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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촌 창단 10주년 특집 원고 모음

차보살 다림화 2012. 9. 3. 12:11

 

 

<격려사>

                                       살아서 떠나고 죽어서 돌아가는 곳, 고향

                                                                                        김 학(수필가, 지도교수)

 

 우리나라 어느 농촌이나 산 사람은 줄어들고, 무덤만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고향인 농촌엔 빈집이 자꾸 불어나고, 대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널따란 농가에는 노인들만 외롭게 산다. 고향을 지키던 그 노인들이 세상을 뜨면 육신은 고향의 뒷산으로 가고, 그 노인들이 살던 농가는 또 빈집이 된다.
 어쩌다 고향을 찾으면 도로변의 야산에는 무덤이 자꾸 생겨난다. 지난해 없던 무덤이 올해에는 보이고, 올봄에 안 보이던 무덤이 가을에 가면 또 눈에 띈다. 우리네 고향은 해가 갈수록 공동묘지로 변하고 있다. 산 사람은 고향을 떠나고, 도시에서 살던 출향인(出鄕人)들이 눈을 감으면 자꾸 껍데기인 육신만 고향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돈벌이와 출세를 위하여 당당하게 도시로 떠난다. 한 번 도시로 떠나간 젊은이들은 여간해서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도시에 빌붙어 뿌리를 내리려 한 까닭이다. 고향을 떠난 젊은이들도 나이가 들기 마련이고, 그들이 세상을 뜨면 고향의 선산에 묻히기를 바란다. 출향인들은 빈 껍데기만 영구차에 실려 고향의 선산으로 돌아온다. 살아 생전에 지키지 못한 고향을 죽어서라도 지키려고 귀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어서라도 고향을 찾는 그들의 수구초심(首邱初心)에 경의를 표해야 할까?
 고향의 묘지들은 한껏 치장을 하기에 바쁘다. 신라나 조선시대의 왕릉이 무색할 정도다. 호화분묘(豪華墳墓)로 꾸며진 게 많다. 도시로 나간 젊은이들이 돈을 벌고 출세를 했다는 증표로 고향을 지키는 조상들의 묘소를 화려하게 가꾼다. 공원묘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조상의 묘소를 잘 가꾸려는 효심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살아있는 후손들이 부자가 되어 좋은 아파트나 새로 지은 호화주택에서 산다면, 돌아가신 조상의 묘소도 잘 관리하는 게 옳은 일일 것이다. 주택이 산 사람의 삶터라면 무덤은 죽은 사람의 집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생각해 볼 일이다. 생존시 남이 우러러볼 만한 공적도 없는 조상의 묘소에 큼지막한 비석을 세우기도 하고, 둘레석이며 망주석(望柱石) 등으로 치장한다는 것은 분수에 넘는 일이다. 왕조시대에 정승이나 판서를 지낸 분의 묘소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도록 단장한다면, 지하의 조상들이 오히려 쑥스러워하지 않을까?
 이대로 가면 우리의 고향인 농촌이 어떻게 변할까? 일 개 면 안에 두세 개나 되던 초등학교들이 겨우 한 개 정도 남아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해마다 학생수가 줄어드는 바람에 그나마 폐교가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戰戰兢兢)이다.
 아이들 우는 소리, 다듬이질하는 소리, 글 읽는 소리 등 세 가지 기쁜 소리가 사라진 우리네 고향의 현실이 서글프다. 고향을 떠난 도시인들은 추석이나 설 무렵이면 으레 고향을 찾아와 조상의 묘소를 참배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 아직까지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의 후손다운 처신들이 몸에 배어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앞으로 세월이 더 흐르면 이런 정경도 사라지지나 않을까?
 경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무덤의 도시다.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왕릉이며 장군묘 등이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시내 복판에 동산만큼 커다란 무덤들이 있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사자(死者)의 무덤은 도시 중심지에 있고 생자(生子)는 변두리에서 산다. 그러나 경주 시민들은 그 무덤들을 옮겨달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우리네 고향인 농촌에 불어나는 무덤들은 경주처럼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도 없다. 도시 주변의 공동묘지가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도시 주변에 공동묘지나 화장터를 조성하려고 하면 혐오시설이라 하여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과연 우리네 고향이 자꾸 공동묘지로 변해 가는데 이대로 보고만 있어야 할 것인가?
 우리의 후손들에게 공동묘지로 변한 우리네 고향을 그대로 물려주어야 할 것인지, 어쩌다 고향을 찾으면 왜 그런지 가슴이 답답해진다.
 .

