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스크랩] 차 한잔으로 법을 가르친 나옹 혜근(懶翁 慧勤) 스님

차보살 다림화 2012. 12. 16. 22:22


나옹 스님은 茶와 禪, 차삼매(茶三昧), 선삼매(禪三昧), 
다선일여(茶禪一如)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간 茶人 이었다.


인도 108대 조사인 중국의 지공선사(指空禪師)로부터 한 잔의
차로 법을 전해 받았다. 지공선사 뿐 아니라 중국 임제종의
종통을 이어 일문을 이루고 있던 평산선사(平山禪師)로 부터도
인가를 받고 돌아와 차 한잔으로 제자들을 가르친 거목이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스님의 불교가사로 널리 알려진 이 詩는 수 많은 불교 신자
들이 즐겨 암송하던 것으로 몇 년 전에는 노래로 까지
만들어져 애창되기도 했다. 茶와 禪의 경계가 무엇인지
茶人들의 삶이 어때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차나 한잔 들고가게나(喫茶去)”는 차와 선이 한 경지임을
말해주는 당나라때 조주(趙州)스님의 유명한 話頭이다.
나옹 스님은 스승인 지공 선사로부터 법을 받고 이 게송을 지어 올렸다.

奉喫師茶了    스승님 차를 받들어 마시고
起禮印禮三    일어나서 세 번 절을 하나니
只這眞消息    다만 이 참다운 소식은
從古至于今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네.
나옹 스님의 차 생활은 하나의 道였다 언제나 차 한잔으로 법을 얘기했다. 한잔의 차를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한잔의 시원한 차를 다시 사람들에게 보일 때 아는 사람은 오지마는 만일 모르면 한없이 보이고 보이어 새롭고 또 새롭네 * 나옹(1320 ~ 1376)선사는 경상도 영해(寧海) 사람이다. 소성은 아(牙)씨이며 이름은 원혜(元慧)이다. 법명은 혜근이고 법호는 나옹이다. 20세에 요연(了然)스님에게 출가한 후 1347에는 원(元)나라 연경(燕京)의 법원사(法源寺)에 갔다. 당시 그 절에 머물고 있던 인도 스님 지공(指空) 화상을 만나 불법을 닦았다. 고려 우왕(禑王)이 왕사로 봉했다.
여주 신륵사와 나옹 화상(懶翁 和尙)

경기도 여주의 신륵사(神勒寺)
고려말 인도와 중국의 조사선맥(祖師禪脈)을 이어와 부패한
고려 불교를 일으켜 세우려다 간 나옹 혜근(懶翁 慧勤)스님이
입적하고 다비한 절이다
20년을 중국 땅에서 공부한 나옹은 지공법사가 자신의 법의와 
불자 그리고 법서를 전해주어 자신의 불법을 이어 받을 인도
109대 조사로 인가하니 나옹 스님은 인도와 중국의 조사선맥
을 한몸에 가지게 된다. 나옹은 이 모든 것들을 챙겨 가지고
귀국하여 오대산 북대와 금강산 등지를 돌며 더욱 정진한다.
공민왕은 개경으로 불러 왕사에 봉하고 조계종사의 자격으로
송광사에 주석케 한다.

스승인 지공선사가 입적하며 나옹에게 남긴 정골사리와
가사를 전해받아 스승의 뜻을 이루기 위해 회암사에 대가람을
건립하려 중창 불사를 일으킨다.

2백60간여의 대규모 사원을 낙성하여 서울과 지방의 선비와
아낙네들이 밤낮으로 왕래하여 생업을 폐지할 지경이었다.
이를 시기하는 무리들의 모함으로 밀양 영원사로 강제 이주
당한다. 스님이 회암사를 떠나 밀양으로 향하던중 제자들이
살고있는 여주 신륵사에서 발길을 멈추고 5월 15일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강가 바위 언덕에 앉아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열반에 든다.
입적한 그 바위에서 다비를 하고 그 자리에
3층석탑을 기념비로 세웠다. 지금의 석탑이 바로 그 탑이다
나옹 스님의 제자중 한사람이 무학대사(無學大師)이다.
출처 : 漢詩 속으로
글쓴이 : 진솔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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