 법문 안에 녹아버리니까. 기묘한 바위들이 군집을 이루고 거대한 바위틈을 비껴 조금 높은 곳으로 올라가보니 이 계곡의 위용이 나타난다. 돌 위에 작은 돌로 석탑을 쌓기도 하고 바위틈에서 철쭉꽃도 피어난다. 모든 형상이 법신의 성현(聖現)이다. 폭포수 같이 부서져 내리는 옥빛 물소리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쩡쩡한 죽비 치는 것 같기도 하여 시원스레 폐부까지 맑게 씻겨진다. 마애보살은 머리에 보관을 쓴듯하고 오른 손으로 연꽃가지를 들었다. 염화미소를 상징하듯 그 뜻을 묻는다.
백운계곡 마애불 앞에서 모든 여독을 내려놓고 다시 내려오는 길. 오를 때는 잘 몰라서 일주문 반대 편 길로 올랐고 내려올 때는 일주문으로 내려온다. 오를 때 볼 수 없었던 일주문의 정경을 편액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안쪽에는 ‘봉황문(鳳凰門)’ 편액을 걸었고 바깥은 ‘희양산봉암사’란 편액이 걸려 있다. 봉황문이란 편액은 고려 공민왕이 썼다고 하는데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지증국사가 와서 보니
“산이 병풍처럼 사방에 둘러쳐져 있어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흩는 것 같고, 계곡물이 멀리 둘러 백겹으로 띠처럼 되었으니, 뿔 없는 용의 허리가 돌을 덮은 것과 같다. 이 땅을 얻게 된 것이 어찌 하늘이 준 것이 아니겠는가? 스님들의 거처가 되지 못하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다.”라 하며, 대중을 이끌고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봉황문 편액이 걸린 이유이리라.
산문을 빠져나오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용의 허리처럼 길게 늘어지고 있다. 우산을 받고 모두들 차분하게 버스를 기다린다. 날이 좋았으면 희양산 자락의 유서 깊은 신라 시절의 절집을 돌아보려고 하였다. 초파일에 삼사(三寺) 참배하면 복 받는다고 해서다. 빗속에 문경새제를 넘고 넘어 이천의 쌀밥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생각했다. 이 쌀밥이 어디서 왔는가, 편히 먹을 자격이 있는가. 부처님 당시의 선풍을 일으키고자 고칠 것은 고치고 부처님의 근본 말씀대로 해보자는 선승들의 결사 의지를 우리도 생활 속에서 일깨워야 되지 않을까. 천년의 석조유물들이 내리는 법신의 법문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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