 

 

 

행촌(杏村)에서 살고 싶어라!

- 행촌수필 22호를 축하하며 -

 

 

 

안 도

(국제펜클럽 전북위원장)

 

 

 

 

 

우리들의 고향 마을에는 어느 곳이나 수호신 같은 은행나무가 있다.

그 은행나무는 봄이면 작고 예쁜 부채 같은 잎을 내 놓으며 우리에게 봄을 알리고, 여름이면 신록을 자랑하며 푸르고 시원한 그늘을 내어준다. 그리고 가을이면 앙증맞은 은행열매 아래 황금빛 카펫을 깔아서 우리들의 마음까지 노랗게 물들인다. 그러다가 풀벌레 울음마저 얼어붙고 찬바람이 볼을 때리는 겨울이면 우뚝 선채로 새 잎이 나올 봄날의 화려한 외출을 꿈꾸며 인고의 겨울잠을 잔다. 그래서 나는 은행나무가 좋다.

그런데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은행나무가 촌락을 이루고 사는 행촌(杏村) 마을이 있다.

그 행촌(杏村)마을 사람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계절마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전해주며 다정하게 어깨를 마주하고 다가선다. 그 마을 사람들은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눈길 하나에도, 손길 하나에도, 발길 하나에도 사랑이 가득 넘쳐 있다. 또한 행복한 마음, 욕심 없는 마음,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을 지녀서 좋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아 전해온 책들이 어언 스무 돌을 맞았단다.

내 모든 것을 모아서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행촌(杏村)마을 식구들과 더불어 은행나무 같은 삶을 동행하고 싶다

그들의 마을 은행나무는 자신의 전부를 준다. 나무 자체는 침대나 가구의 재료로, 나뭇잎은 약품의 원료가 되어 자신의 깔끔한 모습처럼 우리의 피를 맑게 해준다.

우리의 삶도 은행나무 같기를 바란다. 자신의 모든 걸 다 주고도 의연하고 깔끔하며 단아한 모습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문학을 하는 것인가?

문학을 해서 무엇을 어찌 하겠다는 것인가? 나의 작품을 관연 몇 사람이나 읽고 감동을 받을까?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물이 흐르는 대로 한 세상 살다 때가 되면 갈 것이지, 무엇 때문에 문학이라는 열병에 걸려 영혼과 마음을 소진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죽고 나서도 누군가 나의 작품을 늘 기억하며, 그 작품을 통해 나를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해 주기나 할 것인가? 또, 나의 아름다운 마음을 기억할 정도로 아름다운 글을 쓴 적이 있으며, 그런 작품을 하나라도 쓰기 위해 지금 노력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해마다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그중에서 독자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만큼 기억에 남는 책은 과연 얼마나 될까? 불과 몇 권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모두 쓸모없는 종이 뭉치에 불과하다. 아, 그렇다면 이 얼마나 헛되고 헛된 일인가?

그 동안은 어디 작품 발표할 곳이 없는가 하고 두리번거리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일 년에 한 두 편만 발표하더라도 죽은 후에라도 길이 남는 그런 작품을 써야겠다는 심사로 느긋하게 작품을 쓰자. 어차피 문학으로 떼돈을 벌 것도 아닌데, 나도 이젠 문학 판에서 어느 정도는 이름이 알려져 있으니 이름이나 명예에 집착해 작품을 쓸 필요도 없다.

우리는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무엇 때문에 내가 문학을 하는가, 내가 쓴 작품을 누가 읽을 것인가, 지금 발표하는 이 작품이 몇 사람의 마음이나 뒤흔들어 놓고 영혼에 상큼한 바람을 보내줄 것인가, 내가 죽고 나서도 이 작품은 문학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기나 할 것인가 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자신에게 던져볼 필요가 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행촌 마을 수필가들이시여!

더 나이 들어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정신 가다듬고 제대로 된 작품을 쓰기에 몰두하기를 소망한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작품을 소홀이 썼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더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 자신이 이 분야에선 최고라고 자만에 빠지지 말고, 늘 겸손한 마음으로 작품을 쓰는 마음가짐을 가져주기 바란다. 또한 내가 가진 것을 나만이 독차지하겠다고 몰래 혼자서만 만지작거리지 말고, 주위에 있는 동료 작가나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길 바란다. 내가 가진 재산과 명예, 당신이 가진 지식과 부, 이 모든 것은 본래 내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잠시 맡겨 놓은 것으로써 언제 어느 때 그 원 주인이 가져갈지 모르니 아낌없이 베풀기 바란다.

문학과 인간은 일치해야 한다. 남을 믿지 못하고 헐뜯는 심보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며, 자신의 문학과 자신의 삶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문학 판을 떠나는 것이 좋다.

은행나무는 언제나 우리 앞에 당당한 자태를 보인다. 짧게는 수백 년에서 길게는 천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우리 민족과 질곡의 역사를 함께 해 왔다.

은행나무가 더욱 의미 있는 것은 단지 크고 작은 전란을 이겨내고 오랜 세월 동안 이 땅을 지켜왔기 때문만이 아니다. 긴 세월 동안 때로는 어머니 같은 보살핌으로, 때로는 절대자로서 우리 모두의 소망을 들어주는 너그러움으로, 때로는 아픈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정신적 지주로 굳건히 자리해왔기 때문이다. 변치 않는 모습으로 우리민족의 삶 속에 녹아 우리의 희로애락을 함께해왔기에 은행나무는 굳건하게 우리 마음속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

한 그루의 은행나무를 만나는 일은 곧 성리학자의 실천덕목을 배우는 것과 같고 이러한 은행나무와 같이 독자들의 삶을 어루만져 주는 것은 그의 삶을 배우는 구도자의 길이다.

다시한번 축하하며 우리 모두 은행나무와 같이 동행하며 은행나무 같은 삶을 살아가자.

 

 

 

 

 

 <행촌수필문학 제22호 축사>

 

                                                              

 

 

 

 

정군수

 

 

 

                                                 흔들림이 있는 나무

 

 

 

 『행촌』 수필문학 제 22호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이 책의 발간과 행촌수필문학회의 발전을 위하여 열정적인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석인수회장님께 문인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와 치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원고모집에서부터 교정과 편집을 거쳐 한권의 훌륭한 책으로 만들어주신 조윤수 편집국장님과 편집위원님, 그리고 귀중한 옥고를 내주시어 행촌수필문학을 빛나게 해주신 모든 회원님들께도 고마운 말씀을 드립니다.

 행촌수필문학회는 금년으로 창립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김학 교수님이 강의하시는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을 그 모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연유로 글과 사람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문학동인회라 할 수 있습니다. 창립 10주년에 22권의 동인지를 냈다는 것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2권의 책을 발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140여명의 동인이 창작활동을 함께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수필문학사에 또 하나의 금자탑을 이루어 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업적은 김학 교수님은 물론 <행촌수필문학회> 역대 회장님들과 모든 회원님들의 『행촌』에 대한 사랑과 수필창작에 대한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행촌수필문학회 행사에 오면 마음이 편안하고 넉넉해집니다.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서 정담을 나누는 것처럼 친숙해지고 허물이 없어집니다. 거기에는 문학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노래도 있고 춤도 있고 장기자랑도 있어 한바탕의 잔칫집 마당에 온 분위기가 됩니다. 행사가 끝나면 뒤풀이로 한 잔씩 나누는 술잔이 한 편의 수필보다 더 정겹고 인간다울 때가 많습니다. 이론으로 배우는 수필이 아니라 사람의 향기로 수필을 배우고 옵니다.

 저는 『행촌』 동인지를 받을 때면 고체로 쓰인 ‘杏村’ 이라는 제호를 보며 오래된 마을에서 세월을 이기며 자란 큰 나무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나무가 행촌수필문학 회원님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행촌수필문학 회원님들은 대부분 직장을 갖고 사회와 가정을 위하여 오래 근무하다가 퇴직을 하신 뒤 문학의 길로 들어선 분들이 많습니다. 정년 후 여생을 보내기 위한 편안하고 쉬운 길이 많을 텐데, 왜 밤잠을 못 이루고 고뇌하는 신산한 문학의 길을 택하셨는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것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과 같습니다. 아무리 큰 나무도 흔들림이 없으면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흔들림은 문학에 있어서는 설렘입니다. 글을 쓰는 설렘, 활자화되어 나오는 설렘, 이 설렘이 있어 문인들은 글을 씁니다. 흔들림이 없는 나무는 정적만이 있을 뿐 향기도 소리도 없습니다. 정년하신 뒤 문학의 길로 들어선 것은 흔들림과 설렘의 행복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행촌』에는 살구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등 많은 나무들이 흔들리며 향기를 내고 있습니다.

 

 저녁 들길은 벌써 가을의 전령사인 풀벌레 소리로 가득합니다. 여린 듯 애잔한 듯  시드는 풀들을 노래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소리는 풀숲에서 삶을 구가하는 강한 생명의 소리입니다. 올가을에는 풀벌레 소리 같은 여린 것 같지만 강한, 강한 것 같지만 여린 수필을 한 번 써보고 싶습니다. 우리 행촌수필문학 회원님들도 아름다운 수필로 문학의 행복한 영역을 가꾸어나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군수 약력

· 전북문인협회 회장

· 전북대평생교육원 문창과 전담교수

· 전주교도소 독서동아리 지도교수

· 혼불정신선양회 이사      

 

 

 

 

 

 

 

등단작 원고 모음

 

 

 폭풍우가 지나간 숲

                                            

 

                                                               대한문학 제38호 등단작 / 김양순

 

 

 

 몇날 며칠 줄기차게 쏟아지던 비가 드디어 개었다. 모처럼 보는 푸른 하늘에 마음이 설레어 나들이를 하자고 남편을 졸랐다. 5일간의 여름휴가를 집에서만 보내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컴퓨터 바둑을 하고 있던 남편이 “가까운 산이나 한 번 다녀올까”하기에 우리 집에서 가까운 완산칠봉을 오르기로 했다. 전주시 도심에 자리하고 있는 완산칠봉은 완만한 봉우리들이 우애 깊은 형제처럼 이어진 산이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올라가 보면 키 큰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도 도시 한복판에 있는 산이라고 느끼지 못할 만큼 조용하다. 가파르지 않은 산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쭉쭉 뻗은 가지로 하늘을 가리는 나무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산새소리 등. 물씬하게 풍겨나는 산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이번 여름, 산에 서 있는 나무들도 날마다 빗속에서 견뎌내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날마다 물만 먹고 살았을 테니, 쨍쨍한 햇볕 아래 배부르도록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날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생각하며 숲속으로 들어섰다. 숲속에서는 한바탕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모처럼 비치는 햇빛과 상쾌한 산들바람을 즐기느라 크고 작은 나무들은 쭉쭉 기지개를 켜는 듯 가지를 흔들어 대고, 나뭇잎들은 하나같이 막 목욕시켜 놓은 아기 얼굴 같았다. 그 뿐 아니라 이쪽저쪽에서 들려오는 풀벌레소리, 매미소리, 산새소리가 온 산에 울려 퍼지고 있어서 산에 살고 있는 것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는 것처럼 숲은 생기가 넘쳤다.

 그런데 잔칫집 같은 숲속에도 한 가지 안타까운 광경이 있었다, 이번 여름 잦은 폭우와 얼마 전에 지나간 태풍 때문이었는지, 뿌리가 뽑힌 채 쓰러진 나무들이 여기저기 눈에 뜨였다. 쓰러져 있는 것들 중에는 키가 상당히 큰 나무들도 있었는데 보기에 참 안타까웠다. 아무리 말 못하는 나무라지만 자신에게 닥친 생명의 위태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쓰러지기 전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죽을힘을 다하여 이를 악물고 울부짖었겠지, 상상해보니 인간사회나 숲의 세계나 살아가는 이치는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숲에 있는 수많은 나무 중에 왜 저 나무들만 쓰러졌을까? 더 이상 뿌리를 뻗어나갈 수 없는 열악한 환경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너무 커버린 키와 잎사귀 때문에 그 무게를 지탱할 힘이 없어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옆에 있는 나무가 넘어지는 바람에 운이 나빠서 같이 넘어졌을까? 이제 쓰러진 나무들은 더 이상 푸른 이파리를 피워낼 수 없을 것이다. 투명한 햇살도 영롱한 아침이슬도 맛볼 수 없고, 명랑한 산새소리도 들을 수 없는 무생물, 즉 주검이 되어버렸다.

 지난 봄에 있었던 일이다. 서울 큰 병원에 입원하신 친척 어른께서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라는 연락을 받고 병원에 찾아갔다. 평소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베푸시며 사시던 덕망 있는 어른이신데 살아계신 마지막 모습을 뵈어야 도리일 것 같았다. 열다섯 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 계신다기에 뵙지도 못하고, 부디 기적이 일어나길 기원하며 돌아왔다. 그 이후 서너 달이 지난 뒤 그 어른 댁에 찾아 갔던 날, 나는 깜짝 놀랐다. 밭에 갔다 오시는 그 어른을 만나 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반가웠든지 “기적이 일어났네요” 하며 안아드렸다. 잘 키운 칠남매가 불철주야 병상을 지키고, 칠십 세가 넘으신 배우자께서 지극한 정성으로 기울이신 사랑,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과 기도, 이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일으킨 기적이었을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 즉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황홀한 기쁨이다. 내 존재가 인간 사회라는 숲에서, 키 작은 나무이거나 한 포기의 풀 같이 미미한 존재이면 어떠랴. 큰 나무 그늘에서 제대로 햇빛을 받지 못하는 산나물을 보면 제자리에서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숲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지 않는가? 사람마다 큰 나무처럼 높은 키에 멋지게 뻗은 가지들을 가질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숲은 크고 작은 갖가지 나무들과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풀포기들까지, 다양한 생명체가 어우러질 때 아름다운 숲이 되는 게 아닌가? 투명한 햇살아래 생글거리는 나뭇잎, 나무 그늘에서도 향기롭게 자라는 산나물, 숲속 어딘가에 은신처를 마련해놓고 짝을 부르는 산새나 풀벌레처럼 오직 살아 있는 것들만이 숨 쉬고 노래하며 숲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고 있는 나 역시 인간 사회라는 숲에서 한 그루의 키 작은 나무처럼 서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걷다보니 주봉인 장군봉에 이르렀다.

 장군봉은 높이가 185m쯤 되는데 완산칠봉 봉우리 중 가장 높다. 장군봉 꼭대기에 있는 팔각정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산 아래 풍경이 여유롭고 멋지다. 전통과 현대문명이 잘 조화된 도시 전주, 모악산을 비롯한 전주 주변의 산들은 모처럼 햇빛 좋은 날 사진이라도 한 장 찍으려는 의좋은 형제들처럼 다정히 어깨를 맞댄 채 둘러서 있다. 시내 곳곳에 서 있는 아파트 숲 역시 기분 좋게 일광욕을 하고 있는 듯, 즐거운 꿈을 꾸는 듯 느껴졌다. 산들거리는 바람에 땀을 식히며, 남편과 나란히 앉아 오이를 나눠먹는 소박한 즐거움도 내가 살아 있기에 맛보는 행복이리라.

 

 산을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와는 다른 방향의 길로 내려오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안쓰러운 참나무 때문이었다. 산길 옆 비탈진 곳에 기우뚱 서 있는 참나무 한 그루, 그 참나무 주위에 있던 흙더미가 지난번 폭우에 몽땅 씻겨 떠내려갔나 보다. 뿌리를 많이 드러내고 마치 한 쪽 발만 딛고 서 있는 사람처럼 기울어진 체 서 있는 참나무가 안쓰럽기도 하고 장해보이기도 했다. ‘참나무야, 기우뚱하게 서 있기 힘들겠구나. 그리고 드러난 뿌리가 다칠까 염려되고 은밀한 속살을 내보인 것처럼 부끄럽기도 하겠지? 하지만 조금 지나면 적응 되어서 괜찮아 질 것이다. 참나무야, 그래도 네가 쓰러지지 않고 서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란다. 힘들더라도 꿋꿋하게 견디다 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다. 부디 오래오래 살아라’ 속으로 응원해주고 산을 내려오다가 졸졸거리는 실개천을 만났다. 손수건을 적셔 땀을 닦자, 아주 시원하고 달콤한 과일 즙을 쭉 들이 킨 것 같은 흡족함이 가슴 가득 밀려온다.

 퍼붓는 비 때문에 금쪽같은 휴가를 집에서만 보내고 있다가 남편과 함께 올라가 본 완산칠봉, 아주 간단한 휴가여행이 된 셈이다. 비록 근사한 여행을 못가고 끝나버린 휴가였지만,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내가 지금 살아 숨 쉬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날마다 기뻐해야 할 일인 것을 다시 한 번 느끼지 않았는가. 이것만으로도 휴가의 의미는 충분하리라. 산새랑 풀벌레들이 소리 높여 우리 부부를 배웅해주는 숲과 작별하고 내려오는데, 산 아래 밭둑에서는 칡넝쿨, 명아주, 달개비, 강아지풀 등이 어우러져 즐겁게 키 재기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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